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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 트랩-5화 (5/71)

5화

특히 오메가라고 하면 일자리를 구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지원할 수 있는 직종이 제한된 것까진 아니지만 어느 분야든 오메가는 잘 뽑지 않으려고 했다. 약으로 히트사이클 조절이 가능하다고 한들,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단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그 예기치 못한 사고를 치는 건 오메가들이 아닌 알파였다. 하지만 모든 책임과 화살은 페로몬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 오메가한테로 돌아갔다. 알파가 내뿜은 페로몬에 의해 일방적으로 당한 거라 해도 그 역시 오메가의 잘못이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오메가는 사회적 약자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감히 알파한테, 왜 페로몬을 이용해 강제로 오메가를 취했느냐고 따져 물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애초에 그 죄를 따져 물어봤자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 확률 자체도 지극히 낮았고.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진 그들한테 있어 법망을 피해 가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용주들이 오메가를 멀리하는 것도 이해는 됐다. 그들의 입장에서 오메가를 쓴다는 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끌어안고 있는 것과 비슷할 것이었다. 거액의 돈이 걸린 러시안룰렛 게임이라면 또 모를까.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주는 입장에서는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오메가를 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드물게 오메가들을 환영하는 곳도 있긴 했다. 그게 바로 연예계였다. 페로몬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오메가들은 아름답고 화려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건 알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보니 연예계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알파와 오메가의 수가 조금 더 많은 편이었다.

굳이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차우현 또한 알파였다. 심지어 개중에서도 가장 보기 드물다는 우성 알파. 그야말로 핏줄 자체가 권력이자 힘인 고귀한 존재.

‘사실대로 말하면 바로 잘릴 텐데.’

다수의 오메가와 알파가 모인 연예계는 오직 본능만이 남아 있는 동물의 왕국 축소판과도 같았다. 매일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고 일어났다. 매니저는 그 험한 바닥에서 자신의 아티스트를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페로몬에 같이 휘말려선 안 됐다.

고결도 남들처럼 13살 때 제2의 성별이 발현됐다면 우현의 매니저로는 절대 일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아니. 그냥 매니저라는 직업 자체를 갖지 못했을 테다. 아무리 열성이라고 해도 오메가 매니저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건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말이었다. 고결은 이제 이쪽 분야에서 일할 생각 따윈 하지 말아야 했다. 다른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었다.

‘일단 당장 생활은 퇴직금으로 어떻게 해 본다고 해도 재취업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더 걸을 힘도 없어졌다. 고결이 우뚝 제자리에 멈춰 섰다. 다행스럽게도 멀지 않은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고결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그곳으로 걸어가 딱딱한 나무 의자에 털썩 앉았다. 거의 무너져 내리듯이.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이었다. 멀쩡하던 고결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림프종이란 무서운 병에 걸린 건. 재발과 전이가 빈번한, 까다로운 암이었다. 아버지가 항암 치료를 받게 되면서부터 전업주부였던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집안의 가장이 되셨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회사 생활을 하실 순 없었다. 이미 꽤 오랜 시간 경력이 단절된 상태였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식당이나 건물 청소 등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정말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셨다. 그런데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해도 정작 벌어들이는 수입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세 가족이. 그것도 암 환자가 있는 가족이 먹고살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그때부터 고결한테 있어 가난이란 절대로 떼어 낼 수 없는 그림자와도 같았다. 불행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으레 찾아오는 환절기 감기 같은 거였고. 조금 괜찮아질 만하면 다시 계절이 바뀌고 그러면 또 환절기 감기를 앓게 되듯 불행 역시 그랬다. 하나의 순환이자 지겨운 도돌이표였다.

차도가 좀 있으려고 하면 다시 재발하고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아버지의 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해 죽도록 유도에 매달렸으나 불의의 사고로 부러져 버린 어깨. 그와 함께 좌절된 10년의 세월. 물거품이 되어 버린 노력. 6년간 항암치료를 받다 결국엔 돌아가신 아버지. 그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무리하게 일하다 디스크와 관절염을 얻고 수술까지 받았으나 거동이 힘드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의 새로운 가장이 됐지만 대뜸 열성 오메가로 발현해 버린 자신.

“하….”

고결은 고개를 푹 숙이고서 두 손으로 제 얼굴을 덮듯이 가렸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때가 되어 또 불행이 찾아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불행은 아무리 겪고 치러 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이 끊을 수 없는 잔인한 굴레 앞에서 고결은 매번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물 한 방울 없이 버석하게 세워진 모래성이 부서지듯이.

