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차는 운전자가 술에 만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좌우로 비틀대고 있었다. 승용차는 주차되어 있는 차들의 범퍼를 마구잡이로 치면서 들어왔다.
운전자의 미친 운전 실력에 놀란 것도 있지만, 김하은의 눈이 동그래진 건 앞 유리를 새빨갛게 물들인 핏자국 때문이었다.
“크햐악……!”
운전석 창문 바깥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튀어나왔다. 찢어진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이목구비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눈동자 색마저도 새빨갛게 물들어 있어 식별이 어려웠다.
“캬학! 캬아악!”
머리뿐만 아니라 두 팔도 차창을 넘어 튀어나왔다. 운전대를 놓아 버린 손 때문에 차는 빙그르르 돌아 주차되어 있는 차 하나의 뒷부분을 들이받았다.
콰아앙. 지하공간을 울리는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운전석에 있던 몸이 허리까지 창문 바깥으로 넘어왔다.
운전석 창문은 내려간 상태가 아니었다. 창문이 닫힌 상태에서 무언가에 깨진 듯이 가장자리에 유리가 가득했다.
“캬아아악―!”
“왜…… 좀비가 여기까지…….”
부적이 찢어지고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이 들어 이곳까지 내려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김하은은 실제로 눈앞에서 좀비를 만나게 되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좀비 특유의 회색빛 눈동자는 피에 젖은 얼굴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운전자가 좀비라고 확신하는 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달려들려고 하는 몸부림 때문이었다.
이미 입에서도 사람 소리라고 하기 힘든 괴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김하은이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무기를 꺼냈다. 버튼을 눌러 칼날이 생긴 무기를 들고 좀비에게 향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운전자가 묘하게 낯이 익다는 걸 알게 됐다. 원래라면 단정히 묶여 있을 머리가 산발이 되어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 중간에 덜렁덜렁 매달려 흔들리는 리본 핀을 본 순간 아침에 웃으며 인사했던 동료 직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진 씨…….”
“캬하악!”
동갑내기 동료였다. 나이가 같기에 부서는 달라도 가끔 점심 식사를 같이하거나 식사 후 카페에 종종 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동료는 한 마리의 좀비가 되어 버린 후였다. 이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눈동자가 허기에 찌들어 먹잇감을 향해 움직였다.
“미안……해요.”
콰직. 눈구멍을 파고든 칼날에 괴성이 멎었다. 김하은이 눈을 질끈 감았다. 눈동자 가득 고였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왜 그녀가 좀비가 되어 여기까지 들어온 건지는 몰라도 살려 둘 수는 없었다. 안전띠에 묶여 있다고는 하나 풀리는 순간 좀비가 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물어뜯을 게 분명하니까.
칼날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손바닥을 적셨다. 뜨거우면서도 질척한 느낌에 김하은이 팔을 뒤로 물렸다.
추욱 늘어진 몸뚱이가 차 앞문 위로 늘어졌다. 이제는 사체가 되어 버린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주차장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신고, 신고를…….”
김하은이 핸드폰을 찾아 들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협회 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미 보안 팀에서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사고를 지켜봤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신고를 하는 것과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건 달랐다. 간신히 신고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금방 연결될 거라는 기대와 다르게 핸드폰에서는 연결음만 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녹음된 안내 음성만 흘러나왔다.
한 번 더 번호를 눌러도 소용없었다. 코끝을 찌르는 피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김하은이 별수 없이 일단 이 공간에서 빠져나가려고 할 때였다.
끼이익, 끼이익. 시끄러운 타이어 소리가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김하은이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와 동시에 주차장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갔다.
곳곳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주차된 차들을 들이받는 승용차도 있었고, 기둥에 그대로 돌진해 보닛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SUV도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건 김하은이 해치운 일반 좀비처럼 차 안에서 아우성치는 좀비들이었다.
“크햐아!”
“캬악! 캭!”
“캬하아악―!”
자신들이 움직인다는 걸 사방에 알리듯이 좀비들이 괴성을 질러 댔다. 지하 주차장은 작은 소리도 크게 울렸다. 하나가 아닌 여럿이 내는 소리는 사람의 공포심을 밑바닥부터 자극했다.
김하은이 볼 안쪽의 살을 깨물었다. 이미 과거에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시간을 보냈던 이를 해치웠다. 협회에 왜 좀비 새끼들이 득시글대는지는 알 수 없어도 일단은 살아남아야 했다.
