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4/15)

3.

수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낯선 풍경이었다.

붉은색과 금빛으로 꾸며진 방은 악취 대신 향기가 가득했고 살을 파고들던 한기는 오간 데 없이 따뜻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부드러운 천이 살을 감싸고, 폭신한 이불이 몸뚱어리를 받쳐 주었다.

수현은 이것이 꿈은 아닐까 생각했다. 혹은 저가 죽어 저승에 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하지만 몸을 일으켜 두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저가 처한 곳이 현실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붉은빛의 방은 그 껍데기만 화려할 뿐, 그 안에 감춰진 것은 지독한 감옥과도 같은 것이었다.

수많은 궁인이 방 안을 지키고 있던 터였다. 태화 황실에 속한 이들이었다.

‘분명 단속과 감시이리라. 이 또한 태화 황제의 더러운 수작이리라.’

수현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방 한구석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시위를 보고 더욱 굳건해질 수 있었다. 장소만 옥에서 궁으로 바뀌었을 뿐, 그는 여전히 태화 황제의 손아귀 안에 있던 것이다.

“정신이 드시옵니까.”

나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명이 수현에게 아뢨다.

“소인 앞으로 궁 안에서 왕자님을 보필하게 되었사옵니다. 장 상궁이라 불러 주시옵소서.”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에 수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경황이 없으셔서 모르시겠지만, 폐하께서 수현 왕자님을 귀비로 책봉하겠다 선포하셨나이다. 본디 식을 올리기 전, 예정자에게 궐 안 궁을 하사하는 예는 없사온데, 특별히 왕자님께는 궁을 먼저 하사하였사오니, 왕자님께선 폐하의 은혜를 감사히 여기시어 편히 지내소서.”

‘개수작!’

수현이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수현은 이런 호사로운 궁 따위 원한 적이 없었다. 더더군다나 태화의 귀비 자리 역시!

모든 건 수현을 능욕하고자 하는 황제의 계략임이 틀림없었다. 그리 거칠게 남근을 목구멍에 쑤셔 넣으며 욕보이더니 이젠 귀비에 앉히겠다며 궁에까지 들였다. 정말 잔악무도하고 주도면밀한 자가 아니던가!

여기까지 생각에 이른 수현의 몸이 바들바들 떨려 왔다. 별안간 황제에게 당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흉측하고 징그러운 살덩이가 목구멍을 넘나들며 희롱하던 순간이 생생했다. 목구멍이 눌리고 숨이 막혀 정신이 아득한데, 지칠 줄 모르는 살덩이는 좁은 통로 안에서 계속하여 덩치를 키워 대기 바빴다.

참담한 시간이었다. 사향에 취한 몸뚱이는 제 것임에도 제 것 같지 않아 손끝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대책 없이 밀고 들어오는 남근을 받아먹으며 개처럼 입을 처벌리고 침을 흘려 댔을 뿐이었다.

식도를 타고 하릴없이 흘러내리는 뜨거운 액체의 느낌이 아직까지 또렷했다. 모든 걸 씹어 먹겠다는 듯 몸을 덮쳐 오던 체향도. 더러운 육욕을 담아 희롱하여 쳐다보던 그 눈빛도…….

‘더럽다. 더러워서 미칠 것 같다.’

방 안의 온기가 무색하리만큼 한기가 느껴진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작은 몸뚱어리를 웅크린다. 살을 감싼 얇은 천이 손안에서 일그러졌다.

“황제 폐하 납시오.”

일순, 들려오는 소리에 바들바들 떨리던 몸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짙은 사향이 방 안을 뒤덮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게 만드는 거구의 주인이 방 안에 들어섰다.

“폐하를 뵈옵니다.”

방 안의 나인들이 일제히 높은 분을 향해 몸을 조아렸다. 오로지 침상에 앉은 수현만이 미동조차 하지 않았을 뿐이다.

“폐하. 수현 왕자님께서 조금 전 기침하였나이다.”

수현의 앞에 선 명휘를 보고 장 상궁이 아뢨다. 명휘는 자리에 선 채로 수현은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엔 무심하도록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그는 곧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른 이에게는 몰라도 수현에게만큼은 소름끼치는 미소였다.

“몸은 좀 어떠한가. 그대가 그리 혼절해 버리니, 짐이 걱정이 많았다.”

짐짓 다정한 척 물어 오는 말에 수현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가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체향에 질식해 죽어 버릴 것만 같은데, 다정한 척하는 꼴은 더 견디기 힘들었다.

“어찌 표정이 이리도 어두운 게지? 혹, 궁이 마음에 들지 않더냐?”

수현의 심정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명휘는 애꿎은 것을 탓하며 능청이었다.

“…….”

앙다문 입술. 마주하지 않는 차가운 눈. 가늘게 떨리는…… 작은 어깨.

고개조차 들어 올리지 않는 수현의 모습을 명휘는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닌 척 애쓰고 있었지만, 수현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꽉 그러쥔 주먹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피식, 커다란 입에 웃음이 걸리었다. 나른한 목소리로, 그가 방 안의 궁인에게 물었다.

“누가 이 방을 꾸미었더냐.”

이윽고 이어진 황제의 엉뚱한 질문에 나인들의 표정에 의아함이 스쳤다. 서로 눈치를 보다, 그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예, 폐하. 소인과 다른 궁인들이 함께 하였나이다.”

나인의 말을 듣고 명휘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저와 눈조차 마주하지 않는 음인을 바라보며 그저 유유히 한쪽 손을 들어 올려 까닥였을 뿐.

챙!

명휘의 손짓이 끝남과 동시에 은빛 칼날이 허공을 가누었다. 시위의 허리춤의 칼집을 빠져나온 칼날이 단번에 나인의 등짝을 내리쳤다. 붉은 선혈이 주작의 꼬리처럼 공중을 날아 바닥에 흩뿌려졌다.

“꺄악!”

놀란 몇몇 궁인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이었다. 날카롭게 비려진 칼날이 한 나인의 목숨을 앗아 간 순간은, 너무나도 찰나였다.

그 끔찍한 장면을 보고 방 안의 모든 이가 얼어붙었다. 비단 놀란 것은 방 안의 궁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수현은 이 믿지 못할 광경을 지켜보곤 입조차 다물지 못하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피가 흥건한 장검을 닦아 시위가 칼집에 넣는 동안, 환관 두 명이 시체를 끌어냈다. 얼마나 많은 이가 궁에서 목숨을 잃었길래 이리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단 말인가! 차마 알고 싶지도 않은 현실이 수현의 머릿속에 스쳤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피의 비린내가 사향에 섞여 수현의 코끝을 찔렀다.

“어떻느냐.”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수현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명휘가 여전히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제 그대의 기분이 조금 풀리었느냐.”

기가 막힌 그 말에 수현의 눈길이 결국 황제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가냘프게 떨리는 눈동자는 많은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환멸. 인간 이하, 금수를 보는 경멸. 그리고…….

“그대의 마음에 들 때까지 이 방을 다시 꾸밀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가 웃는다면, 방 안에 흩뿌려진 피 정도야 아까울 것이 없겠지.”

참을 수 없이 밀려오는 지독한 공포.

‘미쳤어. 태화의 황제는 미쳤어.’

수현은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사람이 죽었다. 한 사람의 목숨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한데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저를 기쁘게 하려고 피를 보았다는 황제의 그 말이 끔찍하게 수현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 비정상적인 잔혹함에 치가 떨렸다. 옆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리고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짐의 말이 기쁘지 않더냐?”

여전히 공포로 물들어 있는 수현의 얼굴을 보며, 명휘는 의아한 듯 물었다.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느냐 물었다.”

웃지 않는 궁의 주인을 위해, 명휘가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올렸다.

황제의 손짓에 칼을 찬 시위가 움직이고, 그걸 보고 있던 궁인들은 공포에 질려 자지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또 한 번 일어날 비극을 예견하며 그들이 기겁하며 울부짖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살려 주소서, 살려 주소서 폐하. 살려 주소서. 폐하, 제발…….

“그만.”

수현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그만…….”

시위의 행동이 멎었다. 그들의 시선이 주군의 손끝으로 향해 있었다.

“제발 그만…….”

비로소 황제의 손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철컹, 시위의 칼이 칼집으로 도로 들어갔다. 목숨을 구한 나인들이 혼절할 듯 흐느끼며 입을 틀어막는다.

천하를 두고 제일가는 미남이라 일컬어지는 이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리었다.

“이제야 입을 여는 것이냐.”

마치 산등성이를 돌아 흘러내리는 냇물처럼 유려하게 황제의 손이 움직였다. 심장을 죄어 오는 사향을 내뿜으며 그가 수현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손안에 들어온 섬섬옥수를 부드럽게 매만지며 제 입술로 가져온다.

빛을 보지 못하고 지내 온 듯, 새하얀 손등에 살며시 입 맞춘다. 꽃잎에 살포시 내려앉은 나비처럼 가벼운 입맞춤이다.

언뜻 보면 달곰하기 짝이 없는 그 입맞춤에 수현은 본능적으로 살기를 느낀다. 손등에 닿아 오는 물컹한 입술에 토기가 몰려온다.

“혹, 그대는.”

손등 위에서 부드럽게 입술이 움직이고.

“그대의 목숨값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애무하듯 부드러운 살갗을 빨며 혀로 핥는다.

“태화의 남방(南方)에는 아직도 옛 성해의 백성이 살고 있다지?”

수현의 동공이 크게 확장한다. 황제에게 잡힌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입술에 닿아 있는 손등이 뜨거워진다. 손아래 땀이 배어난다.

“그들의 목숨값을 모두 더한들, 그대의 목숨값만큼은 될까.”

가볍게 손등에 입 맞추는 것을 마지막으로 명휘는 떨리는 손을 놓아주었다. 다시 한번 봄날 같은 눈빛으로 음인을 마주하며 흡사 배우자를 대하듯 한다.

“오늘은 이만 가 볼 것이다.”

넋이 나간 듯, 허공을 주시하는 눈동자를 지나쳐 땀으로 얼룩진 머리를 쓸어 넘긴다. 다정한 척하는 손길이 닿을 때마다 소름이 찌르르 돋는다. 더 짙은 한기가 몸으로 엄습해 온다.

“궁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야. 짐의 인내심은 그리 강하지 않으니.”

수현의 망막에 새길 셈인 양 명휘는 끝까지 잔인한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도 한때 일국의 왕자였는데. 옛 백성의 안위는 생각해야지 않겠는가.”

수려한 몸짓으로 황제가 뒤를 돌자 나인들이 하나같이 조아리며 뒤로 물러난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거구의 황제가 옥발을 헤치며 방을 나선다.

사향이 걷힌 방 안. 방 한구석을 장식한 핏줄기의 비린내만이 가득 풍기었다. 수현과 함께 덩그러니 남은 나인들은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만 있었다. 수현 왕자님. 괜찮으십니까, 왕자님. 그들은 대답 없는 이를 연달아 부르며 달래었다.

사실 그들이 달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저 자신일지도 몰랐다.

미쳐 버린 폭군과 그의 후궁이 되어야 하는 죄인 사이에서, 그들의 기 싸움에 안타까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쪽은 오히려 저들 자신일 터였으니까.

* * *

두 마리 황금용이 엉키어 있었다. 눈매는 사나워 천기(天氣)를 관장하는 신수다웠으며, 용맹한 발톱은 보주를 물고 금빛 찬란한 비늘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하늘로 치솟는 듯한 형상은 천자의 위치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실로 거대한 제국의 주인을 위치를 여실히 보여 주는 장엄한 자리였다.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높은 자리이건만, 오히려 상좌(上座)의 주인은 따분한 모습을 일관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 대신들이 무어라 아뢰고 있음에도 정작 명휘의 머릿속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그는 영화궁(永和宮)을 찾았다. 수현을 귀비로 맞기 위해, 그에게 하사한 궁이었다.