겉으로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한 척했지만 사실은 힘들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이쯤 하면 되지 않았냐고. 이제 제발 그만 좀 하시라고. 정말로 신이라는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그분 앞에 찾아가 무릎 꿇고 울며 애원하고 싶을 만큼.

-지이잉.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지금 연락이 올 곳은 너무나 빤했다. 고결은 불에 덴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얼른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결아. 나 조금 전에 촬영 끝나서 지금은 다음 신 찍으려고 잠깐 대기 중이야. 오고 있는 거지? 연락이 없길래 걱정돼서.]

아니나 다를까. 예상한 대로,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우현이었다. 우현이 준 카드로 결제를 했으니 아마 문자가 갔을 것이었다. 시간을 보니 병원에서 나온 지도 어느덧 15분 정도가 흘러 있었다. 고결은 곧장 도로로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그 와중에도 한 손으로는 우현한테 보낼 답장을 적으면서.

[죄송해요. 연락드린다는 게 깜빡했어요. 저 진료 받고 택시 타고 들어가는 중이에요. 금방 갈게요.]

여전히 머릿속은 혼란스러운 상태였으나 지금은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게 더 급했다. 왜냐하면 우현이 자신을 찾았으니까.

***

“감사합니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택시에서 내린 고결은 곧장 촬영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카메라 앞에는 서브 여자 주인공과 그녀의 어머니 역할을 맡고 있는 중년 배우가 서 있었다. 둘 다 메이크업 수정을 받으며 대본을 들여다보고 있는 걸 보니, 아직 제대로 촬영에 들어간 건 아닌 듯했다.

‘우현이 형은 어디 있지?’

고결은 고개를 조금 길게 빼고서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음 신을 찍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다던 우현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마 다른 장소에서 지루한 대기 시간을 보내는 중인 것 같았다. 혹시라도 스태프들한테 방해가 될세라 고결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부지런히 우현을 찾아다녔다.

‘아. 저기 있었구나.’

잠시 후, 어렵지 않게 우현을 찾아낸 고결이 슬그머니 제자리에 멈춰 섰다. 우현은 촬영장과 약간 떨어진 커다란 등나무 아래 벤치에 있었다. 그 옆에는 여자 주인공인 하연주와 서브 남자 주인공인 이진영 등 다른 사람들도 함께였다.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길래 저렇게나 즐거워 보이는 건지. 사람들 사이에서 우현은 시종일관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고결조차 저절로 기분이 좋아질 만큼 해사한 얼굴이었다. 곧 매니저 일을 그만두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이런 사소한 순간마저도 괜히 애틋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고결은 동영상을 찍듯 우현의 얼굴을 제 두 눈 가득 새겨 넣었다. 우현과 떨어지고 나서도 언제든 다시 저 얼굴을, 저 미소를 보고 싶을 때마다 소중히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도록.

사실 우현이야 TV만 틀면 나오는 수준이니 매니저 일을 그만둬도 얼굴을 보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우현을 보는 건, 아무래도 지금 이렇게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현의 옆에서 매니저란 이름으로 5년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참 기적적인 일이었다. 만약에 부상을 입지 않고 그대로 쭉 유도를 했더라면 우현과 절대 이러한 관계가 되지 못했을 테니까.

원래라면 진즉 끝났어야 했을 관계였다. 1년 먼저 성인이 된 우현이 열아홉의 고결을 남겨 두고 고등학교를 떠났던 그때에. 한 명은 배우.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운동선수. 서로 가는 길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쩌다 가끔 반갑게 연락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이렇게 한 몸처럼 매일매일 붙어 다니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 그러니까 아쉬워하지 말자. 서운해하지도 말자.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지. 헤어짐이 5년이나 늦게 찾아와 준 점에 대해서. 고결은 그렇게 다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다짐보다도 단념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그 순간, 우현의 고개가 느릿하게 돌아갔다. 그것도 고결이 서 있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내가 너무 뚫어지게 쳐다봐서 시선을 느꼈나? 그래서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건가? 어쩐지 들키면 안 되는 걸 들킨 기분에 고결은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다음으로 이어진 우현의 행동에 맥이 탁 풀려 버렸다. 우현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높이 든 채 좌우로 천천히 흔들었다. 반가움과 결아, 나 여기 있어, 라는 뜻이 적절히 섞인 행동이었다. 이래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거구나. 고결은 그런 생각을 했다. 잠시나마 긴장한 자신이 꼭 바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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