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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68화 (69/146)

68화

‘아직 낮부터 추워질 시기는 아닌데… 뭐지?’

갑자기 방 안이 묘하게 차가워진 것을 느낀 묵범은 혹시 비라도 오나 싶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밖은 구름 한 점 없는 상태였다.

뭐지? 밖은 멀쩡하다면 이유는 이 방 안에 있다는 건데. 그는 손목에 감긴 팔찌를 확인했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음기가 지독한 악귀를 경면주사 구슬에 봉인하면 음기가 새어 나와 손목이 시릴 때가 있긴 했다.

‘강민진의 음기가 그렇게 강했었나?’

연기는 꽤 하긴 했으나 그게 음기가 강한 것과는 연관 없다. 아니면 연기를 적당히 하는 것까지 연기였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으나, 묵범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강민진은 아무리 높이 올려 쳐도 악귀가 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면 뭐지?’

묵범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조금은 옅어진 악취, 뿌연 먼지, 폐자재와 생활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바닥에 누워 있는 강민진과 오창석의 시신. 그리고 오창석의 관상을 보는 홍도화.

‘음?’

묵범의 눈에 도화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게 포착되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어깨만 그런 게 아니라 도화의 몸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단순히 추워서 그런 것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어이. 도화. 괜찮냐?]

현천도 도화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인지 주변을 맴돌며 이름을 불렀다.

“홍도화 씨. 괜찮습니까?”

묵범도 도화를 부르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깜짝 놀라 손을 뗐다.

그는 자신의 손끝에 느껴졌던 한기가 믿기지 않아서 주먹을 세게 말아 쥐었다 폈다. 도화의 어깨에 손가락이 닿는 순간, 묵범은 자신이 사람의 몸이 아닌 얼음을 건드렸나 싶었다.

“홍도화 씨……?”

“…….”

묵범이 재차 불렀으나 도화는 반응이 없었다. 그는 도화가 입은 도포가 차사복이 아닌 일반 도포인가 싶어서 살폈으나 차사복이 맞았다.

‘차사복을 입었는데도 체온 조절이 안 된다고?’

산불의 열기도 막아 주었던 도포다. 그런데 사람의 체온 조절을 못 하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생겨도 크게 생긴 것 같은 예감에 그는 자신의 도포를 벗어 도화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홍도화 씨. 정신 차려요! 홍도화 씨!”

“으…….”

꽉 다물렸던 도화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혹시 속까지 꽁꽁 얼어 죽는 건 아닐지 걱정이었던 묵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도화를 품아 안아 들었다.

평소라면 이게 무슨 짓이냐고 불같이 화를 내며 밀어냈을 도화가 미약한 저항도 없이 순순히 품에 안겨 바르르 떨었다. 질끈 감은 눈과 잔뜩 일그러진 미간이 험상궂게 보일만도 하건만. 묵범의 눈에는 한없이 나약하게 보였다.

“어찌 된 겁니까?”

묵범의 질문에 현천이 혀를 차며 탄식하듯 말했다.

[아무래도 죽은 것의 운명을 읽어서 그런 것 같다.]

“죽은 것? 아… 오창석의 관상을 보다 이리된 겁니까?”

[원래도 관상을 보면 부작용이 추위로 오긴 했는데. 절대 이 정도까진 아니야. 젠장.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현천도 이 상황을 어찌 타개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오랜 기간 동안 도화와 함께 지낸 현천도 모르는데 묵범이 알 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도화의 몸을 품 안에 깊게 끌어안았다. 옷 속에 감춰진 도화의 피부에서 냉기가 스멀스멀 묵범의 몸으로 옮겨 붙는 게 느껴졌다.

묵범은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기운을 빠르게 몸 전체로 돌리기 시작했다. 묵범의 맥을 타고 뜨거운 기운이 거센 강물 흐르듯 흘렀다. 순식간에 혈관과 살갗이 달아올라 도화의 몸에서 나오는 냉기를 중화했다.