수현은 저를 보고 마치 저승사자라도 본 듯 바들바들 떨어 댔다. 겁에 질려 잔뜩 굳어 버린 몸을 하고선 그걸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그래서 조금 더 놀려 주고 싶었는데. 단지, 그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그를 보며 오기가 생겨 버렸다. 천자인 그를 무시하는 자는 이제껏 태화에 그 누구도 없었다. 한데, 가진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 망국의 왕자 따위가 시선을 주기는커녕, 제 말을 무시하고 대답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원래도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라 비녀를 들고 설치긴 했었다만, 자존심이 상하는 건 여전했다.

그래서였다. 굳이 살생을 감행하면서까지 그의 시선을 돌린 것은.

그리고 마주한 그의 눈빛은 명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떨리는 동공만 보아도 온몸에 피가 끓는 것 같았고, 새하얗게 낯빛에 깊은 희열감이 느껴졌다.

‘그래, 너는 그래야지. 그렇게 벼랑 끝에 몰린 작은 짐승처럼 질려 있어야지.’

그 가녀린 몸을 뚫고 내 것을 박아 넣으면 너는 얼마나 괴로워할까. 목구멍으로 받는 것조차 그리도 괴로워 몸부림치던 너는 얼마나 고통에 허덕이며 나를 부여잡을까.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짜릿해졌다. 당장에라도 그 여린 몸을 가누고 들어가 잔뜩 씨를 뿌려 주고 싶었다. 배 속을 뜨거운 액체로 가득 채우고, 절망에 가득 차 일그러지는 얼굴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급히 나설 일은 아니었다. 천천히, 더 천천히. 그가 완전히 공포에 절어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때까진 참아야 했다.

사람은 당장 눈앞에 닥친 공포보다 닥쳐 올 공포를 떠올릴 때 더 두려움이 큰 법이니까.

보이지 않는 실체에 몸이 갉아 먹히는 줄도 모른 채 시들어 갈 테니까.

“폐하.”

긴 생각의 끝에 명휘를 일깨운 것은 재상의 근심 어린 목소리였다.

“폐하, 혹 어디 편찮은 곳이 있으신지요.”

그는 다소 열기가 오른 용안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의 기우였는지, 황제는 아무렇지 무심한 표정으로 응하였다.

“아니다. 계속하여라.”

“예, 폐하. 독군어사(督軍御史) 장뢰의 장계(狀啓)를 소신이 아뢰나이까.”

명휘가 끄덕 고갯짓했다. 이에 충신이 긴 두루마리 문서를 펼쳤다.

“남방 옛 성해의 터를 비롯하여 지방 곳곳에서 봉기의 조짐이 보입니다. 이들은 망국의 옛 백성들로 태화에 반감을 품으며, 태화 제국에 속해 있길 거부하고 있사옵니다. 황제 폐하, 바라옵건대 폐하는 부디 중앙군을 속히 파견하시어 이를 제압하소서. 혹, 이들의 세력이 커지어 황실에 흠집이라도 낼까 두렵사옵니다.”

편전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끝나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대소 신하들이 웅성거렸다. 이윽고 소란 끝에 한 대신이 나섰다.

“폐하. 소신이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말해 보아라.”

“태화에는 성해를 포함한 네 개의 망국 백성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오나, 이들의 봉기는 가당치 않다고 사료되옵니다. 그들은 그 수가 미비하여 한 치의 위협조차 되지 않을뿐더러, 애초에 무예를 익히지 못한 평민들로 군대를 일으킬 능력이 한없이 미천하옵나이다. 거대한 태화의 군대에 맞서 싸울 수 없는 자들이옵니다.”

이에 또 다른 대신이 나섰다.

“소신의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그들은 각각 다른 망국의 백성들로 그 근본이 달라, 하나로 결속되기 어렵사옵니다. 감히 지엄하신 폐하께 흠집이라니요. 이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오니, 폐하는 심려를 놓으소서.”

그들은 하나같이 달콤한 간신의 언어로 황제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매번 어전회의에서 질리도록 들어온 그들의 화법에 명휘는 일말의 감흥도 없었다.

“재상의 생각은 어떻소.”

그는 한일자로 입을 다문 채 경청하고 있는 재상을 불러세웠다.

“폐하.”

“그래. 그대의 생각을 말해 보시오.”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감히 소신이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주름이 깊게 팬 오랜 세월을 살아온 흔적을 담고 재상의 굳은 입이 열리었다.

“독군어사 장뢰는 심신이 어질고 사려가 깊은 자이옵니다. 이는 필시, 아무 근거 없이 올라온 장계가 아닐 터. 폐하께서는 직접 독군어사를 불러들여 진상을 파악함이 옳은 줄로 압니다.”

지금까지 대신들과 반대 의견을 내놓는 그의 말에 여러 신료가 반박하며 소란을 피워 댔다. 순식간에 시비가 오가는 편전에서 오로지 황좌에 앉은 이만 느른한 눈빛으로 그들을 관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면, 재상은 그 천한 것들이 감히 황실에 누라도 끼칠 수 있다 생각하오?”

“재상은 태화의 황실을 어찌 보는 것이오. 한 나라의 재상으로서 부끄럽지도 않소?”

이윽고 그들의 소란을 뚫고 낮은 목소리가 편전을 울렸다. 감히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절대자의 목소리였다.

“재상은 들으시오.”

침묵이 내려앉은 편전에 신료가 저마다 황상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짐이 직접 독군어사의 얘기를 들어 볼 것이오. 재상은 서찰을 보내 장뢰를 수일 내에 궁에 들라 이르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재상의 외침에 이어 다른 신하들이 고창하였다.

“한데 폐하.”

이만 얘기가 끝난 줄만 알았는데. 어쩐지 재상은 말을 덧붙였다.

“소신이 감히 한 말씀 더 올려도 되겠나이까.”

명휘가 고갯짓을 해 보였다. 얘기해 보란 거였다.

“만약 장뢰의 장계가 틀리지 않았다면, 옛 성해의 왕자를 후궁으로 들이시는 일은 미루심이 어떠한가 싶사옵니다.”

이제껏 무료함으로 일관하던 수려한 얼굴이 단번에 무너졌다. 심기가 불편한 듯,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비록, 그들의 수가 미비하고 군사력이 미천하여 위협되지는 않는다고는 하나. 옛 왕국의 씨가 살아 있다는 소식이 만천하에 퍼지면 이는 분명 그들에게 명분이 되어 사기를 올려 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웅성웅성. 신료의 소란이 구름같이 편전에 퍼졌다.

“하여, 폐하께 간청드리오니 부디 그 혼사를 폐하소서.”

신료의 얼굴이 하나같이 돌처럼 굳어 갔다.

망국 왕자와의 혼례는 황제가 더는 언급 말라 선언한 일이기도 했다. 이를 다시 논한다는 것은 목숨을 그냥 갖다 바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어째서 재상은 스스로 목숨을 버린단 말인가. 또 한 번 편전에서 피를 보아야 하는가. 그들은 차마 터뜨릴 수 없는 탄식을 목 안으로 삼켰다.

“이제 보니 재상은 참 포악한 정치를 좋아하는구려.”

하지만 뜻밖에 황제는 느긋한 목소리로 받아 주었다. 잠시나마 일그러졌던 그의 얼굴은 어느새 평온하게 풀려 있었다.

“재상의 말뜻은. 그럼 망국의 왕자를 숙청하여 그 씨를 마저 말리잔 말인 게요?”

“폐하…….”

“짐은 궁금하오. 망국의 왕자를 처형하여 그 목을 내거는 것과 그를 궁에 받아들여 후궁으로 맞이하는 것 중 어느 편이 옛 성해의 백성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지.”

누구도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운 미소가 주군의 얼굴에 걸리었다.

“경들은 들으시오. 이번 혼례는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치를 것이오. 옛 성해의 백성들에게 술과 고기를 내려 그들이 그날을 기릴 수 있게 할 것이오. 그리하여 만천하에 성군의 은혜를 알리고, 그들을 진정한 태화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간신들이 소리쳤다.

재상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구차한 목숨이 아까워서, 구질구질하게 목숨을 연명하고자 함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황제를 믿고 싶었던 터였다. 황제의 혜안을 믿고 싶었던 터였다.

아, 탄식이 그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부디 그러하여야 할 텐데, 내뱉을 수 없는 말은 오로지 속으로 삼켜야 했을 뿐이었다.

* * *

해가 저문 영화궁.

황제가 떠나 버리고 수현은 덫에라도 갇힌 듯 거대한 공황 속에 빠져 버렸다. 눈앞에서, 그것도 저 때문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 그 광경을 목격하며 그는 죽음 그 이상의 공포를 느껴야 했다.

‘괴로워. 숨이 콱 막혀 버린 것만 같아.’

수많은 나인과 시위가 지키는 방. 수현은 이곳이 오히려 구린내 나는 옥사보다 더 끔찍했다. 그때는 두 손이 묶이고 입에 재갈까지 물려 있었건만, 황제의 궐 안에서 호사를 누리는 지금 이 순간이 오히려 더욱 괴로웠다.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는데…… 이깟 몸뚱이, 그만 사라지면 그만인 것을.’

죽는다 생각한들, 그것조차 쉬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방에 눈이 가득했고, 그들은 수현이 뭐라도 할라치면 당장에라도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황제가 저에게 겁박한 것도 있었고…….

태화의 황제가 옛 성해의 백성을 입에 올렸다. 비록 모든 말을 내뱉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말속에는 가시가 숨어 있었다. 수현이 자결이라도 하는 날엔, 그의 옛 백성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는, 그 무시무시한 의미가.

‘설마 이제 제 백성인데 그리할까. 아니다, 내가 웃지 않는다고 궁인을 벤 잔인한 자이다. 그러고도 남을 자이다. 태화의 미쳐 버린 황제는 그리하고도 남은 사람이다.’

새빨간 입술이 말아 물렸다. 이리하지도, 저리하지도 못해 안절부절못하던 몸뚱이가 자릴 박차고 일어섰다.

창백해진 얼굴로 수현이 발걸음을 옮긴다. 긴 옷자락이 핏자국을 겨우 지워 낸 바닥을 쓴다. 새파랗게 질린 낯빛이 무색하도록 몸을 휘감는 향기는 여전히 향기롭다.

“어디 가십니까.”

방을 가로지르는 수현을 보며 방 앞을 지키고 있던 시위가 막아선다.

“어디 가시느냐고 여쭈었습니다.”

존대하되 윽박지르듯 묻는 그 말에 수현의 미간이 곱게 접혔다.

“……내가. 어디 가는지도 일일이 말씀해야 하는 겁니까.”

떨림이 느껴지는 목소리에도 시위는 굳건했다.

“왕자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라는 것이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왕자님께서 이 방을 벗어나셔야 한다면, 합당한 이유를 소신께 말씀해 주시지요.”

빌어먹을! 으득, 수현의 이가 갈렸다. 화를 억누르며 그가 억지로 목소릴 내었다.

“……소피를 보러 갑니다. 이 또한 제가 일일이 일러야 하는 것인지요.”

새삼, 시위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는 얼굴색을 바로 되돌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나인들과 함께 소신도 따를 것입니다. 왕자님이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호위하는 것이 소신의 책무입니다.”

수현이 얼굴을 붉혔다. 종일 방 안을 지키고 있는 것도 모자라 이젠 변소까지 쫓아오겠다는 소리였다.

“불편하게 느끼실 수 있으나, 이는 엄연한 황제 폐하의 명으로 왕자님께선 반드시 따르셔야 합니다.”

수현은 무언가 더 얘기하려다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가 시위를 붙들고 무슨 말을 더한다 한들, 달라질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왕자님.”

조용한 가운데 대화를 더한 것은 이제껏 가만히 듣고 있던 장 상궁이었다.

“소신들이 모시겠나이다, 가시옵소서.”

