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8)

#2

서울 곳곳에서 식도락을 즐긴 뒤 한강둔치로 향해 농구를 한 판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순서가 데이트의 정석이 되어갔다. 마지막엔 묵야의 호텔에서 침대를 몇 센티씩 이동시키는 역사를 이룩했고. 또한 묵야가 리드하는 대로 축 늘어져있는 것보다 같이 허리를 흔드는 편이 내 몸에도 부담이 적다는 걸 슬슬 깨달아가는 요즘이었다.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묵야가 욕실을 나오며 놀라운 권유를 해왔다.

“여행 갈까?”

의외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욕실 내부에 배치된 스팀 샤워부스에서 나오는 묵야의 어깨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용이 사람의 얼굴을 문 채로 구름 속을 배회하는 것 같았다. 

“여행, 싫어?”

“그건 아니지만…….”

“다음 주 금토일 어때?”

허리에 수건을 감고 내게 다가오는 묵야의 다리를 봤다. 움직임에 따라 뱀이 여자의 몸을 옥죄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지기도 쾌감에 차있기도 한 복합적인 형태로 시시각각 변했다. 아직 내 목덜미에 물기가 묻어 있는지 묵야가 수건으로 툭툭 두드려주었다. 어쩐지 목 뒤가 서늘하다 했다. 

“여행은 어디로 가려구요?”

묵야는 천장위의 명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던한 거실 테이블로 걸어왔다. 위에서 아래로 깎아내린 계단 형태의 대리석 테이블 위를 유리가 ‘ㄱ’자로 덮고 있었다. 자칫 그 위에 앉으면 산산조각 날 듯 유리는 연약해보였다. 요새는 가구들에 쓰이는 유리도 전부 강화 재질이니 걱정할 만한 사태가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묵야가 유리 밑 대리석에 놓여있던 책자들을 꺼냈다. 얼마 전부터 있던 책들 같은데 신경 써서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서울시내 데이트 명소 100선, 연인과 함께하는 드라이브 코스, 여행가이드가 추천하는 한국의 여행 명소. 총 세권의 책제목이었다. 묵야는 그 중 여행가이드가 추천하는 한국의 여행 명소라고 적힌 제목의 책을 내게 내밀었다.

“원하는 데가 있으면 골라봐. 나는 봐도 도저히 모르겠더군.”

책을 팔락이며 여행지를 찾고 있는 묵야라……. 영, 매치가 안됐다. 저렇게 데이트 코스를 연구했으면서 실상 가는 곳은 똑같으니 말짱 도루묵 아닌가. 묵야가 내게 내민 책 말고 데이트 코스가 추천된 책을 펼쳐봤다. 접힌 부분도 있었고, 볼펜으로 밑줄과 함께 동그라미가 쳐진 곳도 있었다. 밑줄 그은 부분을 읽어보니, 주의: 경복궁 돌담길은 연인과 함께 걸어선 안 됨. 이라고 적혀있었다. 묵야가 머리를 털며 소파에 앉았다. 뱃살 하나 잡히지 않는 몸이 부러웠다. 몸매는 운동의 결과다. 게으른 사람은 절대 몸매를 가꾸지 못한다. 그러니 몸매가 좋은 사람 중 자신을 게을리 방치하는 사람은 없다는 소리다. 

“이건 왜 밑줄 그었어요?”

“연인과 걸어선 안 된다고 하니까.”

“이유가 뭔지는 알아요?”

“아니?”

이유도 모르면서 맹목적으로 이 책을 신봉했단 말이지.

“경복궁 돌담길을 걸은 연인은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대요.”

묵야가 그런 뜻이었냐며 머리를 털던 손을 멈췄다. 

“왜 그런 속설이 생겼지?”

“그건 저도 모르죠.”

“미신이네.”

“아마도요.”

묵야가 테이블에 놓인 모나미 볼펜을 들어 밑줄 친 부근에 x자를 그려 넣었다. 명품 만년필만 쓸 줄 알았는데 이것도 참 예외다.

