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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122)화 (122/133)

122.

정강필에게 당했던 걸 떠올리면 아직도 이가 갈렸다. 지금쯤 썩어 가고 있을 이건오를 부추긴 게 그였으니까.

“다쳤단 말이지.”

현재 서동연과 하프 좀비들이 정강필을 찾아 헤매고 있는 지역은 인천이었다.

원래 인천은 서동연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정강필의 세력이 곳곳에 침투해 있었다.

일찌감치 하프 좀비들에게 먹힌 지역이라 인천 내에서는 멀쩡한 건물을 찾기가 힘들었다.

서동연이 은거지도 주로 지하에다 만들어 놨기 때문에 지상은 멸망한 세상처럼 검붉은 피가 난무했다.

폐허 중에서도 한쪽 벽면만 남기고 다 무너진 건물 안으로 들어서며 서동연이 눈을 빛냈다.

채 마르지 않은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져 있는 공업용 비닐이 보였다.

핏방울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 새끼, 이 밑에다가도 굴 파 놓은 거 아니야?”

전생에 두더지였는지 정강필은 인천 시내 바닥을 수도 없이 파 놨다. 서동연이 정강필의 뒤를 쫓으면서 발견한 굴 같은 장소만 해도 스무 개가 넘었다.

안쪽에 들어갔을 때 온갖 일을 겪었던 터라 서동연이 잠시 머뭇거렸다.

“제가 먼저 들어가서 확인해 볼까요?”

위험한 일이었다. 하프 좀비 중 하나가 서동연의 곁으로 다가와 위험을 자처했다.

“아냐, 됐어. 다들 조심해서 따라와.”

그동안 수없이 사선을 넘나들었다. 까짓것, 죽기밖에 더 하겠냐는 생각으로 서동연은 핏자국이 드문드문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아래로 이어질수록 새까만 어둠에 잡아먹힌 상태였다. 일반 사람이라면 바로 밑의 계단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굴러떨어질 정도로 깜깜했다.

“이거 아무래도 점점 능력이 진화하는 것도 같고. 반대로 부상 입은 걸 보면 퇴화하는 것 같기도 하고. 희한하단 말이야.”

정강필은 S급 에스퍼 중에서도 전투 경험이 가장 많은 이였다. 오죽했으면 자신을 비롯한 알파 1팀이 전부 달려들었는데도 놈 하나를 붙잡지 못했을까.

그런데 서동연은 그의 뒤를 쫓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정강필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어느 순간부터 정강필의 전투 능력이 들쑥날쑥해졌다. 서동연은 살아남은 하프 좀비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고,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놈들은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 감옥에 가둬 둔 후 정강필의 세력마저 흩뜨려 놨다.

이건오라는 구심점이 사라져 빈틈을 파고드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하프 좀비들이 정강필의 밑에 들어갈 리도 없었고.

하프 좀비의 전력을 잃은 정강필은 서동연의 예상대로 협회장 쪽으로 향했다. 정강필에게 붙은 능력자들이 대부분 협회장이 은신하고 있는 장소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제발 그놈 좀 붙잡아 주게……!’

그러나 한발 늦고 말았다. 정강필은 협회장의 약점으로 삼고 있던 그의 가족들마저 다 죽여 버린 후 또 자취를 감췄다.

늙고 추레해진 얼굴로 협회장이 서동연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하프 좀비로 변한 가족들을 어떻게든 지키고자 정강필의 꼭두각시로 살던 인물이었다. 인생의 가장 소중한 걸 정강필에게 잃었으니 얼굴의 실핏줄이 다 터질 정도로 분노하는 그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는 했다.

적이었던 자신에게 두 무릎을 꿇고 빌 만큼 절박한 애원에 서동연은 그를 죽이는 대신 일단은 살려 둔 채로 감옥에 가둬 뒀다.

협회장 측에 붙었던 능력자들에 대한 처분은 임태한에게 맡겼다. 그 후로 전투 능력이 쓸 만한 하프 좀비들만 추려서 정강필의 뒤를 본격적으로 쫓았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추격전이 드디어 막을 내릴 예정이었다. 서동연의 본능은 이 아래 정강필이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정강필에게 복수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흉곽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서동연은 정강필을 마주한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이건 또 뭐야.”

마침내 계단의 끝부분에 발끝이 닿았을 때 서동연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동안 정강필의 뒤를 쫓으면서 다양한 종류의 아지트를 봤지만 이런 광경은 또 처음이었다.

“자기한테 실험을 하는 것 같은데요?”

하프 좀비들도 어리둥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하 공간은 온통 투명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핏자국의 흔적을 보아 정강필도 이 계단을 통해 내려온 게 분명했다. 하지만 벽 어디에도 문으로 보이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건 분명 영화로 만들면 대박 날 거야. ‘미친 사이코 S급 에스퍼의 일대기’라는 제목으로.”

