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
김민지가 잠든 걸 확인한 진표성이 침낭 두 개를 이번에는 강준과 신민우에게 건넸다.
“너네는 좀 떨어져서 자. 붙어 있으면 싸울 것 같으니까.”
진표성도 순간이지만 강준이 신민우를 내려다보던 눈빛을 목격했다. 그래서 고민이었다. 강준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이미 강준에게서 필요한 정보는 다 빼낸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제는 하프 좀비일 때의 능력도 없는데 일부러 죽게 놔두는 건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현의 능력으로 하프 좀비였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존재를 곁에 두고 지켜봐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제한 시간 동안에만 돌아오는 건지, 아니면 정말 영원히 돌아온 건지 아직은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이현을 지키려면 이현이 지닌 능력의 실체 또한 알아내야만 했다.
“……먹을 거는 없습니까? 배 엄청 고픈데.”
강준이 침낭은 바닥에 대충 던져 놓고 배를 문질렀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강준의 배 속에서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붉어진 귀 끝을 매만지며 강준이 진표성의 눈치를 살폈다.
“너도 배고파?”
진표성이 신민우에게도 물었다. 김민지는 끼니를 챙길 겨를도 없이 잠들었는데, 두 놈은 체력이 좋은 건지 수면욕보다는 식욕이 더 큰 모양이었다.
“……네.”
신민우도 방 안에서 먹은 건 물이 다였다. 그 전에도 끼니는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나씩 먹어. 남기지 마라.”
진표성이 전투식량 두 개를 꺼내 강준과 신민우에게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걸 무사히 받아 낸 둘이 자리에 앉았다. 강준은 능숙하게 전투식량의 윗부분을 잡아당겼고, 신민우는 그런 강준을 따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이 폴폴 솟아오르는 봉지를 붙들고 둘이 쌍둥이처럼 입맛을 다셨다. 김솔이 먹을 때는 양이 많아 보이던 전투식량은 성인 남성의 위장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더 없어요? 아직도 배고픈데…….”
두 사람 중 먼저 식사를 끝낸 건 강준이었다. 강준이 혓바닥으로 봉지의 안쪽 면까지 알뜰하게 핥아 먹었다. 그런데도 극심한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밥을 먹었더니 허기가 더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배고픔에 이성이 마비될 지경이라 진표성에게 식량을 더 달라 얘기했다.
자신이 그에게 알려 준 위치에는 이런 전투식량뿐만 아니라 식재료도 넘쳐났다. 공간 확장형 아티팩트에 담아 왔다면 현재 꽤 많은 식량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 끼에 하나만 먹어야지. 걸신들렸어?”
강준의 예상대로 식량은 아직 넉넉했지만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질지 모른다. 새로운 식량을 보급받을 경로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생각 없이 배부르게 먹기보다는 적당한 양의 식량으로 생활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진짜 배고픈데…….”
진표성의 미간이 찌푸려지자 강준은 더는 요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배에서는 계속 소리가 났다. 저절로 시선이 신민우가 먹고 있는 전투식량에 닿았다.
“저도 엄청 배고프다고요. 이것도 모자라요.”
신민우가 강준에게서 식량을 보호하듯이 몸을 웅크렸다. 음식을 먹는 속도도 빨라졌다. 강준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져 갔다.
모든 말초신경이 신민우가 먹고 있는 음식의 향과 음식을 먹으면서 신민우가 내는 소리에 집중됐다. 방금까지 자신도 먹었던 음식이기에 입 안에 계속해서 침이 고였다.
침을 삼키면 굶주림이 덜해질까 싶어 연신 목울대를 울려도 소용없었다. 이제는 벌어진 입가를 따라 침이 주르륵 흘러내리기도 했다.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음식에 조바심이 났다. 진표성이 하나로 끝이라고 했으니 더는 욕심 내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이성이 안개처럼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당장 저걸 먹어야 했다.
“너 지금 뭐 하냐?”
“아…….”
강준이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악력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신민우가 자신을 보면서 손가락질하는 게 보였다.
무언가 말은 하고 싶은데 방금 일어난 일이 너무 충격적이라 할 말을 잊은 표정이었다.
“방금 전에 너 쟤 손가락 씹으려고 했어.”
“……제가요?”
믿기지 않았다. 강준은 하프 좀비가 된 후에 인육을 탐한 적이 없었다. 육식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건 모두 소나 돼지, 닭 같은 가축들에 한정해서였다.
