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그게 되겠—!”
[어이! 도화! 동정귀다!!]
도화의 외침이 끝나기 전에 현천의 외침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동정귀?”
동정귀의 출현 알림에 도화를 놀리던 묵범이 먼저 현천을 향해 달려갔다.
“뭐야, 저 자식.”
방금까지 자신의 허리를 한 팔로 꽈악 조이던 놈이 저를 내버려 두고 어린이집 교사가 있는 곳으로 가 버렸다.
도화는 순식간에 멀어진 묵범의 등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나더러 여자 쫓아간다고 뭐라 하더니…….”
부리나케 여자를 향해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배알이 뒤틀린다.
하지만, 도화는 어째서 자신의 기분이 급격히 더러워졌는지 파악할 틈도 없이 갑자기 다가온 사기에 경계했다.
‘잠깐. 흑립을 쓰고 있는 날 보고 온 건 아닐 텐데?’
뒤늦게 머리 위의 흑립을 인지한 도화는 제게 다가오는 귀가 무엇인지 확인했다.
[히히히. 여자다. 여자!]
‘동정귀?’
비쩍 마른 시커먼 남자 귀신이 현천과 묵범이 있는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묘하게 비정상적인 움직임과 속도에 이상함을 느낀 도화는 동정귀가 자신이 아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리가 세 개?”
보통 원귀는 죽던 순간의 모습으로 돌아다닌다. 동정귀는 동정인 상태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죽어 된 원귀이니 다리 하나, 팔 하나쯤은 없어도 평범한 모습의 동정귀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지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은 처음 본다.
“새벽이 되니 나타나는군요.”
묵범이 여자를 보내고 도화에게 돌아왔다. 저쪽에서 나온 동정귀는 이미 처리했는지 묵범의 손목에 걸린 경면주사 구슬이 하나 빠진 게 보였다.
“여자는?”
“이 상황에서도 그 인간 여자 생각부터 합니까?”
“잘 보냈냐고.”
“하아…. 귀신이 얼씬도 못 하게 보호술도 걸어서 택시에 태웠습니다.”
도화는 이렇다 할 감사 인사는 하지 않고 몸을 휙 돌렸다. 사실, 묵범이 여자를 택시에 태워 보내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도화였다.
단지, 아까는 저 여자가 마음에 드냐고 캐물었으면서 본인은 동정귀가 나타났단 말에 말도 없이 여자를 쫓아간 게 괘씸해서 일부러 여자를 걱정하는 척 물은 것이었다.
“그쪽 동정귀는 잡았고?”
“네. 이제 이쪽 동정귀를 잡아야겠네요.”
묵범이 경면주사 구슬을 꺼내자 도화는 부용삭을 꺼냈다. 현천은 여차하면 어디 한 군데를 잘라 움직임을 봉쇄하려고 날을 세웠다.
[그런데… 저건 뭐냐? 왜 다리가 세 개여?]
[그러니까. 돌연변이인가? 죽을 때 저 상태는 아니었을 텐데.]
도화와 현천의 대화를 들은 묵범이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못 알아봐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순수하다 못해 저 정도는 백지 수준인 건가.’
묵범은 도화가 과연 음담패설이라는 것에 대해 아는지 진지하게 궁금해졌다. 보통 남자의 다리 사이에 세 번째 다리가 있다는 말은 어느 정도 성에 관심이 생긴 남자라면 다들 아는 말이다.
그런데 600살이 넘는 도깨비가 저걸 몰라보니 기가 찼다.
“현천. 뭔진 모르지만, 가운데 다리가 불길해 보이니까 저것부터 잘라 버려.”
[알았어.]
도화의 명령에 묵범이 움찔했다. 저게 뭔지도 모르고 자르라는 것이겠지만, 같은 것을 달고 있는 이상 위축되는 것은 당연했다.
과연 홍도화도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나면 저리 쉽게 자르라고 외칠 수 있을까?
“저기, 홍도화 씨. 저게 뭔지는 알고…….”
“내가 모를 줄 아냐? 저거 그거잖아. 그러니까 잘라야지.”
“저게 뭔데요?”
“뭐겠어. 흉기겠지.”
