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강민진의 본가는 전원주택이 아닌 호화로운 별장 쪽에 더 가까웠다. 물론 외관만 그럴 뿐, 실제 그녀의 부모와 오빠 부부가 거주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저 집은 온전히 강민진의 돈으로 지어진 집이다.
“들어가 봅시다.”
묵범은 고상하게 세워진 철제 펜스를 훌쩍 뛰어넘어 마당을 가로질렀다. 근처를 지나가는 마을 주민이 떡하니 있는데도 흑립을 쓴 그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도화 역시 사람의 시선은 개의치 않고 묵범을 다라 펜스를 넘었다.
“계십니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묵범은 흑립을 써서 모습과 소리를 완벽하게 감춰 놓고 예의 바른 손님인 척 노크까지 했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아 비틀었다. 잠겨있으면 창문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다행히 부드럽게 열렸다.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하는 짓은 도둑 그 자체면서 도둑 걱정을 하는 묵범을 도화는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래. 원래 이런 녀석이었지. 피식, 소리 없는 웃음이 터졌다. 묵범 덕분에 아까까지만 해도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게 먼일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실례하겠다면서 묵범은 남의 집 거실을 구둣발로 들어갔다. 도화는 현관에 서서 신발을 벗을지 말지 잠시 고민했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그냥 신고 들어갔다.
흙 묻은 운동화였지만, 흑립의 효과로 바닥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아 불편했던 마음이 그나마 가셨다.
넓은 거실엔 커다란 TV 홀로 요란스러운 효과음을 내고 있엇다. TV가 켜져 있다는 건 누군가 보고 있었다는 의미인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저쪽에서 기척이 느껴집니다.”
묵범이 손가락으로 안쪽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 뼘 정도 열린 문틈으로 탁, 탁- 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탁, 탁 소리 말고 무언가 긁는 소리도 났다.
끅. 끄으…. 켁.
‘이 소리는?’
사람 소리다. 그것도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서 나는 소리. 목이 졸려 나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묵범과 도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소리가 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사람은 묵범이었다. 문짝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거세게 열었지만, 흑립의 영향으로 소리는 나지 않았다. 덕분에 방 안에 있던 이는 둘의 등장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하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끅, 끄윽…….”
중년 남성이 몸 위에 올라탄 남자의 손에 목이 졸려 꽉 막힌 소리를 냈다. 살집 있는 손이 탁, 탁 바닥을 치다 손톱으로 긁었다. 그 모습을 본 도화가 방에 뛰어든 기세 그대로 몸을 날려 남자를 밀어냈다.
“컥! 커흑!!!”
숨이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중년 남성이 거친 기침을 토했다. 산소가 뇌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자신을 죽이려 한 범인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을 못 하는 듯했다.
“누, 누구냐!!”
도화에 의해 멀리 나가떨어진 남자가 깜짝 놀란 눈으로 방을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그의 외침을 들은 도화는 자신의 예상과 다른 상황에 묵범을 쳐다봤다.
“…오창석이 아닌데?”
“인간이군요.”
분명 오창석일 줄 알았는데 멀쩡히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범인의 얼굴이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그리고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기침을 쏟고 있는 중년 남자의 얼굴하고도 비슷했다.
‘설마.’
묵범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냈다. 경주에 오기 전 정보부한테 강민진의 가족에 대한 정보를 받았는데,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첨부된 사진에서 본 것 같았다.
“귀…신인가? 혹시 민진이냐? 아니면 엄마?”
남자는 벽에 등을 대고 붙어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무서워서 방을 뛰쳐나갈 텐데. 남자는 마치 귀신이 저를 찾아올 줄 알았다는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홍도화 씨. 저 남자. 강민진의 오빠 강혁진입니다.”
“오빠라고……?”
“네. 그리고 저 남자가 죽이려 하던 사람은 강민진의 부친이고요.”
“…….”
묵범의 설명을 들은 도화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덜덜 떨고 있는 강혁진을 쳐다봤다. 강혁진을 쳐다보는 도화의 시선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제 친부를 죽이고 있었다는 건가.”
“정보부가 보내온 자료를 보면 이미 며칠 전, 친모를 죽였다는군요.”
“세상 말세로군.”
“뉴스에 나오지 않은 걸 보면 친모의 사망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신을 어딘가 은폐하거나 유기한 것 같군요.”
살인 사건을 급을 나누는 건 맞지 않지만, 현재 큰 이슈가 배우 강민진의 사망과 살인이니 그녀의 어머니가 살해당한 게 알려지면 모든 미디어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떠들어 댈 게 분명했다.
“가, 갔나? 사라졌나?’
묵범과 도화가 이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강혁진은 손으로 허공을 휘두르며 귀신이 있나 없나 확인했다. 평범한 인간이 귀신을 건들 리 만무했지만, 그것조차 모를 정도로 강혁진은 귀신에 무지했다.
“혀, 혁진아. 이… 크흑, 무슨…….”
강민진의 아버지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서 아들을 불렀다. 자신을 죽이려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라는 건가? 그 모습을 본 도화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지켜봤다.
“아, 아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강혁진이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무릎으로 아버지에게 기어갔다.
“제가 귀, 귀신한테 홀렸었나 봐요. 내가 미쳤지. 미쳤어.”
“이눔…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 어서 그림을 팔고 여길 뜨자.”
강민진의 아버지는 터지는 기침을 최대한 억누르며 강혁진에게 말했다. 아버지의 말에 강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답했다.
“그런데 집은요?”
“집은… 도둑이 들어와서 불을 냈다고 할까?”
“요즘은 시체가 완전히 타도 사인을 알아낼 수 있다던데…….”
부자의 대화를 듣던 도화는 저도 모르게 묵범을 쳐다봤다. 묵범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부자를 구경하고 있었다.
