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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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야가 내린 곳은 에비스가 아닌 일식집에서 불과 십분도 떨어지지 않은 트러스티라는 호텔이었다. 불륜들이 많이 찾는 곳인지 겉의 건물은 음침했지만 내부는 주황빛으로 화려하게 빛났다. 물론 이 곳이 불륜 커플이 많이 찾는 명소란 건, 바닥에 굴러져 다니는 문자들만 읽어봐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데스크에 선 묵야가 손을 내밀자 직원은 잠시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카드키를 올려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묵야에게 물었다.

“자주 오시나 봐요.”

“그렇지.”

상처, 아주 약간의.

“알고 있는 호텔은 내가 운영하는 곳 밖에 없어서. 우리 집으로 갈까했는데 너무 멀어.”

문득 웃음이 새어나왔다. 멀미를 동반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그 층엔 단 하나밖에 없는 호텔방 문을 열었다. 고개를 한참 꺾어들어야 천정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높은 천정에는 천지창조를 본떠 만든 서양화들이 그려져 있었고, 유럽풍 샹들리에 밑의 벽면으로 눈에 익숙한 명화들이 걸려있었다. 불륜들이 찾는 호텔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고상했다. 블랙과 브라운톤으로 가득한 인테리어가 단연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흔치 않은 광경에 눈을 이리저리 돌리자 묵야가 내 팔목을 잡고 침실의 닫힌 문을 활짝 열었다. 침대는 기가 질릴 정도로 사이즈가 방대했다. 온갖 사람들이 지나갔을 호텔방은 눈뜨고 볼 수 없는 문자가 가득해야 정상인데 이 방은 무(無) 그 자체였다. 묵야가 내 허리를 감싸 안아서 침대 위에 눕혔다. 눈만 감으면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스프링이 깊게 가라앉았다. 축축한 묵야의 혀가 내 입술을 쓸고 슬쩍 벌려진 틈을 타서 치열을 훑었다.

“샤워는 하고 하죠.”

“절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어.”

간질거리는 숨결이 목덜미를 괴롭혔다. 달라붙은 바지를 밀어내듯 내 성기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묵야가 내 와이셔츠의 단추를 가슴위에서부터 순서대로 풀었다. 한쪽 유두가 드러난 순간 입을 벌려 그것을 품었다. 차가운 공기에 노출된 살에 뜨겁고 질척한 혀가 닿자 허리가 위로 들렸다. 그의 깔끌한 혀가 톡 튀어나온 유두를 마찰했다. 뜨거운 것을 못 먹는 것도 그렇고, 까끌한 혀의 느낌도 그렇고. 고양이는 나보다 묵야가 더 어울렸다. 바지와 속옷이 벗겨져 나갔다. 순식간에 남은 것은 와이셔츠 하나뿐이었다. 묵야도 정장을 하나둘씩 벗어젖히고 맨살을 맞대었다. 흥분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열이 높은 것인지 그와 엉켜있는 하복부가 녹아내리는 듯 했다. 묵야가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속옷 안으로 집어넣게 했다. 동그랗게 말아 쥐려했는데 손이 부족했다. 침대만으로도 기가 질렸는데, 그건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나를 질리게 만든 커다란 묵야의 성기가 화끈거리는 열을 내뿜었다. 아래위로 훑어주자 낮은 신음 소리가 뱉어졌다. 선액이 솟아나오는 귀두의 밑 부분을 만지는데 뜨거운 열과는 다른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느껴지는 듯 했다. 감았던 눈을 뜨고 묵야를 올려봤다.

“취미가 별나시네요.”

귀두의 밑 움푹 패인 홈과 힘줄이 선 기둥 곳곳에 구슬이 박혀있었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어서. 원치 않으면 빼지.”

가뜩이나 큰 성기에 징까지 박다니 완전히 벅찬 감이 들었다. 

“천천히 즐기는 건, 한 번 하고 나서도 괜찮을까?”

