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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 트랩-22화 (22/71)

22화

“안녕하세요. 선배님.”

인사는 예의 바르나 정작 하는 짓은 못 배워 먹은 양아치나 다름없었다. 차우현이 노골적으로 흘려 대는 페로몬에 장재준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조금 전에 고결이 그랬듯이. 괴로움에 마른기침을 몇 번 터트린 장재준이 애써 침착한 목소리를 꾸며 냈다.

“아. 우현 씨…, 크흠, 매니저였구나. 어쩐지.”

“네. 제 매니저예요. 그런데 제 매니저랑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일 같은 건 없는데…. 큼, 근데 우현 씨 혹시 오늘 몸 안 좋아?”

야. 차우현 이 미친 새끼야. 너 지금 페로몬 조절 하나도 안 되고 있어. 그 말을 장재준은 최대한 좋게 에둘러서 표현했다. 다른 알파였다면 너 이 시발 새끼 페로몬 조절 안 하냐고. 죽고 싶냐고 한 소리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차우현이었다. CH그룹을 뒷배로 두고 있는. 장재준은 답지 않게 성질을 꾹꾹 눌러 참았다.

“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는 듯 차우현이 나직한 소리를 내뱉었다. 장재준을 바라보는 멀끔한 얼굴 위로 미안한 감정이 담겼다.

“죄송해요. 제가 요 며칠 컨디션이 안 좋아서 페로몬 조절이 잘 안 돼서요.”

“어. 그래. 그런 것 같다.”

시발. 안 되면 좀 꺼지든가. 사람 토하는 꼴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실제로 장재준이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곤 저게 다였다.

“저랑 있는 거 많이 불편하세요?”

“…리딩 때도 이러면 좀 불편할 거 같긴 하네.”

장재준은 이를 악물며 치미는 토기를 억지로 삼켰다. 한계였다. 이 이상은 무리였다. 더는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우현 씨 약을 먹든가 아님 여기서 안정을 좀 취하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한 장재준이 도망치듯 서둘러 비상구 밖으로 나갔다. 차우현은 그 뒷모습을 감흥 없는 눈으로 건조하게 응시했다. 제게 반쯤 기댄 몸이 작게 떨리고 있는 게 옆구리를 감싼 손바닥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차우현의 입꼬리가 위로 살짝 말려 올라갔다.

차우현은 일부러 페로몬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결은 제가 장재준을 내쫓기 위해 페로몬을 푼 거라 생각할 것이었다. 아. 아니다. 어쩌면 모를 수도 있겠네. 알파한테는 같은 알파의 페로몬이 되게 기분 나쁘다는 거. 힐끔. 차우현이 고결을 내려다보았다. 고결의 고개는 어느새 바닥으로 푹 꺼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차우현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지금 상태를 보아하니 그런 걸 생각할 여유도 없을 것 같긴 했다.

“…흐으.”

살짝 벌어진 고결의 입에서 희미하게 억눌린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호흡이 제대로 되질 않아서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소리였다.

차우현의 생각대로였다. 고결은 지금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달아오른 제 몸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익숙한 향수 내음이 왜 평소보다 훨씬 더 짙은 건지. 끝에 나던 달달한 향기가 왜 지금은 전혀 나질 않는 건지. 그 차이점을 구분해 내고 의문을 품기엔 몰려드는 흥분감이 너무나도 거셌다.

“결아, 저 선배랑 무슨….”

차우현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옆구리를 감싸고 있던 팔을 풀자마자 고결이 스르륵 제 자리에 주저앉은 탓이었다. 차우현이 놀란 얼굴로 얼른 결의 앞에 몸을 낮춰 앉았다. 이번 건 연기가 아니라 정말로 좀 놀랐다. 제가 팔을 떼어 내자마자 이렇게 쓰러지듯이 바로 주저앉을 줄은 몰라서.

“많이 놀랐어? 왜? 저 선배가 뭐라고 해? 혹시 싸운 거야?”

그래도 차우현은 아무것도 모르는 연기를 계속해 나갔다. 차우현의 물음에 고결은 대답 대신 고개만 힘없이 내저었다. 아래로 열이 몰리다 못해 이제는 서서히 단단해지려고 했다. 그 감각이 소름 끼칠 만큼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현을 바로 앞에 두고 발기라니. 당혹스러움과 수치스러움에 고결은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고 짓이기듯 씹었다. 너무 세게 물어 아랫입술이 터진 건지 따끔한 통증과 함께 비릿한 피 맛이 퍼져 나갔다.

“결아. 그러지 말고 고개 좀 들어 봐.”

응? 차우현이 고결의 한쪽 볼을 감싸 쥐고서 살짝 들어 올렸다. 다정한 어투만큼이나 섬세한 손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

잠깐의 공백 후 발음된 마지막 ‘래’는 거의 쥐어 짜내듯 세상 밖으로 나왔다. 고결과 시선을 마주한 차우현의 얼굴이 선득하게 굳어졌다. 유독 까맣고 투명한 고결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탓이었다.