결국, 수현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궁의 구조에 훤한 궁인 한 명이 앞장서고 그 뒤를 수현과 나인의 무리가 따랐다. 시위는 무리의 마지막에 섰다. 그들의 시선은 단 한 순간도 수현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영화궁의 변소는 몇 개의 방을 지나쳐 도착할 수 있었다. 태화 황궁 안에 있는 변소는 평민이 쓰는 것과 매우 결이 달랐다. 늘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갖가지 향유와 꽃으로 장식되어 있어 향기마저 그윽했다.

귀하신 분이 들어서자 변소를 지키던 궁인들이 몸을 조아리며 예를 갖췄다. 그들이 수현의 앞으로 은으로 만든 요강을 가져왔다. 마치 이제껏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듯 말끔하게 닦인 것이었다.

요강을 바닥에 두고 궁인들이 물러섰다. 반듯하게 닦인 요강을 바라보며 수현은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 댔다. 둥근 그릇에 적나라하게 비친 제 얼굴처럼 속이 낱낱이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바지에 지려 버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수현이 바지춤을 그러잡았다. 사부작거리며 옷을 끄르는 소리에 이제껏 수현을 주시하고 있던 시위들이 뒤를 돌았다. 궁인들도 모두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괜히 애꿎은 등짝만 따끔했다.

아무도 지켜보는 이가 없는 가운데 속곳 안에 고이 감추어 있던 살덩이가 꺼내어졌다. 은으로 만든 둥근 그릇으로 노란빛의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마치 옥구슬이 떨구어지듯, 그릇을 채우는 물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음인의 성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향과 함께 비릿한 오줌 냄새가 변소에 퍼졌다.

고막을 파고드는 소리와 묘한 향기.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맞닥뜨린 청각과 후각의 자극은 혈기 왕성한 사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릇을 채우는 물줄기 소리가 계속될수록, 그들의 은밀한 욕구는 덩치를 키워 나갔다.

이미 그들의 머릿속엔 깊숙한 곳을 끈 하나로 가린 채 하얀 볼기짝을 다 드러낸 수현의 모습이 떠다니고 있었다. 음인의 엉덩이 맛이 그렇게나 좋다던데…….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이를 상상으로 품으며 사내들의 가운데가 언덕을 이루었다. 꿀꺽, 마른침이 그들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짧은 듯 긴 시간이 흐르고. 더는 물줄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고갤 조아리고 있던 한 나인이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가 준비된 천으로 정성스레 수현의 아래를 닦아 주었다. 부드러운 천에 닿는 느낌이 징그러우리만큼 부담스러웠다.

‘수치스러워.’

나인의 손길이 나가떨어지는 대로 수현은 급하게 속곳을 정리하고 바지춤을 끌어올렸다. 생리적 욕구조차 마음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이 끔찍했다.

그렇게 뒤돌아 문으로 향하려는데.

“……아.”

문득, 수현의 시야에 시위의 아랫도리가 부푼 것이 보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수현은 누구보다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수치심과 모욕감이 온몸에 차올랐다. 저가 처한 현실에서 도망치기라도 하듯,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한시라도 이 모멸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싫다. 모두 다 싫다. 이 지독한 현실이 한탄스럽다.’

하지만 그는 뜻대로 할 수가 없었다.

수현의 발걸음을 가로막은 것은 영화궁의 침전이었다. 영화궁의 침전. 태화 황제가 그에게 하사한 보금자리.

수현이 돌아가야 할 곳은 옛 성해의 땅도. 하늘의 계신 어미의 품도 그 어디도 아니었다. 결국,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은…… 영화궁의 침전이었던 것이다.

온통 붉게 치장한 그 작은 방을 보자 갑자기 설움이 몰려왔다. 다시 저 수옥을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사실이 너무도 괴로웠다.

‘차라리. 차라리…… 나 또한 그때 함께 죽어 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내 가족들과 함께, 태화 황실의 손에 처형당했더라면…… 이토록 괴롭지 않았을 텐데…….’

새삼 눈물이 차올랐다. 비바람에 떨어진 꽃잎처럼, 가녀린 고개가 떨구어졌다.

* * *

영화궁의 하루는 길게만 흘러갔다. 손발이 묶여 있지 않음에도 결코 자유롭지 않은 감옥에서 수현은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 가고 있었다.

수현을 지켜보는 시위의 눈초리는 여전히 삼엄하였으나, 어찌한 일인지 명휘는 그를 찾지 않았다. 그저 장 상궁을 통해 그의 혼례일이 여드레 남았다는 얘기만 전해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명휘가 찾아오지 않자 수현의 불안감은 날로 불어났다. 그의 얼굴을 안 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그건 착각이자 오만이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적의 모습이 불안감을 만들었고, 그 불안감은 끝도 없이 몸집을 키워 수현을 잠식해 버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체와 하루하루를 싸우고 있는 것처럼.

차라리 만나서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태화 황제의 손에 이대로 꺾이지 않겠다고. 당신의 뜻대로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마저도 숨 막히는 체향 앞에선 단 한마디조차 제대로 꺼낼 수 없을 테지만…….

“황제 폐하 납시오.”

달도 구름에 가려 더없이 어두운 밤, 정적을 일깨우며 수현의 처소에 소란이 찾아왔다.

황제의 행차를 두고 수현을 제외한 모든 궁인이 바삐 움직였다. 그들이 문 앞에 행렬을 맞추고 고개를 조아렸다. 곧 문이 열리고 장신의 사내가 방으로 들어섰다. 지독한 사향이 방 안에 안개처럼 스며들었다.

“폐하를 뵈옵니다.”

궁인들이 앵무새처럼 읊조렸다.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명휘가 발걸음을 옮겼다. 중앙에 마련되어 있는 탁자로 가 수현의 옆에 섰다. 어떤 의미에선 나름 기다렸다면 기다렸던 사람일 텐데, 수현은 고개조차 들어 보이질 않았다.

“왕자님, 어서 예를 갖추소서.”

인사는커녕, 고개조차 들지 않는 수현을 보며 마음졸인 장 상궁이 아뢰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수현의 고개는 들어 올려지질 않았다. 그저 자리에 앉아 진한 사향에 떨려 오는 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옷깃 안으로 감추었을 뿐이었다.

“왕자님…….”

그 모습을 힐금 쳐다보며 명휘의 입꼬리가 휘어 올라갔다. 버거울 정도로 커다란 좆을 입에 물고 죽을 듯 괴로워했으면서. 이제 와 도도한 척 고갤 돌린 그 모습이 꽤 귀엽게 느껴졌던 터였다.

“예비 신부란 원래도 부끄러움이 많은 법이니 그만두거라.”

능청맞은 그 말에 장 상궁이 얼굴을 붉히었다.

“화,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장 상궁이 몸을 조아리며 물러섰다.

명휘는 유려한 몸짓으로 용포를 휘날리며 수현의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않고 유심하게 수현을 쳐다보았다. 애써 무시하려 돌린 얼굴의 옆 선과 말아 물려 새하얗게 변한 입술이 차례대로 시야에 박혀 왔다.

“그대는 짐과의 혼례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가.”

듣는 이의 심장을 죄어 올 만큼 근사한 목소리가 방 안에 내려앉았다.

“옛 성해의 왕손과 태화 대제국의 황제가 결합하는 날이니, 이 어찌 경사스럽다 하지 않겠는가.”

그 말에 수현의 심장이 턱 막혀 왔다.

원망 어린 눈빛으로 그가 고갤 돌렸다. 밤안개처럼 고요한 눈빛으로 응시하는 황제의 눈이 보였다. 거리낌 하나 없이 주시하는 그 눈빛에 심장이 조여 오는 것만 같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통증을 느끼며 힘겹게 입술을 떼어 낸다.

“……태화의 황제에게 묻고 싶소.”

오만방자한 말투에 방 안의 궁인들이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다들 동요하는 가운데 오로지 명휘만이 아무런 기색이 없었다. 그는 그저 고요히 음인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와 혼인한다 한들 그것은 단지 겉치레일 뿐, 나의 마음까지는 가질 수 없을 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껍데기뿐인 혼례를 하겠단 말이오.”

음인의 목소리는 떨리는 와중에도 힘이 있었고, 처절한 가운데도 기품을 잃지 않았다. 그는 실로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스스로 부풀린 공포의 실체와 마주하며,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나와 내 옛 백성을 농락하고 싶은 것이오? 이 몸과…… 빈껍데기 혼례를 해서라도. 그리 농락하고 싶은 것이오……?”

하지만 상대는 너무도 달랐다.

넘어야 할 커다란 산처럼, 수현의 앞에 명휘의 존재는 너무도 거대했다. 같잖다는 듯 웃어넘기는 황제의 모습은 수현을 점점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리 생각하더냐.”

음인을 희롱하듯, 말을 꺼내는 명휘의 체향이 달큼하게 변하였다.

“짐이 그대와 그대의 옛 나라를 생각해 그리해 주었거늘, 그리 받아들인다니 참으로 안타까울 수밖에.”

뒤바뀐 향에 수현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몸에서 이상한 변화가 느껴졌다. 쿵쾅쿵쾅. 별안간 심장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달음박질치고, 열이 올랐다. 갑작스레 시작된 몸의 변화에 수현의 동공이 하릴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대는 짐의 성심이 그리도 의심스러운가.”

당황스러움에 어여쁜 미간에 주름이 잡히었다. 수현이 짐짓 가슴을 부여잡으며 몸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갑자기 내 몸이 왜 이러지.’

이상했다. 사향이 아무리 지독하다 하여도 이 정도로 몸이 못 견뎌 내진 않았었는데. 무엇 때문에 몸이 이리도 이상 반응을 보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그대는 짐이 어찌해 주길 바라는가.”

“…….”

“말해 보아라.”

“……그냥 나를 죽이면 되는 게 아니오…… 그냥…… 이깟 몸뚱어리…… 따위…….”

결국,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현이 휘청였다.

“와, 왕자님!”

놀란 장 상궁이 달려와 부축하였다. 수현이 창백한 얼굴로 땀을 비처럼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이러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는 병이라도 얻은 사람처럼 열이 올라 있었다.

“왕자님! 왕자님! 괜찮으시나이까. 수현 왕자…….”

일순, 장 상궁의 입이 멎었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어떤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가 무어라 단정 짓기도 전, 그보다 먼저 수현의 상태를 눈치챈 이가 있었다. 음인의 향을 누구보다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향기 하나로 음인의 몸 상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단 한 사람.

“……폐하.”

명휘였다.

“희락기더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 음인에게로 다가섰다. 명휘가 가까워지자 수현은 더욱 숨넘어갈 듯 고통스러워했다. 이윽고 커다란 손이 괴로워하는 음인의 이마로 얹어졌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열기와 방 안을 가득 채운 자정향이 명휘의 물음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

그저 장 상궁만 옆에서 애가 타는데 명휘는 딱히 무어라 말이 없었다. 한참이나 수현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가 손을 거둔 것은 끊어질 듯 가늘게 이어지는 수현의 신음을 듣고 나서였다.

“폐하, 태의를 들라 이르나이까.”

감히 말을 꺼내는 이가 없는 가운데 장 상궁이 어렵게 물었다. 막 수현을 침상 위에 눕힌 찰나였다.

“폐하…….”

답이 없는 황제를 보며 장 상궁이 다시 물었다.

여전히 말이 없는 가운데 명휘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그가 손짓했다. 그만 나가 보라는 것이었다.

장 상궁의 얼굴엔 걱정이 그득하였으나 감히 황제에게 되물을 수는 없었다. 황송하옵니다, 한마디와 함께 궁인들과 함께 몸을 물렸다. 시위까지 물러가고 나니 어느덧 방 안에는 수현과 명휘 둘만이 오도카니 남게 되었다.

“흐으, 흐…….”

침상에 누운 채로 벅찬 가슴을 부여잡으며 수현이 괴로워했다. 새하얀 머릿속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타는 듯한 고통이 빠르게 전신에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성욕에 절어 버린 몸뚱어리는 앞뒤로 젖어 들고 있었다. 처절한 몸뚱이가 숨을 곧 넘겨 버릴 듯 들썩여졌다. 육욕이 끓어오르는 몸뚱이가 어찌하지를 못하고 계속 발버둥 쳤다.