“아…….”
“왜? 아니야?”
“흉기…이긴 하지요. 네. 맞습니다.”
도화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묵범을 이상한 놈 보듯 쳐다봤다. 딱 봐도 엄청나게 수상해 보이는데 그것부터 먼저 없애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히히.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어디지? 내, 내가 잘못 맡았나?]
택시를 탄 여자를 쫓으려던 동정귀는 다른 타겟을 찾으려는지 몸을 돌려 주택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쟤는 코도 없는 놈이 왜 저런다냐.]
현천이 안쓰럽다는 듯이 쯧쯧 혀를 찼다. 동정귀는 코만 없는 게 아니라 눈, 입, 귀도 없었다. 이런 동정귀의 얼굴은 몽달귀신과 매우 흡사했다.
하지만, 몽달귀신과 동정귀는 엄연히 다르다. 몽달귀신은 상사병에 걸려 죽은 남자 귀신이고 동정귀는 말 그대로 동정을 떼지 못하고 죽은 게 억울하여 원귀가 된 총각 귀신이다.
죄질을 따지자면 후자인 동정귀가 훨씬 나쁘다고 할 수 있었다.
[한 번만~ 한 번마안~! 응? 나랑 한 번만!]
“…저거 내가 해치울 거다.”
도화가 잔뜩 불쾌한 얼굴로 묵범에게 말했다. 건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사이 동정귀는 다리 기괴한 걸음으로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도화가 뒤따랐다.
“현천.”
[어엉?]
도화를 따라가려던 현천을 묵범이 불러 세웠다.
“그… 가운데 그거 처리할 때 말입니다.”
[가운데 그거? 아, 그거? 그게 왜?]
“접촉할 일이 생긴다면…….”
[생긴다면이라니. 처리하려면 당연히 접촉해야지. 딱 봐도 수상하게 생겼는데 거기서 뭐가 튀어나올 줄 알고.]
현천은 반드시 가운데 그것부터 처리할 생각이었다.
“반드시 현천 혼자서 처리하길 바랍니다.”
[에엥. 왜 그래야 하지? 물론 그럴 생각이지만… 꼭 내가 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게냐? 도화가 하면 안 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는 나중에 설명해 드릴 테니. 우선 제 부탁 좀 들어주시지요.”
[부탁? 흠. 대가가 있어야 들어주지.]
묵범은 현천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천계에서도 귀한 달제가주(怛提迦酒) 한 병 어떠십니까?”
[뭐, 뭐?! 달제가주를 준다고?]
묵범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천은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고 냅다 동정귀와 도화가 사라진 골목으로 날아갔다.
‘아깝지만 할 수 없지. 홍도화 씨가 그걸 자르게 내버려 둘 순 없으니까.’
그렇다면 묵범 본인이 하면 될 일이지만, 그 역시 그것을 직접 건들고 싶지 않았다. 만약 현천도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귀한 달제가주를 준다 해도 부탁을 거절했을 것이다.
“이래서 동정귀를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건데.”
기괴할 정도로 커다란 가운데 다리는 동정귀의 무기이자 급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검이나 채찍처럼 적에게 상처를 입히는 그런 무기가 아니었다.
동정귀가 왜 동정귀이겠는가.
저것은 오로지 동정을 탈출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그러나 저것의 정체를 아는 이들은 시각과 정신 공격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화가 관심을 갖기 전에 구슬에 봉인해 버릴 걸 그랬나.’
묵범도 둘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서 동정귀를 향해 부용삭을 날리고 있는 도화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도화의 부용삭은 너무 노골적으로 동정귀의 가운데 다리를 향하고 있었다.
묵범은 도화에게 달려가며 손에 쥐고 있는 경면주사 구슬을 손톱으로 꾹 눌렀다.
파삭-.
붉디붉은 구슬이 묵범의 손바닥 안에서 산산조각 났다. 키아악— 희미한 비명이 컴컴한 골목에 울렸다. 동정귀의 귀에는 안 들렸겠지만, 도화의 귀에는 그 희미한 비명이 또렷하게 들렸다.
“뭐야, 너. 네 멋대로 동정귀를 소멸시킨 거냐?”