내 답을 듣기도 전에 묵야가 양 허벅지를 들어올렸다. 엉덩이를 벌려 숨겨져 있던 구멍을 내보이고 묵야는 손가락으로 그 연한 살을 매만졌다. 타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젖꼭지가 소름끼치도록 차갑게 얼어붙었다. 묵야는 침대 선반에 놓여있던 로션 통을 들어 내 하반신에 잔뜩 덜어냈다. 회음부를 마찰해가며 로션의 미끌거림을 이용해 손가락 하나를 구멍 안으로 푹 쑤셔 넣었다. 오랜만의 이물감에 허벅지 안쪽이 딱딱하게 굳었다. 묵야는 허벅지의 연한 살을 잘근잘근 씹으며 혀로 핥아 올렸다. 긴장감을 풀게 하려는 의도 같았지만, 타인의 손이 닿는 일이 드문 허벅지의 살은 파르르 떨렸다. 묵야는 꽉 다물린 구멍을 원그리듯 크게 돌린 다음 손가락을 쑥 빼냈다. 내벽의 살이 묵야의 손가락에 달라붙어 딸려나가는 것만 같았다.

“뜨겁다.”

만족감이 서려있는 목소리였다. 묵야는 로션병을 들어 완전히 아래로 가져다댔다. 물기가 흐르는 생딸기가 로고가 박힌 병은 로션보다는 러브젤에 가까웠다. 묵야는 병의 입구를 밑에 파묻어서 안으로 쭉 짜 넣었다. 꿀럭거리며 배안으로 젤이 가득 찼다.

“흐앗! 자, 잠시 만요!”

아래가 가득 차는 느낌을 참지 못하고 허리를 뒤로 뺐다. 로션의 입구가 퐁하고 떨어져나갔다.

“아파?”

“그건 아닌데 기분이.”

구멍 안에서부터 녹기 시작한 젤들이 질질 흘러내렸다. 딸기를 으깬 것 같은 상큼한 향이 침대를 감쌌다. 멍한 눈을 일깨우며 묵야의 어깨를 내려 봤다. 짙은 검은색을 띤 문신이 그의 쇄골에서부터 시작해 어깨 위까지 올라타 있었다. 입 안에 사람의 머리를 물어 으깨고 있는 용의 섬뜩한 얼굴이었다. 내 쪽에선 보이지 않는 묵야의 등 뒤로 용의 남은 몸체가 그려져 있을 것은 확실했다. 아주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남자는 결코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었다. 묵야가 잔뜩 부풀어 오른 기둥을 내 엉덩이에 가져댔다. 양 엉덩이를 한계까지 벌려도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기는 벅찬 큰 기둥에 숨을 삼켰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욕이 일긴 했었지만 그건 그의 성기를 보기 전이었다. 성기가 흉기가 되리라곤 그의 귀두가 빠듯하게 들어찼을 때 깨달았다. 안의 살을 여실하게 긁으며 들어가는 귀두와 울퉁불퉁한 기둥이 살을 가로지르는 느낌에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기둥이 안쪽의 메워진 살을 후벼 팠다.

“아아아아! 아아!!!”

남자와 관계를 한 것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경험없던 그 때도 이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래가 반으로 쪼개지고 있었다. 그의 팔뚝을 움켜쥐고 더는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묵야는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귓불을 깨물었다.

“미안.”

말의 저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순간 그의 기둥이 안으로 박혀들었다. 퍽하는 소리가 뇌리를 흔들었다. 한 번에 뿌리까지 들어찬 충격에 다물지 못한 입에서 침이 흘렀다. 전립선을 제대로 치고 들어왔는지 충격의 여파가 가시면서 내가 사정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묵야는 내가 사정이 끝날 때까지 내부의 조임을 밀어가며 기둥의 면적을 더 넓혀가고 있었다. 멈춰있던 묵야가 움직임을 재개하자 어깨에 용이 험악하고 기이한 형상으로 입에 물린 사람의 얼굴을 씹었다. 

“흐아앗! 아아!! 아!”