빠르게 엘리베이터 쪽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두 대 모두 고층에서 멈춰 서 있었다.
잠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으나 생각을 고쳐먹었다. 엘리베이터는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문이 열렸을 때 발생할 일에 대비하는 게 어려웠다.
등 뒤가 막다른 공간이나 마찬가지니까. 아직 위쪽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운전자들이 좀비가 되어 지하 주차장에 난입했다. 좀비들이 특별히 지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도 아닌 여럿의 좀비가 지하 주차장에 들어왔다면 그 이상의 수가 지상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힘들었다.
“에스퍼들이 많이 있을 공간이…….”
김하은이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최근에 협회에서는 에스퍼들을 상당수 파견 보냈다. 서대문구도 좀비들에게 넘어간 상황이었으니 사태가 위급한 건 사실이다.
김하은은 말단직원이라 아는 정보는 많이 없었다. 다만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소문 듣는 걸 좋아한 터라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자투리 정보는 있었다.
협회 내에 대한민국 정부까지 있는 판국이었다. 그 말인즉슨 협회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의 모든 행정 시스템이 마비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협회는 다른 곳에 위험이 생겨도 협회를 지킬 만한 인력만큼은 꼭 남기고는 했다.
‘요즘 웃대가리들이 좀 이상해. 상급 에스퍼들 거의 다 파견 나간 거 알아? 알파 1팀뿐만이 아니야. 알파 팀들은 거의 다 2주 이상 걸리는 장기 임무 나갔다고 보는 게 맞아.’
협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동료가 해 준 말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처럼 윗선과 일하는 경우가 아니면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김하은이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 상급 에스퍼들이 대다수 파견 나갔다고 해도 협회 내에 한 명도 없는 건 아닐 터.
만약 정말로 협회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들은 분명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존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할 게 분명하다.
이 정도 소란이 일어나면 경보음이 울려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었다. 지금도 지하 주차장 쪽에서는 차가 부딪치는 소리와 좀비들의 괴성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중이었다.
김하은이 비상구 문을 열기 전에 문에 귀를 대고 집중했다. 주차장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는 대신 문 너머에서 나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안쪽에서는 공기가 울리는 소리만 날 뿐 의심스러운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김하은이 조심스럽게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피 묻은 손 때문에 손잡이가 몇 번 손아귀에서 헛돌았다.
손바닥을 옷에 문질러 피를 대충 닦아 낸 후에 다시 돌리자 문손잡이가 부드럽게 돌아갔다. 바깥쪽의 소란과 달리 비상계단은 고요했다.
김하은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안쪽으로 들어온 후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지금쯤이면 차 안에서 좀비들이 한둘씩 탈출했을지도 모른다. 해치운 좀비는 안전띠에 몸이 묶여 있었고, 양팔이 성하지 않은 상태였다.
일대일로 좀비와 맞닥뜨리는 거면 모를까. 좀비의 수가 셋만 넘어가면 김하은도 금세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두 손으로 무기를 꼭 쥔 채 천천히 위쪽으로 올라갔다. 가이드 센터는 현재 김하은이 있는 건물에서 북동쪽으로 최소 500미터는 걸어가야 나온다.
김하은이 생각했을 때 가이드들과 같이 있는 게 지금 상황에서는 제일 안전한 선택이었다. 잠시 차를 운전해 이동하는 걸 떠올렸으나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웠다.
차들 여러 대가 얽히고설켜 있던 주차장 입구의 모습으로 보아 탱크라도 타지 않는 이상 뚫고 나가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가족이 없어서 다행인 건가.”
김하은의 얼굴이 우울한 빛으로 물들어 갔다. 평소의 긍정적이고 밝은 그녀만 기억하는 동료들이 보면 놀랄 모습이었다.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한 순간 그 사람에게 연락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텐데. 김하은은 지키고 싶은 이들을 모두 제 곁에서 떠나보낸 상태였다.
직장 동료들의 얼굴이 몇 떠올랐으나 이미 가깝게 지내던 이의 숨을 끊어 낸 이후였다. 김하은은 제가 이렇게 냉정한 성격이었나 실소하며 계단을 하나씩 올라갔다.
마침내 1층에 도달했다. 이곳까지도 수상한 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문을 열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께름칙한 감각이 들었다. 김하은이 심호흡한 후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