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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67화 (68/146)

67화

[제 부모님 집에….]

“홍도화 씨. 강민진 씨 본가가 어디인지 정보부에 확인하세요.”

“어, 응. 알았어.”

묵범의 반응을 보니 자신이 대답을 잘한 것 같아 강민진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살짝 풀린 그녀의 눈에 뒤늦게 묵범의 외모가 들어왔다. 세상에. 무슨 얼굴이 이렇담? 놀란 눈으로 묵범의 뒤쪽에 서서 휴대폰을 만지는 도화의 얼굴도 확인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게 잘생긴 묵범과 달리 단아하고 금욕적으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강민진의 시선이 도화의 얼굴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머물렀다.

‘가슴이…….’

그녀는 붉은 줄에 묶인 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한창 현역일 때, 몸매 좋다는 소리 듣던 저보다 큰 가슴이었다. 강민진은 도화의 몸을 위아래로 훑다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가슴뿐 아니라 넓은 어깨에 비해 잘록한 허리가 야해 보였다. 무슨 남자가 저렇지?

강민진이 도화에게 홀린 듯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자 묵범이 그녀의 몸을 묶인 부용삭을 잡아끌었다.

“눈 돌리세요.”

[……네?]

“저 남자 보지 말라는 말입니다.”

[아…….]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질문하던 묵범이 정색을 하며 강민진의 시야를 몸으로 가렸다. 그녀는 이 잘생긴 저승차사가 왜 이러는지 알진 못했지만, 그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알았다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묵범은 두 눈을 질끈 감는 것으로 자신의 요구를 따른 강민진을 보고는 조용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군.’

묵범은 자신이 방금 한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저 남자. 홍도화를 보지 말라고 해 버리다니. 그것도 한낱 원귀한테, 질투라도 하듯 말이다.

질투? 그런 저급한 감정을 내가?

다시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홍도화를 홀린 듯이 쳐다보던 강민진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묵범은 강민진이 도화를 보는 눈빛이 평소 자신이 도화를 보는 눈빛과 다를 게 없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제 눈에만 예쁜 줄 알았는데 남의 눈에도 똑같이 예쁘게 보이는구나.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으면 했던 걸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묵범은 잊었던 갈증이 다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아니, 잊으려고, 무던한 척하던 속내가 무참히 드러났음을 인정해야 했다.

“후우.”

묵범은 뒤틀리니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주소 확인했어.”

뒤틀린 묵범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도화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젠장. 그냥 코가 마비되게 놔둘걸.’

묵범의 반듯한 이마가 뒤틀렸다. 도화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묘한 체향이 코끝을 스쳤다. 무슨 향기라고 딱 정의 내릴 수 없지만, 비에 젖은 숲에서 발견한 이름 모를 향기다. 향수는 안 뿌리는 남자이니 비누, 섬유 유연제, 스킨로션 등의 향기와 체향이 복합적으로 섞여 완성된 향기일 것이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향기일지도 모른다. 향수를 안 쓰는 사람이 홍도화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비누나 섬유 유연제를 쓰는 사람도 수두룩할 텐데. 목구멍이 갈라지다 못해 금이 갈 정도로 타는 갈증을 일으키는 남자는 홍도화가 유일했다.

그래도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의식되지 않았는데. 악취를 밖으로 밀어낸 탓에 도화의 향기가 더욱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어딥니까?”

묵범은 마른침을 모아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자신이 아무리 도화에게 장난스럽게 치근덕댄다지만, 여기서 ‘너 때문에 내가 미칠 것 같다.’라는 멘트를 날릴 배짱은 없었다.

“경주.”

경주란 말에 묵범은 재빨리 여기서 경주까지 얼마나 먼지 거리를 따졌다. 그리고 손목에 찬 팔찌에서 경면주사 구슬 하나를 건드리며 말했다.

“강민진 씨.”

[예?]

“협조해 줘서 감사합니다.”

묵범에게 감사 인사를 들었지만, 강민진의 얼굴은 근심 걱정으로 어두워졌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용기를 냈다는 듯이 말을 더듬거리며 묵범에게 물었다.

[저어, 혹시… 그 그림이 사라진다고 제 가족에게 피해가 가진 않겠지요?]

“피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저처럼 금전 문제가 생긴다든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질문하는 강민진은 묵범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정말 자신이 걱정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라도 할까 봐 눈을 내리깔았다. 그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던 도화는 그녀가 박태선과는 결이 다른 원귀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아까 현천이 방심하지 말라고 했지만, 분노 조절도 잘되는 것 같고 지금은 정말 제 가족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강민진 씨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니 되지도 않은 연기는 그만하고 여기서 끝냅시다.”

[그게 정말인ㄱ-!!!]

당황한 강민진이 번쩍 고개를 들며 묵범에게 외쳤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묵범의 손이 빨랐다. 그녀는 순식간에 경면주사로 빨려 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화가 슬쩍 묵범에게 물었다.

“진짜 상부에 부탁할 건가?”

“뭘요? 아… 재판을 잘 봐 달라는 이야기?”

“어.”

피식.

묵범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재미있어서가 아닌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비웃어? 저 새끼가?’

도화의 눈썹이 꿈틀대는 것을 본 묵범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도화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도화를 질책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강민진이 정말 제 가족을 걱정해서 제게 질문했다고 생각한 겁니까?”

“그럼 아니야?”

“다른 질문으로 바꾸죠. 강민진은 질문을 할 때 왜 눈을 내리깔았을까요?”

“…….”

첫 번째 질문엔 바로 나왔던 대답이 두 번째 질문에는 말문이 턱 막혔다.