그가 탁탁 쳐 올릴 때마다 내벽의 살들이 뒤로 밀려나며 장기를 압박했다. 묵야가 허리를 굽혀 내 몸을 내리누른 채 입술을 가져왔다. 탁한 신음 소리가 서로의 입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거친 허리 짓과는 다르게 입 안을 탐하는 혀는 부드러웠다. 묵야는 멍하니 벌어진 내 입술을 혀로 쓱 쓸어 올렸다. 쾌감에 흐려진 시야 속에 희미하게 웃는 묵야의 얼굴이 보였다. 묵야는 허리를 일으키더니 허벅다리를 양쪽으로 잡아 그러쥐었다. 동시에 사정을 두지 않으며 안을 때려 박았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음탕하게만 들렸다. 신음 소리조차 내게서 나는 것인지 애매해졌다. 젤들이 전부 녹아 시트로 줄줄 흘렀다. 발끝이 저릿저릿 하는 감각을 선사하는 내부의 한 곳을 묵야의 것이 연신 스치며 지나갔다.

“아아! 아아아!...조, 조금만 천천히!”

그의 성기에 박힌 구슬까지 더해 내벽을 자극했다. 기둥이 뒤로 물러날 때마다 입구가 그의 것을 물며 따라붙었다. 살이 딸려나가는 참을 수 없는 감각에 괴로워하기도 전에 기둥은 다시 안을 파고들었다. 빳빳하게 선 내 성기를 붙잡은 묵야가 내 안을 헤집는 것처럼이나 빠르게 흔들었다. 

몸이 하나라도 되듯 안 깊숙이 묵야의 것이 들어오며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고개를 옆으로 틀고 이를 가는 모습에 나 역시 두 번째 사정을 시작했다. 투둑하고 튀어나간 내 정액이 묵야의 어깨위로 튀었다. 검은 용의 얼굴에서 흰 정액이 얼룩져 흘러내렸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직장내 사정의 묘한 기운에, 인중이 쫙 펴지도록 입술을 안으로 말았다. 묵야는 여섯 차례에 걸쳐 배 안쪽을 쏘아 올리는 사정을 끝냈다. 묵야가 조금 낭패스러운 표정으로 내 이마에 입술을 가져왔다. 

“미안, 안에다 해버렸다.”

미안하다는 남자가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 수그러든 것 같았지만 여전히 이물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미끄덩거리는 정액이 엉덩이 골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묵야가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나가지 못한 정액이 역류했다. 그가 성기를 쑥 빼자 와르르 하다시피 정액이 쏟아져 내렸다. 

“아…….”

이미 젖었지만 시트를 더 엉망으로 만들 수는 없어 두 손으로 정액이 흐르는 엉덩이를 막았다. 묵야가 내 겨드랑이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아직도 뒤가 벌어진 느낌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 제어를 벗어난 허벅지가 경련했다. 오늘에야 운동부족을 실감했다.

“씻자.... 안고가면 화낼 것 같아서 못 그러겠군.”

“화 안내요. 좀 업고 가주실래요?”

가뜩이나 커다란 호텔 방에 욕실도 저만치 멀리 있었다. 스스로 걸어갈까 하다 부어오른 뒤의 구멍이 걸을 때마다 비명을 지르기에 포기했다. 묵야의 뒤에 업히려고 하는데 다리를 벌리는 것조차 곤욕스러웠다. 어정쩡한 내 자세를 보던 묵야가 별 수 없다는 듯이 내 앞에서 허리를 굽혔다. 나를 번쩍 들어서 어깨 위에 짐짝처럼 맸다. 묵야의 어깨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몸을 축 늘어뜨리자 등에 새겨진 검은 용의 몸체가 코앞에서 꿈틀거렸다. 욕실까지 성큼성큼 걷던 묵야가 내 엉덩이 옆의 살을 슬쩍 깨물었다. 나도 그의 등살을 물어주려 했지만 이에 잡히는 군살이 없었다. 손을 뻗어 그의 엉덩이를 꽉 쥐었다. 묵야의 꼬리뼈쯤에 용의 꼬리도 끝나는 지점이 있었는데, 얼굴이 없는 사람의 몸이 용의 꼬리에 감겨있었다. 아마 용이 입에 문 얼굴의 주인인 듯하다. 소름이 돋았다. 묵야는 내가 추워서 그런다고 생각했는지 빈 욕조에 나를 앉힌 뒤 적당히 뜨거운 물을 틀었다. 나무 욕조는 대중목욕탕에 있는 탕처럼 앉을 수 있는 턱이 있었다. 4인 가족이 자쿠지를 즐겨도 충분할 듯 했다. 딱딱한 나무바닥에 앉아있기엔 엉덩이가 쓰라렸다.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다리를 벌려 엉덩이를 들곤 네모난 욕조를 빙 두른 턱에 상체를 기댔다. 묵야가 무방비한 내 엉덩이를 양쪽으로 확 벌렸다.