흥분감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붉은빛이 감돌고 있는 눈의 가장자리. 물기 어린 촉촉한 눈동자. 그리고 흘러나오고 있는 오메가의 희미한 단내까지. 제 안에 있는 무언가가 끊기는 듯한 느낌에 차우현은 표정 관리도 하지 못했다.

“형, 제가…, 제가 속이 너무, 진짜 너무 안 좋…. 아까 배 아픈 거. 그거 괜찮은 게 아니었나 봐요.”

다행인 건 고결의 눈에는 그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눈물 때문에 뿌옇게 흐려진 시야가 시각을 차단했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자리에서 일어난 고결이 다급하게 비상구의 문고리를 잡았다.

“저 화장실 좀 들렀다 갈게요. 형 먼저 들어가세요.”

가늘게 떨리는 고결의 목소리에서 눅눅한 울음기가 옅게 묻어났다. 고결은 제 말만 하고서 무언가에 쫓기듯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우현의 대답을 들을 여유 따윈 없었다.

차우현은 금세 혼자가 됐다.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그저 팔만 뻗으면 됐다. 그러면 고결의 손목을 붙들고 가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차우현은 일부러 결을 잡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 그날에도 그랬듯이.

“…일단 보험이 효과가 있다는 건 확인했으니까.”

그래. 그거면 됐지. 지금은. 차우현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고결이 나간 비상구 밖을 갈증 어린 얼굴로 바라보면서.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올리는 손길이 다분히 거칠었다. 아까 전, 고결의 얼굴을 감싸 쥘 때와는 다르게.

-쾅.

화장실에 도착한 고결은 곧장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문부터 걸어 잠갔다. 거세게 닫힌 문에서 큰 소리가 났다. 고결은 고개를 숙이고서 차가운 벽에 그대로 이마를 기댔다. 헐렁한 슬랙스 바지 위로도 윤곽이 보일 만큼 곧추서 있는 아래가 보였다. 시발. 고결은 두 눈을 꾹 감고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욕을 삼켰다. 몇 번이나 크게 심호흡을 해 봐도 아래로 몰린 열은 좀처럼 가실 줄을 몰랐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흥분감이 온몸을 흐물흐물 녹여내기라도 할 것처럼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아흑… 흣.”

어찌할 도리가 없는 흥분은 쾌락보다는 오히려 고통과 그 결이 비슷했다. 힘들고 괴로웠다. 고결이 달뜬 소리를 흘렸다. 그 순간 엉덩이 부근에서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 느껴졌다.

“시발.”

이번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고결은 결국 애써 삼킨 욕을 입 밖으로 씹듯이 내뱉었다. 하반신에서. 그것도 엉덩이 쪽에서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 느껴졌다. 축축했다. 엉덩이가 저절로 젖어 들어간다니. 이딴 게… 이런 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야. 누구한테도 묻지 못할 물음이 혀 위에서 뭉개졌다. 정말이지 거지 같았다. 더 거지 같은 건 심지어 엉덩이 안쪽이 미묘하게 간질거리기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결은 차가운 벽에다 문지르듯 제 볼을 비볐다. 그리고 헐렁한 슬랙스와 브리프를 반쯤 내린 채 뻣뻣하게 선 성기를 밖으로 빼냈다. 이래선 안 된다거나 참아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건 이제 할 수 없었다. 이성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본능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선단에서는 이미 쿠퍼액이 질질 흐르는 중이었다. 고결은 손가락으로 기둥을 훑어 내리다 이내 조금 강한 힘으로 움켜쥐고는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자위를 언제 했는지도 까마득했다. 탁탁. 손바닥과 성기가 마찰하며 나는 소리가 어색했다. 그래도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으, 우…현… 흐, 우현이 혀엉.”

축축한 귀두를 엄지로 둥글게 문지르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자꾸만 꺾이는 무릎에 겨우 힘을 주고 섰다. 고결은 숨죽여 신음하며 우현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다. 아는 단어라고는 오직 우현의 이름밖에 없는 사람처럼 간절하게. 사정감이 가까워질수록 성기를 문지르는 손의 속도도 덩달아 빨라졌다.

“하아…, 우, 현… 으흑, 읏, 흡!”

반대 손으로 제 입을 다급히 틀어막은 고결이 간헐적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다 곧이어 척추 라인이 드러나도록 허리를 바짝 세우며 크게 헛숨을 삼켰다. 투두둑. 투둑. 오랫동안 빼지 않아 탁한 색을 띠고 있는 액체가 벽을 타고 진득하게 흘러내렸다.

하아. 하아. 전속력으로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손과 벽에 묻은 정액이 흐린 눈에 담겼다. 고결은 그걸 멍하니 내려다보다 그냥 두 눈을 감아 버렸다. 물론 그렇게 시야를 차단해 봤자 제가 우현을 생각하며, 그것도 일터에서 자위를 했다는 처참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제 손가락과 벽에 묻어 있는 뜨끈한 액체가 바로 그 증거였다.

‘…나 진짜 오메가로 발현한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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