“왜 엑스자를 그어요?”

“확실한 정보가 아니니까.”

맞다, 묵야는 미신을 믿지 않았지. 묵야가 볼펜을 책 사이에 껴놓고 덮었다. 모나미 볼펜의 상호명이 적힌 부분이 빠끔히 책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것을 보니 갑자기 고등학교 불어 선생님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나미 볼펜을 빼내서 묵야의 앞에 흔들었다.

“모나미가 왜 모나미인 줄 알아요?”

“모나미?”

모씨성을 가진 나미란 여자가 볼펜 회사의 회장일 거라는 싱거운 농담은 삼켰다. 

“여기 monami153 이라고 적혀있죠?”

묵야에게 상호명이 까맣게 적힌 펜의 중간부분을 보여줬다.

“원래는 몽아미라 읽는대요. mon은 불어로 나의라는 뜻이고 ami는 친구요. 그러니까 합해서 나의 친구라는 뜻이죠.”

“그럼 그 옆에 적힌 153은?”

의외로 묵야가 관심을 보였다. 

“음… 그건, 성경과도 관련이 있어요. 베드로는 세 번이나 자신이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부인했던 남자였죠, 예수가 죽은 뒤 원래 어부였던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로 돌아갔대요. 바다에서 그물을 밤새도록 던졌지만 물고기는 하나도 잡히지 않았죠. 그 때 부활한 예수가 베드로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말했더니 그물 가득 물고기를 건져 올릴 수 있었대요. 153은 그 때 베드로가 잡았던 물고기의 정확한 마릿수구요.”

“모나미 사장의 친구가 예수인가 보지?”

묵야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설마 예수와 베드로가 누군지 모르지는 않겠지?  

“아마도 독실한 기독교인이겠죠? 거기까진 저도 잘 몰라요.”

“재미있는 얘기군. 오늘은 자고 가는 게 어때?”

얘기가 재미있는데 왜 자고 가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혹시 자고가라는 말을 계속 꺼내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못 맞춘 것뿐일까? 

“네. 그러려고 했어요.”

묵야가 청하지 않았더라도 오늘은 자고 갈 심산이었다. 이주율은 카지노를 재개장한 이후론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드물었다. 특히 오전 10시쯤 들어와서 낮 시간 내내 숙면을 취하는 것이 녀석의 일과였다. 묵야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가면 외박한 일을 들켜 말다툼을 할 염려도 없었다. 

묵야의 침실은 올 때마다 매번 침대 시트가 바뀌어 있었는데, 오늘은 황실 침대를 연상케 하는 금색이었다. 몸 위로 이불을 덮고 묵야가 뒤에서부터 내 몸을 끌어안았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그의 가슴과 내 등이 달라붙는 느낌이 좋았다. 묵야는 성기를 세워 내 허리께에 닿은 채 잠이 들었다. 저런 상태도 잘 수 있는 게 신기했다. 

나는 늘 그렇듯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

일주일에 딱 한 번 있는 불어 수업은 점심시간 후인 5교시였다. 제일 졸리고 나른한 시간대에 제 2외국어를 무시하는 녀석들이 태반이라 불어 수업은 숙면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불어 선생은 조는 녀석들에게 수업의 재미를 붙여주기 위해 특이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곤 했는데 모나미153의 유래도 불어선생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이었다. 그 외에도 불어 선생은 미스터리한 신화나 민담에 대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려주곤 했었다. 듣고 있을 당시는 흥미로웠지만 다시 떠올리려면 세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더불어 불어 선생은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학교 교사 중 하나였다. 또한 그는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들 중 하나였다.

불어 선생은 서른이 초반쯤의 기가 약한 남자였다. 지나가다 마주쳐도 인상이 남을 리 없는 평범한 남자였지만, 특징 정도는 기억할 수 있었다. 두꺼운 까만 뿔테 안경에 늘 용서할 수 없는 유치한 체크무늬 남방을 입어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렸다. 그럼에도 나는 그 불어 선생을 좋아했던 것 같다. 조용조용한 그의 성격과 더불어 그가 만들어내는 문자들은 늘 유약하고 아름다운 것들뿐이었다. 그를 향한 호감은 물론 한 번도 비춘 적이 없었다. 

