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59화 (59/133)

059.

진표성의 눈매가 가느다래졌다. 이현에게 거부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욱신거린 것도 잠시. 그보다는 이현의 안색이 너무 창백해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

“……죄송해요. 그냥 조금…… 몸이 안 좋은 것 같아요.”

이현도 제 행동에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진표성에게 의지해 몸을 맡긴 적도 있었다. 방금 전에 든 감각은 진표성이 순간 낯선 이로 느껴질 만큼 생경한 것이었다.

“……진표성 에스퍼?”

진표성에게 사과한 후 이현이 방으로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순식간에 시야가 흔들렸다. 진표성이 이현의 등과 오금 아래에 팔을 집어넣어 안아 든 거였다.

“꼬맹이, 따라와.”

“네에.”

이번만큼은 김솔도 이현에게서 진표성을 떼어 내려고 하지 않았다. 걸음을 옮기는 진표성의 뒤를 얌전히 따라붙었다.

잠시 내려 달라고 입술을 달싹거렸던 이현도 그대로 진표성의 품에 고개를 기댔다. 관자놀이가 몹시 지끈거렸다. 한숨 자고 일어나 내려갔던 열마저도 다시 오르는 듯했다.

“전기장판이 없네. 일단 이걸로 따뜻하게 덥혀 줄 테니까 한숨 푹 자.”

진표성이 이현을 침대 위에 내려 주고 온열 기구를 찾았다. 자동으로 온도가 조절되기에 방 안의 온도는 적당했다. 다만 이현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침대가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 확장형 아티팩트에서 여러 개의 핫 팩을 꺼낸 진표성이 시트 아래로 핫 팩을 집어넣었다.

“……감사합니다.”

그 사람과 함께 있던 공간에서 벗어났는데도 두통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간신히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 후 이현은 힘없이 베개에 고개를 묻었다.

피를 뒤집어쓴 후 발작이 왔을 때랑 비슷한 감각이었다. 마치 몸이 심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아저씨…….”

“꼬맹이는 나랑 가자.”

김솔이 이현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부르며 침대 위에 올라가려고 했다. 진표성이 김솔을 품에 안아 들었다. 이현이 귓가에 들려오는 김솔의 목소리에 눈을 뜨려 했으나 금세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진표성과 김솔이 방에서 나간 후 방 안에는 이현의 숨소리만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 * *

“이현이 왔니?”

“저를 연구소로 부르지 말고, 집에 좀 들어오세요.”

“미안해, 아들.”

이현이 모친 오유화의 미소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들고 있던 쇼핑백을 건넸다. 쇼핑백 안에는 부모님의 옷이 들어 있었다.

“연구에는 진전이 좀 있는 거예요?”

“그러기를 바라고 있는데 쉽지 않네.”

이현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연구원이었다. 정부는 좀비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서 특별 부서를 만들어 후원하기도 했다.

이현의 부모님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소를 운영하는 이들이었다.

오유화가 입고 있는 가운이 꼬질꼬질했다. 원래는 하얀색이었을 가운이 회색빛이 은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인사한 것도 잠시뿐이었다. 오유화는 곧바로 이현에게서 등을 돌려 현미경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빠는요?”

“글쎄. 아마 점심 식사 중이시지 않을까?”

“엄마는 점심 드신 거예요?”

“응. 아까 간단하게 영양 음료 마셨어.”

“제가 하루 한 끼라도 제대로 챙겨 드시라고 했잖아요.”

“이따 저녁에 잘 챙겨 먹을게.”

이현이 답답한 마음에 잔소리를 해도 오유화의 신경은 온통 미생물에 쏠려 있었다.

“맞다. 이현아, 온 김에 수혈 좀 해 주고 가라.”

“……또요? 일주일 전에도 했잖아요.”

“실험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네가 스무 살이라 그런지 엄마랑 아빠보다 세포 활동이 활발하잖아. 부탁할게, 응?”

오유화가 현미경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든 건 이현에게 부탁할 게 있을 때뿐이었다. 여러 번 겪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이현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쪽으로 앉아 봐.”

“……알겠어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연구소에 처박혀 사는 엄마와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유화가 이현의 옆으로 와 능숙하게 위팔을 끈으로 동여맸다.

“주먹 쥐었다 폈다 하고.”

이현은 언제인가부터 거의 주기적으로 부모님의 연구소에서 수혈을 하고 있었다. 일주일 전에도 피를 많이 뽑아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오늘도 일주일 전만큼 뽑으면 이번에는 현기증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현은 몸을 사리는 대신 얌전히 팔을 내밀었다.