“악!”

화끈한 쓰라림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상처는 없어, 다행이다.”

부어올랐을 것이 분명한 입구로 손가락 두 개를 푹 쑤셔 넣었다. 

“으윽! 아파요.”

“지금 안 빼내면 고생해. 조금만 참아.”

묵야는 샤워기의 세기를 조절해서 약하게 흐르는 물을 엉덩이 위에 뿌렸다. 손가락으로 내부를 긁어 남아있는 정액들을 빼내주었다. 정액덩어리가 주륵주륵하며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뒤처리를 하고 싶었지만 아파죽겠는 그곳에 손가락을 직접 넣는 짓은 못하겠다. 안에 남은 정액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은데도 묵야의 손가락이 안을 쿡쿡 쑤셨다. 느낌이 싸해서 고개를 틀었는데 빳빳하게 머리를 쳐든 그의 성기가 바로 뒤에 맞닿아있었다. 경악하다시피 앞으로 기었다.

“또 할 생각이면 애국가나 불러요.”

“안될까?”

서버린 기둥을 내려 보며 묵야가 샤워기의 물을 식은 내 상체에 뿌렸다. 

“쾌감에 고통이 따라온다면 전 쾌감을 포기하는 타입이라서요.”

방금도 좋았긴 했지만 행위가 끝나고 나서 이렇게 힘들다면 두 번은 확실히 무리였다. 묵야가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나무 욕조 상단의 가장자리에 버튼 4개가 있었는데, 묵야가 그 중 빨간 버튼을 누르자 욕조 사면의 뚫린 구멍에서 뜨끈뜨끈한 물이 쏟아졌다. 콸콸 흐르는 물에 의해 욕조의 물은 금세 차올랐다. 묵야가 내 몸을 잡아서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렸다. 물속에 담긴 엉덩이는 부력에 의해 아래로 내리누르는 중력의 압박감이 덜했다. 엉덩이에 닿는 묵야의 기둥이 영 거슬렸다. 헤엄치다 시피 손을 버둥거려 묵야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욕조의 깊이는 평균적인 대중목욕탕 정도 되는지 출렁거리는 물이 앉아있는 가슴께까지 찼다. 물끄러미 묵야를 쳐다봤다. 저러고 있으니 대중 목욕탕을 찾은 야쿠자 같았다.

“문신은...”

묵야가 다시 빨간 버튼을 누르자 물의 흐름이 멈췄다. 

“문신?”

묵야가 자신의 어깨를 내려다보며 아아, 하는 반응을 취했다. 

“보통 오색찬란하던데. 묵야씨건 온통 검은색이라 특이하네요.”

“화려한 색은 좋아하지 않아서.”

“용이 왜 사람 머리를 으깨고 있어요?”

묵야가 엄지와 검지를 퉁 튀겨서 내게로 물이 달려들게 했다. 튄 물방울들이 또로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보통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왜 그렇게 생각해?”

“그게 여의주는 아니죠.”

아그작아그작 소리가 날 정도로 용의 입에서 사람의 얼굴이 으깨지고 있는 그림이 명확한데 여의주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다. 묵야가 물살을 헤치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내 허리를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묵야는 고개를 틀어 내 어깨에 입을 맞추더니 곧 귓가로 입술을 가져와 속삭였다.

“제대로 봤어. 이건 내 아버지야.”