시비가 걸려와 어쩔 수 없이 휘말렸던 단 몇 번의 폭력사건을 제외하고는 불어 선생만큼 조용한 학창시절을 보냈었다. 불어 선생의 수업시간에 한 번도 졸지 않았던 학생은 반에서 나 하나뿐이었다. 그만큼 그와 눈도 많이 마주쳤고 그가 해주는 이야기들은 오래된 축음기에서 나오는 잔잔한 음악 같았다. 그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나는 고2에 이어 고3때도 그가 우리 반의 불어 선생으로 배정됐다는 사실에 밤잠을 설칠 정도로 기뻐했었다. 

슬쩍 열어놓은 창문에선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왔다. 남자 교실 특유의 홀아비냄새와 뒤섞인 땀 냄새가 불어 선생의 후각을 괴롭히고 있었다. 연신 작은 입을 오물거려 수업을 하는 불어 선생에게서 ‘냄새’ 라는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그 문자는 한없이 연약하기만 했다. 창문 근처에 앉아 있던 내가 교실의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뿔테 안으로 불어 선생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주인’ 불어 선생은 소리 내어 내 이름을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저렇듯 문자로 내 이름을 형상화 시킨 날은 많았다. 이제 갓 봄 햇살을 받고 피어나는 연한 벚꽃 색을 닮은 문자가 그 날 만큼은 불꽃과도 같은 일렁임으로 내게 다가왔다. 불어 선생에게서 그런 강렬한 색을 가진 문자는 처음이었다. 얌전해 보인다고 한들 마음속에 타오르는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불어 선생이 야간 자율 학습의 감독관으로 나오는 때는 그야말로 학년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그는 학생들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에게는 들리지도 않았다. 불어 선생이 복도를 걷고 있으면 그 작은 키와 왜소한 체구 때문에 아이들 틈 사이에서 보이지 않기 십상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의 쉬는 시간이 찾아오고 얼마나 지났을까, 자습실 입구를 나온 나는 바로 왼 측에 마련된 휴게실로 향했다. 커피 자판기에서 밀크 커피 한잔을 뽑아들었다. 커피의 맛을 느끼고자 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졸음을 물리치고 싶은 마음에서 마시는 이유가 전부였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채 절반도 먹지 못하고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버릴 곳도 마땅치 않아 자판기 옆 책상에 종이컵을 올려두었다. 커피를 뽑느라 화장실도 다녀오지 못한 터라 자습실이 아닌 밑의 교실로 이동했다. 

교실은 전부 어두웠고 복도의 불만 켜진 학교는 언제나 쓸쓸해보였다. 화장실을 들렸다 손을 닦고 자습실의 계단을 올랐다. 그 날의 자율학습 지도교사는 불어 선생과 무섭다고 소문난 수학 선생이었다. 그 덕에 자습실은 고요하기만 했다. 발걸음 소리를 줄여 계단을 올랐을 때…. 왜 그런 느낌이 있다. 봐서는 안 되는데 꼭 보게 되는 그런 우연. 텅 빈 휴게실 안에는 불어 선생이 홀로 자판기 앞에 서있었다. 불어 선생은 자판기가 놓인 책상 위의 종이컵을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두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이주인’ 그에게서 생겨난 문자가 내 이름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버려두고 간 종이컵이란 확신은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불어 선생이 덜덜 떨리는 얼굴을 내려 종이컵을 입에 댔다. 그 순간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나와 불어 선생의 눈이 마주쳤다. 불어 선생이 경기를 일으키며 종이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나는 선생에게 다가가 손이 데이진 않았나 확인을 했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였기에 그럴 일은 없었다. 

“자, 자습시간이야.”