오유화는 순식간에 이현의 팔에 바늘구멍을 냈다. 따끔한 통증에 이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주먹을 쥐었다 펼 때마다 투명한 줄을 타고 이현의 피가 흘러 팩으로 들어갔다.

정말 스무 살의 피는 다른 걸까.

오유화의 눈동자는 기대감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좀비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심혈을 쏟는 부모님은 이현의 자랑이었다.

이현도 자연스럽게 부모님이 이현의 나이 때에 걸었던 길을 걷고자 마음먹은 이유였다.

“저 이번 중간고사에서 전 과목 만점 받았어요.”

“어머, 정말? 역시 머리는 나 닮았나 보네.”

“아빠는 자기 닮아서 똑똑한 거라던데.”

“엄마가 아빠보다 조금 더 똑똑해.”

평소에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무던한 분들이 가끔씩 이현을 두고 티격태격 말다툼을 했다. 이현은 그게 꼭 자신을 향한 부모님의 애정인 것만 같아서 이런 식으로 화두를 던지는 게 인생의 낙이었다.

“혹시 어지럽니?”

“……괜찮아요.”

사실 이미 온몸이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 났다. 이현이 팩을 힐끔 살폈다. 아직 반도 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면 이 팩 다 채울 정도로만 피 뽑을게. 고마워, 아들.”

“네.”

오유화가 이현을 조심스럽게 품에 끌어안았다. 한쪽 팔은 피를 뽑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이현은 다른 팔을 들어 모친의 등을 다정하게 두들겼다.

그리웠던 엄마의 품은 다가왔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품에서 멀어져 갔다. 이현이 미련 남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도 모르고 오유화는 차오르는 피를 보며 앞으로 할 실험들을 떠올렸다.

“다 됐다.”

팩이 가득 차올랐을 때 이현의 안색은 희멀게진 상태였다.

“바로 일어나지 말고. 이거 하나 마셔.”

오유화도 자신이 원하던 걸 얻어 내자 이현의 안색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한 마음에 영양 음료를 가져와 이현에게 내밀었다.

이현이 음료를 받아 들어 한 모금씩 마시는 사이 오유화는 이현의 피가 든 팩을 소중하게 들어 혈액 보관함으로 옮겼다.

혈액 보관함 안에는 이현의 피뿐만 아니라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들로 가득했다.

“맞다. 이것 좀 너네 아빠한테 가져다줄래?”

이현이 음료를 다 마시자 오유화가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이현에게 건넸다. 밀봉된 서류 봉투를 열어 보고 싶었지만 이현은 익숙하게 호기심을 내리눌렀다.

이전에 한번 호기심에 서류 봉투를 열어 보려고 했다가 오유화에게 호되게 혼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계속 실험실에 계실 거예요?”

“응. 내일 정부에서 사람이 나오거든. 그동안 한 실험이 얼마나 진척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모양이야.”

그 말을 하는 오유화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이현은 언뜻 얼마 전에 부모님이 정부의 지원금이 줄어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게 떠올랐다.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한정되어 있고 연구하기를 원하는 연구원들은 많은 실정이었다. 그렇다 보니 정부 측에서는 연구소별로 점수 같은 걸 매겨서 지원금의 액수를 조정하는 것 같았다.

“알겠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얘기해 봤자 오유화의 심기만 불편해질 게 뻔했다. 이현은 서류 봉투를 품에 안고 연구실에서 나왔다.

인적이 없는 연구소의 복도가 오늘따라 휑하게 느껴졌다. 이현이 걸음을 옮기자 그의 발걸음 소리만이 한적한 복도 위에 울려 퍼졌다.

부친의 연구실은 모친의 연구실 아래층이었다.

부모님의 연구소는 총 3층 규모의 아담한 크기였다. 지하에는 실험 대상으로 잡혀 온 좀비 몬스터들이 갇혀 있었다. 지하는 위험하다는 부모님의 걱정 때문에 이현은 한 번도 내려가 보지 못한 장소였다.

“하아……. 좀 어지럽네…….”

이현이 계단을 내려가기 전 난간을 붙들고 숨을 골랐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피를 한 사발 뽑아낸 게 확실히 몸에 무리가 간 모양이었다.

영양 음료를 마셨는데도 순식간에 등허리가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어지러움이 심한 탓에 섣불리 계단을 밟아 내려갈 수도 없었다.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그대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것 같은 아찔한 감각이 들었으니까.

이현이 눈을 감고 어지럼증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릴 때였다.

“김태진 연구원 아들인가?”

계단 아래쪽에서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현은 부모님을 제외한 사람들을 연구소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직원을 두는 것도 꺼렸다. 혹시라도 자신들이 연구하는 내용이 외부로 유출될까 염려하는 거였다.

이현이 감고 있던 눈을 뜬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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