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진표성이 땅을 파서 시신들을 임시로 묻어 두는 동안 한수호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발소리를 최대한 죽인 상태로 건물 안에 들어갔다.
반파되다시피 한 다른 건물들과 달리 가이드 센터는 제법 멀쩡한 외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쪽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 주듯이 시선이 닿는 곳마다 핏자국과 시신이 놓여 있었다. 하프 좀비들의 사체도 있었지만 에스퍼와 가이드의 시신이 더 많았다.
한수호도 인지하지 못하는 새에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깊게 새겨졌다. 협회에 소속돼 활동한 지 오래된 만큼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었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자들에 대한 분노가 가슴속에서 들끓었다. 모든 일의 원흉인 협회장이 눈앞에 있다면 그의 목을 단숨에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으, 흐윽…….”
한수호가 술렁이는 감정을 가슴 깊숙한 곳에 갈무리한 채 건물 안쪽으로 이동했다. 이질적인 소리는 1층 구석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가이딩실이 복도를 따라 즐비한 공간이었다. 문은 대부분 열려 있었고, 복도 벽의 일부는 반쯤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흔적을 살피던 시선이 한곳에 멎었다.
“……부팀장.”
임태한의 흔적이었다. 검게 그을린 듯한 번개 모양의 흔적이 바닥 한구석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흔적이 이어지는 방향을 찾고 싶었으나 소리를 내는 이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가이딩실 하나로 이어졌다. 문을 지나치자마자 마주한 광경에 한수호의 눈동자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요란하게도 남겨 놨네.”
하프 좀비 하나가 벽에 고정된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가슴 한구석에 박힌 철근은 원래의 색을 찾기 힘들 만큼 피로 범벅된 상태였다. 검붉은 철근 끄트머리에 고였던 핏방울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복도 바닥에서 발견한 흔적이 하프 좀비의 상체 위에도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상흔을 따라 살점이 짓이겨져 곪았다는 것 정도.
“너를 여기에다 남겨 둔 자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말해.”
한수호의 그림자가 일어나 눈을 반쯤 감은 채 신음을 흘리는 하프 좀비의 턱을 우악스럽게 쥐었다. 하프 좀비는 정수리에 머리카락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살이 녹아내렸다가 굳은 걸까. 이목구비가 온통 일그러진 상태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마주한 순간 경기를 일으킬 만큼 끔찍한 몰골이었다. 그러나 한수호의 눈동자에는 그에게서 얻어 낼 수 있는 정보에 대한 기대감만이 감돌았다.
“그냥…… 죽여…….”
하프 좀비는 눈을 뜨고 싶어 했으나 눈꺼풀조차 녹아내려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하프 좀비 특유의 회색빛 눈은 한쪽에 온전히 남아 한수호를 바라봤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도 하프 좀비는 한수호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오히려 드디어 죽을 수 있다는 희미한 기대감이 순간이지만 회색빛 눈동자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헉…….”
그러나 한수호는 적에게까지 자비를 보이는 성정이 아니었다. 불쌍하기 그지없는 몰골에도 굴하지 않고 그림자의 손을 움직여 하프 좀비의 귀 한쪽을 뜯어냈다.
“고통 없이 죽고 싶으면 말해. 바로 들어줄 테니까.”
애초에 살려 줄 생각 따위 없었다.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마주한 동료들의 시신이 여전히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눈앞에 있는 놈의 손도 말라붙은 피로 물든 상태였다.
그의 피일 수도 있지만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하고 죽은 동료들의 것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눈앞의 놈에게 고통 없는 죽음은 사치였다. 그리고 놈이 현재 가장 원하는 게 안식이라는 걸 한수호 또한 알아차렸다.
“꺼……. 아악…….”
꺼지려고 말하려던 입술은 신체 기관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에 말을 완성하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는지 잘 아는 사람에게 고문당하는 건 맨정신으로도 버티기 힘든 일이었다.
하물며 하프 좀비는 오직 죽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남았을 정도로 정신이 무너져 내린 상황이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놈들과 같은 일행이라는 생각에 반항했던 것일 뿐 그의 마음은 이미 꺾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흐으, 나도 몰라…….”
“기억해 내.”
하프 좀비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자신을 이 상태로 놔두고 간 건 새파란 하늘을 닮은 눈동자를 가진 에스퍼였다. 눈앞에 번쩍, 하는 섬광이 비치고 곧바로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시끄럽다는 듯 철근으로 자신을 벽에 박아 넣은 에스퍼는 다친 제 동료들을 부축해 건물에서 빠져나갔다.