서동연이 벽 가까이 다가가 주먹을 쥐고 있는 힘껏 벽을 때렸다. 살갗이 찢어질 만큼 강하게 후려쳤으나 벽에는 금조차 가지 않았다.

다만 벽 전체에 지진이라도 난 듯 강한 진동이 울렸다. 분명 자신이 도착했다는 걸 알 텐데도 진표성은 정신없이 움직이며 무언가에 열중한 상태였다.

그 모습이 정말로 완전히 미쳐 버린 이 같았다. 눈동자에 광기가 도는 게 머리에 꽃을 달아 주고 싶은 심정마저 들었다.

“아, 저 새끼 저럴 때마다 좋은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피가 어디에서 흘렀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진표성의 한쪽 머리는 움푹 파인 상태였다. 현재 그의 곁에는 남아 있는 자가 없었다.

하프 좀비들은 서동연이 나타난 순간 대다수 반항을 포기하고 항복했다. 능력자들마저도 협회장이 몰락하는 모습을 본 후에는 전투 의지를 상실했다.

오히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 보고자 정강필을 공격하는 자들까지 나타났다.

그 때문에 정강필은 서동연뿐만 아니라 원래는 제 편이었던 이들한테도 공격당하며 도망쳐야만 했다.

누구한테 당한 건지는 몰라도 정강필이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은 마음에 들었으나 그가 또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라 초조했다.

이곳에서 폭발을 일으켰다가는 자신부터 잔해에 파묻힐 테니 그러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 워낙 전력이 화려한 놈이라 예측이 불가능했다.

콰앙, 쾅, 쾅―.

“……뭐로 만들어졌는지 금도 안 갑니다.”

서동연을 따라 하프 좀비들이 벽을 부수기 위해 힘을 사용했다. 그러나 벽은 울리기만 할 뿐 실금조차 생기지 않았다.

“잠깐만 가만히 있어 봐. 머리 굴리는 중이니까.”

소란에도 정강필은 미친 듯이 실험 도구들을 바꿔 가면서까지 실험에 집중하고 있었다.

서동연이 잘됐다 싶어 차분하게 벽을 바라보며 손끝으로 더듬어 갔다. 정강필은 분명 이 방향에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가 벽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이 벽을 열고 들어갔다는 거다. 수많은 에스퍼들 중에서도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가진 이는 없었다.

순간 이동이 가능한 자가 외국에는 있다고 들었으나 정강필은 그 능력자가 아니었다.

“지문이나 홍채 인식만 아니면 가능해.”

특별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서동연은 바닥에서부터 천장에 닿는 벽까지 모조리 훑었다.

이질적인 감각이 손끝에 느껴지기만을 바라며.

낚싯대를 던지고 입질이 오기를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한참 동안 집중했을 때.

“걸렸다.”

다른 곳과 다른 굴곡진 감각이 손끝에 느껴졌다. 서동연처럼 감각이 극도로 발달된 이가 아니면 만지면서도 차이점을 모를 정도로 미세한 흔적이었다.

“이 부분 집중 공격해.”

“네.”

서동연이 가리킨 부분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이 날아들었다. 서동연을 비롯해서 하프 좀비들이 주먹이 터져 나가도록 벽을 두들겼다.

무식한 방법이었으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오, 금 간다.”

생경한 감각이 느껴졌던 부분을 중심으로 실금이 투명한 벽 위로 그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하는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하프 좀비들이 더욱더 힘을 내 벽을 두들겼다.

그쯤 되자 정강필도 무시하기는 힘들었는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서동연과 하프 좀비들을 살벌하게 노려봤다.

“표정 좋은데? 괜히 사람 좋은 척 웃고 있는 것보다는 덜 역겹네.”

인자한 표정을 꾸며 내면서 웃는 낯짝을 보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얼굴 가죽을 뜯어내고 싶을 만큼 혐오감이 치밀었다.

시커먼 속내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낯에 서동연이 가느다란 눈매를 둥그렇게 휘어 웃어 보였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형씨.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괴롭혀 줄 테니까.”

오랜 시간 굶었다가 드디어 눈앞에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진수성찬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벽이 투명한 터라 안쪽에서 정강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다 보였다. 그가 건너편에는 무슨 짓을 해 놨는지 아직 알 수는 없으나 보이는 광경으로는 막다른 벽이었다.

독 안에 든 쥐를 바라보는 고양이처럼 여유롭다가도 쥐가 기어코 독에 구멍을 내고 도망가 버릴 것만 같아 초조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다들 좀만 더 힘내 봐.”

투명한 벽 위에 새빨간 피가 덕지덕지 칠해졌다. 서동연뿐만 아니라 하프 좀비들이 몸을 다치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벽을 부수기 위해 사력을 다한 결과였다.

벽에 그어진 실금이 거미줄처럼 넓게 퍼져 나갔을 때는 서동연의 얼굴 위로 환희에 찬 미소가 잔뜩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서동연의 미간이 엉망으로 찌푸려졌다.

“저 새끼 지금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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