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1화
@BAO
간절히 바란다면 이루어진다고 하던가?
그 말대로 나는 아주 간절히 바랐다.
이대로 죽지 않기를, 내 두 다리로 병원 바깥에서 걸어 다닐 수 있기를, 그리고 내 최애를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기를.
‘터무니없는 소원이었지.’
나는 희귀병 시한부 환자였고 내 최애는 활자 속 인물이었으니까.
분명 그랬는데,
“엥.”
지금 내 앞에 뭐지?
그림자가 겹겹이 겹쳐진 것처럼 새까만 머리카락. 석고상으로 깎아 지른 듯 아름다운 이목구비와 깊은 눈매.
핏방울을 떨군 것처럼 선명한 적안, 퇴폐미가 느껴지는 눈 밑 그늘…….
‘……검집 밖으로 나온 칼날.’
그런 인상이었다. 자칫 함부로 다가갔다간 살이 베이고 피가 솟을 것만 같은 위험한 느낌.
그러나 사내는 대단히 아름다웠다.
설사 칼날에 베여 피를 본다고 해도, 위험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와, 태어나서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보는 건 처음이야.’
이런 눈 호강이라니,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룰 줄 알았는데. 위험하고 나발이고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도, 도련님…….”
게다가 저 미청년은 그저 눈알 빠지게 수려한 것뿐만 아니라 내 최애캐를 연상시켰다.
‘해리스 고드윈.’
내 최애 웹소설, <시한부 천재의 S급 회귀 생활>에 나오는 흑막 공작의 외향 묘사가 그대로 구현된 듯한…….
“해리스 도련님!”
뭐?
귀청을 울리는 소리에 나는 흠칫 놀라 뒷걸음쳤다. 그리고 얼었다.
‘자, 잠깐.’
걸었다고? 내가?!
파하, 거친 호흡이 터져 나오며 깨달았다. 숨 쉬는 게 버겁지 않다니!
‘소원이 이루어진 거야?’
죽은 줄 알았던 나는 살아 숨 쉬고 있었고, 내 다리는 병실이 아닌 곳에 당당히 서 있었…… 잠깐, 여기 어디야?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돌벽. 추위에 몸이 저절로 떨렸다.
‘감옥인가?’
옷이 왜 이렇게 얇고 더러운 거야? 병원복도 이것보단 낫겠네.
“어, 어떡해…….”
그때, 가까이에서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랍게도 주변에는 나처럼 얇고 낡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쇠로 갇힌 우리 안에서, 무슨 노예처럼…….
‘노예?’
그제야 나는 곳곳에 가득한 쇠창살과 불쾌한 비린내를 감지했다.
지하 감옥.
노예.
그리고 해리스?
‘뭐야, 개꿈인가.’
당연하게도 나의 일차적인 반응은 현실 부정이었다. 아무리 내가 웹소 덕후라 해도 ‘설마, 나도 빙의를?!’ 하고 곧장 받아들이긴 어렵다고.
그러니까 나는 해리스가 눈앞에 나타난 것도, 내가 노예의 꼴로 그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 때문이었다.
“포, 폭주, 그 시기가 왔어!”
“얼른 노예들을……!”
좌중의 분위기를 일찍이 감지하지 못했던 건.
“으윽-!”
모두가 멀찍이 거리를 벌린 청년, 해리스가 몸을 웅크리고 신음했다.
나는 그제야 그의 팔목과 손목에도 수갑과 쇠사슬이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의 것과 달리, 그 수갑에는 번뜩하고 빛나는 이상한 보석이 박혀 있었다.
‘저거 설마 마력 구속구?’
그게 정답이라면 나는 이 순간을 알았다.
‘원작 초반부, 지하 감옥에 갇힌 해리스가 힘을 주체하지 못하여 노예를 학살했던 그 에피소드……?’
설마, 아니겠지?
필사적으로 현실 부정 회로를 돌렸지만, 해리스의 하얀 얼굴 위로 검붉은 핏줄이 불거지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저거 폭주 직전의 징조잖아!’
초월자, S급 이능력자…… 무엇이라도 말해도 본질은 하나였다.
멸망을 앞둔 세계가 살아남기 위해 초월적인 힘을 부여한 존재.
그리고 그만큼의 고통도 함께 부여받게 된 자들.
