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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43화 (43/133)

043.

손가락 한 마디만큼 벌어진 틈새는 순식간에 일반 좀비의 머리통이 통과할 만큼 넓어졌다. 그렇다고 해도 문이 완전히 열린 건 아니었다.

억지로 얼굴을 들이민 탓에 일반 좀비의 얼굴이 말 그대로 우그러졌다. 하필 부패가 꽤 진행된 상태라 문과 벽을 타고 썩은 피가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우윽…….”

신민우가 입을 틀어막았다. 미처 막지 못한 신물이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왔다.

“다들 이쪽으로 와.”

진표성이 한수호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한수호는 복도의 끝 쪽에 있는 창문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간 상태였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봄치고는 서느런 밤바람이 불어왔다. 심지어 꽃향기를 머금은 바람이었다.

“어, 얼른 올라가요……!”

얼굴이 압축기에 눌린 일반 좀비를 필두로 다른 좀비들도 틈새로 몸을 욱여넣었다. 끼이익, 철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모골이 송연했다.

신민우가 창문가로 달려가 진표성을 향해 손을 휘적거렸다.

“얘 먼저. 너는 레이디 퍼스트라는 말도 모르냐?”

진표성이 그런 신민우를 무시하고 김민지의 팔뚝을 붙들고 창가로 끌어당겼다. 김민지도 좀비들의 소리에 몸이 굳어 삐걱거리는 걸음으로 진표성에게 끌려가다시피 했다.

“목에 팔 둘러.”

“네…….”

김민지가 서둘러 진표성의 목을 끌어안았다. 몸이 창문 바깥으로 휙 넘어갔다. 진표성이 건물 외벽에 발끝을 쑤셔 넣어 홈을 만들었다. 계단을 올라가듯이 김민지와 함께 순식간에 옥상에 도달했다.

“이제 좀 놔주지.”

진표성이 김민지의 팔을 툭 건드렸다. 그제야 눈을 동그랗게 뜬 김민지가 진표성의 목을 놨다.

“야, 귀찮은데 너네 그냥 이거 밟고 올라오면 안 되냐?”

진표성이 옥상 난간을 손으로 짚고 아래쪽을 향해 말했다. 현재 건물 주변에는 좀비들이 우글거렸다. 희미하게 비치는 달빛 아래에서 덩어리진 채로 움직이는 모습이 어둠에 먹힌 바다처럼 보이기도 했다.

진표성의 목소리에 좀비들이 허공을 향해 아우성쳤다. 그건 인간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층까지 올라온 좀비들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씩 열리던 문이 문손잡이가 벽에 처박힐 정도로 강하게 열린 게 시발점이었다. 봇물 터지듯 좀비들이 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으아아악……!”

먼저 움직인 건 강준이었다. 저를 향한 수십 쌍의 회색빛 눈알에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며 창턱에 올라갔다. 사지가 덜덜 떨려서 당장이라도 몸이 바깥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어, 어디를 밟고 올라가라고요?”

강준이 손을 더듬어 벽을 매만졌다. 진표성은 다급한 강준과 달리 느긋하게 벽의 군데군데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거기에 내가 파 놓은 홈 있잖아. 클라이밍 하듯이 올라와. 한 번도 안 해 봤어?”

어깨를 으쓱이는 진표성은 할 수만 있다면 얼굴을 날려 버리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강준이 이를 악물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홈에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얼른 올라가요……! 으흑…….”

신민우도 별수 없이 창턱에 몸을 올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좀비들이 한 번에 너무 많이 쏟아져 들어와 저희들끼리 뒤엉켜 있다는 거였다. 복도의 길이가 꽤 긴 것도 현재 생명 줄이 늘어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좀비들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한 몸처럼 엉킨 탓에 마치 거대한 구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선두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좀비들의 머리통이 한결같이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모기가 귓가에서 윙윙대는 것처럼 집요하게 달라붙는 소리에 신민우의 얼굴이 눈물로 젖어 들어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최철희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구질구질하게 계속 살아남고 싶냐고 비웃어도 별수 없었다. 단 하루의 삶도 절박했으니까.

“밀지 마……!”

신민우가 급한 마음에 강준의 다리를 밀어 냈다. 하필 홈 하나에 발을 끼워 넣으려 움직이던 터라 몸이 휘청거렸다.

신민우를 내려다보는 강준의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다. 능력을 잃었어도 사람을 죽였던 경험은 잊히지 않았다. 이미 몸에 어느 정도 살기가 밴 상태였다.

그저 에스퍼들의 눈치가 보여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신민우가 본인의 안전에 위협까지 가하자 살심이 치솟았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빨리 올라와라.”

위에서 들려오는 진표성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을 그대로 현실로 옮겼을 거다. 고개를 흔들어 신민우를 발로 걷어차 아래에 떨어뜨리는 생각을 지워 낸 강준이 홈을 발로 딛고 재차 위로 손을 뻗었다.