“죄송합니다. 화장실을 미처 못 다녀와서요.”

떨어진 종이컵을 주웠다. 바닥에 흩어진 진갈색의 커피들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불어 선생의 마음처럼. 

“이건…….”

“괜찮습니다. 버리려고 했던 거니까요.”

불어 선생과 처음으로 나눈 대화였다. 그의 시선은 자습실로 돌아가는 내 등 뒤에 꽂혀있었을 것이다. 나는 애써 무시했다. 나 역시 불어 선생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이주율만으로도 머리가 터져버릴 지경에 이르렀던 때였고, 집에서는 아버지의 샌드백 신세였다. 

이주율이 정신병원에 갇히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졸업식 날, 후배들의 계란과 밀가루 투척에 엉망이 된 옷을 어쩌지도 못한 채 교실로 돌아왔다. 모든 졸업생들이 운동장에 몰려있었기에 교실을 혼자 독차지할 수 있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을 심산으로 주위를 둘렀다. 복도에서는 발소리도 나지 않았다. 교복 와이셔츠를 위에서부터 세 개만 푸른 뒤 머리 위로 뒤집어 벗었다. 동시에 드르륵- 조심스럽게 뒷문이 열렸다. 다급히 고개를 틀었다. 불어 선생이 나를 보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도 나지 않게 다가온 불어 선생이 내 등을 주시했다. 내 등짝은 울긋불긋 멍이 들어있을 터였다. 불어 선생이 내민 손은 어느새 내 등을 향해있었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두려움, 불확실.’ 그 문자를 생성해낸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내 등에 손을 올리지 못했다. 나는 체육복을 입어 그 상처들을 숨겼다. 불어 선생이 내게 물었다.

“나는… 영원히 이렇게 살겠지?”

“선생님.”

나는 불어 선생이 내 등을 만져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내 상처를 만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변화가 두려운 걸까? 자신의 성벽이 드러나는 게 두려운 걸까? 그는 겁쟁이였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제 전화번호에요.”

문제집과 교과서는 전부 수거차들이 실어갔지만 공책 한 권 정도는 남아있었다. 모나미 펜을 꺼내 내 휴대폰 번호를 적었다. 전화번호가 적힌 부분의 종이를 찢어 그의 손에 올려주었다. 불어 선생도 내게 전화번호를 적어주려 했다. 나는 펜과 함께 빈 공책을 폐휴지 함에 던져버렸다. 두꺼운 뿔테 안경 속에 가려진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졸업… 축하한다. 이주인. 훌륭한 어른이 되라.”

이주인. 그의 이름에서 처음으로 불린 내 이름이며, 그것은 그가 내게 고한 고백도 없던 이별이었다. 내 시선 아래에서 작게 떨리는 어깨를 무시하고 가방을 멨다. 앞으로 불어 선생과 볼 일은 없었다. 그의 전화번호를 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폐휴지 통에 버린 공책이 내 답이었다. 그가 내게 전화를 할 일 역시 없을 것이다. 우리는 둘 다 지독한 겁쟁이였으니까. 

나는 그의 예수가 되지 못했다. 예수는 세 번이나 자신을 거부한 베드로를 결국 구원했다. 내게는 자습실 휴게소의 일처럼 수십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불어 선생에게 내 진심을 말하지 않았다. 아니, 그 때는 내 진심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다. 나는 어렸고 내 속은 온통 악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그를 온전히 좋아하기엔 내 그릇이 너무 작았다. 

아련한 그의 모습은 졸업한 동시에 내게서 점점 잊혀져 갔다. 성인이 되자마자 부모가 죽었고, 이주율이 사라졌다. 2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내게 불어 선생을 떠올릴 수 있는 여유 따윈 없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내 과거를 구성하는 일부분도 되지 못했다. 

시골로 내려와 카페를 차린 지 한 달이 조금 안되었을 무렵이었다. 찾아오는 손님은 드물어도 가게에 손이 익지 않은 때라 일상은 여러모로 바쁘기만 했었다. 모르는 번호로 휴대폰이 울렸고, 곧 전화를 받은 것을 후회했다.  