“흐음…….”

무슨 생각인지 명휘는 선 자리에서 가만히 수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 방자하게 굴더니. 희락기 앞에선 어쩔 수 없는 음인이로구나.”

명휘의 체향은 달큼했으나, 내뱉는 말은 조롱에 가까웠다.

잔인하도록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거이 보던 명휘는 몸을 낮추어 수현의 옆에 쭈그려 앉았다. 곧 향을 가득 품은 손길이 수현의 얼굴에 와 닿았다. 뜨거운 수현의 것과 달리 차디찬 손이 얼굴에 닿자 수현의 몸이 움찔했다.

‘좋은…… 냄새…….’

수현은 저도 모르게 희미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가 훑고 지나치는 곳곳마다 소름이 돋으며 생기가 느껴졌다.

분명 죽도록 싫은 태화의 황제였거늘…… 희락기를 맞이한 음인은 이성을 모두 지워 낸 듯 본능을 향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저도 모르게 내민 손을 따라 몸을 일으켰다. 차가운 손을 따라 입술을 놀렸다. 잔뜩 뜨거워진 입술 새로 혀를 내밀어 손끝을 핥았다. 시원한 느낌이 혀끝에서부터 진하게 돌아 몸속 깊숙이 전해졌다.

“누가 멋대로 빨고 핥으라더냐?”

명휘는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수현에게서 손을 빼내지 않았다. 지나치게 흘러넘치는 타액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와 수현의 빨간 입술을 타고 번졌다.

“천박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명휘가 부드럽게 손을 빼내어 들어 올렸다. 느른하게 내려앉은 눈으로 젖은 제 손을 쳐다보았다. 침이 기다란 가락을 타고 내려와 수현의 옷깃에 뚝, 뚝 떨어졌다. 끈적한 액체가 옷깃을 적시며 스며들었다.

“음…….”

명휘는 곧 손끝을 쳐다보던 것을 그만두고, 대신 수현에게 시선을 옮겼다.

온통 젖어 있는 몸. 열이 올라 새빨개진 귀. 눈물로 촉촉이 적신 눈동자. 그리고…… 침으로 범벅이 되어 반들거리는 새빨간 입술.

안달 난다는 듯 들썩이며, 벌어진 입술 새로 달뜬 숨을 내뱉는 그 모습이 망막에 오래도록 박혀 왔다. 양인으로서 도무지 그냥 못 지나칠 모습이었다.

“흣!”

별안간 명휘의 손이 수현의 몸에 닿았다. 상위의 얇은 천 위로 손을 댄 그가 가슴에 있는 살점을 꽉 잡아 쥐었다. 수현은 저도 모르게 입을 처벌리고 소릴 내질렀다.

“아, 아파. 아파…….”

명휘는 무식하리만큼 센 힘으로 수현의 가슴살을 쥐고 주물러 댔다. 큰 손안에서 살점이 문대어지고 짓이겨지는 바람에 고통이 극심했다. 그와 동시에 천에 쓸리는 유두에서 아프면서도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도무지 겪어 본 적 없는 느낌이었다.

“이상해, 하, 하지…… 흐…… 아파…….”

수현이 연달아 괴로움을 호소해 보았지만, 명휘의 손길은 멈춰지지 않았다. 수현이 울먹였다.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가 소리쳤다.

“그, 그만. 제발 그만.”

“짐이 누군지 알아보겠더냐.”

“모, 몰라. 그만. 그만.”

그가 젖살을 더 세게 잡아 비틀었다.

“흐아악!”

살점이 뜯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에 수현은 그제야 제 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독하리만큼 진한 사향을 맡으며 수현은 다시 한번 울먹이는 목소릴 내뱉었다.

“화, 황제. 태화의 황제…….”

그러자 명휘가 수현이 한 말에 보상이라도 하듯 손을 떼어 냈다. 지독한 자극에서 벗어난 수현은 한 번에 숨을 터뜨리며 거칠게 내쉬었다. 이마 위로 식은땀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온몸이 홀딱 젖었구나.”

명휘는 수현의 얼굴부터 아래로 천천히 훑어 나가며 그리 말했다.

“이렇게도 젖어 괴로워하니, 그대의 처지가 참으로 안쓰럽구나.”

그는 한껏 수현의 처질 비웃으며 그리 인자한 척을 했다.

“어찌해 줄까. 짐이 그대의 기분을 달래 줄 방법을 알고 있는데.”

아량을 베푸는 듯한 말투다.

“말해 보아라. 짐이 그대를 어찌해 주면 좋을지.”

수현이 몸을 계속 틀며 괴로워했다. 하아하아, 더운 숨결이 그의 온몸을 뒤덮고 짐승 같은 신음이 마구 흘러나왔다. 엉덩이 사이 깊은 곳에서 연유한 미끈한 액체는 바짓가랑이를 적시다 못해 다릴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수현의 얼굴은 무참하리만큼 일그러져 있었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이가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온몸을 지배한 색욕은 당장에라도 저이에게 몸을 내맡기라고 부추기고 있었지만, 수현은 그리할 수 없었다.

황제의 손에 꺾이고 싶진 않았다. 몸뚱어리가 타들어 갈지언정 그에게 내주고 싶진 않았다. 그 더러운 손에 짓이겨지느니, 차라리 이대로 고통을 안고 즉사하고 싶었다. 이대로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만 싶었다.

“하으으. 하아, 으, 으응.”

몸을 틀며 이불을 부여잡고 악을 참아 내며 신음한다.

고통에 전 수현이 모습을 보며 명휘의 얼굴엔 조소가 떠올라 있었다. 죽을 듯 몸부림치는 모습에 그는 끝없는 환희감이 느꼈다.

‘그토록 도도한 얼굴을 일관하더니, 음욕 앞에 무너지는 꼴이라니.’

그는 진심으로 수현의 처지를 비웃었다. 이 상황이 즐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양인의 정을 갈구하며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수현의 모습이 너무도 만족스럽다.

“그리 괴롭더냐.”

그가 몸을 낮게 숙이었다. 괴로워하는 음인의 모습을 더욱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보고 싶어서이리라. 보는 눈마저 즐겁게 만드는 수현의 몸짓과 행동에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제 입술을 혀로 핥는 짐승의 눈에는 광기가 서린다.

명휘는 보란 듯 체향을 더 내뿜기 시작했다. 사향이 더 짙어지자 수현이 괴로워하며 몸을 비튼다. 고양이에게 물린 쥐처럼 발악해 대는 수현을 보며 흡족한 미소가 잔인하게 퍼진다. 수현이 미쳐 완전히 이성을 놓아 버릴 때까지 제가 풀 수 있는 모든 체향을 방출하고야 만다.

“하…….”

탄성 같은 숨을 뱉어 내며 명휘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에 문득 불룩해진 저의 아래가 보였다.

수려한 입술에 광채가 맴돌고. 잔혹함으로 적신 손길을 음인에게 내뻗는다. 땀으로 젖어 축축한 머리통을 한꺼번에 그러잡는다. 그대로 끌어와 산을 이룬 제 고간에 문댄다.

분홍빛 입술이 용포를 사이에 두고 옥근에 닿아 문대어지고 비벼지기 시작했다.

“후우…….”

달뜬 숨소리가 허공에 퍼진다. 시선을 아래로 두어 남근에 희롱당하는 이의 얼굴을 살핀다. 그 하얀 얼굴이 단단한 살덩이를 감싼 천에 쓸리며 붉어지는 것이 즐겁다. 눈물을 매달고 고통스러워하는 그 눈빛이 즐겁다.

‘더 괴롭게 만들고 싶다. 더 처절하게 울부짖도록 만들고 싶다. 인간 이하의 짐승처럼, 추잡하고 더럽게 만들고 싶다.’

“흣!”

명휘가 그러잡고 있던 머리통을 단번에 밀쳤다. 수현의 가는 몸뚱이가 그대로 침상 위에 나동그라졌다.

우두둑. 무방비 상태의 음인을 두고 거친 손길이 겉옷을 뜯어낸다. 빨간색 천이 걷히자 얇고 하얀 속옷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미 여러 번 주물러 댄 적 있는 가슴이 유난히 부풀어 있다. 하얀색의 비단 위로 젖꼭지가 오뚝 서서 음영을 만들어 낸다. 아무 망설임 없이 명휘는 그곳에 입을 묻는다. 얇은 천을 사이에 둔 채로 그가 음인의 젖꼭지를 힘껏 깨문다.

“흐읏!”

처음 내보는 소리가 음인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온다. 그것은 단지 아프기만 한 느낌에 기인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뭔가 참을 수 없는 것 같으면서도 찌릿거리는, 엄청난 느낌이 수현을 휘감았던 탓이었다.

얇은 천 안에서 수현의 젖꼭지가 잘근잘근 씹혔다. 툭 튀어나온 작은 돌기의 모양을 따라 천의 주름이 잡혀 나가자 명휘는 아예 입에 힘을 주어 빨아들였다. 맨살은 아니었지만, 젖은 천을 두고 이렇게 빠는 맛도 썩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끈적해진 천에서 감질나게 닿아 오는 젖살이 그를 더 흥분케 했다.

“으응, 응. 아…… 아…….”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수현이 바들바들 떨어 대는 사이, 음인의 젖꼭지를 희롱하던 입이 떨어져 나갔다. 명휘의 시선이 침에 젖어 눅진해진 천에 쩍 달라붙어 있는 작은 돌기로 향한다. 젖은 하얀 천에 가리어져 보일 듯 말 듯 내비치는 분홍색의 살덩어리가 그의 성욕을 자극했다.

도무지 가만히 두기 어려워, 명휘는 그대로 유두 끝에 손가락을 가져간다. 기다란 손가락이 능숙하게 유두를 괴롭힌다. 끝을 잡아 돌리다가 살살 긁기도 했고, 긁다가 또 그것을 짓눌러 문대기도 한다.

젖은 천 위로 젖꼭지가 자극받을 때마다 수현의 양물은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아래 구멍에서는 끝없이 애액이 흘렀다. 흘러넘치는 액체로 축축하게 젖은 이불에 다리를 비벼 댈 때마다 찔걱거리는 야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음인이라고 이리도 젖을 세우는구나. 꼭 계집애처럼.”

이미 수현의 꼭지는 명휘가 손에 힘을 꽉 주어 쥐지 않아도 될 만큼 뾰족하니 솟아올라 있었다. 그는 그게 재밌게 느껴졌는지, 아예 두 손으로 양 꼭지를 잡아 비틀기 시작했다.

“아악!”

지나치게 자극적인 느낌에 비명과 신음이 번갈아 입에서 터져 나온다. 눈초리에 눈물이 길게 길을 만들며 떨구어진다. 이제껏 몇 차례 희락기를 겪어 왔으나 이토록 괴로운 적은 처음이었다. 잃어버리지 못하는 정신이 원망스럽다.

“어찌 괴로워하는 게지? 그대의 아래는 이리도 뻣뻣하게 서 있는데?”

무심한 목소리로 말하는 명휘의 시선은 가운데가 불룩하게 솟은 바짓가랑이에 가 있었다.

“아, 안 돼!”

그는 아예 수현의 다릴 감싸고 있는 바지를 벗겨 버렸다. 가는 다리가 두 다리가 단번에 드러나며 그 사이에 감추어 둔 비밀스러운 곳이 모습을 드러낸다.

손바닥보다 작은 천이 골반에 두른 끈에 달려 그의 양물을 겨우 가리고 있었다. 발기한 좆을 따라 하얀 천이 산등성이처럼 굴곡을 만들고 있었다. 그 작은 천은 선액에 잔뜩 젖은 채 찢어질 듯 팽팽했다.

명휘는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잔뜩 부풀어 오른 살덩이를 옆으로 꺼냈다. 커다란 살덩이가 천을 비집고 삐죽 튀어나왔다. 속곳에서 꺼낸 좆은 오히려 홀딱 벗겨 놓은 것보다 색정적으로 보였다.