불행히도 초월자들의 고통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쾅-!!
해리스 곁에 놓여 있던 나무 의자가 폭발하듯 산산이 조각났다. 내가 갇혀 있던 우리도 박살이 나며 사람들이 쏟아졌다.
“으악!”
“아아악-!”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비명과 함께 무너졌다.
“폭주, 폭주다!”
“시작됐어……!”
“도망쳐!”
우리에서 빠져나온 몇몇은 도망치려는 듯 탈출구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스르릉- 쾅!
그를 막으려는 듯, 계단 앞에서 끝이 뾰족한 쇠창살 문이 계단 앞을 막았다.
“얼른 나와! 저 괴물 놈의 폭주 시기가 닥쳤다고!”
“그러니까 서둘러 노예들만 풀어두고 나가자고 했잖아……!”
가장 먼저 달린, 검푸르고 멀쩡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서둘러 쇠창살 문의 바깥에 있는 탈출구로 뛰어갔다.
“안 돼!”
“내보내 줘요!”
“우릴 저 괴물에게 죽게 만들 셈이야?!”
나와 같이 후줄근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쇠창살 문을 붙잡고 울부짖었지만…….
“하, 노예 주제에 뭘 바라?”
공포는 사람을 잔인하게 만든다고 하던가.
“괴물의 먹이가 되라고 사 온 거지, 우리 같은 사용인으로 써주려고 데려온 줄 알아?”
“그러니까 얌전히 괴물의 먹이가 돼서 죽어.”
“죽으라고 사 온 거니까!”
자신들도 노예들처럼 해리스의 폭주에 휩쓸릴까 두려운 건지, 사용인들은 매몰차게 문을 닫으려 했다.
“에, 에릭!”
그러나 언제나 집단에는 발 느린 사람이 하나쯤 있었다.
“나도, 나도 내보내 줘-!”
“한스?”
늦은 사용인 하나가 쇠창살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문을 닫으려던 사용인 하나가 멈칫했지만.
“아아악-!!”
피를 토하는 듯한 고함이 지하 감옥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검은 힘이 허공에 마구 날뛰며 주변의 쇠창살을 우그러뜨리듯 부숴 버렸다.
깡, 깡카라캉-!
박살 난 쇠창살이 날아가며 돌벽을 무너뜨렸다.
그 여파로 계단이 일부 무너지며, 아직 나가지 못한 사용인 한스가 추락했다.
“꺄아아악-!”
“사, 사람 살…… 크헉!”
무너진 잔해가 내 발치까지 쏟아지며 사방에서 비명이 쏟아졌다.
‘미친! 미친! 미친! 미친-!!’
이거 꿈 아니잖아! 현실이잖아!
갑작스럽게 닥쳐온 죽음의 위기에 몽롱했던 기분은 단숨에 박살 났다.
나는 간절히 빌었었다.
이 빌어먹을 병에서 살아남기를, 병원 바깥의 삶을 맛보기를, 그리고 최애캐를 만나보기를.
그리고 놀랍게도 그 소원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꿈이 이루어지자마자 죽는 건 좀 아니잖아!’
무슨 악마가 해줄 법한 드림 컴 트루잖아. 흑막의 폭주에 휩쓸려 죽는 엑스트라 1 따위에 빙의해 버리다니!
공간에서 퍼지는 두려움의 공기는 나를 전염시켰다.
“다, 닫아! 얼른!”
쿵-!
심지어 사용인들은 자기 동료(한스)가 죽든 말든 황급히 문을 닫아버렸다.
‘진짜? 나 이대로 죽어?’
뭐 이런 ☆같은 일이 다 있어! 그렇게 공포에 얼어버렸던 순간이었다.
“흐, 크흑…….”
작게 앓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퍼뜩 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보인 것은…….
‘해리스?’
고통으로 마구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었다.
악물린 턱에서 으득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바닥을 긁는 손에서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짐승처럼 웅크린 육신 위에는 검고 불길한 연기가 섬찟하게 파동쳤다.
거기에 육신 위에 들끓는 저 검은 공기의 파동이라니!
‘으, 무지 아픈가 봐.’
전생에 병자였던지라 나는 이런 데 쉽게 감응하는 편이었다. 객관적으로 지금의 해리스는 엄청나게 괴로워 보…….
