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캬하아악―!”
철컥철컥, 시끄럽게 나는 소리에 더욱 흥분한 일반 좀비가 입을 상어처럼 한껏 벌리며 먹잇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어억―.
한수호가 할 수 없이 들고 있는 총신의 개머리로 좀비의 정수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좀비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부식이 별로 진행되지 않은 놈이었다.
일반 좀비는 오히려 더 흥분한 채 눈앞에 보이는 한수호의 팔을 물어뜯기 위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크윽…….”
한수호가 재빨리 제 팔 대신 총신을 일반 좀비의 이빨 사이로 욱여넣었다. 칵, 칵, 칵, 요란한 소리가 코앞에서 들려왔다.
좀비 몬스터가 아니라 일반 좀비여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총은 단숨에 망가지고 한수호의 팔에는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났을 테니까.
“형!”
하지만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현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주변을 훑었다. 지금 한수호가 상대하는 좀비뿐만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다른 놈들까지도 조금씩 거리를 좁혀 왔다.
“……유화야.”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한 김태진도 문에 등을 기댄 채 어떻게든 살아날 방법을 떠올렸다. 그때 그의 시야에 머리를 풀어 헤친 익숙한 인영이 들어왔다.
얼굴부터 발까지 어디 하나 성한 구석이 없는 오유화는 희뿌연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남아 있는 좀비들 중 가장 늦게 좀비가 됐지만 갈라진 배에서는 내장이 흘러내리고, 뼈가 허옇게 드러난 곳이 많았다.
“크히이…….”
오유화는 다른 좀비들보다도 느릿하게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먹잇감을 향해 걸어오는 중이었다.
김태진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금슬 좋은 부부 사이는 아니었어도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동반자였다.
두 사람 모두 같은 보육원 출신이었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서로의 안식처가 됐다.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고 결혼을 했다.
부모는 없어도 머리가 뛰어났다. 덕분에 국가의 지원을 받아 연구원까지 될 수 있었다. 아이도 한 명 낳아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태진 씨.’
결혼식 날 하얀 면사포를 쓴 채 수줍게 미소 짓던 얼굴이 지금도 생생했다. 하지만 지금 오유화의 얼굴은 볼 한쪽이 너덜너덜해져 예전의 미모는 찾기 힘들었다.
“캬하아!”
걸쭉한 타액 섞인 핏물이 한껏 벌어진 입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더 이상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먹잇감을 향한 지독할 정도로 강렬한 식욕. 그게 다였다.
“엄마…….”
이현도 오유화를 발견하고 말았다. 좀비 무더기에서 툭 튀어나와 정처 없이 흔들리던 하얀 팔이 그나마 오유화의 몸에서 멀쩡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어깻죽지가 움푹 파여 있어 손목시계가 채워진 팔은 다른 쪽 팔보다 허벅지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이현이 입술을 말아 물었다. 좀비가 되어 나타난 모친의 모습에 현실감이 자꾸만 사라지려고 했다.
어쩌면 자신은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자신을 그토록 사랑해 주던 부모님이 자신을 실험체로 삼고,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꿈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크햐아악―!”
두 사람이 충격에 휩싸여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오유화가 김태진에게 달려들었다. 초점이 흐릿하던 김태진의 눈동자에 그제야 빛이 돌아왔다.
지독할 정도로 잔인한 생존 본능이 발동된 것도 그때였다.
“윽…….”
김태진이 옆에 서 있던 이현의 등을 떠밀었다. 이현의 정수리가 오유화를 향해 푹 수그러졌다. 귓불에 맺힌 신선한 피에 오유화의 눈동자가 곧바로 이현에게 고정됐다.
“키히익!”
좀비가 된 후 처음 가까이에서 맡는 피 냄새이기에 오유화가 흥분했다.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를 때마다 반쯤 뜯겨 나간 목 주변의 살이 덜렁거렸다.
“흐윽, 흐…….”
이현이 바닥을 뒹굴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자리로 오유화가 덮치듯이 달려들었다. 이현의 귀에서 흘러내린 핏방울이 바닥에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피범벅이 된 팔로 바닥을 긁어 대던 그녀가 고개를 치켜들고 코를 벌름거렸다.
왼쪽으로 고개를 휙 돌린 그녀가 네발짐승처럼 기어 이현을 향해 다가갔다. 양쪽의 팔 길이가 다르고 근육과 뼈가 뒤틀린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꾸만 바닥으로 처박혔다.
한 걸음, 한 걸음 이어질 때마다 작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갔다. 이마의 찢어진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뿌옇게 흐려진 눈동자에도 스며들었다. 좀비가 되면서 순식간에 썩어 버린 피가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이현아……!”
이현이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오유화가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일어나 입을 활짝 벌리고 이현에게 제 몸을 던졌다.