“아…….”

감탄 어린 탄성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수현의 것은 음인치고 꽤 길이가 길고 두꺼웠다. 얼굴은 천상 음인이었으나, 꽤 큰 그의 키를 생각하자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다만, 털 없이 매끈한 피부 위에 진한 연분홍빛을 띤 채로 수줍게 서 있는 그 모습은 분명 양인의 것과는 매우 결이 달랐다.

기둥은 단단하게 굳어 있되 흉측하지 않았고, 붉게 물든 머리는 잘 익은 다홍빛 과실처럼 탐스럽게만 보였다. 벌어진 귀두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끈적한 액체는 마치 과즙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대로 입에 넣고 빨아들이면 달큼한 과실의 맛이 느껴질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음인의 생식기를 보아 온바, 이미 그 생김새라면 무던히도 익숙한 명휘였지만 이토록 어여쁘게 여문 성기는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양인의 혼을 쏙 빼어 놓을 만한 물건이었다.

“흠…….”

눈으로만 훑고 있기엔 아까웠는지, 명휘가 불뚝 솟아 있는 음경의 머릴 쥐고 손끝에 머금었다. 침을 질질 흘려 대는 구멍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둥근 모양의 귀두를 감싼 손을 빙글빙글 휘돌렸다.

“아으읏!”

생전 처음 겪어 보는 생소한 느낌에 수현의 몸이 절로 반응했다. 도무지 느껴 본 적 없는 찌릿한 기분이 문질러지는 곳에서부터 배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이상해! 느낌이 너무 이상해!’

이걸 쾌락이라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도무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계속해서 수현을 덮쳤다. 몸은 잔뜩 들떠 숨이 쉬어지질 않는데, 뒷구멍이 계속 간질거려 견디기가 힘들었다. 숨넘어가는 소리로 명휘를 찾았다.

“잠깐, 잠깐만.”

명휘의 손이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그가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쾌락이 지나치더냐?”

“그게…… 그것이…….”

피식,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수현을 보며 명휘가 코웃음 쳤다.

그는 다시금 손을 둥글게 말아 작은 구멍을 만든 채로 기둥을 잡았다. 매끈하게 뻗어 있는 기다란 기둥을 따라 손을 위아래로 노련하게 놀렸다. 손목에 힘을 푼 대신, 좆 기둥을 옭아맨 손아귀에는 바짝 힘을 주었다. 선액으로 범벅이 된 좆을 손으로 치대는 소리가 쩍, 쩍 사방을 울렸다.

“으읏, 아읏! 아!”

처음엔 천천히, 하지만 점차 속도를 더해 가는 손짓에 수현만 몸을 어찌하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며 뒤틀었다. 자꾸만 허리가 들썩여지며 고개가 뒤로 젖히었다. 저도 모르게 그러잡은 이불자락이 손안에서 구겨졌다. 열이 오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야한 빛을 자아냈다.

“아, 안 돼! 그만 나와 버릴 것 같…… 그만, 그만. 아흣!”

천박하기 이를 데가 없는 살덩이가 명휘의 손길에 결국 하얀 물을 내뿜기 시작했다. 남의 손, 그것도 양인의 손을 타 본 적이 없는 음경이 참아 내기엔 쾌감이 과했는지, 온통 요동치며 사방에 좆물을 뿌려 대기 시작했다.

수현의 골반이 잔뜩 떨리며 목을 타고 엄청난 교성이 쏟아져 나왔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가운데 자꾸만 수현의 꺾일 듯 잔뜩 뒤로 넘어갔다.

눈물이 맺혀 있던 눈초리에서 한 줄기 물줄기가 만들어졌다. 수현은 지나친 쾌락이 빚은 황홀감에 젖어 거칠게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하으으. 하아, 하아아…….”

황홀경도 잠시, 수현은 금세 안쪽에서 솟구쳐오르는 욕구에 몸을 달싹이기 시작했다. 이걸로는 부족했다. 오늘 겪는 희락기는, 그 끝없는 육욕은 고작 이딴 사정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혼례도 치르지 않은 음인이 어찌 이리 양인의 정을 갈구하는지. 천박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능욕의 언사와 함께 비웃음을 선사하며 명휘는 제 소매를 걷었다. 그러더니 곧장 수현의 가랑이를 벌리었다.

수현의 다리 안쪽 꽃분홍색으로 잘 물든 주름을 보며 명휘는 군침이 돌았다. 빼곡하게 오므려져 있는 그것은 잔뜩 젖어 주인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뻐끔대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어찌할까. 혼례를 앞두고 그대의 자궁을 마음대로 뚫을 수는 없을 터.”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몸을 틀어 대는 수현을 보며 명휘는 자조적인 웃음을 내비쳤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당장 제 바지 안에서 자꾸만 껄떡이는 좆을 꺼내 구멍 안에 처박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후궁으로 들이기로 한 이상, 먼저 손댈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이윽고 명휘가 중지와 약지를 한데 모았다. 두껍고 기다란 두 손가락이 그대로 주름을 헤치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수현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켜 아래를 보았다. 그러자 가랑이 사이 그의 팔뚝이 자리 잡은 것이 보였다. 명휘가 수현의 아래로 손을 집어넣은 거였다. 그 단단하고 긴 손가락이 수현의 아랠 뚫고 있는 거였다.

“하으읏! 시, 싫어!”

수현의 비명이 무색하리만큼, 명휘의 기다란 손가락은 자비 없이 수현의 아래 문을 단박에 열었다. 한 번도 침범당한 적 없었음에도 축축하게 젖은 입구는 밀고 들어오는 손가락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으으. 싫어…… 싫어…… 이상해. 으응.”

지독하리만큼 생경한 느낌이었다. 앞쪽을 잡힌 것보다도 훨씬 생소하고, 그만큼 더 짜릿했다. 수현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두 손으로 하릴없이 아래 깔린 요를 잡아당겼다. 손끝으로 쥐고 뜯으니 감각이 견뎌지기는커녕, 더 생생해지기만 했다.

“제발…… 제발…… 하으으!”

아래로 난 구멍을 차고 들어온 손가락은 유려하게 점막을 훑으며 손끝으로 긁어 댔다. 손끝이 내벽에 닿을 때마다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파닥거렸다.

살아 있는 생물인 양 기다란 손가락들은 쉴 새 없이 안을 헤집었다. 구멍 안에서 굽혔다 펴기도 하며 수현을 괴롭혀 댔다. 좁디좁은 내벽은 안을 넓히며 긁고 문질러 대는 집요한 손가락에 만족한 듯 입을 오물거렸다.

“하응, 응…… 아…….”

그쯤, 비명은 점점 잦아들고 대신 수현의 입에선 달뜬 숨소리와 함께 애교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수현의 비명을 잠재운 것은 다름 아닌 본능이었다. 양인의 정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음인의 숙명.

크나큰 쾌감이었다. 맛있는 걸 씹어 먹을 때 즐거운 것처럼 처음 넣어 본 손가락이 달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꼭 복숭아 같았다. 과즙이 넘쳐 나는 복사나무의 열매, 그것을 입에 머금은 느낌이었다.

맛있는 걸 입에 문 아래에서 계속해서 침 같은 애액이 줄줄 새어 나왔다. 참방참방, 수현의 구멍을 탐하는 명휘의 손가락이 애액을 휘젓는 소릴 내었다. 손가락을 타고 질질 흘러내린 애액이 명휘의 손등 전체를 적셨다. 손등에 맺힌 액체가 방울져 요 위로 끈적하게 떨어졌다.

“아으응!”

어느 지점에 명휘의 손이 닿자, 수현이 유독 격하게 반응했다.

“이곳이 좋더냐?”

명휘가 꽤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까지 이죽거리던 것과 달리, 그의 눈빛이 느른하게 눈빛을 풀고 있었다.

“……좋아. 거기…… 느낌이…….”

수현이 숨을 섞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명휘가 지금껏 부드럽게 만져 대던 것과는 달리 세게 찔러넣는가 하면 짓궂게 비비기도 했다.

“흐아아!”

수현의 가장 예민한 부위가 집중적으로 공격받았다. 손끝에 닿아 긁히고 문질러지는 느낌이 적나라하게 수현의 전신을 강타했다.

수현의 몸이 곤두서고 허리가 활처럼 휘어 버렸다. 온몸의 피가 가운데로 쏠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가운데, 좆이 터질 것처럼 커다랗게 부풀었다. 손가락으로 찔리는 구멍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치솟아 자극이 음경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대로 모든 감각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하아읏, 으읏! 하아으!”

수현의 음경 벌어진 구멍에서 또다시 허연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입에선 말도 안 되는 교성이 쏟아져나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구멍은 힘이 팍, 들어가 들어찬 손가락을 물고 씹어 대기 바빴다.

골반이 급격하게 진동하고, 씨 없는 물을 쏟아 내는 음경은 미쳐 날뛰었다. 수현은 오롯이 쾌감에 사로잡혀 정신 차릴 수 없을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살아생전 느껴 본 적 없는 완벽한 환희와 쾌락이었다.

“아아응, 으응, 으으응, 흐.”

마지막 한 방울의 정액까지 다 터져 나오도록 수현은 오랫동안 몸을 들썩이며 신음했다.

그의 허리가 곡선을 그리며 요동하는 동안 명휘는 넋을 놓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얇은 허리가 진동하는 골반에 따라 흔들릴 때마다 명휘의 옥근도 한 번씩 들썩이며 껄떡댔다.

“하아, 하아…… 하아아…… 하…….”

사정을 끝낸 수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몸을 늘어뜨렸다.

명휘는 옷자락을 잔뜩 물들이며 요물이 뱉어 낸 하얀 액체를 바라보았다. 흰 물이 얼룩덜룩 묻어난 옷자락을 보며 그는 마른 입술을 혀로 훑었다. 씨물에 한껏 젖은 옷자락을 걸치고 있는 수현의 모습은 발가벗겨 놓은 모습 이상으로 색스러웠다.

명휘의 시선이 다시 수현의 얼굴로 향했다. 그가 내뿜은 향만큼이나 달큼한 눈길로 수현을 쳐다보았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가 수현의 얼굴을 감싸 쥐고 들어 올렸다.

그가 수현의 벌어진 입술로 자신의 입술을 묻었다. 예상치 못한 명휘의 행동에 수현의 두 눈이 놀란 듯 크게 떠졌지만, 이내 향에 취해 부드럽게 눈꺼풀을 늘어뜨렸다. 반쯤 감긴 느른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스르륵 눈이 감기었다.

벌어진 수현의 입술 새로 명휘가 슬그머니 혀를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수현은 아래 구멍으로 받아들였던 손가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단맛을 느꼈다. 제 입속에 침범한 혀가 그리도 달았다. 명휘의 체향에서 느꼈던 그 복숭아 맛이었다. 감히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한 과실의 맛.

명휘는 넣은 혀를 이리저리 굴리며 더욱더 격하게 수현의 혀를 감쌌다. 그가 수현의 몸뚱일 잡고 침구 위로 자빠뜨렸다. 그 단단한 팔뚝으로 수현의 몸통과 머리를 감쌌다.

들러붙은 입술의 각도를 틀어 가며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왔다.

명휘의 혀는 현란하기가 이를 데 없는 몸짓으로 입안을 휘저어 나갔다. 혀끝으로 혀 등을 핥기도 하고 혓바닥 전체에 대어 비벼 대기도 했다.

그러다 아예 수현의 혀를 제 혀로 누른 채 목구멍으로 침을 넘겨 주었다.

수현은 다디단 복숭아향의 타액을 기꺼이 받아 마셨다. 목구멍으로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액체에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아, 하아. 하…….”

“아직 양인의 몸을 받아 본 적도 없는 주제에. 음탕하기는 누구 못지않구나.”

“…….”

“그리 좋더냐?”

“…….”

