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9화 (9/133)

009.

임태한이 자신과 이현의 주변을 상쾌한 바람으로 둘렀다. 한결 옅어진 피 냄새에 이현의 떨림이 조금이나마 잦아들었다.

알파 1팀이 한 몸처럼 신속하게 움직였다. 어차피 일대의 좀비들을 모두 해치우는 건 불가능했다.

한수호는 임무 수행의 최대 기간을 두 달로 잡았다. 가이드까지 함께 파견된 터라 폭주 위험 수치가 상승하는 부분은 한결 걱정을 덜었지만, 팀원들의 체력이 문제였다.

S급인 자신과 임태한, 진표성은 두 달 이상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특히 가이드인 이현과 아직 적응 중인 팀의 막내 황두학은 일주일만 지나도 체력이 떨어질 게 눈에 선했다.

“10km만 더 가면 되니까 다들 긴장 늦추지 마.”

한수호가 선두에서 길을 뚫으면서도 팀원들의 상태를 기민하게 살폈다. 임태한의 품에 고개를 묻고 있는 이현을 봤을 때는 굳건했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좀비를 마주하는 순간에는 검녹색 눈동자가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선득했다.

뼈와 살점이 날카로운 검날에 단번에 잘려 나갔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한 걸음, 두 걸음 걸으며 피 분수를 내뿜었다.

몸뚱이가 쓰러지기도 전에 좀비를 스쳐 지나간 한수호가 B급 울프 좀비 몬스터의 미간을 단검으로 쑤셨다.

슬라임처럼 몸속의 마석이 움직이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미간에 박힌 마석을 깨트려야 숨을 거뒀다.

좀비가 됐든, 되지 않았든 마찬가지였다.

“팀장, 바이크 숍이야.”

한수호의 곁에서 날카로운 손톱으로 좀비 두 마리의 목을 한 번에 날려 버린 진표성이 전방을 가리켰다.

바이크 숍은 사방이 불투명한 벽 대신 유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도망가던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알려 주듯 벽 한쪽은 완전히 깨진 상태였다.

알파 1팀은 재빠르게 흩어져 바이크 중 연료가 차 있는 것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둘씩 짝지어서 바이크에 타.”

바이크 소리는 필연적으로 좀비들의 시선을 끈다. 하프 좀비뿐만 아니라 일반 좀비들도 퇴화된 다른 감각 대신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최대한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 알파 1팀이 둘씩 짝을 지어 바이크에 올라탔다. 한수호만이 바이크에 홀로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배기음이 곳곳에서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바이크 숍에 다가갔을 때 주변의 좀비들을 닥치는 대로 처리했다. 그러나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바이크 소리에 건물 곳곳에 숨어 있던 좀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뻥 뚫린 구멍이 떠오를 것처럼 공허한 소리가 알파 1팀의 포위망을 좁혀 왔다.

“그어어…….”

“다들 진동기 꺼내 부착해.”

알파 1팀이 손바닥만 한 검은색 원형의 기계를 꺼내 바이크 옆면에 붙였다.

평범한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미세한 진동음이 바이크를 타고 퍼져 나갔다. 좀비들의 청각을 교란하는 아티팩트였다.

하나하나의 가격이 웬만한 A급 아티팩트의 가격을 웃돌았다. 더더군다나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알파 1팀은 지금처럼 이동 수단을 이용할 때만 진동기를 사용했다.

회색과 검은색 바이크가 좀비들을 가르고 지나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는 먹잇감을 향해 회색빛 눈을 번뜩이던 좀비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개중 가까이에 있는 좀비들은 진동기의 교란에도 불구하고 썩어 가는 몸뚱이로 달려들었다.

“그어어어―!”

이현이 임태한의 등에 두른 손에 힘을 주었다. 둘씩 짝지어 바이크에 타면 한 명은 운전하는 사람 뒤에 타는 게 일반적이었다.

전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맞았다.

하지만 이현은 가이드 전용 무기를 사용해도 전투 능력이 없다고 보는 게 정확했다. 그렇기에 임태한은 이현을 앞에 태우고 그가 자신을 마주 본 상태로 껴안게 했다.

가슴 부근에서 느껴지는 숨이 뜨거웠다. 임태한이 힐끗 이현의 정수리를 내려다봤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민들레 홀씨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내려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두 번째 목표 지점에 도착하면 휴식 시간을 가질 거예요. 조금만 더 버티면 돼요.”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현을 본 임태한이 바이크의 속도를 높였다. 이현과 임태한이 탄 바이크의 실린더 속 피스톤이 최하에서 최상의 위치까지 한 번에 솟구쳤다.

임태한의 능력은 대체적으로 좀비들의 이목을 강하게 끌었다. 지금처럼 은밀하게 전투를 하는 상황에는 불리한 능력이었다.

그렇기에 임태한은 적극적으로 몰려드는 좀비를 해치우지 않았다. 대신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좀비들만을 바람으로 밀어 내면서 한수호의 바이크 뒤꽁무니를 바짝 쫓았다.

“김이현 가이드는?”

“패닉 상태입니다. 아직 정신을 잃은 건 아니지만요.”

