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
“크히익!”
“캬르륵―!”
“크햐아아―!”
설상가상 강준을 미끼로 사용해 다른 쪽으로 궤도를 틀었던 좀비 웨이브가 가이드 센터로 다가오고 있었다. 뿌연 먼지구름을 일으키면서 접근하는 좀비 무리는 그 자체로 악몽이었다.
진표성이 또다시 이현이 납치당한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리는 한수호를 불렀다.
“……팀장, 아무래도 아저씨가 강준도 빼돌린 것 같아.”
그게 아니라면 강준에게서 흘러나오던 미지의 호르몬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하지만 진표성은 지금 당장 강준을 묶어 놨던 옥상을 찾아가더라도 그의 머리카락 한 올 발견하지 못할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따라와.”
소름이 일 만큼 차가운 목소리였다. 진표성은 한수호의 머리가 제대로 돌아 버렸다는 걸 알게 됐다.
정강필은 한수호의 대부지만, 그와 재회한 순간 한수호가 그를 해치는 데 거리낌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한수호가 먼저 김솔을 품에 안아 들고 이동했다. 이곳에 남아 이현의 흔적을 더 찾아야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했다.
아무리 한수호라도 몰려드는 좀비 웨이브를 정면으로 마주해서는 승산이 없었다.
“난 또 두 명이야.”
진표성이 양어깨에 신민우와 김민지를 얹고 한수호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 고개가 자꾸만 뒤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현이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처럼.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뒤를 힐끔거렸다. 그러나 시야에 들어온 건 사방팔방에서 몰려드는 좀비 떼들뿐이었다.
핏물에 젖은 이빨들이 썩어 가는 몸뚱이에 박힌 채 눈은 먹잇감을 향해 음울한 빛으로 번뜩였다.
“크흐아악……!”
동료들을 급하게나마 땅속에 묻어 둬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좀비들의 발에 짓밟혀 신원을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육편이 되어 갔을 테니까.
“꼭 무사해야 해, 가이드.”
생각의 종점은 이현이었다. 정강필은 생존자들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이현과 함께 사라졌다.
진표성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세 명 중 한 명은 이미 일반 좀비에게 물어뜯긴 이후였을 것이다. 그가 결코 좋은 목적으로 이현을 데려간 게 아니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캬흐으……!”
달려드는 일반 좀비의 머리통을 그림자 단검으로 가르며 한수호는 이를 악물었다.
‘형, 오늘은 좀 어때?’
맑게 웃으며 제 상태를 살피던 이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본인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면서 동그란 눈은 상대방의 몸을 구석구석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능력은 정말 처음 보는데, 신기하구나.’
협회로 향하면서 이현은 어쩔 수 없이 정강필이 보는 앞에서 능력을 사용해야만 했다. 정강필은 강준의 가치를 알아봤을 때보다 더 놀란 눈치였다.
그때 그를 처리했다면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대부라는 의미가 자신에게 뭐길래.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산 세월이 그와 함께 지낸 시간보다 길었다.
그러나 이현은 아니었다. 절망만이 가득하던 인생에 처음으로 희망에 대해 알려 준 아이였다. 욕심이 나면서도 행여 자신의 욕심이 이현을 해칠까 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이현의 곁을 맴도는 동안 마음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한수호를 집어삼킬 만큼 커져 버렸다.
지나간 날은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수호는 미련을 끊어 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안일하게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을 찾아가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팀장, 앞에!”
상념에 젖어 있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현실에 한수호의 눈동자가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앞쪽에서 다가오는 좀비들의 그림자 수십이 한 번에 일어나 제 주인의 머리통을 우그러뜨렸다.
* * *
“이현아.”
“……네?”
한수호와 진표성이 가이드 센터로 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제 이름을 다정히 부르는 목소리에 이현이 무심코 대답하다가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렸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건지 정강필의 시선이 이현에게 못 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별거 아닌 시선이었다. 그런데도 이현은 팔에 돋은 소름이 온몸으로 번져 나가는 걸 막지 못했다.
추운 사람처럼 몸을 떨자 곁에 있던 김솔이 다가와 이현의 품에 안겨 들었다.
“아저씨, 추워요?”