“네, 여보세요.”

“…이주인씨 휴대폰 맞습니까?”

“네, 그런데요.”

나는 그 때까지 그 전화가 단순히 카드 회사의 상담직원이거나 유행하는 보이스 피싱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저는 진은성의 어머니 되는 사람입니다.”  

진은성?…. 내가 아는 사람 중 그런 이름을 가진 자는 없었다. 자신이 진은성의 어머니라 밝힌 여자의 목소리는 전화상으로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진은성씨요?”

되묻는 순간 그 코끝에 아릿함이 찾아들었다.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불어 선생의 이름이었다.

“모르시나요?”

여자의 목소리에 불안함이 실려 있었다.

“아뇨,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제 고등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렇군요…….”

여자는 한참이나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귀에 붙인 채로 손님을 위한 의자에 앉았다. 가게 내부에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은성이 발인이 이틀 뒵니다. 학교 동료들은 찾아갔는데, 친구들의 연락처는 전혀 없어서요…. 은성이 방 정리하다가 수첩에서 나오기에 연락드렸습니다.”

“…….”

말을 잇지 못했다. 불어 선생이 죽었다는 말은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그만큼 그는 내게서 도려내듯 떨어져나간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내 관심은 온통 불어 선생에게 쏠려있었었다. 그런데 왜 잊고 있었을까? 아니 왜 잊으려고 했을까? 

“장례식장은 어디입니까?”

“강남 성모 병원 영안실 3호입니다.”

병원 영안실이라면, 어딘가 아파서 죽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어머니는 은성이 마지막 가는 길에 아꼈던 제자가 찾아오면 기뻐할 거라는 말을 전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이나 정신이 멍했다. 그를 완벽하게 잊고 살았단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아니 슬펐다. 내 전화번호를 간직하고 있었음에도 불어 선생은 끝까지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결국엔 이런 식으로 고통스러운 내 과거를 더 채워주며 떠나는 사람이었다.      

그 날은 장사를 시작하지도 않고 가게 문을 닫았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고통스런 멀미에 신음했지만 먹은 것이 없었기에 토하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다. 병원의 위치는 서울에 살며 여러 번이나 지나쳐 간 곳이기에 찾는 데 어렵지는 않았다. 영안실 3호로 향하는 발걸음은 세찬 계곡물을 역류해가는 것만큼이나 힘겨웠다. 영안실 안에는 벽면을 따라 죽 세워진 화환과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눈에 익은 학교 선생들이 몇몇 보였다. 그들은 당연히 많은 학생들 중 눈에도 잘 띠지 않던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수수한 검은 정장을 입은 늙은 여자가 신발을 벗지도 못하고 서 있는 내게 다가왔다.

“은성이와 어떤 사이가 되는 분이신지…….”

“이…주인 입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영정사진에 있는 그는 뿔테 안경이 아닌 맨얼굴이었다. 핏기 없는 얼굴에 예쁘지만 우울한 인상. 국화꽃 한 송이를 올려두고 영정사진을 향해 두 번 절을 올렸다. 그러면서도 불어 선생이 죽은 것이 여전히 실감나지 않았다. 여자는 육개장과 봉긋이 솟아오른 밥을 쟁반에 담아 가져왔다.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많이 먹어요.”

“…네, 감사합니다.”

여자의 슬픔은 정제되어 있었다. 불어 선생의 죽음에 이미 준비가 되어있던 사람 같았다. 온갖 슬픔의 형상을 띤 문자들이 장례식 장의 바닥에 정체해있었다. 흰 쌀밥만을 입안에 우겨넣다 곧 숟가락을 내리고 말았다. 여자가 내 대신 육개장에 밥을 말아주었다. 

“은성이……녀석 수첩에 남아있는 전화가 이주인군 것뿐이었어요. 나는 부모인데도 은성이에게 친구 하나 없는 줄도 몰랐네요.”