목소리는 달콤했으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차가웠다. 용이 아버지 일리는 없고, 용의 입에 물린 얼굴이 바로 묵야의 아버지라는 소리인가? 

“나가자, 너 얼굴이 빨갛다.”

안 그래도 뜨거운 물에 몸을 달구니 정신이 멍해지고 있었다. 묵야의 나신을 타고 달라붙은 욕조의 물이 흘러내렸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일어섰다. 엉덩이의 붓기도, 삐걱거리는 몸도 나무욕탕 덕분에 좀 전보다 나아졌다. 묵야가 치약을 짠 칫솔을 내게 내밀었다. 이를 닦으며 대수롭지 않게 시선을 내렸는데 그의 발목부터 종아리 사이에서 눈길이 멈췄다. 괴기스럽게 입을 벌린 뱀이 나신의 여자를 물어 죽이는 생생한 장면의 문신이 새겨있었다.

“앞으로 또 문신 새길 생각 있어요?”

양치질을 끝낸 묵야가 입가에 남은 거품들을 쓸어내렸다. 

“전혀.”

“새겨도 괜찮은데, 이왕이면 발랄한 문신이면 어떨까 해서요. 용 좋아하면 드래곤 볼은 어때요? 마인부우도 꽤 멋진데.”

묵야가 가슴을 울렸다. 웃음을 참는 사람처럼 나를 내려 봤다.

“날 유혹하는 게 아니라면 서둘러 옷 입어. 이러다 고양이 울리겠다.”

“고양이는 그쪽이죠.”

“좋은 목소리로 울던 건 네 쪽이었는데?”

묵야가 욕실 행거에 걸려있던 목욕 가운을 내 몸에 둘러주었다. 남은 한 벌의 가운은 묵야가 입었다.

“다음번엔 묵야씨가 울어주실래요? 제 건 평균 사이즈라 별 부담이 없을 거예요.”

말을 끝낸 뒤 내 하반신을 가리켰다. 

“음…….”

묵야가 핑계거리를 찾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좋아.”

예상외의 발언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루씩 바꿔가면서 하는 게 어때? 하루는 내가 넣고, 하루는 네가 넣고.”

“나쁘진 않은데요.”

“대신, 내 차례가 되면 한 번에 끝내진 않을 거다. 오늘처럼 사정 봐주는 일없이, 다섯 번 이상 관계를 갖는 날도 있을 거고, 걷지도 못할 정도로 박을 때도 있을 거다. 그래도 좋다면 수락하지.”

수락했다간 내가 손해 볼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저만큼의 위험부담을 껴안고 묵야 엉덩이를 탐할 생각 또한 없었다. 

“없던 일로 하죠.”

“고양이 뜻대로.”

만족한 웃음을 입에 머금은 묵야가 내 머리카락에 입술을 내렸다. 숨결이 간질간질했다. 

잔뜩 선 하반신이 옆구리에 닿는 느낌이 생경했다. 저렇게까지 되면 얼마나 괴로울지는 익히 예상이 됐다. 눈 감고 한 번 더 뒹굴까하는 생각이 잠시 찾아왔지만 아직도 엉덩이 안쪽의 살이 열이 내뿜기에 참기로 했다. 순간의 욕정에 눈이 멀어 한참이나 뒤를 못 쓰게 되는 것은 사양이다.

“익숙해지는 게 좋겠다. 참는 게 쉬운 건 아니거든.”

목덜미에 이를 박은 묵야가 얇은 살을 잘근잘근 씹었다. 허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쭉 내 뺀 자세로 걷자 쿡하는 낮은 음성이 들렸다. 웃기겠지, 그렇지만 이렇게 안 걸으면 욱씬욱씬 거리는 통증을 줄일 수가 없다. 간신히 침대에 도착해 엎드렸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가운이 반쯤 풀어헤쳐져 내 옆에 앉은 묵야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물기를 머금고 있는 탄탄한 근육과 구부정한 자세에서 나오는 포즈가 가히 모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물끄러미 쳐다보자 불을 붙인 담배를 내 입에 물려줬다. 치릿거리며 담뱃대가 타들어갔다. 재떨이를 내 얼굴 옆에 놓아준 묵야는 새로운 담배를 꺼냈다.