그때 들었던 대화 내용은…….
“벙커…… 벙커라고 했어……. 진짜 이게 기억나는 전부야…….”
짓무른 눈가를 타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프 좀비로 살면서 이토록 고통스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눈앞의 에스퍼에게 살심조차 들지 않았다. 이미 제 몸의 기능은 하프 좀비의 재생력으로도 회복되지 않을 만큼 망가졌다.
이 상태로는 하프 좀비 무리에게 돌아간다고 해도 장난감처럼 구르다 죽을 운명이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깔끔하게 죽는 편이 나으리라.
“말……했으니까…….”
죽여 달라는 말은 하프 좀비의 뇌리에만 남았다. 한수호가 그림자의 손으로 하프 좀비의 이마를 꿰뚫어서였다.
“팀장, 여기서 뭐 해? 뭐라도 찾았어?”
바깥쪽에 있는 동료들과 건물 안 시신까지 수습한 진표성이 한수호의 곁으로 다가와 섰다. 가이딩실을 들어서자마자 진동하는 피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다 익숙한 흔적을 발견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팀장이 능력 사용한 놈인데. 이놈이 부팀장의 행방을 알아?”
“내가 알려 준 벙커 중 한 곳으로 이동한 것 같아.”
한수호는 임태한에게 진표성을 제외한 알파 1팀을 딸려 보내면서 정강필이 알려 줬던 벙커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하프 좀비들의 본거지로 향하는 한수호도 위험한 여정이었지만 임태한 무리도 만만치 않았다.
“그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도 떠올랐어?”
“응.”
가이드 센터의 안팎에 죽은 동료들의 시신이 존재하지만 원래 있었을 인원을 생각하면 많은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직 알파 1팀의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
“사람을 최대한 많이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갔을 거야. 좀비 웨이브를 피해서.”
천운인지 가이드 센터는 좀비 웨이브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흔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시신들도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던 거다.
“위치 알려 줘. 강준 데리고 그쪽으로 갈 테니까.”
“강준은 위험해.”
진표성이 지금쯤 사경을 헤매고 있을 강준을 언급하자 한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좀비들을 끌어모으는 강준을 데리고 벙커로 향했다가는 벙커 일대가 쑥대밭이 될 수도 있었다.
그곳도 지하에 있기는 하지만 정강필을 재회했던 벙커도 지하에 있었다. 그런데도 몰려드는 좀비들 때문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천장이 심하게 흔들렸다.
좀비 웨이브에 속한 좀비들의 수는 그때 몰려들었던 좀비들의 수와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 그러면 어떡하지? 강준을 버릴 수는 없잖아.”
조금이라도 빨리 임태한과 나머지 팀원들을 만날 생각에만 집중했던 진표성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하나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생각하지 못한 거였다.
“한 가지 생각해 놓은 게 있어. 일단 밖으로 나가자.”
한수호가 생각을 정리하며 이현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기 위해 이현과 잠깐 떨어졌던 것뿐인데도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서 이현이 납치당했던 그날 이후로 한수호는 이현의 존재가 곁에 없으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가이드랑 꼬맹이도 좀 쉬게 해 줘야 하는데, 일이 계속 긴박하게 돌아가네.”
진표성도 이현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쉬지 않고 능력을 사용한 여파로 희게 질렸던 얼굴이 떠오르자 발걸음의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곧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을 마주하고 말았다.
“캬하아악……!”
“……뭐야.”
진표성이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몸을 빠르게 움직여 쓰러진 이들에게 접근하던 일반 좀비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좀비의 썩은 피가 허공을 수놓았다 바닥으로 점점이 떨어져 내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분명 정강필에게 이현과 나머지 일행을 맡기고 가이드 센터로 접근했다. 데리고 가는 것보다 센터와 떨어진 곳에 두는 게 더 안전할 거라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다.
진표성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리 고개를 움직이고 귀를 기울여도 이현의 흔적은 없었다.
“내가 또 너를…….”
한수호의 잇새로 허망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모습이 사라진 건 이현 혼자가 아니었다. 정강필도 모습을 감췄다.
“……다들 기절했어. 인정사정없이 내리쳤네, 씨발.”
진표성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김솔과 김민지, 신민우의 상태를 확인했다. 신민우는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와 여자에게도 손을 올렸다. 정강필과 재회한 이후부터 그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던 제 감을 믿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