“묻지 않았느냐. 그리 좋으냐고.”

수현은 부딪친 입술이 떨어져 나가기 무섭게 명휘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음욕에 들떠 무엇 하나 제 뜻대로 할 수 없었다. 물음에 대한 답조차도. 그저 너른 가슴에 안기어 숨을 고르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그런 수현을 내려다보는 명휘의 얼굴엔 피식, 비웃음이 걸리었다. 지금 수현은 그가 지금껏 겪어 온 여느 희락기의 음인과 다를 게 없었다. 도로 차오르는 성욕에 물든 표정이라니.

“그렇게 싸지르고도 아직 모자란단 말이지?”

상대를 조롱하는 말일지언정, 그의 말투엔 묘한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그래. 어디 더 쏟아 내 보아라. 지칠 때까지, 밤새도록 쑤셔 줄 테니.”

품에 안긴 수현을 그가 자리로 눕혔다. 무릎을 세운 채 벌어져 있는 가랑이 사이로 명휘의 기다란 손가락이 마치 뱀인 양 다가갔다.

* * *

햇살이 온화하게 영화궁을 비추었다. 방 안을 따뜻하게 데우는 볕에 수현의 꼭 감긴 눈꺼풀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잠에 취한 듯, 아직 맑지 못한 정신에 눈을 깜빡이던 고운 눈은 익숙하지 않은 천정을 올려다본 후에 번쩍 뜨였다.

“헉.”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에 서둘러 제 몸을 매만진다. 깔끔하게 씻겨진 몸은 물기 없이 보드라웠고, 옷 또한 새것같이 깨끗했다.

“아…….”

하지만 젖힌 옷깃 사이, 가슴팍에 자리한 울혈을 보며 수현은 절망하듯 신음하고야 만다. 혹여나, 혹여나 꿈일까 싶었는데…… 마치 그런 수현의 생각을 비웃듯 자리한 붉은 자국은 그에게 절망을 안겨 준다.

애꿎은 가슴을 움켜잡으며 시련에 빠진 얼굴을 떨어뜨린다.

‘내가 대체 어제 무슨 짓을…….’

처음으로 양인에게 아래를 내주었다. 그것도 죽여 마땅한 태화의 황제에게.

비록 양물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양인의 손가락을 음부로 받고 밀문을 통해 드나드는 그 손길에 희락을 맞이하였다. 생경한 느낌에 못 이겨 거부하다가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스스로 허릴 흔들며 안에 든 손가락을 씹어 댔다.

‘미친 게다. 미쳐 버린 게 확실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아무리 희락기였다 하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양인의 향기에 그리 정신을 놓아 밀부를 내주다니…… 어제 한순간의 일로 이제껏 무엇 때문에 살아왔는지, 그 의미조차 완전히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분명 거부할 수 없었다. 무언가가…… 무언가가 달랐다. 평소 겪었던 희락기와는 다른…… 무언가가.’

수현은 이미 몇 번 희락기를 경험해 본 적 있었다. 분명 몸이 달아오르고 음욕을 느낀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이토록 강력하게 정을 갈구한 적은 없었다.

당장에라도 저 사향에 몸을 맡기지 못하면 미쳐 버릴 듯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몸이 이리도 망가지게 되었는지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겪어 왔던 희락기와 대체 무엇이 달랐는지. 그 어떤 것이 저에게 영향을 끼치었는지.

그러다 그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것이라면, 분명 그것 하나뿐이었다.

‘양인의 체향 때문일 것이다. 극양인의 체향이 이리 만든 것이다.’

확실했다. 본디 음인의 몸뚱어리는 양인의 향에 좌지우지되는 것이었으니까. 하물며 극양인이었다. 오직 황실과 극상위층 귀족에게서만 나타나는 가장 강력한 형질.

이쯤 되니 수현은 온몸이 떨려 왔다. 온몸의 신경을 건드리며 들끓게 했던 사향의 끔찍한 느낌이 되살아났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것은 크나큰 고통이었다. 제 몸을 제 몸처럼 다루지 못할 때, 그 상실감과 무기력함은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녕 이대로 황제의 손에 무너져야 하는가. 이대로…… 아무것도 해 보지도 못하고. 그저 무기력하게…… 이대로…….’

“왕자님, 기침하셨나이까.”

긴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얇은 창호문을 두고 장 상궁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현이 기척을 하진 않았으나, 장 상궁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제때 맞춰서 약재를 올려야 했던 터였다.

그녀의 뒤를 이어 낯선 이의 모습이 보였다. 몸을 조아린 채로 약재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아 태의인 듯했다. 그 언젠가 황제의 목에 비녀를 꽂아 넣었을 때, 언뜻 본 듯싶었으나 워낙 경황이 없어 기억하지 못한 수현이었다.

“왕자님, 몸은 좀 어떠신지요.”

장 상궁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수현은 아직 그녀와 대화하는 것이 낯설어 고갤 돌리고야 만다.

“그래도 혈색이 많이 좋아지셨나이다. 간밤에 폐하께서 많이 신경 써 주신 듯하옵니다.”

순간, 수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차마 무어라 말하지도 못하고 입만 벙긋벙긋하는데, 장 상궁의 뒤에 있던 태의가 앞으로 나섰다.

“왕자님, 탕약을 올리겠나이다. 음인에게 좋은 약재들로 달인 귀한 탕약입니다.”

청자로 만들어진 주전자의 주둥이에서 진한 갈색의 액체가 흘러나왔다. 거름망을 한번 통과한 액체가 그대로 잔 안에 고여 들었다.

“왕자님, 폐하께서 특별히 하사하신 약재이옵니다.”

장 상궁은 태의에게 약재를 받아 수현에게 내밀었다.

가뜩이나 내키지 않았는데, 장 상궁이 하는 말을 들으니 수현은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가 그대로 약재를 물리었다.

“왕자님…….”

“되었으니 그만 물리시지요.”

“하오나, 왕자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수현의 행동에 궁인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몸에 좋은 귀한 탕약이라 하지 않았는가. 굳이 물릴 이유가 하등 없는데, 어찌 저리도 모질게 내친단 말인가.

“황제 폐하 납시오.”

때마침 밖에서 궁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침전 안으로 거만한 향의 주인이 들어섰다. 그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숨 막힐 정도로 독한 체향을 뿜고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향기는 기분 좋은 쪽에 가까웠다.

“폐하를 뵈옵니다.”

방 안에 머물러 있던 나인들과 시위, 그리고 태감이 높은 분께 예를 갖추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들에게 일말의 시선조차 주지 않고 명휘는 수현의 침상 앞에 섰다. 두근두근. 몰려오는 사향에 수현의 심장이 다시금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려다보는 눈빛에 몸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고개를 떨군 채 입술만 내리 짓씹었다.

“무얼 하고 있었더냐.”

시선은 수현에게 꽂은 채로 명휘가 장 상궁에게 물었다. 이에 잠자코 있던 장 상궁이 조심스레 아뢰었다.

“수현 왕자님께서 기침하시어 탕약을 올리고 있었나이다.”

“그래?”

침상 앞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며 명휘가 손을 내밀었다. 수현이 입조차 대지 않은 잔을 장 상궁이 어수 위로 조심스레 올리었다.

“음인에게 좋은 것들로 준비하였다. 그대를 위해 특별히 제조한 것이니 한 모금 마셔 보지 않겠느냐.”

다정함을 가장한 협박. 그런 것 따위, 수현에게 먹힐 턱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더 매몰차게 고갤 돌릴 뿐이었다.

“그대에게 좋은 것이라 하였다.”

황제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고저 없는 사늘한 목소리에 궁인들이 몸을 바들바들 떨어 대기 시작했다. 처음 영화궁에 들었을 때 보았던 피바람이 언뜻 그네들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쯔.”

결국, 황제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사납게 변한 사향을 몰고 그가 수현의 턱을 잡아 돌렸다.

“으, 으으!”

명휘는 입아귀를 세게 짓누르며 꽉 다물린 입술을 벌리었다. 안간힘을 다해 버티었으나 무지막지한 힘에, 볼을 죄어 오는 아픔에 수현의 입은 하릴없이 벌어지고야 만다.

“우우, 우. 우웁.”

강제로 벌린 아가리 사이로 갈색 액체가 흘러들었다. 수현이 거부하며 몸을 틀자 목구멍으로 채 흘러 들어가지 못한 액체가 마구 입꼬리를 타고 흘렀다. 하얀 얼굴이 온통 약재를 달인 물에 물들고 하얀 침의가 갈색으로 젖어 들었다.

“큭, 크윽. 컥.”

액체가 기도를 막아 기침이 터져 나왔다. 수현이 숨넘어갈 듯 꺽꺽대고 나서야 명휘는 손에 힘을 풀었다. 괴로운 듯 목을 부여잡고 수현이 자리에 엎드려 기침을 쏟아 냈다.

“흡!”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기침이 멎자마자 수현의 고개는 다시 들어 올려졌다. 포악한 손이 그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올린 탓이었다.

“혹, 그대는 그대의 처지를 잊었는가.”

내뿜는 체향만큼이나 살기를 담은 눈빛이 수현을 꿰뚫었다.

“분명 짐이 그대에게 자비를 베풀겠노라 했거늘.”

수현은 포식자에게 목덜미가 잡힌 작은 동물처럼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또다시 사향이 제 몸을 꼼짝도 못 하도록 강하게 짓누르며 옭아맨 탓이었다.

손대면 터져 버릴 것 같은 커다란 눈망울이 다시금 공포에 젖어 흔들렸다. 다시금 제 손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구는 몸에 눈물샘에서 액체가 솟아났다.

깊은 우물 속을 연상케 하는 그 끝없는 흑색의 눈동자에 명휘의 얼굴이 다시금 광기로 뒤덮였다.

‘또다. 또 저 눈빛이다.’

그가 급작스럽게 수현의 머리통을 잡아당겼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뒤덮으며 제 입술을 갖다 박았다.

거부하며 이리저리 피하는 살덩이를 집요하게 쫓으며 그가 혀를 놀렸다. 낚아챈 혀를 뽑아 먹을 듯 빨아들이며 쓴맛이 나는 침을 삼켰다. 혀 등을 짓누르며 목구멍에 가까운 부근까지 살덩이를 집어넣었다. 마치 지난밤, 밤새 아랫구멍을 쑤셔 댔던 것처럼. 입안에 자리한 두툼한 살덩이를 이용해 그의 목구멍을 희롱하였다.

“우으, 으. 우우우, 으.”

제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넘겨 오는 침을 받아마시며 수현이 목 안으로 우우, 비명을 삼켰다. 몸이 뒤로 넘어갈 것처럼 자꾸만 꺾여 들었다.

우악스럽게 잡아당기는 탓에, 머리가 이대로 송두리째 뽑힐 것만 같았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 혀를 뒤섞으며 수현이 괴로워하고 있는 사이,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으!”

입이 가로막혀 안으로만 터지는 비명을 들으며 명휘는 즐거운 듯 비죽 웃었다. 지금까지 혀를 가지고 농락하던 그가 짐승처럼 수현의 입술 끝을 물어뜯었다. 수현이 괴로운 듯 경련하며 몸을 떨었다. 비릿한 피 맛이 짐승 같은 이의 입안에 맴돌았다.

“하으으. 흐. 하아.”

피가 섞인 침을 길게 늘어뜨리며 명휘의 입술이 수현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잡고 있던 머리채를 놓아주고 그가 제 입술을 닦았다. 비릿한 피 맛을 느끼며 그의 시선은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얀 얼굴에 수놓아진 듯, 입꼬리를 타고 번져 가는 새빨간 피.

붉은색. 하얀 피부에 지독히도 잘 어울리는 색이었다. 너무도 잘 어울려서 당장에 빨아먹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왜 그대를 신부로 맞이하느냐 물었더냐.”

감정을 지운 목소리가 은은하게 방 안에 내려앉았다.

“껍데기만 남은 혼례가 무슨 소용이냐 그리 물었더냐.”