한수호가 오른손에 든 단검으로 좀비 세 마리의 목과 머리통을 단번에 가르며 임태한에게 이현의 상태를 물었다.

단검의 궤적을 따라 썩어 가는 핏줄기가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새끼들.”

가장 화려하게 전투하는 건 진표성과 이나리였다. 진표성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덩어리로 전락한 좀비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톱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 때마다 여지없이 좀비들 서너 마리가 끈 떨어진 인형처럼 낙하했다.

“이하 동문.”

진표성의 뒤에 올라탄 이나리도 마찬가지였다. 진표성이 간혹 앞쪽에서 놓친 좀비들은 두 사람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길쭉한 채찍에 휘감겨 목을 잃었다.

목이 사라진 좀비들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바닥에 질척한 피 웅덩이를 만들었다.

“저는 가끔 선배들이 무서워요…….”

“나도 쟤네 둘은 무서워.”

황두학의 떨리는 음성에 그의 뒤에 올라탄 김진수가 황두학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레 흩트렸다.

주변의 흙바닥이 땅에서 솟구쳐 좀비들의 걸음을 묶었다.

“크으어…….”

장애물을 넘어온 좀비들에게는 검은색 너클을 낀 주먹이 날아들었다. 김진수가 지척에 다가온 좀비의 머리통을 으스러뜨려 버렸다.

“하프 좀비들이 조용한데요. 이 정도 소란이면 눈치채고 접근할 만도 한데…….”

“던전이 열렸어.”

임태한이 말을 줄이면서 한수호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도 무언가를 느낀 거였다. 던전으로 이어지는 게이트가 열리면 막대한 양의 마력이 주변을 장악한다.

“이 정도 거리면 구산역 쪽이군.”

“마력의 파장을 보니 최소 A급인 것 같아요. 하프 좀비들이 게이트 쪽으로 몰려간 것도 이해가 가네요.”

알파 1팀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던전이 열리고 만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던전 안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해치우지 못하면 던전 브레이크가 발발한다.

던전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한 번에 게이트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하프 좀비들의 능력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그들의 수는 전체 좀비에 비하면 미미했다.

하프 좀비들의 기세에 눌린 일부 좀비 몬스터들은 그들에게 테이밍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모든 좀비 몬스터들을 부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던전 브레이크를 통해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이 모두 좀비화되면 하프 좀비들 또한 자신들의 영역을 좀비 몬스터들에게 빼앗기게 된다.

인간들이 게이트가 열리면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처럼 하프 좀비들 또한 자신들의 영역에 열린 던전을 정복하는 이유였다.

“잘된 일이지.”

한수호가 처음보다 한결 차분해진 이현의 숨소리를 유심히 들으며 바이크의 속도를 높였다. 근처로 몰려드는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들만 해치우면 된다.

하프 좀비에 대한 걱정을 덜어 낸 알파 1팀이 두 번째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한수호를 필두로 알파 1팀이 탄 바이크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멈춰 섰다.

‘세운 고등학교’라고 쓰여 있는 학교 문패 위로 말라붙은 핏자국이 시야에 들어왔다. 피에 물든 손바닥 자국이 ‘운’과 ‘고’ 사이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문패를 훑는 한수호의 눈동자가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단검을 갈무리하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해가 뜨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쉴 거야. 진표성하고 이나리만 여기에 남고, 나머지는 들어가서 정리해.”

“네, 팀장님.”

임태한이 품에 안고 있던 이현을 바이크 의자 위에 내려놓았다. 계속 감고 있던 눈을 뜬 이현이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교문에 기대어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얼굴이 반쯤 썩어 내려 나이가 몇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피에 젖은 옷은 분명 교복이었다.

왼쪽 가슴 위에 달린 하얀색 명찰에는 핏자국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이마 위로 뻥 뚫린 구멍에서는 채 마르지 못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나리의 솜씨였다.

핏줄기 하나가 눈가를 따라 낙화처럼 떨어졌다. 이현은 더 이상 생기 잃은 눈동자를 바라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우웨엑…….”

참고 참았던 토기가 한 번에 치밀었다. 아직 다른 이들이 있다는 걸 알지만 외진 곳으로 걸음을 옮길 여유도 없었다.

배 속에 손이 들어와 내장을 사정없이 휘젓는 기분이었다. 내장이 쥐어짜지는 아픔이 일 때마다 약간의 음식물과 뒤섞인 위액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샌님 주제에 많이 버티기는 했지.”

진표성은 임무 초반에 나타난 하프 좀비를 피해 건물 안에 숨어 있다가 실수했다.

언제나처럼 이나리와 티격태격한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일반 좀비의 이목을 끌었고 결국 놈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때 난 소리 때문에 이변을 눈치챈 하프 좀비를 한수호가 처리했다.

잘못하면 계획한 일이 크게 뒤틀렸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수호의 성격상 실수한 일을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터.

한수호에게 기합을 받을 준비를 하던 진표성이 혀를 끌끌 찼다.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교복을 입은 좀비들뿐만 아니라 제 허리춤에 오지 않는 좀비도 만나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을 영면에 이르게 하면 진표성 또한 한동안 착잡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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