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모든 교실은 제가 이미 두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묵범은 본격적으로 탐색을 시작하는 도화 옆에 다가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슬쩍 말을 건넸다.
“이 건물이 평범한 건물이었으면 너 혼자 처리하라고 했겠지. 하지만, 여긴 아이들이 종일 머무는 곳이야. 그리고 넌 두 번이나 확인했어도 난 이번이 처음이다.”
“일주일 동안 지켜봤지만,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묵범의 말에 도화가 인상을 쓰며 그를 쳐다보았다. 경멸의 의미가 내포된 시선이었다.
“일주일 동안 아이들이 안전했다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 생각하냐? 진심으로?”
네가 그러고도 천계의 신선이냐? 진선씩이나 되어서 그딴 말을 해?
이렇게까지 비난하진 않았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도화의 눈빛에서 속뜻을 읽은 묵범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묵범은 도화와 함께 교실을 다시 탐색하기 시작했다. 장판도 들어 보고 가구도 모두 끌어내 가려진 벽면까지 확인했다.
‘대충 하고 철수하려고 했는데… 글러 먹은 것 같군.’
자신의 안일한 발언으로 도화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사실에 자책하며 교실을 살피다 보니 어느새 11시를 훌쩍 넘겨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두 군데만 남았군.”
화장실까지 모두 확인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야근하는 교사 때문에 아예 들어가지도 못했던 1층과 놀이터만 남은 상황.
[어디 보자. 아까 그 여자가.]
현천이 먼저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바로 올라왔다.
[저 여자 여기서 사나 봐.]
“……?”
현천의 알 수 없는 말에 도화도 1층으로 내려갔다. 뒤따라온 묵범이 교실 내부를 보고 현천과 똑같은 말을 했다.
“집이 없어서 여기서 자는 건가 봅니다.”
“그럴 리가 있겠냐…….”
1층 교실은 아까와 똑같이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가위질을 하던 여자는 아까 봤던 그 자리에서 그대로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에 입고 온 롱패딩을 덮고 베개 대신 본인의 팔을 베고 자는 모습은 어딜 봐도 야근을 하다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깐 눈을 붙이는 모습이었다.
“1층은 몇 번이나 탐색했어?”
“1층도 두 번 훑었습니다.”
“흠…….”
두 번이란 말에 도화는 교실을 훑어보며 고민했다. 묵범의 말대로 2층부터 5층까지의 교실과 화장실 모두 수상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1층도 그럴 확률이 높다는 건데.
“저 여자. 언제 일어날까요?”
[지금 확 깨워 버릴까?]
“아니야. 깨울 필요 없어.”
도화는 이름 모를 인간 여자에게서 야근에 찌들었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 곯아떨어진 여자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도 특별한 건 나오지 않겠지. 1층 교실은 빼고 나머지나 둘러보자.”
[나는 밖에서 동정귀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겠다.]
현천이 건물 밖으로 나가자 도화와 묵범은 교실과 이어진 원장실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동정귀를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분명 건물 어딘가에 있을 텐데. 부적이나 저주물은커녕 사기도 느껴지질 않으니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이 나오질 알았다.
‘이래서 묵범이 무작정 나타나는 동정귀만 때려잡고 있던 거였군.’
그냥 어쩌다 발생한 동정귀 처리라면 묵범도 일주일이나 한 가지 임무를 질질 끌고 있진 않았을 텐데.
‘하긴. 그런 임무라면 애초에 묵범이 맡지도 않았겠지.’
도화는 서류철을 뒤적이고 있는 묵범을 힐끔 쳐다보았다. 파일을 넘길 때마다 손등에 툭, 불거진 굵은 핏줄이 꿈틀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검은 도포에 가려져 있지만, 저 커다란 손과 손목, 그 위로 이어진 팔이 얼마나 두껍고 단단한지 안다.