그는 도화를 안고 빠르게 폐가를 빠져나왔다. 안에 있는 두 구의 시신은 인간들이 발견하면 처리할 것이고, 오창석의 영혼은 원귀가 되지 않았다면 감직부로, 원귀가 되었다면 차사부로 명부가 올 것이다.

묵범은 도화의 커다란 몸을 솜인형 옮기듯 가볍게 조수석에 앉히고 안전벨트까지 매어 주었다. 그리고 차 안에 히터를 최대로 틀었다.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순식간에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차에 시동을 걸며 현천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우선 차사국으로 가겠습니다.”

[차사국?]

“네. 안 됩니까?”

[그런 건 아닌데…….]

“그런 게 아니라면 차사국으로 가겠습니다.”

그런 게 아니란 말은 차사국으로 가는 게 내키지 않다는 의미였으나 묵범은 현천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엑셀을 세게 밟아 폐가 골목을 빠져나왔다.

‘이것 참. 저 상태를 들켜도 되려나 모르겠네.’

도화는 자신의 약점을 남에게 보이길 극도로 꺼려 한다. 물론 다른 사람도 당연히 그러하지만, 도화는 특히 더욱 그러했다. 교맥국의 도깨비 전체를 적으로 상대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현천은 도화가 이 상태로 차사국에 가는 것은 막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차사국으로 가서 뭘 할 건데?]

현천의 질문에 핸들을 돌리던 묵범이 멈칫했다. 무작정 차사국으로 가려던 것은 아니다. 가서 정화부와 치유부에게 도화의 상태를 보여 주고 필요한 조치를 받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천의 질문을 받자 과연 나 혼자만의 결단으로 무방비한 사람을 생판 모르는 자들에게 내보여도 되는지 마음에 걸렸다.

[도화의 성격은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군.]

“…….”

묵범은 대답 없이 운전에 집중했다. 현천은 묵범이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자 차사국으로 못 가게 막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날붙이 상태로 묵범을 막아서는 방법은 공격밖에 없었다. 운전 중 공격했다가 사고라도 난다면 도화도 위험하다.

결국, 현천은 묵범을 막는 대신 도화를 깨워 보기로 했다. 현천은 검 끝으로 도화의 손가락을 쿡 찔러 피를 냈다.

[어이. 홍도화. 정신 좀 차려 봐.]

하얗게 질린 손가락 끝에 붉은 핏방울이 동그랗게 맺혀 현천에게 흡수되었다. 도화의 피 맛을 본 현천의 검날이 반짝였다.

[거참. 죽은 놈 관상을 볼 생각을 하다니. 아니, 생각은 해도 탈이 안 날 거라 생각했냐? 미련한 녀석.]

“젠…장…….”

[오. 정신 차렸나?]

현천의 한탄이 도화의 귀에 닿았는지 도화가 반응했다.

“홍도화 씨? 정신이 듭니까?”

어느새 한강 다리로 진입한 묵범도 도화의 신음을 듣고 물었다. 한쪽 눈만 간신히 뜬 도화는 묵범과 현천의 부름에 대답 대신 여기가 어딘지 확인했다. 창밖을 보니 검푸른 물이 보인다.

아직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여기가 어디이고 지금 무슨 상황인지 쥐어 짜낸 결과, 묵범의 차에 탄 채로 한강을 건너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너… 지금 어디로 가는…….”

“집으로 갑니다.”

아까는 차사국으로 간다더니. 도화가 깨어나자 말을 바꾼 묵범을 현천은 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집에 가서 따뜻하게 하고 있으면 나아지겠지요. 걱정하지 말고 쉬고 있어요.”

묵범의 말에 도화는 안심한 표정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아까보다는 좀 나아 보이는 표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도화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뭐냐? 차사국으로 간다더니?]

현천이 묵범에게만 들리게 물었다.