[쯧쯧. 내가 방심하지 말라고 말을 했는데도.]

옆에서 가만히 둘을 지켜보고 있던 현천이 혀를 쯧쯧 찼다. 그제야 도화는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음을 뒤늦게 눈치챘다.

“윈귀라도 다 똑같은 원귀가 아니라는 것을 홍도화 씨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누구라고 이름을 읊진 않았지만, 묵범의 질문을 받자마자 도화는 담마를 떠올렸다. 담마도 생령인 상태로 원귀가 되었지만, 이성을 되찾고 원귀 상태에서 벗어났다.

“사람 성격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원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박태선보다 더 영악한 것이 강민진입니다.”

“영악? 강민진이?”

도화는 묵범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꼬리를 올렸다. 강민진이 영악? 아까 오창석의 죽음이 대해 물었을 때 눈이 붉게 물들긴 했지만, 그거야 오창석이 그녀가 자살을 하게 만든 큰 원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니 당연했다.

묵범은 여전히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도화에게, 그가 채 파악하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강민진을 자살로 몰고 간 가장 큰 이유는 금섬과 오창석이지만, 그녀의 가족들 역시 만만치 않았던 것 같군요.”

“그게 무슨…….”

묵범은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도화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튕겼다.

“오창석이 강민진에게 준 두꺼비 그림이 왜 그녀의 부모 집에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설마.”

다행스럽게도 도화의 머리는 빠르게 질문의 요지를 파악했다. 도화의 반응을 살핀 묵범이 작게 웃었다. 아까의 비웃음이 아닌 만족스러운 웃음이었다.

“그림을 탐내서?”

“딩동댕~ 정답입니다.”

방금까지 진지하기만 했던 묵범이 평소의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바닥에 있는 오창석의 시신을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오창석에게 금섬 그림을 받은 뒤로 강민진의 사업은 눈에 띄게 번창했을 겁니다. 그러니 부모의 마음에 탐욕이 깃들 만하지요.”

“하지만, 강민진의 사업이 번창한 게 그림 때문이란 걸 어찌 알고?”

“그야 가족이니까 강민진이 했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높겠지만?”

“오창석 본인이 소문을 흘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 정확하게는 오창석에게 붙어 있던 금섬이요.”

묵범의 설명을 들은 도화의 머릿속에는 ‘대체 왜?’라는 의문이 가득 찼다. 금섬이란 귀물의 존재는 알아도 금섬의 자세한 정보까진 모른다. 그러니 제게도 금섬이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던 것이겠지만.

“이쯤 되니 저도 궁금하군요. 본디 금섬은 빈곤한 사람에게 붙기 마련인데.”

“그러면 강민진한테 붙을 이유는 전혀 없어.”

“그러니까요. 강민진은 개인 사업을 하기 전에도 성공한 배우였고, 애초에 그녀의 집안 자체가 부유해요.”

도화도 묵범을 따라 오창석을 발로 툭 건들며 말했다.

“오창석은 강민진에게 투자를 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자금이 안 좋았을 테니 금섬은 계속 오창석한테 붙어 있어야 하는 게 맞는데…. 어째서 강민진에게 옮겨 간 건지 모르겠군.”

발끝에 닿는 오창석의 몸은 딱딱했다. 인간의 시신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도화는 유난히도 딱딱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멈칫했다.

‘스승님.’

스승의 시신도 이러했을까.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도화의 다리를 굳게 만들었다. 정작 스승의 시신은 찾지 못해서 만져 보지도 못했지만, 이렇게 변했을 것을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정신 차려. 이딴 인간에게서 스승님을 떠올리다니. 스승님이 하늘에서 통곡을 하겠다.’

도화는 혀를 꾹 깨물어 통증으로 괜한 생각을 날려버렸다. 집중해야지. 마음을 다잡은 도화는 오창석의 얼굴 옆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내려다보았다.

“뭐 하시는 겁니까?”

“잠깐 관상 좀 보게.”

“여기서요? 아까 사진도 챙겼는데. 나중에 사진으로 봐도-.”

“실물이 여기 있는데 뭐 하러 사진으로 봐. 그리고 사진보단 실물이 더 잘 보여.”

“하긴. 그렇긴 하겠네요.”

도화는 묵범이 더는 말을 걸지 않자 오창석의 얼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신의 얼굴로 관상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아기님. 아기님. 가믄장 아기님.

이 남자는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이미 끊어진 운명이라 평소 속으로 중얼거리던 기도를 살짝 바꾸었다.

과연 잘 보일까? 앞섰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오창석의 운명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과거의 흔적일 뿐이지만, 도화에겐 아주 중요한 정보였다.

머릿속에 평소보다 훨씬 희미한 가믄장 아기의 흔적이 흘러들었다. 아마 영혼이 떠난 육신이라 그런 듯했다. 자칫 집중력이 흐트러졌다간, 희미한 흔적이 사라질 것 같아서 도화는 잔뜩 인상까지 쓰고 오창석에게 집중했다. 질끈 감아 검어진 시야로 오창석의 기억이 스쳤다.

폭력에 의한 고통, 배고픔, 외로운 유년기의 흔적이 흘러들었다. 죽은 자의 몸에 남겨진 기억은 시간이 뒤죽박죽 엉망으로 섞여 있어서 흔적을 훑는 도화의 정신도 따라서 혼곤해졌다.

‘제대로 읽질 못하겠어.’

도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혹여 중요한 것을 놓칠까 봐, 뒤섞인 기억 때문에 왜곡된 정보가 되어 버릴까 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도화의 몸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신의 흔적을 엿본 부작용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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