한번 눈에 들어오자 자꾸만 시선이 끌렸다. 묵범의 팔이 얼마나 단단하고 든든한지 알아서 더욱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눈치 못 챌 묵범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그는 도화의 시선을 눈치챘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팔에 구멍 나겠네.’
묵범은 자연스럽게 도포 소매를 위로 걷어 올렸다. 손목에 셔츠 단추도 풀어 팔뚝까지 올리자 놀란 도화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을 뿐. 묵범이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서류철을 뒤적이는 것 같자 다시 훔쳐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것처럼 굴다가도 이럴 땐 둔하기 짝이 없다니까.’
묵범은 도화가 자신의 팔에 집중하는 이유를 대충 알 것 같아서 터지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서류철을 당장 집어 던지고 도화를 꽉 끌어안고 싶은 것도 참았다.
“홍도화 씨. 저기 있는 서류철 좀 주시겠습니까?”
“아… 어? 이거?”
묵범이 일부러 도화의 뒤에 있는 서류철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묵범의 팔뚝에 정신이 팔려 있던 도화는 굳이 자신의 뒤에 있는 서류철을 달라고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여기.”
“고맙습니다.”
묵범은 도화가 내민 서류철을 받으면서 슬쩍, 자연스럽게 도화의 손까지 붙잡았다.
“……!”
아주 잠깐 닿은 것뿐인데 화들짝 놀란 도화가 서류철을 냅다 묵범에게 던져 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윽…. 갑자기 왜 이러는 겁니까?”
그냥 좀 더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들고 싶었던 묵범은 난데없이 얼굴로 날아든 서류철을 맞고 당황했다.
“넌 여기서 찾아. 나는 교실이나 둘러볼게.”
“아니, 교실은 안 본다고 했으면서…….”
도화는 꿍얼대는 묵범을 무시하고 원장실에서 나왔다. 교실로 가 보니 여자는 여전히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미쳤지. 저 새끼 팔뚝이 뭐라고 그걸 정신 놓고 보고 있었냐.’
주먹으로 본인의 머리를 쿵! 소리 나게 쥐어박은 도화는 비정상적으로 뛰고 있던 심박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잠든 여자를 피해서 벽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1층 교실도 나머지 교실처럼 특별한 게 나올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꼼꼼하게 살폈다.
“으음.”
“……!”
벽에 걸린 아이들의 그림을 관찰하는데 뒤에서 여자가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흑립을 썼지만, 여전히 흑립의 효능에 익숙해지지 않은 도화는 놀라서 여자를 돌아보았다.
“아… 잠깐 잔다는 게… 헉!! 지금 시간이 몇 시야?”
반쯤 감긴 눈으로 몸을 일으킨 여자는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가 너무 캄캄한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1시?”
으아아! 망했다!
여자는 황급히 가방에 하던 것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커다란 쌀 포대 같은 가방 속으로 가위, 풀, 색종이 등등이 엉망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하지만, 급했던 손놀림은 점점 느려졌다.
“그런데 언제 집에 가서 씻고 자고 출근하지……?”
여자는 느려진 손 대신 머리를 빠르게 굴리고 있었다. 지하철 막차는 끝이 났으니 선택지는 택시인데, 여기서 집까지 택시를 타고 가느니 차라리.
“그냥 여기서 잘까?”
그녀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더라도 자신의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싶은 욕구가 훨씬 컸다.
“한 시간만 자더라도 집에 가서 자자.”
도화는 결심에 찬 여자의 목소리가 어쩐지 슬프게 들렸다. 그는 깨끗하게 교실을 정리하고 어린이집을 나가는 여자의 뒤를 쫓았다. 혹시나 동정귀가 밤을 틈타 강해진 힘을 믿고 여자에게 접근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어라? 어디 가냐?]
[저 여자 택시 타는 것까지만 보게.]
[아, 동정귀가 나타날까 봐?]
[응.]
도화의 대답에 현천은 그를 따라가며 물었다.
[웬일이냐? 네가 다 큰 인간을 걱정하고?]