처음이 어렵지 차근차근히 팔을 뻗고 발에 힘을 주자 금세 옥상 난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진표성이 짐짝을 치우듯 강준의 팔뚝을 붙잡아 옥상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강준이 옥상 바닥에 엎어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긴장감이 풀리자 온몸이 무거워졌다. 보이지 않는 돌덩이들이 사지에 묶인 것만 같았다.

“너도 빨리 올라와.”

“으윽, 흑…….”

신민우가 서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바들거리는 팔을 뻗었다.

“캬하악―!”

“크악! 캭!”

결국 좀비들 중 일부가 창문까지 도달했다. 손을 길게 뻗어 어떻게 해서든 신민우의 몸을 붙잡으려고 난리였다.

만약 좀비에게 조금이라도 지능이 있고, 시력이 좋았다면 신민우는 두 번째 홈에 발을 집어넣지도 못하고 그들의 먹이가 됐을 거다.

“조금만 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진표성과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신민우가 오른쪽 발을 들어 다음 홈에 집어넣을 때였다.

“크르르―!”

한 몸처럼 얽힌 일반 좀비들의 등을 타고 올라온 좀비 몬스터 한 마리가 신민우를 향해 뛰어올랐다. 여우를 닮은 몬스터였다.

얼굴 한쪽을 뜯어 먹힌 상태였는데도 날카로운 이빨은 달빛을 반사할 정도로 번뜩였다.

“안 돼…….”

신민우가 절망감에 빠져 손에서 힘을 풀고 말았다. 몸이 뒤로 넘어갔다. 모든 게 슬로모션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슴팍에 올라탄 좀비 몬스터가 제 목을 물어뜯기 위해 입을 활짝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목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미안하다.”

진표성이 빠르게 신민우의 뒷덜미를 낚아채 옥상으로 올라왔다. 여우를 닮은 좀비 몬스터는 눈앞에서 사라진 먹잇감 대신 허공을 향해 입질을 하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모여든 좀비들 사이로 머리부터 떨어져 내렸다. 퍼억, 소리를 내며 터진 머리가 사방에 뇌수와 썩은 피를 흩뿌렸다.

“진짜 너무하는, 흐으, 거 아닙니까…….”

진표성이 무서웠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이렇게 손쉽게 자신을 끌어 올려 줄 수 있으면서 여유작작하게 살피던 모습에 서러움이 터졌다.

“앞으로도 계속 도망 다녀야 하니까 담력 좀 키워 주려고 그랬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원망스레 노려보는 눈빛을 보자 양심에 찔렸다. 진표성이 슬쩍 시선을 돌리면서 변명했다.

강준에게는 기를 죽이려는 목적으로 일부러 그랬고, 신민우에게는 실제로 훈련 목적으로 한 행동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방금 전에 신민우가 죽을 뻔했던 일은 사실이기에 사과를 한 거였다.

“감정 좀 추스르고 있어. 나는 도주로 좀 살펴볼 테니까.”

진표성이 신민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어 번 두들기고 한수호에게 다가갔다. 한수호는 이현과 김솔을 바닥에 내려놓은 이후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는 중이었다.

“팀장, 일반적인 경우는 아닌 거 같지?”

“응. 좀비들이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어.”

이상했다. 모텔에 있으면서 소리를 낸 건 맞지만 아무리 좀비들이 청력에 민감한들 자기들끼리 내는 소음도 무시할 수 없었다.

코앞에서 큰 소리를 낸 것도 아닌데 좀비들이 모텔로 몰려들었다. 마치 이 모텔 전체에 사람의 신선한 피가 뿌려진 것처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 나을까?”

“일단 날이 밝고 움직이는 게 나아.”

해가 지면 좀비들은 감각이 더 예민해진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는 다른 장소로 움직인다고 해도 좀비들이 그대로 따라올 것만 같았다.

“침낭이 넉넉하게 있어서 다행이네.”

진표성도 한수호의 의견에 동의했기에 공간 확장형 아티팩트에서 침낭을 여러 개 꺼냈다. 가장 먼저 꺼낸 건 펼쳐서 이현부터 눕혔다.

“저도…… 아저씨랑 같이 자면 안 돼요?”

“그래, 그래.”

봄이라고 해도 새벽이면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간다. 침낭 안에서 잔다 해도 이현은 현재 몸이 아픈 상태이니 김솔과 붙어서 자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김솔이 이현의 옆에 파고들었다. 진표성이 김솔이 답답하지 않도록 침낭의 지퍼를 채우고 일어났다.

“너도 이리 와.”

“……네.”

진표성이 그다음으로 챙긴 건 김민지였다. 침낭 하나를 더 꺼내 이현의 옆에 깔았다. 김민지가 눈치를 보면서 침낭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밤바람에 싸늘해졌던 몸을 침낭 안에 눕히자 피로가 밀려왔다. 사방에서 좀비들의 비명이 들려오는데도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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