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왜 식인을 자제하라고 부하들을 들들 볶았어요?”
이건오의 눈동자가 짙은 살기를 머금고 번들거렸다. 하프 좀비 몸뚱이는 먹어도 맛이 없다. 본능을 못 이겨 동료였던 이들을 몇 번 물어뜯어 봤기에 사람과 달리 얼마나 맛이 지독한지 잘 안다.
하지만 서동연의 피와 살점은 인간 못지않게 달콤할 것 같았다.
“컥…….”
서동연이 강지우의 가슴팍에서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게 응급조치를 끝낸 순간이었다. 홀로 중얼거리던 이건오가 서동연의 목을 쥐고 그대로 반대쪽 벽에 처박아 버렸다.
“대장도 식인을 만류하는 게 아니라 누구보다 열심히 했어야죠.”
“씨이, 발…….”
식인을 이어 가면 하프 좀비의 이빨은 점점 육식동물의 것처럼 뾰족해진다. 날카롭게 번뜩이는 이빨이 씨익 올라가는 입술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앞에 둔 사람처럼 이건오가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핥았다.
이건오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처박은 바람에 서동연의 뒤통수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피 냄새에 이건오의 목울대가 거칠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식인을 안 하니까 그저 그런 잔챙이로 취급했던 제가…….”
“커억…….”
서동연이 목을 옥죄고 있는 이건오의 손을 떼어 내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자신의 일격을 당해 준 건 유희였던 것처럼 이건오는 서동연의 몸을 가볍게 들어 이번에는 바닥에 내리꽂았다.
서동연의 입 안에서도 피가 터졌다. 연이은 공격에 혀를 깨문 탓이다.
카득―.
“으아악……!”
“대장의 귀를 씹어 먹잖아요.”
이건오의 날카로운 이가 방금 전만 해도 서동연의 얼굴에 붙어 있던 귀를 물어뜯어 질겅질겅 씹어 댔다.
그의 입술 바깥으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가 더없이 붉었다. 희열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지척에서 들여다보는 서동연의 흰자위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한수호를 상대할 때도 이토록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았다. 아니, 하프 좀비가 된 이후 상대와의 무력 차이를 극심하게 느끼는 건 지금이 처음이리라.
콰직―.
“……아.”
“뚫린 입이라고 계속해서 개소리를 지껄이네, 개만도 못한 새끼가.”
그러나 서동연은 얌전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이건오에게 왼쪽 귀를 물어뜯겼다. 서동연의 피에 젖은 손에는 이건오의 오른쪽 귀가 담겨 있었다.
핏물에 젖은 살덩이를 바닥으로 던져 버린 서동연이 제 목을 옥죄고 있는 팔목을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 버렸다.
“크윽…….”
“왜 식인을 안 하냐고?”
뼈가 살을 뚫고 나올 정도로 격한 공격에 이건오가 비틀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귀가 붙어 있던 자리에서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피에도 그는 서동연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얼굴에 서동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억지로 뜯겨 나간 귀가 재생되면서 느껴지는 고통에 심장이 달음박질하듯 격하게 뛰었다. 분노로 가슴은 들끓는데 머릿속은 여느 때보다 차분했다.
“일시적으로 얻는 힘 따위. 노력해서 얻는 힘에 비하면 좆도 아니야, 씨발아.”
“커흐윽…….”
하프 좀비가 되면 기본적으로 인간일 때와 비교하기 힘든 힘을 얻는다. 에스퍼들이 각성할 때마다 등급을 부여받듯이 하프 좀비도 비슷했다.
처음에 하프 좀비로 변이될 때 주어지는 힘의 격차를 뛰어넘는 건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에스퍼와 하프 좀비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B급 에스퍼가 죽도록 노력한들 S급 에스퍼의 발치에도 못 미치지만, 하프 좀비는 그게 가능하다는 거였다.
이제는 기억하는 이도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러나 서동연은 사실 처음 하프 좀비로 변했을 때 다른 하프 좀비들보다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건 아니었다.
서동연이 지금의 자리에 오른 건 믿기 어렵게도 노력 덕분이었다.
“내 귀는 맛있었냐?”
“아아악……!”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서동연이 그대로 이건오의 턱을 쥐고 뜯어냈다. 이건오의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물들어 갔다.
서동연을 찾아오기 전에도 수많은 인간을 먹이로 삼았다. 한 명씩 제 배 속을 채울 때마다 더할 나위 없이 강한 활력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지독할 정도로 짙은 서동연의 살기에 전혀 활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이런. 이거 꼴이 말이 아니구만.”
