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
김하은이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막기 위해 손으로 입을 막았다. 손에 묻어 있는 피의 역한 냄새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윽, 윽, 터져 나오는 구역질을 김하은은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분명 김하은이 올라왔던 비상계단은 핏자국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에서 처음 좀비들을 봤으니 아직 지상은 멀쩡할 거라고 생각한 게 착각이었던 걸까.
1층 비상구 앞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흘러내린 지 얼마 안 된 듯 시뻘건 빛깔은 김하운의 시야마저도 붉게 물들일 기세였다.
특히 비상구 문에는 손자국도 가득했다. 자신이 열었을 때는 손쉽게 열리던 문이었다. 손자국의 주인은 문을 열 수도 없었던 모양이다. 엉망으로 찍혀 있는 손자국이 그가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보여 줬다.
핏자국은 하얀 벽면뿐만 아니라 천장에까지 튀어 있었다. 김하은이 떨리는 시선으로 주변을 훑어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의 시체도 없었다. 오로지 피만 낭자한 현장 속에서 심장이 불길할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정신, 차려야 해…….”
충격에 빠질 때마다 짓씹은 입술은 어느새 상처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입술에서 따가운 통증이 느껴졌으나 김하은은 오로지 가이드 센터로 향하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낭자한 피가 신발 밑창에 달라붙었다. 웅덩이가 형성될 만큼 바닥에 고인 피는 벌써 응고 현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양손으로 쥔 무기를 앞으로 내민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무리의 좀비 떼들이 나타났다 사라진 것처럼 1층은 어느 곳에 시선을 돌려도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흐윽…….”
뒷문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김하은은 첫 번째 사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좀비가 됐다가 죽은 듯 감지 못한 눈이 회색빛이었다.
이마 한가운데에 구멍이 난 이의 얼굴은 익숙했다. 1층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던 여성 직원이었다. 갓 스무 살이 됐던 친구라 김하은도 데스크 앞을 지나갈 때마다 살갑게 인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목이 뼈가 언뜻 보일 정도로 너덜너덜하게 뜯겨 있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거칠게 손등으로 문질러 닦아 냈다.
이후로도 김하은은 간간이 사체를 보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살아 있는 좀비는 마주치지 않았다는 거다. 무기를 들고 있어도 김하은의 전투 능력은 보잘것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뒷문으로 나와 원래도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이 좀비의 습격을 받았다면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 상대적으로 위험할 터.
다행히 김하은의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으슥한 곳으로 갈수록 핏자국이 사라졌다. 발바닥에 달라붙은 핏물이 그녀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건물의 뒤편으로 이동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건물의 코너를 지나 보이는 광경에 김하은이 다급히 건물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저리 가……!”
“아아악!”
“캬하아악……!”
좀비들의 괴성과 생존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섞여 난장판이었다. 협회에서 일하는 이들은 일반인들도 있지만, 김하은처럼 하급 능력자들이 더 많았다.
무기를 들고 좀비들과 대항하는 소리가 났다. 문제는 생존자들이 계속해서 좀비로 변해 간다는 거다.
“아, 안 돼……! 죽기 싫어…….”
김하은이 거칠어진 숨을 연이어 내뱉었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 죽어 가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다고 절박하게 내지르는 목소리가 화살처럼 날아와 귓가에 박혀 들었다.
하지만 굳어 버린 다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불안함이 아가리를 벌리고 심장을 물어뜯는 기분이었다. 본인의 안위와 다른 이들을 위하는 이타심이 맹렬하게 머릿속에서 싸웠다.
“방법을…… 찾자. 제발 머리 좀 굴려 봐, 김하은……!”
김하은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고민에 빠졌다. 아직 가이드 센터까지 갈 길이 멀었다. 평소라면 산책하듯이 걸어가기 좋은 거리였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 높은 산을 등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청소하는 분들이 사용하는 작은 트럭처럼 생긴 차였다. 사람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운전석 양옆은 개방되어 있지만, 뒤에 쓰레기봉투들이 가득 담겨 있는 공간이 있었다.
고개만 살짝 빼 들어 바깥 상황을 살폈다. 현재 생존자들은 길 한가운데에 몰린 상황이었다. 다들 등을 맞대고 사방에서 밀려 들어오는 좀비들을 힘겹게 상대하는 중이었다.
무기를 들고 싸우는 덕분에 현재 생존자들의 수와 좀비들의 수는 엇비슷했다. 일부 좀비들은 생존자들에게 달려들다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체들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재빠르게 차로 다가가 쓰레기봉투들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역겨운 냄새에 코끝이 아릿해졌다. 하지만 피 냄새보다는 나았다.
“제발 걸려라……!”