쨍, 쨍그랑-!!
……이고 나발이고, 공감 능력 폐업합니다! 사방에 쏟아진 물건 조각들에 나는 덜덜 떨었다.
‘이러다가 나부터 죽겠어!’
초월자가 어마무시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가이드(Guide)!”
초월자와 달리 특출난 힘을 타고나진 못했으나, 도리어 그런 초월자들에게 특출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
“가이드! 어디 있어!”
아비규환의 상황인데도 친절한 응답이 들려왔다.
“가이드? 그런 게 여기 있을 리가 없잖…… 으악!”
“그래, 우리같이 잡혀 온 노예 중에 그런 귀중한 존재가 있을 리가 있겠…… 크헉!”
별로 도움은 안 됐지만.
‘어쩌지?’
보통, 평범한 이능력자들은 평범한 가이드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해리스와 같은 초월자의 경우엔 평범한 가이드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를 고통으로부터 구해 줄 가이드는 오직 하나.
‘주인공!’
에이드리안 터너.
오로지 그만이 해리스의 폭주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분명, 작중에서는…….’
여기서 에이드리안이 나타난다. 난 진분홍색 머리카락이 보이자마자 바로 고함쳤다.
“에이드리안-!”
“어?”
진분홍빛 머리카락의 미인이 날 돌아봤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세계 최강의 가이드인 에이드리안이 이능력자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그로서 그들을 죽도록 증오하는 것도, 자신을 인간 진정제 취급하는 놈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다는 사실도.
‘폭주가 눈앞에 닥쳐도, 억지로 정체를 드러내느니 차라리 죽을 위인이지.’
에이드리안은 그런 주인공이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미안, 정말 미안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초월자의 폭주에 휩쓸려 죽어버리는 엑스트라1’로 죽을 수는 없잖아!
“제이드, 이 무슨- 커헉?!”
난 즉각적으로 에이드리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내 몸통 박치기는 완벽히 적중했다.
힘을 숨긴 주인공 에이드리안은 정확히 해리스 등으로 넘어졌다.
‘그래! 대충 접촉했으니 얼추 됐다!’
가이드의 진정 능력, 가이딩(Guiding)은 기본적으로 접촉으로 시작된다.
‘물론, 지금 이건 좀 얼토당토않은 접촉이긴 해.’
그래도 에이드리안은 작중 최강 S급 가이드. 저런 얕은 접촉이라도 최소한 당장 죽을 위기는 넘기겠지!
“으윽…….”
내 예상대로, 해리스 육신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힘의 파장들이 사그라들었다. 주체하지 못하던 마력이 일시적으로나마 진정된 것이다.
그래, 얼렁뚱땅 이긴 해도 어찌 되었으니 다행…….
“……이다아아?!”
너무 오랜만에 걸어서일까, 아니면 갑작스레 몸빵으로 사람을 넘어뜨려서일까?
나는 무게 중심을 잃고 그대로 주인공, 에이드리안처럼 넘어졌다. 몸에 울리는 얼얼한 느낌에 나는 신음했다.
‘으으…….’
두 명의 사내에게 몸을 내던져서인지 뼈가 욱신거렸다.
‘아파!’
이 말도 안 되게 생생한 고통이라니, 정말 꿈이 아닌 건가? 진짜 내가 엑스트라 1 따위에 빙의해 버린 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죽진 않아서 다행이다.’
꿈에서라도 또 죽긴 싫어…….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알지 못했다. 쓰러진 내가 매달렸던 사람이 누구이며, 그의 붉은 눈이 나를 어떤 얼굴로 보고 있는지.
“……너.”
폭주가 어느 순간부터 멈춰 버렸다는 것까지도.
“너, 설마…….”
갈라진 목소리가 귓가에 닿기도 전, 나는 그대로 까무룩 의식을 놓았다.
그래서 몰랐다.
“마, 맙소사.”
“폭주가 멈추다니…….”
“그건 가이드만 할 수 있는 일이랬잖아. 아니면 다 죽는다고.”
“그, 그럼-!”
폭주가 가라앉은 뒤, 기절한 나를 두고 크나큰 오해가 생겨 버렸다는 것을.
“저 애, 가이드야?!”
그리고 그 오해가 내 인생을 어떻게 말아먹을지도.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