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미친…….”
진표성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가를 가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한수호가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에도 웃음기가 맺혀 있는 건 똑같았다.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이현은 볼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가이드로 각성했어도 제대로 된 임무에 참여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티는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긴장을 많이 했던 게 돌발적으로 표출되고 말았다.
“많이 긴장하셨나 봐요…….”
팀의 막내인 황두학이 이현을 향해 측은한 눈길을 보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자신 또한 이현 못지않게 긴장했었다.
그때의 자신은 얼음 동상처럼 굳어 좀비가 목덜미 가까이 이빨을 들이미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좀비 소리 진짜 잘 내시는 것 같아요.”
황두학이 이현의 귓가에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이현의 목덜미는 더욱 붉어질 뿐이었다.
“다들 그만 웃고 집중해. 조금씩 모여들고 있으니까.”
한수호의 말에 알파 1팀 모두의 얼굴이 단번에 굳었다. 가장 크게 이현을 비웃고 있던 진표성을 포함해서.
아직 창피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현만이 얼떨떨하게 굳어 있었다.
“소리는 내지 않아도 됩니다.”
“……저도 알아요.”
한수호의 말에 이현이 고개를 돌리고 억울한 숨을 몇 번 몰아쉬었다. 가끔 무언가에 몰두하면 무섭게 빠져드는 제 성격이 원망스러웠다.
알파 1팀이 각양각색으로 좀비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현도 이번에는 적당히 한쪽 발을 뒤틀어 바닥에 질질 끌었다.
“팔도 각도를 좀 더 틀어야지. 지금은 또 너무 사람 같잖아.”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진표성은 이현을 놀리는 데 재미를 붙인 모양이었다. 점점 걸음의 속도를 높이는 다른 이들과 달리 이현의 곁에 바짝 따라붙었다.
팔을 툭 건드는 손길에 이현의 상체가 하마터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이현이 아릿한 아픔이 남은 팔을 매만지며 이를 악물었다.
“가이드 몸은 약했지, 참.”
자신을 노려보는 이현의 눈초리는 무섭기는커녕 우습기만 했다. 하지만 이현의 곁에 서서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팀장은 무서웠다.
진표성이 멋쩍게 입가를 매만지면서 이현의 곁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그으으…….”
“크어어어…….”
비죽 튀어나오려는 아랫입술을 단속하던 이현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좀비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발치를 기어가는 C급 몬스터 스네이크의 모습에 이현이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을 감쳐물었다.
연구소 케이지 안에 갇힌 좀비 몬스터들을 보는 것과 지척에서 지나가는 것들을 보는 건 차원이 달랐다. 도대체 저번에는 무슨 정신으로 홀로 아지트에 가려고 했던 건지 스스로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현은 결국 그날 이후로 비상금과 부모님의 유품을 되찾는 걸 일시적으로 포기한 상태였다. 아지트에 작은 결계석을 설치해 놨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괜찮아요.’
이현이 손끝에 닿아 온 온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새 이현의 팔에 제 팔이 닿을 정도로 다가온 한수호였다.
입 모양으로 그가 건네는 말에 불안정하게 뛰던 심장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았다.
“팀장님, 하프 좀비 하나가 접근 중인 것 같습니다. 발소리가 달라요.”
한수호의 곁에 다가온 임태한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사람의 말소리에 팀원들의 주변에 있던 좀비들 몇몇이 휙휙 고개를 돌리며 좌우를 살폈다.
“다들 엄폐물로 피해.”
진회색 그림자들이 스르륵 일어나 이상함을 감지한 좀비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팀원들이 하나둘씩 주변에 있는 건물 안으로 몸을 옮겼다. 한수호도 이현의 허리를 팔로 감고 3층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좀비들의 사체도 그림자를 움직여 끌고 들어와 건물의 지하 계단을 향해 밀어 떨어뜨렸다.
한수호는 2층과 3층 중간에 놓인 층계참에 이현을 내려놓았다.
“그르르…….”
“그어어억…….”
사람의 흔적은 사라지고 좀비들만이 거리에 남아 몸을 뒤틀며 거리를 악취로 물들여 갔다.
“이쪽에서 무슨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는데…….”
이현이 두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아직 은평구를 얼마 걷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한수호는 분명 은평구와 마포구를 지나 강서구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힐끔 그를 올려다보자 자신을 바라볼 때와는 달리 날카롭게 벼려진 얼굴이 보였다.
“착각인가.”
이현은 작은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에 침조차 삼키지 못했다. 목 뒤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혼자 떠들고 있는 하프 좀비가 제 존재를 눈치챌 것만 같아서였다.
이마 위에 구슬처럼 맺힌 땀방울이 도르륵 굴러 속눈썹 위로 툭 떨어졌다.
속눈썹이 채 막아 주지 못한 땀이 눈동자를 따갑게 만들었다. 이현이 한쪽 눈을 찌푸린 채 괴로워할 때였다.
“크아악―!”
“캬아아―!”
이현과 한수호가 숨어 있는 옆쪽 건물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현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한수호를 올려다봤다.