[생각해 보니 홍도화 씨의 약점을 불특정 다수에게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그래? 잘 생각했군.]

묵범은 차사국 출입문인 천하대장군을 소환하지 않고 그대로 다리를 건너 집으로 향했다.

* * *

집에 도착한 도화는 묵범에게 안겨 침실로 옮겨졌다. 묵범이 제 몸을 너무 가볍게 들어 올리는 게 자존심 상할 법도 하건만. 지금은 너무 추워서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상할 여유가 없었다.

침대에 도화를 눕힌 묵범은 도화의 이불은 물론이고 담마의 이불까지 가져와 도화에게 덮어 준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이불도 가져왔다. 두 집의 이불이란 이불은 모조리 모아 덮어 주니 이불로 탑을 쌓았다고 하는 게 어울렸다.

그런데도 도화는 추웠다.

가믄장 아기의 흔적을 엿보면 항상 이렇게 추위를 느끼는 부작용이 동반되었지만, 이번 추위는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추위였다.

두꺼운 겨울옷, 따뜻한 목욕과 음료, 히터와 보일러로 해결 가능한 추위가 아니다. 어찌나 추운지 활활 타오르는 불가마에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아까 아주 잠깐은 괜찮았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외부에서 밀려온 뜨거운 기운 덕분에 추위가 살짝 사그라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딱 한 시간만 있으면 추위가 물러갈 것 같은데.

도화는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했다. 차라리 깊은 잠에 빠져 추위를 잊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불의 산에 파묻혀도 몸의 떨림은 가시지 않았다.

“홍도화 씨?”

눈을 감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묵범이 도화의 침실에 들어왔다.

“이런.”

분명 이불을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 잠깐 나갔다 왔는데 바닥에 이불이 절반이나 떨어져 있었다. 도화의 몸이 덜덜 떨리는 바람에 조금씩 미끄러지다 떨어진 듯했다.

투둑. 묵범이 지켜보는 와중에도 이불 하나가 아래로 떨어졌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묵범은 기껏 덮어 준 이불을 모조리 걷어 내고 도화를 들어 올렸다. 팔과 가슴에 닿은 도화의 몸은 여전히 차가웠다. 시체도 이보다는 따뜻하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야….”

“이불보다는 이게 나을 것 같아서요.”

“……?”

묵범이 도화를 안고 들어간 곳은 욕실이었다. 욕실 문을 여니 안에 가득 찼던 후끈한 수증기가 도화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피부가 축축해졌다.

자신을 왜 여기로 데려왔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도화의 몸은 뜨거운 물에 푹 잠겼다. 촤악- 소리가 나며 상당량의 물이 욕조 밖으로 넘쳐흘렀다. 성인 남자, 그것도 덩치가 과히 큰 두 남자가 함께 들어간 결과였다.

묵범은 도화가 욕조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그를 뒤에서 끌어안고 앉았다.

“이게 무슨…?”

“전에 정화부와 치유부에서 샘플이라고 받은 비품이 있어서 다 넣어 봤습니다.”

“……?”

비품이 뭔지는 모르지만, 찰랑거리는 물색이 평범치 않은 이유인 것 같다. 비취를 물에 녹인 듯한 고운 색이었다.

“샘플이라지만, 몸에 좋은 것뿐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당신에게 딱 필요한 것만 골라 넣었어요. 원귀에게 부정 탄 것을 정화하는 부적, 치유하는 물약, 강한 음기를 중화하는 중화제입니다.”

묵범의 설명에 도화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돌아보았다. 너는 왜 여기 있냐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몸을 끌어안은 묵범의 손등을 힘껏 꼬집었다. 당장 욕조에서 나가라는 항의였다.

“운신이 불가능한 몸으로 깊은 욕조에 혼자 있으면 위험합니다.”

묵범은 도화의 항의를 가볍게 무시하며 오히려 뒤에서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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