[그냥.]
야근에 찌든 모습이 얼마 전의 자신을 떠올리게 해서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런 오지랖도 이번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니까.
“뭐야. 저 여자가 마음에 들어서 따라가는 건 아니죠?”
“!!!”
분명 원장실에서 서류철을 보고 있는 걸 확인하고 나왔는데?
묵범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도화가 반사적으로 몸으로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묵범의 팔이 더 빨랐다.
묵범은 도화가 제게서 멀어지기 전에 재빨리 어깨에 팔을 둘러 끌어당겼다.
“풀어.”
“왜요? 풀어 주면 저 여자 쫓아가게?”
묵범이 턱짓으로 앞서 걷고 있는 어린이집 교사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째 말이 짧은 게 도화가 여자의 뒤를 쫓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도화는 어깨에 둘린 묵범의 팔에서 빠져나오려고 비틀었다. 하지만, 아까 곁눈질로 본 대로 묵범의 팔은 두껍고 단단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후우…….
짜증 섞인 한숨을 쉰 도화가 묵범을 노려보며 물었다.
“왜? 나는 여자 쫓아가면 안 되냐?”
“허어?”
사실대로 ‘동정귀가 여자 앞에 나타날지 모르니 따라온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순순히 팔을 풀어 주었을 텐데.
괜한 오기에 도화는 묵범이 오해할 만한 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저 여자가 마음에 들어요?”
“들고 말고 네가 무슨 상관인데?”
“방금까지는 내 팔뚝을 뚫어 버릴 것처럼 봤으면서?”
“…뭐? 내, 내가 언제?”
둘은 지금 자신들의 대화가 모조리 질문형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게 아닌 질문에 질문으로 받아쳤다.
“아, 밀린 대가를 받는 걸 까먹고 있었네요.”
“밀린 대가?”
순간, 도화는 야근을 도와준 대가를 받는다며 자신을 꼭 끌어안던 묵범을 떠올렸다.
‘설마. 여기서?’
도화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황급히 현천을 쳐다보았다.
[음? 왜 그러냐?]
현천은 묵범이 하는 ‘밀린 대가’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 현천 앞에서 묵범에게 찐하게 끌어안기는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었다.
[이 녀석이랑 급히 할 말이 있으니까 네가 저 여자 좀 따라가 줘.]
[에엥? 내가? 흐음. 너희끼리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빨리 좀 가라. 응? 벌써 저기까지 갔잖아.]
[쳇. 뭐 저리 발이 빨라?]
현천은 투덜대면서도 순순히 도화가 하라는 대로 여자를 향해 날아갔다.
“현천은 왜 보냅니까?”
“……?”
도화는 현천이 자리를 뜨자마자 묵범에게 끌어안길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어깨에 올린 팔까지 풀어 버리자 당황했다.
“아~ 제가 지금 당장 대가를 받으려고 할 줄 알았어요? 현천 앞에서 안기기는 싫으니까 대신 여자를 쫓아가라고 보낸 거구나. 그렇죠?”
“내가 미쳤다고 그랬겠냐?”
“에이. 맞는 것 같은데? 흠. 홍도화 씨가 이렇게까지 제게 안기고 싶어 하니 어쩔 수 없군요.”
“……뭐?”
묵범이 실실 웃으며 도화의 손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버티려고 했지만, 꽤 강한 손힘에 도화의 몸이 휘청거리며 묵범에게 기울어졌다.
묵범은 도화의 허리에 제 팔을 두르고 힘을 주었다. 그는 제 팔에 들어온 도화의 허리에 감탄했다.
“이렇게 허리가 가늘어서야, 원.”
역시. 눈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만지는 게 좋다고 속으로 기뻐했다.
“젠장. 꼭 여기서 이래야겠어?”
도화가 묵범의 팔에서 빠져나오려고 몸을 뒤틀며 따졌다. 그러자 묵범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여기가 아니면 된다는 말입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