느른하게 깔린 눈빛이 소름 돋도록 집요하게 시선을 강요한다.

“그대는 아직도 모르겠는가.”

숨이 멎는다. 시간이 멈춘다. 모든 것이 정지해 버린다.

“그대의 무엇이 짐을 이토록 기쁘게 하는지.”

숨조차 멈춰 버린 순간, 질려 버린 얼굴 위로 길게 길을 만들며 핏물이 흘러내린다. 새하얀 피부를 덮으며 흘러내리던 핏줄기는 입술에 닿아 새빨간 피에 섞여든다. 투명한 물에 섞이는 빨간빛이 묘하게 색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양인의 커다란 손이 음인의 새하얀 얼굴을 훑는다. 손끝으로 핏물을 손수 닦아 주며 사늘한 웃음을 짓는다. 보는 이의 간담이 서늘해진다. 감히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서늘함이다.

“이만 가 볼 것이다.”

명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에 이제껏 넋이 나간 듯 정신을 놓고 있던 궁인들이 몸을 추스르며 이성을 되찾았다.

“그대는 혼례일까지 몸을 사리고 있어야 할 것이야.”

무심한 듯 그가 자리에서 돌아섰다.

“그대의 옛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태화의 남방이 피로 물드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말이야.”

그렇게 그가 영화궁의 침전을 나선다.

* * *

자색의 정향이 눈부시게 피어난 날이었다.

아이는 달큼한 향기를 내뿜는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온통 연두색의 새싹과 분홍빛의 꽃이오, 흐르는 것은 꽃향내를 담은 바람이리라.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소중하여 아이는 한참이나 넋을 놓아야 했다. 아무런 시름도, 걱정도 모르고 자라온 이답게 커다란 눈동자는 그저 해맑기만 하였다.

“수현 대군.”

익숙한 목소리에 아이는 들판 위에 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햇살을 닮은 웃음이 아이의 얼굴에 걸리었다. 동터 올 때 지저귀는 새처럼 아이의 입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마마마!”

삼단 같은 머릴 흩날리며 여인이 다가왔다. 분홍빛 치맛자락은 들판을 뒤덮고, 하얀 손끝은 긴 옷소매에 가리어져 한없이 여려 보였다.

“대군.”

가느다란 팔이 토끼처럼 폴짝 뛰어오른 아이를 품에 안으며 얼굴엔 기쁨이 넘치었다. 제 것과 똑같이 생긴 커다란 눈망울이 그저 사랑스러웠다. 하얀 볼에 얼굴을 비비고 보드라운 살에 입 맞춘다.

“여기서 무얼 하고 있었나요.”

다정한 목소리에 아이가 즐거운 듯 까르르 웃는다. 어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로 옹알옹알 그 작고 귀여운 입을 움직인다.

“소자, 봄꽃을 보고 있었사옵니다.”

“그래요? 어떤 꽃이 그리도 우리 수현 대군의 마음을 끌었나요?”

“그것이…….”

그 커다란 눈을 굴리며 아이가 생각에 빠진다.

“소자는 자색 정향이 가장 마음에 드옵니다.”

“왜 그렇지요?”

“목단(牧丹)은 어여쁘나 져 버리면 그 잎이 바래 그리 마음 아플 수 없사옵니다. 앵화(櫻花)는 바람에 흩날리는 모양새가 퍽으로 아름다우나 향이 없어 아쉽습니다. 한데 자정향은 소박한 얼굴을 하고선 천지에 달콤한 향을 뿌려 대니, 소자의 마음을 제일 기쁘게 해 주는 것은 자정향이옵니다.”

아이의 대답이 여인을 더없이 기쁘게 했다. 참으로 어여쁜 말이었다. 지는 꽃잎에 마음이 아프다는 그 말이 너무도 갸륵해 여인의 입가엔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그리 생각합니까, 대군.”

아이는 어미의 품에서 얼굴을 떼어 냈다. 올려다보며 빤히 쳐다보는 눈빛에 여인의 얼굴이 한없이 온화해진다.

저를 똑 닮은 아이였다.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고, 그런 만큼 더 아꼈다. 궁에 이미 몇 명의 왕자와 공주가 더 있었으나 누구도 수현만큼 착한 심성을 가진 이는 없었다. 생긴 것만큼이나 마음도 고운 아이였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이니 자라서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게 되리라. 이리도 어여쁜 성정을 지녔으니 미움 받고 아파하는 일은 평생 없으리라. 분명, 저만큼이나 고운 심성을 가진 이를 만나 평생 사랑받고 사랑하며 지내게 되리라.

“대군.”

“예, 어마마마.”

“대군은 혹시 음인에 대하여 배웠는지요?”

“예. 어마마마. 아기씨를 품을 수 있는 이라 배웠습니다.”

“그래요. 그런 음인에게선 특유의 향을 뿜어져 나온답니다.”

아이가 동그란 눈을 굴리며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것은 꽃내음과 닮아 양인의 사랑을 부르곤 하지요.”

“나비를 부르는 꽃처럼 말이옵니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하는 대답에 여인은 그저 웃음을 터뜨렸다.

“네, 맞습니다. 나비를 부르는 꽃처럼 말이지요.”

섬섬옥수가 아이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는다. 손끝에 걸리는 머릿결이 그저 보드랍다.

“대군이 음인으로 발현할 때면, 그 향은 아마 자정향을 닮을 겁니다.”

“정말 그리 생각하시옵니까?”

“네. 그럼요.”

아이가 해맑게 웃었다.

“어마마마. 어마마마의 말처럼 된다면…… 소자는 참으로 행복할 것이 옵니다.”

“대군은 봄을 닮았습니다. 분명 봄날의 자정향 같은, 그리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어디선가 다시금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따뜻한 봄날의 기운을 담은 바람은 꽃보라를 만들어 동산에 흩뿌리고, 행복한 듯 마주한 두 사람을 어루만졌다. 그러곤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쳐 언덕 먼 곳으로 사라져 갔다.

마치…… 다신 손이 닿지 못할 곳으로 영영 떠난 듯이.

“마마!”

먼 곳에서 다급히 여인을 찾는 소리가 들리었다.

“마마! 마마! 중전마마!”

곧 나인 한 명이 그들의 앞에 멈추어 섰다. 얼마나 급히 뛰어온 것인지, 어깻숨을 급히 내쉬며 씨근벌떡 소리쳤다.

“큰일 났사옵니다! 어서, 어서.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꽃잎같이 온화하던 얼굴에 웃음이 싹 가셨다. 어두운 그늘을 만들어 내며 여인이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더냐.”

“지금 도, 도성밖에. 아니, 도성에. 저, 적군이. 적군이……! 북방에서 온 거대한 대군이……!”

나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여쁜 아이가 소리쳐 댔다.

“어마마마! 저기! 저길 보시어요!”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먼 데를 가리켰다. 그곳은 분명 연녹색 풀이 무성하고 꽃잎이 드날리는 곳이었는데. 분명 그러하였는데…….

“저, 저것이…….”

초록빛의 대지는 어느 순간에선가 불바다가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재와 그을음이 뒤섞인 연기는 바람에 휩쓸려 귀신의 머리처럼 흩날렸다.

순식간에 검회색으로 가득 찬 하늘이 봄날을 어둡게 물들였다.

“마마. 피하셔야 하옵니다. 한시도 지체하실 시간이 없사옵니다. 어서 채비하시옵소서. 어서.”

다급함이 여실히 느껴지는 목소리.

하지만 어쩐지 여인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 어여쁜 얼굴을 근심으로 물들이고 그저 자리에 오도카니 서 있다.

미동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 길이 없는 그 작고 순수한 아이는 그저 근심 어린 어미의 표정만으로 심장이 조마조마해졌다. 그 앵두 같은 작은 입술이 어미를 향해 걱정스러운 말을 내뱉는다.

“어마마마. 무슨 일이어요…… 어마마마…….”

꽃잎을 닮은 붉은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심연을 닮은 검은 눈동자가 그윽하다.

여인의 시선이 애정 어린 이에게로 향한다. 저를 빼다 박아 놓은 것 같은 어린아이. 아직 세상을 다 깨우치지 못하여 티 없이 맑기만 한 작은 아이에게로.

“여보시게.”

이제 여인의 얼굴에 온화함이란 없다.

“대군을 모시게.”

모진 운명에 맞서 제 자식을 지켜야 하는 억척스러움만 남았을 뿐.

“마마! 그게 무슨…….”

“못 들었는가.”

“마마.”

“수현 대군을 모시라 일렀네.”

“하오면. 마마는…….”

“나는 궁으로 갈 것이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에 궁인들이 몸을 조아리며 눈물짓는다. 진심으로 탄복하며 그네들이 소리친다.

“아니 되옵니다, 마마. 그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지금 궁으로 돌아가신다니요. 궁은 위험하옵니다. 절대 안 되옵니다, 마마.”

“아니다. 나는 성해의 중전이다. 나라가 위급하다 하여 안주인이 자릴 비우는 것이 말이 되느냐.”

“하오나, 마마.”

“듣기 싫다.”

“마마!”

궁인들이 읍소하며 울부짖는다. 이대로 궁으로 간다는 말은 곧 죽음의 문턱에 스스로 걸어간다는 것과 같을 터.

그럼에도 여인은 끝내 그곳으로 가겠다 하였다. 제 목숨이 끊기는 한이 있더라도, 성해의 안주인으로서 명예는 끝까지 지켜 내겠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모진 말인가. 목숨보다 귀한 것이 성해 중전의 명예였단 말인가.

“그대는 반드시 대군을 끝까지 보필해야 할 것이네.”

여인의 말에 다시 한번 궁인들이 크게 울부짖는다. 마마, 귀청을 뚫는 애절한 목소리가 너른 들판 위로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무얼 하는 겐가. 어서 대군을 모시라 하였거늘.”

눈물, 콧물이 범벅된 채로 한 나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훌쩍훌쩍, 그치지 않는 눈물을 머금으며 나인은 아이에게 다가섰다.

“어마마마!”

그제야 아이는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커다란 눈동자를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눈물을 쏟아 낸다.

“어마마마! 아니 되옵니다! 소자를 데려가시옵소서! 소자는 혼자 갈 수 없사옵니다! 어마마마! 어마마마!”

아이의 청이 무색하리만큼 여인의 얼굴은 단호하다.

처음 보는 낯선 표정. 아이는 벌컥 겁을 집어먹고 더욱 악을 쓰며 울어 댄다. 여린 얼굴이 눈물이 샘솟으니, 보는 이의 가슴이 다 찢어지는 듯하다.

“어마마마! 소자를 버리지 마시어요! 어마마마! 어마마마!”

“대군마마…… 이러지 마시옵소서.”

“놓아라. 이거 놓아라! 어마마마에게 갈 것이다. 어마마마!”

울고 떼쓰며 어미에게 달려드는 아이를 붙잡으며 궁인이 울먹인다. 제 어미에게 가겠다 달려드는 아이를 떼어 내야 하는 이의 마음도 이리 아플진대, 제 자식을 살려 보내고 대신 죽음을 택한 어미의 마음은 오죽할까.

“어마마마!”

아이는 끝내 궁인의 손에 이끌려 어미에게서 멀어져만 간다. 그을음에 뒤덮인 대지는 더는 향기롭지 않다. 흉하게 타오르는 연기에 휩싸인 채로 어둑해진 하늘을 쫓아 아이가 발걸음을 옮긴다.

“수현아!”

이제껏 모질게 표정을 감추고 있던 여인이었건만, 끝내 멀어져 가는 아이를 보고 소리치고야 만다.

“수현아. 내 사랑하는 아들, 수현아!”

아이는 먼 곳에서 울부짖으며 어미를 바라본다. 잡힌 손을 뿌리치고 뛰어가고만 싶지만, 손아귀의 힘이 너무도 세다. 먼 데 있는 어미의 얼굴이 눈물에 가려 그저 뿌옇게만 보인다.