서동연이 이건오의 눈알을 산 채로 파내려고 할 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닷, 탓, 탓
동시에 땅을 박차는 가벼운 발소리 또한 욱신거리는 귓전을 시끄럽게 두들겨 댔다.
“……정말 보고 싶었어, 당신.”
이건오를 뒤로한 서동연의 눈매가 가느스름하게 휘었다. 더없이 화사한 미소지만 눈동자는 싸늘하기만 해 정강필의 뒤에 서 있는 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 새끼가 인질 하나만 데리고 올 리가 없는데 말이야.”
이건오가 강지우를 데리고 빠져나왔던 통로를 통해 지금도 계속해서 하프 좀비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공간 안을 가득 채울 기세로 늘어나는 인원수에도 서동연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오히려 짙어져만 갔다.
중간중간 에스퍼 정복을 입은 이들도 보였다. 몇은 낯이 익었다. 한수호만큼은 아니어도 하프 좀비들에게도 실력이 알려졌을 만큼 유명한 에스퍼들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고 추켜세워 줘야겠어.”
서동연이 공간을 울릴 정도로 커다랗게 박수까지 치자 정강필의 표정도 묘해졌다. 귀가 뜯긴 자리에서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리는 탓에 서동연의 몰골은 누가 봐도 좋지 않아 보였다.
그의 뒤에 널브러져 있는 이건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자신만 해도 S급 에스퍼다. A급 에스퍼들도 여럿 있고, 이건오 못지않은 실력의 하프 좀비들도 포진된 전력이었다.
자신을 죽일 놈들이 점점 늘어나는데도 서동연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공간 안을 장악할 듯 퍼져 나가는 살기에 정강필의 뒤편에 서 있는 이들 중 일부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하지만 정강필을 비롯해 몇몇 이들은 서동연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마주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무시하기 힘든 살기가 제게 쏟아지다시피 하는데도 서동연은 어깨를 으쓱이며 정강필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토록 사이가 나쁘던 능력자랑 하프 좀비를 연합시킬 줄이야. 도대체 목적이 뭐길래 그러는 건지 뇌를 끄집어내서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라니까?”
다른 놈들은 잔챙이에 불과하다는 듯 정강필을 똑바로 노려보며 다가오는 걸음이 당당했다.
서동연은 정말로 궁금했다. 정강필의 목적이 뭔지.
권력? 협회장의 자리를 제 발로 걷어찬 자다.
부? 이 대한민국에서 그보다 더한 부를 가진 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가 마음만 먹으면 최고 자리에 오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목표로 삼는 두 가지가 사라진다면, 대의?
그러나 저들이 내걸고 있는 대의는 우습기 그지없었다. 인간을 가축처럼 키우겠다는 게 무슨 대의란 말인가.
수많은 이들의 반대에 부닥칠 거고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좀비들로 뒤덮일 것이다.
지금도 인간들의 영역은 점점 줄어드는 판국인데 이성이 있는 하프 좀비와 인간들이 치열하게 다툰다.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들에게 자진해서 영역을 내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진짜 생각을 많이 했단 말이야. 권력도 아니고, 돈도 목적이 아니고. 대의라는 우스꽝스러운 것도 아닐 테고.”
서동연이 정강필과 다섯 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멈춰 섰다. 지척까지 다가온 서동연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너, 불로불사 같은 거라도 생각하는 거냐?”
날카로운 눈빛이 일순 흔들린 눈동자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서동연의 눈이 조금씩 나이 든 태가 나는 정강필의 얼굴 곳곳을 훑어 내렸다.
아직 짱짱하지만 십 년만 지나면 지금 얼굴에 자리 잡은 주름이 더 진해질 테다.
반면 그의 곁에 선 하프 좀비들 중에는 누구도 정강필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이가 없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얼굴이라고 해 봐야 30대 초반. 하프 좀비가 되면 노화가 급속도로 늦어진다.
나이 지긋한 이들도 하프 좀비로 변해 회춘하듯 젊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일부 인간들 중에서는 하프 좀비가 되고 싶어 일부러 좀비들에게 물리는 경우도 존재했다.
“진짜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것 참, 똑똑한 놈인 줄 알았더니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놈이었네.”
제 추측이 맞아떨어졌다는 걸 확신한 서동연이 정강필을 한껏 비웃었다. 그조차도 하프 좀비들의 말년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아직 한 세기는커녕 반세기를 버텨 낸 하프 좀비가 없기 때문이다.
정강필이 생각하는 대로 하프 좀비의 노화가 더딘 건 맞지만 아예 진행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