운전석에 앉아 시동 버튼을 눌렀다. 다행스럽게도 차는 마력 충전이 충분하게 되어 있는 상태였다. 김하은이 심호흡하고 그대로 차를 운전해 난투극이 벌어지는 장소로 돌진했다.
“다들 뒤에 올라타요!”
생존자들의 시선이 김하은에게 몰렸다. 좀비들도 마찬가지였다. 외곽에서 팔을 허우적거리던 좀비 두 마리가 김하은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긋지긋한 좀비 새끼들……!”
그들이 죄가 있어 좀비가 된 건 아니어도 좀비 자체에 대한 증오는 결코 옅지 않았다. 억눌렀던 울분이 터지듯이 흘러나왔다.
“다들 저쪽으로 움직여요!”
생존자들 중 가장 덩치 큰 남자가 들고 있는 무기를 휘두르며 길을 냈다. 피에 젖은 도끼날이 맨 앞에서 달려들던 좀비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김하은도 좀비 하나의 목을 칼날로 베었다. 힘이 부족해 좀비의 목이 반쯤 떨어진 상태로 달랑거렸다. 칼이 목뼈에 닿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칼을 빼내고 살이 드러난 곳에 칼끝을 박아 넣었다.
목 아래에서 파고든 칼이 일반 좀비의 머리통을 들쑤셨다. 끈 떨어진 인형처럼 몸을 바르르 떠는 좀비의 배를 발로 차서 밀어 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가이드 센터요!”
김하은의 옆자리에 먼저 올라탄 건 도끼를 든 덩치 큰 남자였다. 한쪽 안경알이 금 간 채로 코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다들 이 뒤로 올라타요!”
목적지를 들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생존자들에게 뒤쪽을 가리켰다. 그 와중에도 달려드는 좀비들의 머리통을 하나씩 깨부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좀비 몬스터들은 없고 일반 좀비들만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만 그들이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대화하던 동료들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플 뿐.
김하은이 액셀을 최대치로 밟았다. 뒤에 올라탄 생존자들이 끈질기게 달라붙는 좀비들을 무기로 쳐 냈다.
전방에서도 좀비들 몇몇이 달려오고 있었지만 차의 속도가 생각보다도 빨랐다. 짐승형 좀비 몬스터가 아닌 이상 좀비들이 차에 따라붙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저거는…… 어떡하죠?”
가이드 센터의 정문에 도달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때다. 앞에서 달려오는 네발형 좀비 몬스터에 김하은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등급이 A급인 몬스터였다. 좀비화가 진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목 아래의 살점 일부분이 물어뜯긴 걸 제외하면 상태도 멀쩡했다.
“크허어엉―!”
커다랗게 포효하는 소리에 운전대를 잡은 손이 벌벌 떨렸다. 좀비 몬스터는 달려드는 차를 보면서도 겁먹은 기색이 전혀 없었다.
김하은이 이를 악물었다. 곁에 다른 생존자들이 있기에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대로 밀어 버려요!”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남자가 운전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같이 잡았다. 쭈우욱 밀고 나간 차가 그대로 좀비 몬스터를 들이받아 버렸다.
차의 앞부분과 유리 부분이 박살 나며 차가 움직임을 멈췄다. 지면과 마찰한 타이어가 끼이익,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방금 전까지 상대하던 좀비들은 아직 저 멀리에서 뛰어오고 있었지만, 근처에도 좀비들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차 앞부분에 들이받힌 좀비 몬스터는 전투 불능이 됐다. 터져 나간 전조등의 유리가 좀비 몬스터의 살점을 파고들어 갔다. 썩어 있는 부분에 박힌 조각에 좀비 몬스터는 죽어 가는 울음소리만 냈다.
“다들 달려요!”
정문까지 50미터도 남지 않은 거리였다. 덩치 큰 남자가 재빠르게 정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김하은도 운전석에서 내려 한 손에 칼을 들고 뛰어갔다.
뒷부분에 올라타 있던 생존자들도 내려와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아악!”
하지만 한 사람은 금세 낙오되고 말았다. 지척까지 다다른 일반 좀비가 뻗은 손끝에 입고 있는 옷의 끝자락이 잡힌 거였다.
앞으로 달려 나가던 힘 때문에 생존자는 그대로 바닥으로 엎어졌다. 하필 엎어진 위치가 차에 들이받힌 좀비 몬스터의 바로 옆이었다.
죽어 가던 좀비 몬스터가 생의 마지막 힘을 쥐어짜 생존자의 팔을 물어 버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그대로 팔을 쑤시고 들어갔다.
“끄륵, 끅…….”
좀비에게 물렸을 때 좀비화되는 시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머리에서 가까운 위치를 물리면 더 빠르다는 연구 결과는 있지만 예외도 존재했다.
바닥에 넘어진 생존자는 변이가 빠른 편이었다. 아직 숨이 다 끊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눈동자가 가장자리부터 탁한 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