이현은 벽에 등을 기댄 채 몸을 쭈그린 상태였다. 이현의 귀에 들린 소리를 한수호가 감지하지 못할 리 없었다.
“……아무래도 들킨 것 같네요.”
한수호가 창밖으로 서슴없이 뛰어내렸다.
“팀……!”
이현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창문을 통해 보니 옆 건물에서 뛰쳐나온 진표성과 이나리가 하프 좀비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개같은 에스퍼 새끼들―!”
“뭐래. 좆같은 좀비 새끼가―!”
하프 좀비는 반쯤 수인화가 진행된 진표성이 휘두르는 발톱을 피해 허리를 뒤로 꺾었다.
발톱에 이어 짓쳐들어오는 채찍을 피하는 몸의 움직임이 기괴했다. 이현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꺾인 팔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기이한 모양으로 꺾인 신체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프 좀비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입에 넣는 순간이었다.
하프 좀비의 목이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뒤이어 그림자로 만든 단검이 하프 좀비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하프 좀비를 처리한 한수호가 손을 털며 모여드는 좀비들을 소리 없이 해치워 나갔다.
“팀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변명은 나중에. 지금은 이곳에서 피하는 게 우선이야.”
엄폐물 안에 숨은 뒤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다. 평소라면 숨을 참아서라도 좀비들의 시야에서 몸을 감췄을 진표성과 이나리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교차했다. 한수호에게 말을 걸었던 진표성은 말이 끊기자 이를 악물고 한수호를 도와 몰려드는 좀비들을 한 마리씩 해치웠다.
“팀장님, 어떻게 할까요?”
“결계까지 왔던 걸 보면 정찰하는 놈이 분명해. 시간이 지나도 돌아가지 않으면 이변을 눈치챌 거야. 이렇게 된 이상 날이 저물기 전에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은평구를 돌파하는 게 나아. 내가 앞장설 테니까 부팀장이 김이현 가이드 챙겨서 뒤따라와. 나머지도 내 말 들었지?”
“네!”
“1차 목표 지점까지 쉬지 말고 움직여.”
한수호가 임태한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과도 한 명씩 눈을 맞추었다. 그의 마지막 시선은 여전히 건물 안에 있는 이현에게 닿은 후 탈출할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하프 좀비들의 본거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은 총 세 곳이었다. 그중에서 첫 번째로 도착해야 하는 곳이 강서구였다.
그곳까지 몸을 움직여 가는 건 비효율적이었다. 알파 1팀은 은평구 내에 있는 바이크 상점을 1차 목표 지점으로 삼았다.
바이크를 타기 전까지만 하프 좀비의 이목을 속이려고 했던 것이다. 너무 빨리 정체를 들켜 버렸지만.
“그으윽―!”
“캬아아…….”
한수호를 필두로 알파 1팀이 능력을 사용해 좀비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대가 썩어 가는 피비린내로 진동했다.
인적이 사라진 건물 벽 위로 검붉은 핏자국이 어지럽게 흩뿌려지며 흔적을 남겼다.
“김이현 가이드.”
“네, 네…….”
“저한테 안기세요. 지금부터는 이동 속도를 올릴 겁니다.”
임태한이 바람을 움직여 제 몸을 띄웠다. 이현이 있는 창문까지 올라간 그가 이현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잠시 망설이던 이현이 창턱에 발을 올린 후 그대로 임태한을 향해 뛰어내렸다.
이현을 안정감 있게 받아 낸 임태한이 선두에서 움직이는 한수호의 뒤를 따랐다. 임태한의 목을 끌어안은 이현의 팔이 잘게 경련했다.
발밑을 스쳐 지나가는 광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없이 영상으로 보던 장면이었다. 그러나 영상은 살점이 난무하며 흘러나오는 역한 냄새를 담지 못했다.
좀비가 된 몬스터들을 실험하면서 맡아 본 냄새였다. 다만 실험은 몬스터에 한정되어 이루어졌다.
좀비가 된 몬스터들이 죽어 가며 흘리는 냄새도 지독했지만,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어어…….”
한수호가 쥔 단검에 베여 두 동강 난 일반 좀비와 눈이 마주쳤다. 탁하게 풀린 회색빛 눈동자가 공허하게 이현의 얼굴을 훑었다.
절단선 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내장 덩어리 위를 기어 다니는 무언가를 본 순간 이현이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눈을 감는다고 해서 고막을 찢을 듯 파고드는 괴물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만 시야가 차단되자 한결 버티기 쉬워졌다.
“조금만 참아요.”
안 그래도 하얗던 이현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임태한이 이현의 몸을 추슬러 안아 그의 등을 다독였다.
안전한 연구소 내에서 연구만 하던 사람이 이런 장면을 지척에서 봤을 리가 없다.
팀의 막내인 황두학도 좀비들과의 전투가 끝나고 나면 고기 같은 건 한동안 먹지 못할 정도로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렸다.
“……감사합니다.”
임태한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는 이현의 목소리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