[쯧쯧. 아들과 남편한테 살해당하다니.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군.]
현천은 혀를 차며 강민진의 친모를 안타까워했다.
“아무래도 시신을 집 어딘가에 은폐했나 보군요. 흠…. 거기까진 우리가 처리할 필요 없으니, 그림이나 찾읍시다.”
묵범은 다음 범행을 모의하고 있는 부자에게 다가가 손날로 가차 없이 목덜미를 내려쳤다. 둘은 갑작스러운 충격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기절해 바닥으로 쓰러졌다.
“뜨기 전에 경찰에 신고나 넣어.”
“물론이죠.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일거리 하나 더 늘어나게 했으니 죗값은 톡톡히 받게 할 겁니다.”
남편과 아들에게 살해당한 자의 영혼이라면 원귀가 될 확률이 높다. 아마 본능적으로 저승차사를 피해 근처 어딘가로 도망갔을 터. 눈에 보인다면 잡겠지만, 숨은 것을 굳이 찾아 나설 시간은 없다.
“난 2층부터 볼게.”
통보하듯 말한 도화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집에서 살고 싶었겠지만, 이미 이보다 훨씬 좋은 집에서 지내서 그런가 집이 좁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휴. 무슨 집에 부적이 이리도 많냐.]
목걸이에서 빠져나온 현천이 문마다 붙어 있는 부적을 보고 신기해했다. 문뿐 아니라 천장과 벽 모서리에도 붙어 있었다. 저만큼 붙인 걸 보면 아마 가구 서랍 내부나 뒷면에도 붙어 있을 것이다.
도화는 과할 정도로 많이 붙어 있는 부적을 단번에 훑어보고는 쯧, 혀를 찼다. 모두 악령과 재앙 퇴치 부적이었다.
[온통 악령 퇴치 부적으로 도배를 할 정도로 원한 살 일을 많이 한 가족인가?]
간간이 가택의 안녕을 비는 부적도 보였다. 색이 바래고 부적 모서리가 너덜너덜한 걸 보니 악령 퇴치부보다 한참 전에 붙인 부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가족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가택 보호부는 강민진이 오창석을 만나기 전에 붙였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서로의 무탈을 비는 평범한 가족이었겠지.
도화는 아까 1층에서 보았던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랬던 가족이 타락한 업신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니 입이 썼다.
어지러이 붙어 있는 부적을 무시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1층보다 더 많은 부적이 붙어 있었다. 아예 부적으로 온 벽을 도배해 버렸다고 하는 게 어울릴 정도다.
약간씩은 다르지만, 모두 악령 퇴치부였다. 도화는 이들이 이렇게까지 퇴치하고 싶어 하는 귀신이 누굴지 생각하며 2층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강민진은 오창석 때문에 자살한 거니 가족에게 원한을 품진 않았을 것 같은데. 아니면 아들과 남편에게 죽은 강민진의 친모?’
도화는 이내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벽에 도배된 악령 퇴치부는 최근 붙인 것도 있지만, 절반 이상이 붙인 지 꽤 된 부적들이었다. 그렇다면 죽은 지 며칠 안 된 강민진의 친모도 해당 사항이 없다.
‘그러면 뭘 막으려고 집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걸까.’
부적을 빼고 보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집이었다. 곳곳에 가족사진과 강민진의 프로필 사진이 걸린 게 눈에 들어왔다.
[가식인지 진짠진 모르지만,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면 이 집은 꽤나 화목했던 것 같군.]
현천도 도화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사진 주변을 돌아다니며 말했다.
[이거 부적들. 다 엉터리 같은데. 맞나?]
[어.]
현천의 질문에 도화는 작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쯧쯧. 허튼 곳에 돈을 썼구먼. 너한테 샀으면 아주 끝내 주는 부적을 줬을 텐데. 저게 다 얼마냐.]
도화는 현천의 탄식을 한 귀로 흘리며 2층 방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계단에서 제일 가까운 방문을 여니 그 방 역시 부적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귀신을 쫓는 데 좋다는 것은 죄다 긁어모았는지 가정집이 아니라 무속인의 집이라 해도 과할 정도였다.
‘여기도 없고. 저기도 없고. 대체 어디 있는 거지?’
그림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작은 서랍장까지 뒤져야 했다. 하지만, 세 군데의 방을 탐색해도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2층에서 남은 곳은 복도 끝, 꺾여서 보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저기서도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질 않아. 정말 이 집에 있는 게 맞을까?]
현천은 혹시 강민진이 우릴 속인 게 아니냐고 슬쩍 운을 뗐다. 사실 도화도 세 번째 방에서 나올 때 즈음엔 그 생각이 들긴 했었다.
[분명 있어.]
어제 폐가에서 보았던 강민진과 묵범이 그녀를 보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그 그림이 사라지면 제 가족에게 피해가 가진 않겠지요?]
[저처럼 금전 문제가 생긴다거나.]
처음, 강민진의 저 말을 들었을 때는 순수하게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질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를 경면사주 구슬에 봉인하고 난 뒤, 했던 묵범의 말이 걸렸다.
[박태선보다 더 영악한 것이 강민진입니다.]
[강민진을 자살로 몰고 간 가장 큰 이유는 금섬과 오창석이지만, 그녀의 가족들 역시 만만치 않았던 것 같군요.]
[오창석이 강민진에게 준 두꺼비 그림이 왜 그녀의 부모 집에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집에 오자마자 본 아들이 아버지를 교살하려던 모습과 눈을 내리깔며 ‘가족의 피해’를 묻던 강민진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강민진은 가족이 피해 입는 것을 막기 위해 저 질문을 했던 걸까. 아니면.
‘가족이 저처럼 피해 입길 바라며 물은 걸까.’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