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김치찌개 진짜 맛있다……. 임무 중에 김치찌개를 먹을 줄이야…….”
이낙균의 말대로 임무 중에는 먹기 힘든 진수성찬이었다. 이낙균을 비롯한 팀원들이 음식을 차리느라 고생한 이나리와 황두학에게 한마디씩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한 사람만 별다른 말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잠시 이나리의 뾰족한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떨어졌다.
숙소로 잡은 아파트 내에 구비된 가전제품은 하나같이 고가였다. 마력으로 가동되는 냉동고 안의 식재료가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아 가능한 식사였다.
이후 식사 시간은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다들 임무 중에는 식사를 빠르게 하는 터라 그릇은 빠른 속도로 비워졌다.
이현의 무릎에 앉은 김솔도 접시 위에 담긴 음식을 다 먹었다. 배가 부르자 자연스럽게 잠기운이 몰려들었다.
눈이 자꾸 감기는지 아이의 자그마한 고개가 앞뒤로 까딱거렸다. 뒤통수를 이현의 가슴에 콩 박은 김솔이 눈을 끔벅끔벅 떴다.
“저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솔이를 먼저 재워야 할 것 같아서요.”
“안쪽에 침실 여러 개 있으니까 그중에서 하나 골라 쓰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이낙균의 친절한 설명에 감사 인사를 한 이현이 부엌에서 나와 긴 복도를 걸어갔다. 방문은 다 조금씩 열려 있었다.
이현이 개중에서 더블 침대 하나가 놓인 방 안에 들어갔다. 김솔을 침대 위로 내려놓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우응…….”
“잠깐만 혼자 있어. 아저씨 금방 올게.”
멀어지는 온기가 느껴지는지 김솔이 칭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잠기운이 물씬 묻은 눈으로 올려다보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몇 번을 반복하자 다행히 아이는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현은 서둘러 부엌으로 다시 향했다. 식사를 차릴 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기에 뒷정리라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식탁 위에 가득했던 접시는 개수대 안에 들어간 상태였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괜찮습니다. 능력 쓰면 금방 끝나거든요.”
개수대로 가 팔을 걷어붙였지만 황두학이 웃으며 하는 소리에 어정쩡한 자세로 행동을 멈췄다.
황두학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개수대 안에 가득한 접시들을 식기세척기처럼 닦아 내기 시작했다. 어릴 때 봤던 영화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거실에 가 있는걸요. 어서 나가서 쉬세요.”
“그래도…….”
결국 이현은 황두학에게 등 떠밀려 거실로 나오고 말았다. 그러다 시야에 들어온 건 거실의 통창 앞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한수호의 뒷모습이었다.
물어볼 게 있었기에 이현은 자연스럽게 한수호가 서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밤새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유명했던 서울이지만 지금은 새까만 어둠이 집어삼킨 상태였다.
이현의 시력으로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하지만 한수호는 무언가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둠 너머를 고요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사색에 잠긴 듯한 그의 시간을 방해하기는 싫지만 대화를 해야만 했다. 이현이 조심스럽게 한수호를 불렀다.
“저, 팀장님.”
“네. 저한테 할 말이 있는 얼굴이네요.”
다행히 한수호는 귀찮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이현을 돌아보는 얼굴에는 옅은 미소마저 어려 있었다.
“솔이 말이에요. 지금처럼 계속 같이 다녀도 되는 건지…… 여쭙고 싶어서요.”
아직 강서구에 도착하지도 못했다. 성인 남성인 이현도 버티기 힘든 일정이었다.
차 안에 갇힌 채 생존한 아이지만 이제 겨우 여섯 살이었다. 이곳에 올라오기 전에 겪었던 일도 떠올랐다. 좀비가 다가왔을 때 아이는 경기를 일으키듯 진저리 쳤었다.
“안 그래도 본부에 연락을 넣었습니다. 저희가 계속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프 좀비의 본거지로 의심되는 첫 번째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벌써 얘기해 주신 거예요?”
“아이를 계속 데리고 임무를 수행할 수는 없으니까요.”
“감사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이현은 김종현이 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약한 존재를 지키는 게 의무가 아니라 선택 사항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현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귀찮은 일이 될 수도 있는 거였다. 만약 한수호가 임무가 중요하니 아이는 이곳에 두고 가자고 결정을 내려도 반대할 수 있는 팀원은 많지 않을 터다.
언뜻 서로 자유로운 분위기 같아 보여도 팀원들은 전적으로 한수호를 믿고 그의 결정을 따랐다.
그렇기에 이현은 아이의 처우를 같이 고민해 주고, 해결해 주는 한수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김이현 가이드도 쉬어요. 내일도 동트기 시작하면 바로 출발해야 하니까.”
“네, 그럴게요. 오늘은 팀장님부터 가이딩하고요.”
마음을 어지럽히던 일이 해결됐다. 이현은 이제 제 몫을 제대로 해내기로 마음먹었다. 이현이 이번 임무에 같이 파견된 건 알파 1팀의 폭주 위험 수치를 관리하기 위해서니까.
“손잡아도 될까요?”