좀비로 변이했을 때 먹었던 피와 살의 맛이 가끔씩 떠올라 충동적으로 인육을 다시 먹고 싶다고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강준은 인육을 계속해서 탐하는 자들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곁에서 지켜봤다. 그들은 모두 하프 좀비인데도 불구하고 서서히 이성을 잃어 갔다.
하프 좀비가 되면서 어렵게 찾은 이성이 살아 있는 인간을 물어뜯을 때마다 다시 사라지는 것처럼.
“제가 그럴 리가…….”
“기억도 안 나?”
진표성의 말에 강준이 기억을 곰곰이 돌이켜 봤으나 줄어드는 전투식량을 보면서 입맛만 다셨던 기억이 다였다.
가위로 잘린 것처럼 사라진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다만 멍했던 정신을 차린 건 진표성이 자신을 붙들면서부터였다.
“저, 저…… 이 사람, 아니, 이 좀비, 아무튼 이거랑 같이 못 있겠어요…….”
겁에 질린 신민우가 횡설수설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에 쥐어진 전투식량이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강준의 표정만 보면 진표성이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신민우는 강준에게 손가락을 씹어 먹힐 뻔한 당사자였다.
침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손가락을 향해 달려들던 모습이 생생했다. 진표성이 강준의 뒷덜미를 잡아채 뒤로 잡아당기는 행동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제 손에서는 손가락이 하나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왜 에스퍼들이 죽이지 않고 가만 놔두는지 모르겠다.
“일단 좀 진정하고 저쪽으로 가서 한숨 자.”
진표성이 신민우에게 옥상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신민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움직였다.
“너는 좀 묶어 놔야겠어. 기억도 없이 저지른 일이라고 하니까 더 가만히 놔둘 수가 없네.”
“아니, 전 진짜로 억울하다니까요?”
신민우의 등 뒤로 길게 이어지던 시선은 진표성의 말에 그의 얼굴로 향했다. 강준의 눈동자에는 정말로 억울함이 그득했다.
만약 직접 목격한 일이 아니고 신민우의 말만 들었다면 진표성도 강준의 말을 믿었을지 모른다.
“얌전히 있어. 원인을 알아낼 때까지는 계속 구속구 차고 있어야 하니까.”
“도대체 왜……!”
“아니면 여기에서 찢어질까? 너는 너 갈 길 가고, 우리는 우리 갈 길 가고.”
“…….”
드디어 조용해진 강준의 손목과 발목에 진표성이 구속구를 채웠다. 마지막으로 입마개도 채웠다. 임무 중에 혹시라도 좀비들을 포획할 일이 있을 때 사용하는 도구였다.
손에 채운 구속구를 옥상 난간에 붙어 있는 관에다가 연결까지 하고 나서야 진표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알고 싶을 거 아니야. 네가 왜 그러는지. 그러니까 참아.”
이현이 사용한 능력의 부작용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강준은 다시 일반 좀비로 돌아가려는 걸 수도 있었다.
하프 좀비가 되면 인육에 대한 욕망은 조절하는 게 가능하다. 본능이 선택의 영역으로 옮겨지는 것과 유사했다.
번들거리던 강준의 시선은 하프 좀비보다는 일반 좀비에 더욱 가까웠다.
“……줄 조금만 더 늘여 줘요. 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강준이 손목에 채워진 줄을 당겨 보다가 진표성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이 정도 길이면 구석진 곳으로 가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위치에서 볼일을 봐야만 했다.
“이 정도가 최대야. 더 이상은 안 돼.”
진표성이 거리를 계산했을 때 강준이 발악해도 다른 이들에게 닿을 수 없을 만큼만 줄을 늘여 줬다. 강준도 그 이상으로는 요구하기 힘들다는 걸 아는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진짜로 먹을 거 조금만 더 주면 안 돼요? 배고픈 게 하나도 안 가셨어요…….”
강준이 까득, 까드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제 손톱을 물어뜯었다. 진표성이 할 수 없이 전투식량 하나를 더 꺼내 강준에게 건넸다.
“이게 마지막이야. 이거 먹고 나서도 배고프면 그때는 참아.”
“네!”
목소리가 우렁찰 뿐만 아니라 전투식량을 받아 드는 얼굴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아까랑 다른 음식이네요.”
생각하고 준 건 아니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건넸을 뿐이다. 강준은 입맛을 다시며 전투식량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두 손을 마주 비비는 동작에 손금이 닳을 듯했다.
분명 저렇게 과장스럽게 행동하는 놈이 아니었는데. 진표성의 눈동자가 착 가라앉았다. 사방팔방에서 달려드는 좀비 떼들을 비롯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까지 껴안은 기분이었다.
진표성은 강준이 걸신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걸 얼마간 지켜보다가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