“한숨 자겠어?”

“아뇨, 졸리진 않아요. 묵야씨 일 있는 거 아니었어요?”

“8시까진 한가해.”

묵야가 먼저 나간다고 해도 체크아웃까진 한참 남았을 테니 어차피 혼자라도 쉬고 갈 생각이었다. 

“침대가 좋네요.”

부드러운 감청색 시트에 얼굴을 비볐다. 땀이 묻은 시트의 색이 진하게 물들었다. 

“언제고와서 자도 돼. 나야 환영이지.”

묵야 역시 언제든지 이곳에 있겠다는 말 같았다. 

“여긴 손님 받는 방이 아닌가 보죠?”

“그렇지, 나만 이용할 수 있으니까.”

이 객실 어디에도 문자가 없다는 것이 이제야 이해됐다. 스위트 룸 뺨치는 고급 객실이 이 남자의 소유라니, 조금 부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경찰일 돕기보다 조폭일이나 도울 걸, 물론 내 성격에 퍽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묵야가 내 가운을 돌돌 말아 올렸다. 드러난 엉덩이를 주무르더니 손가락 하나를 아래 입구에 맞대었다. 

“아직 부어있군.”

“찌를 생각은 아니죠?”

꼼짝하기가 싫어서 가만히 누워있었더니 묵야가 제멋대로 엉덩이를 주물렀다. 보지 않아도 아래가 퉁퉁 부어있을 것만 같았다. 묵야가 담배를 문채로 번쩍 일어섰다. 순식간에 어딘가로 사라졌다. 엎드려서 숨을 내뱉는 것도 고역이기에 반도 펴지 않은 담배를 껐다. 다시 돌아온 묵야의 손이 재떨이에 재를 털었다. 엉덩이의 양쪽을 벌려 무언가 차갑고 질척한 것을 짜 넣었다. 설마. 고개만 뒤로 해서 쳐다보자 묵야가 빤히 구멍을 구경 중이었다. 침대에 굴러져 다니는 것은 연고였다. 묵야는 손가락을 안으로 쑤셔 넣고 약을 펴 바르듯 내부를 휘저었다. 동그란 구멍의 입구도 뱅글뱅글 돌려 연고가 골고루 스며들도록 도왔다.

“다정하시네요.”

“고맙군.”

약효가 좋은지 구멍이 간질간질 거렸다. 다친 상처가 거의 아물 때쯤에 몸을 비틀게 만드는 간지러움과 닮아있었다. 

“구슬은 왜 박았어요?”

남중, 남고를 나온 덕분인지 구슬에 대한 남학생들의 로망은 익히 겪어봐왔다. 그래도 실제로 박은 사람은 묵야가 처음이었다. 

“그 땐 해보고 싶은 게 많았거든.”

문신을 새길 당시를 말하는 건가? 어쨌든 상관없었다. 

“경찰 일은 왜 돕는 거지?”

“재주가 그런 것 밖에는 없어서요.”

“그렇군.”

자세한 내막을 묻지 않는 묵야는 내가 그 이유에 대해 말하기 싫어함을 깨달은 것 같았다. 굼벵이처럼 기어서 침대 위로 올라가자 엉덩이를 까보였던 가운도 밑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묵야씨, 곧 경찰에 소환될 거 같던데요.”

묵야가 재떨이를 침대에서 치웠다.

“상관없어.”

묵야가 내 얼굴을 들어 일으켜 팔베개를 해주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남자의 문신에 눈을 감았다. 묵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지만, 또 그렇지 않기도 했다. 앞으로 천천히 알아가도 나쁠 건 없을 것이다. 문득 어린 이주율이 아버지에게 맞아 부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울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따뜻한 묵야의 품에서 왜 그 생각이 났는지는 모를 일이다.

“졸리지 않다며.”

포만감과 따뜻함이 한꺼번에 찾아들었다. 속삭이는 묵야의 웃음소리가 수마처럼 내 몸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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