이현은 가이딩을 할 때마다 에스퍼에게 손을 잡아도 되는지 먼저 물어보고는 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인 한수호가 이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현과 손가락 한 마디 정도는 차이가 날 만큼 커다란 손이었다. 검지손가락에는 꽤 굵은 검은색 링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에스퍼 전용 마력 아티팩트였다. S급 능력자가 사용하는 아티팩트답게 자그마한 반지에서는 심상치 않은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한수호의 손을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붙잡는 이현의 손가락 중 하나에도 반지가 끼워진 채였다. 가이드도 에스퍼와 마찬가지로 능력을 사용하려면 마석의 힘을 이용해야 했다.
마력이 응축된 마석이 촘촘히 박힌 금색의 반지가 이현이 가이딩을 하기 시작하자 은은하게 빛이 났다.
“후우…… 다 됐습니다. 완전히 한 자릿수로 내려가진 않네요.”
에스퍼의 등급이 높을수록 가이딩할 때 많은 마력이 필요했다. 다행히 둘의 매칭률이 높아 이현은 어느 정도 한수호의 폭주 위험 수치를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한수호의 폭주 위험 수치는 1단계를 지나 2단계로 넘어갈 것 같았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김이현 가이드 덕분에 여태까지 수행했던 임무 중에서 가장 정신이 맑은 상태인걸요.”
폭주 위험 수치가 오를수록 에스퍼는 다양한 고통을 느낀다. 한수호는 다른 이들보다 두통을 심하게 느끼는 편이었다.
“그렇게 말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면 다른 에스퍼들도 가이딩하러 가 볼게요.”
이현은 한수호를 가이딩하자 또다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쿵쾅쿵쾅, 거세게 뛰는 심장 소리가 마치 경고음처럼 느껴졌다.
멀어지는 이현의 등 뒤로 속을 알 수 없는 시선이 그림자처럼 길게 이어졌다.
“한 분씩 가이딩해 드릴게요.”
“그럼 나 먼저.”
이현이 알파 1팀이 모여 있는 거실로 다가가 소파의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이미 이현이 한수호를 가이딩해 줄 때부터 자신은 언제 가이딩을 받나 목을 빼고 기다리던 이들이었다.
진표성이 가장 빨리 이현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너는 연장자 우대도 없냐? 너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지금 여기에 몇 명인데.”
“그러려면 최소한 열 살은 차이가 나야 하지 않아? 다들 쌩쌩할 나이면서 왜 그래.”
얌체같이 이현의 옆자리를 차지한 진표성이 얄미웠던 이나리가 한 소리 했다. 그러나 진표성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가이드, 나 빨리 가이딩해 줘. 아까부터 가슴이 답답하다고.”
진표성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면서 이현의 앞으로 제 손을 불쑥 내밀었다. 처음에 이현을 꺼리던 행동과는 달리 거침없이 달라붙었다.
이현이 한수호를 가이딩했을 때처럼 진표성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맞닿은 살갗을 통해 이현의 몸속을 배회하던 마력이 진표성에게 스며들었다.
다소 경직됐던 진표성의 어깨가 가이딩이 이어질수록 부드럽게 이완됐다. 이현이 진표성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가이딩을 마치고 손을 떼어 낼 때였다.
“그런데 눈은 왜 감는 거야? 가이딩할 때마다 눈 감거나 아니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던데. 시선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워 그래? 머리랑 안경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잖아.”
진표성이 불시에 이현의 얼굴 앞으로 제 고개를 들이밀었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진표성의 체취에 이현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안경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현은 좀비 분장을 했을 때도 안경을 착용하고 다녔다. 오늘도 씻고 난 후 벗어놨던 안경부터 썼다.
코앞에서 마주한 진표성의 샛노란 눈동자가 가느스름하게 뜬 눈꺼풀 새로 묘하게 빛났다. 안경알이 사이에 놓여져 있는데도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제 스, 습관입니다.”
“멀찍이 좀 떨어져. 가이드한테 실례야.”
임태한이 진표성의 뒷덜미를 잡아 이현에게서 떼어 냈다. 이현이 짧은 시간 동안 식은땀이 차오른 손바닥을 바지 위로 문질렀다.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이 녀석이 워낙 성격이 제멋대로라서.”
“아니, 내가 뭘 잘못했는데―!”
진표성이 억울하게 소리치자 임태한이 아예 그의 이마에 무릎이 닿도록 머리통을 눌러 댔다.
“적당히 해. 김이현 가이드, 다음 사람 가이딩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네.”
임태한의 도움으로 이현은 이후에는 진표성에게 시달리지 않고 다른 이들을 가이딩할 수 있었다.
“오늘도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가이딩을 받은 황두학이 환하게 웃으며 이현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현도 가까스로 입매를 둥글게 휘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그래도 지친 몸으로 황두학까지 가이딩하고 났더니 온몸의 기력이란 기력은 모조리 소진된 채였다. 손끝에도 무거운 추가 달린 것만 같았다.
“저는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무리한 탓일까. 인사를 하고 소파에서 일어나는 순간 시야가 빙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