도화가 눈살을 찌푸리고 묵범을 쳐다보며 물었다.
“사정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홍도화 씨. 그 자식, 상대하기 싫으면 저와 현천이 상대할 테니 뒤로 물러나시죠.”
“너. 아까부터 내가 동정귀를 잡지 못하게 방해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이유가 뭐지?”
“그야…….”
성큼성큼 도화에게 다가간 묵범이 도화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도화는 무슨 짓이냐고 묻거나 막을 새도 없었다.
‘이 자식, 머리를 끌어안으려고?’
도화의 머릿속은 묵범이 제게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야근을 도와준 대가와 연결 지었다. 그래서 지금도 머리를 끌어안으려는구나, 이 미친놈! 으로 결론이 났다.
그래서 묵범의 손보다는 느리지만, 그를 밀어내기 위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묵범은 도화를 끌어안는 게 아니라 흑립을 벗겨 버렸다.
“어……?”
[엥?]
전혀 예상치 못한 묵범의 행동에 현천까지 당황해서 이상한 소리를 냈다.
“동정귀를 잡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유를 말하랬더니… 이게 무슨 짓이지?”
“이게 답입니다.”
“……?”
도화의 살벌한 질문에 묵범은 눈알만 굴려 동정귀를 가리켰다.
[히야~ 죽여 주는 허리잖아?]
흑립을 빼앗겨 모습이 드러난 도화를 본 동정귀의 반응이었다.
‘뭐지? 여기에 여자는 없는데?’
동정귀는 도화를 향해 비쩍 말라붙은 손을 뻗었다.
“이 자식… 눈이 없어서 내가 여잔지 남잔지 구별을 못 하는 건가?”
다른 동정귀처럼 여자한테만 눈에 돌아가 달려들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동정귀는 도화를 발견하자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있지도 않은 코를 킁킁대고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손을 마구 비비면서 도화에게 이리 오라고 말했다.
[이목구비도 없는 놈이 도화, 네가 있는 곳은 귀신같이 찾아내네?]
[그야 저게 귀신이니까.]
당연한 것을 묻는다고 말하려던 도화는 생각보다 날쌘 움직임으로 제 허리를 잡으려는 동정귀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부용삭을 휘둘러 동정귀를 포박했다. 그러자.
[흐압…!]
“……?!”
[흐익! 이게 무슨 소리다냐?!]
괴상한 신음에 화들짝 놀란 도화가 묵범에게 물었다.
“이게 뭐가 답이라는 거야?!”
“동정귀가 여자만 노린다는 편견은 버리고 생각해 보시죠.”
“……뭐?”
묵범의 대답이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부용삭에 묶인 동정귀는 더욱 기고만장하여 날뛰었다.
[더어! 더어 세게! 묶어어어—!!]
[이게 진짜 돌았나?!]
현천도 크게 당황해서 가운데 다리를 자르려던 기세가 주춤했다.
‘아무래도 저 수상한 가운데 다리 때문에 저러는 것 같아.’
도화는 주춤한 현천을 낚아챘다. 그리고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은장도 크기의 현천을 장검으로 변환시켰다.
“엇! 자, 잠깐만요!”
“잠깐은 무슨! 이런 더러운 동정귀는 갱생의 여지가 없어. 너도 아까 봉인한 구슬을 파괴했잖아?”
도화는 현천의 날을 세워 동정귀의 세 번째 다리를 향해 휘둘렀다. 도화의 거침없는 공격에 당황한 것은 동정귀도 묵범도 아닌 현천이었다.
[으악! 내 달제가주가 날아간다!! 이건 절대 안 돼!!!]
“뭐, 뭐?”
도화는 알지 못할 비명을 지른 현천이 혼신의 힘을 다해 검신을 눕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천의 검날이 동정귀의 세 번째 다리에 닿기 전에 몸을 뒤틀어 검배로 튕겨 냈다.
[—————!!!!!!!!!!!!!!!!!!!!]
[—————!!!!!!!!!!!!!!!!!!!!]
“—————!!!!!!!!!!!!!!!!!!!!”
동정귀, 현천, 도화.
셋이 동시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