“아, 아니야…….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처음에 낯을 가리던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김솔은 이현을 맹목적으로 따랐다. 경기를 일으킬 만큼 잔인한 광경을 목격해도 눈물이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매달릴지언정 울부짖거나 아픈 내색을 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신민우보다 훨씬 더 의연한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이현은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아이가 아이답게 살아갈 수 없는 현실에 숨통이 조여들었었다.
“정말로 기억이 완전히 나지 않는 거니? 내가 너를 곧잘 이현아, 라고 불렀는데.”
이현과 김솔이 나누는 대화에도 정강필은 오로지 이현만 바라봤다. 김민지가 께름칙한 기분에 신민우의 팔을 붙들었다.
“아, 왜 잡아.”
신민우는 다른 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오매불망 에스퍼들이 사라진 방향만 바라봤다. 언제 어디서 좀비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자신을 지켜 줄 존재들이 곁을 떠난 탓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놈의 눈치는 도대체 언제 생기는 거예요?”
김민지가 이를 악물고 씹어 뱉듯이 말했다. 죽을 위기를 여러 번 넘겼으면 눈치라는 게 생길 만도 한데 신민우는 여전히 멍청하고 이기적이었다.
“왜 그러냐고.”
“……지금 분위기가 이상하잖아요.”
하지만 김민지의 생각과 달리 신민우는 김민지에게 동료애를 강하게 느꼈다. 아직 진표성은 얄밉고, 한수호는 무섭지만 이현이나 김솔에게는 어느 정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중이었다.
김민지가 팔을 잡아끌면서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고 나서야 신민우가 가이드 센터 쪽에서 시선을 떼고 이현과 정강필을 바라봤다.
“그냥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니야?”
신민우는 도대체 왜 김민지가 이토록 과민하게 반응하는지 연유를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보기에 정강필은 수더분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현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뿐인데.
물론 이현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현의 안색이 괜찮았던 적은 없는 터라 그마저도 일상 모습 같았다.
“입 다물고 무기 쥐어요.”
김민지는 신민우에게 이해시키는 걸 포기하고 잠시 내려놨던 무기를 손에 쥐었다. 정강필이 S급 에스퍼지만 현재 김민지는 그가 자신을 해칠 것 같다는 기묘한 예감에 휩싸였다.
자신뿐만 아니라 눈앞에 있는 이현과 김솔 또한 그가 해코지를 할 것만 같았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라는 것 정도만 기억나요.”
이현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정강필의 시선이 묘하게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연구소에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다.
다들 뛰어난 머리를 지녔고, 무엇보다 한 가지에 꽂히면 무섭도록 파고드는 집착적인 호기심을 기본적으로 가졌다.
이현도 지닌 성향이기에 동료들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눈빛을 마주한다 해도 소름이 돋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예견했던 것 같다.
케이지 안에 갇혀 있는 실험체들을 볼 때마다 이현은 습관적으로 얼굴에 쓰고 있는 안경을 매만졌다.
감춰 왔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동료들이 방금 전까지 하하호호 웃으며 대화하던 자신을 한순간에 실험체로 취급해 케이지 안에 집어넣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정강필 앞에서 능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살아남기 위해 사용했을 테지만, 지금 정강필의 시선을 마주하니 과거의 시간이 자꾸만 후회됐다.
“네 부모님을 잘 알았단다. 부모님이 하는 연구에 동참했을 정도로.”
이현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여전히 기억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처럼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분명 한수호와 정강필이 제 과거에 존재했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수호가 얘기를 안 했구나. 수호한테는 했던 이야기인데.”
빙그레 올라가는 입꼬리와 달리 정강필의 눈동자는 호기심이 덕지덕지 묻어나 기묘한 광채가 흘렀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같이 실험해 보는 게 어떻겠니?”
“무슨…… 실험이요?”
주먹을 쥐어 봐도 떨려 나오는 목소리를 막을 수 없었다. 이현이 조금씩 가이딩 마력을 운용했다.
지금 당장 한수호와 진표성이 돌아오기만을 바라기에는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수호랑 표성이가 같이 있으면 분명 반대할 테니까. 너도 연구원이니 동의할 게다. ……과거에도 한번 겪었던 일이고.”
마지막 말의 의미를 곱씹으려던 순간 이현은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친 힘에 몸이 앞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품 안의 온기를 지키기 위해 팔에 힘을 줘 봤으나 다가오는 건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