“수현아, 살아남아야 한다.”

어마마마, 어마마마. 아이의 입이 끝없이 제 어미를 부르짖는다.

“너는 꼭 살아남아 너의 자릴 지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위한 길이다.”

점점 멀어지는 어미의 모습에 작고 여린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수현아, 반드시 살아남아라.”

그렇게 아이는 가슴속에 어미의 마지막 정을 품은 채 멀어져만 갔다.

* * *

“왕자님.”

아침 햇살은 무척 눈부셨지만, 수현의 마음은 눈가에 맺힌 이슬만큼이나 씁쓸했다.

“왕자님. 무슨 꿈이라도 꾸시었습니까. 안색이 좋질 않습니다.”

그리 구슬펐던 꿈에서 깨어나 아침을 맞이했건만, 무심하게도 방 안을 밝힌 볕은 따스하기만 하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수현이 몸을 추스르며 일으켰다. 침상에 앉은 채로 잠시 숨을 돌리려니, 장 상궁이 그새 말을 붙여 온다.

“왕자님. 혹여나 편찮은 곳이 있으면 태의를 들라 이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사옵니까?”

“네. 정말 괜찮습니다.”

그의 눈치를 살피다 장 상궁이 조심스럽게 다음 말을 내뱉는다.

“왕자님. 오늘은 태화의 경사가 있는 날이 아니옵니까. 이제 귀비의 자리에 오르실 텐데, 화사한 얼굴로 하루를 맞이하셔야지요.”

그녀의 말에 으득, 수현은 이가 갈린다.

‘태화의 경사스러운 날이라고? 그럼 나에게는? 나와 잃어버린 내 나라에는 어떤 날이란 말인가. 이보다 더 수치스럽고 괴로운 날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수현을 표정을 읽은 장 상궁의 알량한 입이 한일자도 굳게 닫혔다. 그녀는 수현의 처지가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참 미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 한마디로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태화의 황제였다. 어찌 버틴다 하더라도 절대 거스를 수 없는 게 황제의 명이거늘, 왜 이다지도 대나무처럼 뻗댄단 말인가.

“왕자님. 건청궁에서 환관이 도착하였나이다.”

어색한 분위기를 비집고 창호문 밖에서 궁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현이 대답하지 않는 탓에, 그를 대신해 장 상궁이 입을 열었다.

“들라 이르거라.”

이윽고 문이 열리며 몇 명의 환관이 들어섰다. 그들은 몸을 온통 조아린 채로 두 손에 커다란 나무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으로 곱게 포장이 되어 금박의 무늬를 박아 넣은 고급스러운 상자였다.

“왕자님을 뵈옵니다.”

환관들이 예를 갖추니, 그를 보고 있던 장 상궁이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더냐.”

“지엄하신 황제 폐하께서 친히 혼례 선물을 하사하셨나이다.”

수현의 미간이 좁혀 들었다. 차마 무어라 말조차 하지 못하고 손끝만 부들부들 떨어 대는데, 옆에서 장 상궁이 환관들에게 눈짓을 해 보였다. 어서 풀어 보라는 것이었다.

상자가 바닥에 놓이고, 그 커다란 뚜껑이 열리었다.

“어머나 세상에.”

번쩍번쩍 빛이 나는 상자 안의 물건들을 보며 방 안의 궁인들은 물론이고, 장 상궁조차 입이 떡 벌어졌다. 그들은 소란을 피우며 서로 다투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야말로 살아생전 구경하기조차 어려운 귀한 것들이었다.

“왕자님! 경하드리옵니다!”

장 상궁이 외치자 경하드리옵니다, 나머지 궁인들이 함께 고창하였다.

“왕자님. 이것 좀 보십시오. 촉금(蜀錦)으로 만든 하피(霞帔)와 신이옵니다.”

금으로 자수를 놓은 비단인 촉금은 귀하디귀한 것이라 황제와 황후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후궁에 앉힐 사람에게 촉금으로 지어진 신과 하피를 선물한 것이었다. 의례적인 일이었다.

“이보십시오. 무려 촉금 비단신에는 원앙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부부의 연을 상징하는 동물이 수놓아 있으니, 혼롓날 이보다 더한 선물이 어디이겠습니까.”

장 상궁이 들뜬 소리로 떠드는 동안 궁인들은 수군거리며 상자 속 물건을 쳐다보기 여념이 없었다. 그곳에는 하피와 신 말고도 다양한 물건들이 더 들어 있었다. 예복은 물론이고 커다란 봉황을 매단 비녀, 옥으로 만든 커다란 반지, 검은 여우를 잡아 만든 모피가 그것들이었다.

“왕자님. 이토록 진귀한 것들을 폐하께서 하사하셨으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사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왕자님.”

눈앞에 번쩍이는 것들을 두고 있지만 수현의 속은 전혀 즐거울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은 어여쁜 것들이 무색하리만큼 침울하고 어두웠다. 애써 그친 눈물이 다시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왕자님. 그만 기분 푸시옵소서. 폐하께서 이리 선물까지 친히 하사하시며 달래 주시니 왕자님께서도 그만 노여움을 풀고 받아들이시는 게 좋지 않겠나이까.”

개소리! 수현이 입술을 세게 말아 물었다.

이런 호사스러운 선물, 바란 적도 없었다. 이런 혼례 따위 기쁠 리가 없었다. 그저 원수를 죽이지 못하고 이리 살아 있는 게 한스러울 뿐인데, 어찌 이따위 요물을 보고 기뻐해야 한단 말인가!

“폐하께는 왕자님이 크게 기뻐하며, 폐하의 은혜에 깊이 감복하였다 전하시게.”

결국,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수현의 기분에 장 상궁이 환관을 대신 물렸다.

“그리 전하겠나이다.”

바닥에 상자를 열어 둔 채로 환관의 무리가 몸을 물리었다. 문밖으로 사라져 가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장 상궁은 남몰래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왕자님. 그만 욕탕으로 드시지요. 이제부터 혼례를 준비할 것입니다.”

그리 여쭈었건만, 미동조차 하지 않는 수현을 보며 장 상궁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그녀는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머지 궁인들에게 말했다.

“무엇 하느냐. 왕자님을 모셔라.”

이윽고 죄 없는 궁인들이 수현에게 달라붙었다. 팔뚝을 잡아 이끌며 침상에서 끌어내는 그녀들의 손길에 수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나인들의 팔을 물렸다.

“내가…… 직접 가겠습니다.”

수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얀색 침의 위로 나인들이 달라붙어 겉옷을 입히고 소매를 여며 주었다. 허리로 자색의 끈을 둘러 묶은 그들이 수현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외출 준비를 끝낸 수현을 보며 장 상궁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럼, 욕탕으로 모시겠나이다.”

목욕을 끝낸 수현은 곧장 침전으로 돌아왔다. 혼례를 위한 단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커다란 경대 앞으로 죽을상을 한 수현이 앉았다. 이윽고 화려한 물건들을 들고 나인들이 경대 앞에 줄지어 섰다. 그들은 저마다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수현을 향해 고갤 조아리고 있었다.

“무릇 혼롓날 신부는 단정하고 아름다워야 하는 법. 소인들이 왕자님의 단장을 시중들겠나이다.”

이윽고 열의 첫 번째에 자리한 나인이 분통을 들고 앞으로 섰다.

“이는 연백분(煉白粉)으로 왕자님의 피부를 하얗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쌀가루와 납을 섞어 만든 고운 분이 수현이 얼굴 위로 발리었다. 핏기를 잃어버린, 새하얗게 질려 가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수현은 여전히 아픈 기억 속을 걷고 있었다.

“이는 홍분(紅粉)으로 왕자님의 두 볼을 홍옥처럼 붉게 물들여 줄 것입니다.”

새하얀 뺨이 분홍빛을 머금고 수줍은 빛을 띤다.

꽃잎 흐드러진 봄날. 그의 어미는 그에게 살아남으라 일렀다. 지옥의 불구덩이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며, 제 자식에게는 살아남으라 말하였다.

“이는 미묵(眉墨)으로 왕자님의 수려한 눈썹을 돋보이게 해 줄 것입니다.”

숯을 갈아 만든 먹이 눈썹 위에 발린다. 여리고 여린 얼굴이 요염한 기색이 어린다.

살아남아야 한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남아야 하는가. 이미 어미는 백골이 되어 뭍에 묻히셨거늘. 대체 무엇을 위해 이리 모진 삶을 이어 나가야 한단 말인가.

“이제 구지(口脂)를 입술 위에 바르겠습니다.”

분홍색 입술이 붉은빛으로 탈바꿈한다. 입술 위로 붉은 꽃이 피어난다.

어미는 왜 어린 자식에게 살아남으라 했는가. 당신께서 아들에게 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복수? 성해의 재건? 그것도 아니면…… 단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마지막 바람이었을까.

“마지막으로 화전(花鈿)을 붙이겠나이다.”

붉은색 꽃무늬가 미간 위로 수놓아진다. 음인의 얼굴이 화사하게 빛난다.

아아, 어머니. 도대체 소자는, 소자는…… 어찌해야 하는 겁니까.

어머니…….

“다 되었습니다.”

나인들이 봉황이 화려히 장식된 경대에서 물러선다. 경대 속에는 오로지 덩그러니 남은 수현의 모습만이 있었다.

“왕자님.”

떨리는 동공이 경대 속 제 모습과 마주한다.

새하얀 피부와 분홍빛 뺨. 붉은 입술과 미간에 피어난…… 붉은 꽃.

수현은 경대 속에서 제가 아는 또 다른 이를 발견하고야 만다.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단 한 사람. 따뜻한 품으로 저를 보듬어 주었던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 이제는 그리워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오직 한 사람.

‘어머니…….’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간다. 연지를 발라 붉은 입술이 새하얀 이에 짓이겨 뭉개진다. 잔뜩 구겨진 미간을 따라 꽃무늬가 일그러진다. 억지로 치장한 얼굴이 그대로 망가진다.

“그래. 그리 살아갈 것이다.”

주인의 뜻 모를 말에 주위를 지키던 나인들이 화들짝 놀란다. 그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채 가시기도 전, 비장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간담을 서늘케 한다.

“모진 삶이라도 반드시 살아남으리라.”

애써 칠해 놓은 홍분 위로 한 줄기 눈물이 떨구어진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그가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그리 살아남아. 반드시 되갚아 주리라.”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어머니가 죽어서도 지키고자 했던…… 성해를 위해서라도.

“와, 왕자님!”

수현이 자릴 박차고 일어섰다. 화장이 지워져 흉측한 얼굴을 하고도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당히 고갤 들어 올렸다.

“……왕자님.”

옆에서 넋을 보고 지켜보던 장 상궁은 뒤늦게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는 곧 엄한 목소리를 내며 나인들을 다그쳤다.

“무얼 하느냐. 어서 혼례복을 준비하지 않고.”

화들짝 놀란 나인들이 바쁘게 움직이었다. 그녀들은 수현의 속옷 위로 붉은색의 혼례복을 입히고 촉금으로 만들어진 하피를 어깨에 둘렀다. 윤기 나는 흑발이 깔끔히 묶이고 그 위로 봉관(鳳冠)이 쓰인다.

이로써 모든 혼례를 위한 단장이 끝났다. 억지로 눈물을 지운 신부가 경대를 노려보며 방 한가운데 서 있다.

“왕자님.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장 상궁의 말에 여러 나인이 앵무새처럼 지껄인다.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왕자님. 그들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진다.

“분명,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이리도 아름다운 음인을 후궁으로 들이셨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수현의 입술이 비틀어 올라간다. 비릿하지만, 지나치게 아름다운 웃음이다.

“개두(蓋頭)를 드리워라.”

공들여 곱게 치장한 얼굴 위로 붉은색 면사(面紗)가 드리워진다. 그대로 얼굴을 가린 신부가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오른 터라 날은 한없이 따스했다. 몇 해 전 자정향이 동산을 뒤덮었던 그날처럼. 한없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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