여자의 웃음이 애달팠다. 

“좋은 분이셨습니다.”

“착했죠. 너무 착해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여쭈어도….”

여자는 숟가락을 내 쪽을 향하게 놓고 잘 비벼진 육개장을 다시 내밀었다. ‘자살.’ 여자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나는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자살 했어요. 그냥 놔둬도 떠날 아이였으니… 자살이라 말하기도 미안해지네요.”

“어디가 아프셨나요?”

유약한 모습이긴 했지만 불어 선생이 어디가 아프다거나 한 기억이 없었다. 

“골화석증이라고 아세요?”

“…….”

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내 침묵을 이해한 여자가 말을 이었다.

“뼈가 취약해지는 병이에요. 간단한 충격에도 부러지기 십상이구요. 은성이의 경우에는 중증이어서 사회생활 하기도 벅찼죠. 그런데도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특히 저번 몇 년간은 학교 가는 게 제일 즐거워 보였구요.”

그가 병을 앓고 있을 거란 사실은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몰랐을 것이다. 

“치열하게 살았어요. 은성이. 그래서 그렇게 떠나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눈에 눈물을 가득 고인채로 나를 봤다. 

“아침에 일어나니 깨어나질 않았어요. 늘 지각은 하지 않던 녀석인데……. 영원히 잘 거라는 걸 알았죠. 늘 고통스럽기 전에 먼저 가고 싶다고 했어요.”

여자는 그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자세히 이야기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 역시 듣고 보고 싶지 않았다. 

“이제 들어요. 내가 말이 너무 많았네요.”

“아닙니다.”

육개장 안에서 밥알이 부풀어 있었다. 입안에 넣었더니 알갱이가 녹듯이 사라졌다. 영안실의 시끄러운 사람소리, 늘 주변에 가득한 문자들. 어느 하나도 귀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육개장을 절반이나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나는 그제서야 후회했다. 애초에 겁쟁이는 나 혼자였다. 그는 강인했기에 단 한 번도 내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 이겨내다 아름답게 세상을 등졌다. 아니 죽는 것이 아름다울 리 없었다. 

졸업함과 동시에 나는 그를 잊고자 했었다. 그랬더니 그는 내게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무엇이 두려웠을까? 내가 그를 좋아했고, 그가 나를 좋아함을 알면서도 아직 오지도 않을 끝을 섣불리 단정했었다. 그의 마음이 언제 변할지, 그리고 언젠가 그것을 내가 읽어낼 날이 찾아올 때가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혼자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진실을 보고도 보지 못한 척 하는 성인군자는 되지 못했다. 

만일 내가 그에게 고백했다하더라도 그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실을 곧 알게 됐을 테고, 지금보다 더 큰 슬픔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 떠날 사람이었던 그에게 완전한 마음을 주지 않아서 이 정도만 아프다는 것이. 정작 나는 그것이 다행이라는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도 아픈데 만일 그와 함께 지냈다면 나는 다신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일어설 수 없도록 사랑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슬퍼도 이렇듯 내 자신이 허무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영정사진을 보고 왔음에도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카페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이주율도 없는 집에 혼자 있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외로웠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그 날은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와 남자가 만날 수 있는 가게를 찾았다. 생각은 전부 저 멀리로 가있기에 옆에서 떠드는 남자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그 중 가장 문자를 적게 생성하는 상대와 함께 가게를 나왔다. 돈이 없다는 말에 그를 집으로 데려왔다. 섹스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같이 자려면 섹스라는 행위가 필요했다. 불쾌하고도 난잡한 두 번의 행위가 끝나자마자 볼일을 끝낸 남자는 미련 없이 내 집을 나갔다. 나는 몸으로도 위로받지 못했다. 그저 허탈했다. 홀로 시린 등을 달래며 침대 위에서 잔뜩 몸을 웅크렸다. 내가 안아줬어야 했을 대상은 이제 세상에 없었다. 그제야 나는 인정했다. 

그는 나의 사랑이자 구원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