그 순간 한수호는 모든 세상이 천천히 돌아가는 듯한 현상을 겪었다. 여전히 자신은 좀비 하나와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좀비의 이빨 사이에 총신이 끼어서 좀비가 자신을 물 수 없다는 건 다행이지만, 한수호의 움직임도 좀비에게 묶여 버리고 말았다.
총신을 쥐고 있는 손에서 힘을 푸는 순간 가까이에 맞붙어 있는 좀비의 이빨이 순식간에 신체 어디든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한수호의 눈동자는 이현을 좇았다. 김태진이 이현에게 한 짓을 목격한 순간에는 당장이라도 김태진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고작 좀비 한 마리에게 붙들려 매 순간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는 거였다.
좀비가 된 오유화가 핏물에 젖은 이빨을 이현의 목덜미에 박아 넣으려는 장면이 눈동자에 담기자, 심장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뛰었다. 전에 없던 힘이 몸속에서 느껴졌다.
한수호는 생경한 감각에 맞서지 않았다. 오히려 제 영혼까지 줄 기세로 모든 걸 맡겼다.
팟, 파앗―.
지옥의 한 장면 같은 상황을 밝게 비추던 전등이 하나둘씩 터져 나갔다. 이현의 발치에서 일어난 그림자가 끝이 날카롭게 벼려져 오유화의 턱 아래를 파고든 것도 그때였다.
“크르륵…….”
홉뜨인 회색빛 눈이 파르르 떨렸다. 식욕으로 번들거리던 눈동자에서 빠른 속도로 빛이 꺼져 갔다. 그녀의 몸속을 돌고 있던 피가 한 번에 터져 나와 이현의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이현을 붙잡기 위해 올려져 있던 오른손이 힘없이 이현의 뺨을 스치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이현이 눈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핏물에 푹 젖은 속눈썹이 엉겨 붙어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온통 시야가 새붉었다. 지독할 정도로 강렬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무너져 내리는 오유화의 몸을 따라 이현의 눈동자도 추락했다.
그녀가 이미 죽은 건 알고 있었다. 이현이 도망가는 걸 막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제물로 던져 좀비들이 갇혀 있던 케이지 문을 연 건 다름 아닌 그녀의 선택이었다.
무력하게 흔들리던 팔목을 보면서 이현은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런데 왜…….
또 한 번 그녀가 제 앞에서 죽어 가는 걸까. 턱 밑을 파고들어 정수리를 뚫고 나왔던 그림자는 어느새 이현의 주변에서 불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이현의 몸이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오유화의 주변으로 새빨간 피가 빠르게 번져 갔다. 이현의 실험복도 그녀의 피로 물들어 갔다.
손끝이 움찔 떨렸다. 손가락 사이가 마찰될 때마다 미끈미끈한 감각이 소름 끼칠 정도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문득 입 안에서도 비릿한 향이 가득 피어올랐다. 이마 위에 늘어진 머리카락 끝에 맺힌 피가 부피를 키워 가다가 버티지 못했다. 핏방울이 멍하게 벌어진 입술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우으윽…….”
이현이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속에 든 것을 게워 냈다. 먹은 것이라고는 없어 신물만 가득 올라왔다.
누군가 배 속에 손을 집어넣어 내장을 터트릴 기세로 움켜쥔다면 이런 고통이 들까. 조각난 심장까지 토해 내는 것만 같았다.
눈동자 가득 차오른 눈물에 핏물 젖은 속눈썹이 조금씩 깨끗해져 갔다.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가녀린 손이 들어왔다. 잔뜩 금이 간 채로 핏물에 젖어 있는 익숙한 시계 또한.
“너…… 에스퍼로 발현했구나.”
김태진이 목울대를 강하게 울렸다. 실험실 안이 진동하도록 울부짖던 좀비들이 순간 전신을 압박하는 무게감에 입을 다물 정도로 엄청난 위용이었다.
하급 에스퍼가 이 정도 힘을 낼 리 없다.
떨리는 시선이 머리통이 꿰뚫린 좀비들을 훑어 내렸다. 이현을 물어뜯으려 하던 오유화부터 시작해서 한수호가 들고 있는 총신을 갉아 먹던 좀비에, 조금씩 숨통을 조여 오던 다른 놈들까지.
하나같이 끈 떨어진 인형이 되어 움직임을 멈췄다. 바닥 가득 번져 가는 썩은 피만이 그들이 방금 전까지 몸부림쳤다는 사실을 은근하게 드러낼 뿐이었다.
“하하하.”
김태진이 미친 사람처럼 배를 잡고 웃었다. 그동안 실험체들이 에스퍼로 발현된 적은 없었다. 그랬다면 진즉에 자신과 오유화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힘을 가지게 된 실험체가 자신을 실험하던 이들을 살려 둘 리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