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도화-50화 (51/146)

50화

“오늘은 출근 안 해요?”

담마가 소파에 늘어져 있는 도화에게 다가가 물었다. 입사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무단으로 결근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걱정 어린 질문이었다.

“괜찮아. 월차니까. 너도 오늘은 차사국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쉬어.”

“음… 그러면 오늘은 게임하고 놀래요.”

“그래. 현질은 적당히. 알았지?”

“저 현질 안 해요. 쌀먹하지.”

쌀먹?

누워 있던 도화가 눈을 껌뻑이며 담마를 쳐다봤다. 쌀먹이 뭐지? 쌀 퍼먹다… 이런 뜻인가? 그런데 게임에서 쌀 퍼먹는 이야기가 왜 나와? 현질의 새로운 방법 중 하나인 건가?

도화가 쌀먹이란 단어 하나로 온갖 추측을 하는 사이, 담마는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텀블러와 과자 봉투를 들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 점심 때까지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쌀먹이 뭐지.’

무료하게 누워 있던 도화는 휴대폰으로 쌀먹을 검색했다. 대충 훑어보니 비싼 아이템이나 게임 재화를 현금을 받고 팔아 쌀을 사 먹는다는 의미였다. 게임으로 생활비를 버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담마일 줄은 몰랐다.

‘현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도화는 담마가 무슨 게임을 하는지도 몰랐다. 담마의 방에 들어가 본 적은 손에 꼽고, 게임 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무슨 게임으로 얼마를 버는진 몰라도, 쌀먹이라니까 쌀 사 먹을 정도의 돈은 버는 것이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한 도화는 소파에서 뒹굴거리다 TV를 틀었다.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20대 대학생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하는…….

틀자마자 살인 사건을 알리는 뉴스가 화면에 떴다. 조금만 더 늘어져 있다가 독서나 할 계획이었던 도화는 자료 화면으로 나오는 현장 영상을 보고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뭐 하냐? 오늘은 푹 쉴 거라며.]

TV 소리를 들은 현천이 도화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뉴스에 집중했다.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산불 소식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심각한 곳은 경남, 전북, 강원도 지역으로 국가 위기 경보 발령까지 내린 상태입니다. 산불이 강풍을 타고 무섭게 번지면서 주민 오천여 명이…….

[산불이 원래 저렇게 나나?]

TV 화면이 시뻘건 불길로 가득 찬 것을 쳐다보던 현천이 도화에게 물었다. 나라가 온통 산으로 가득 찼으니 산불이 자주 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화면에 보이는 불은 굉장히 심각해 보였다.

“곧 가을이라 건조하긴 한데…….”

-동시다발적인 화재에 방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불이 시작되었다는 제보자의 진술에 따라…….

앵커가 ‘방화’라고 말하자 도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히 자연 발생보다 방화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우연히 한날한시에 여러 군데에서 산불이 날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요즘 인간들의 범죄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데. 저것도 인간이 저지른 불이 아닐까?]

[하긴. 아무 이유 없이 묻지마 살인도 하는데 방화하는 놈도 있겠지.]

[그런데 저건… 분신술을 쓰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 보이는데?]

현천이 산불 현황을 보여 주는 지도를 보며 말했다. 분신술이란 말에 도화도 같이 지도를 확인했다.

[확실히… 거리가 멀긴 머네. 여럿이서 한 게 아니라면, 정말 네 말대로 분신술을 쓰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한 거리야.]

차로 이동한다 해도 저건 불가능한 거리다. 두 군데라면 모를까. 지도에 크게 표시된 지역만 해도 다섯. 발화 지점도 산 밑이나 중턱이 아닌 꼭대기부터라고 하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면 절대 하루 만에 불을 낼 수 없…….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

도화는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서재로 향했다. 현천이 그 뒤를 쫄쫄 따랐다.

도화의 서재에는 온통 딱딱한 내용의 책만 가득했다. 하지만, 대부분 한 번도 펴 보지 않은 새 책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껏 고시원, 원룸, 반지하에서 생활하던 그가 이렇게 많은 책을 보관할 공간이 있을 리 없었다. 모두 이곳에 이사 온 다음에 산 책이었다.

‘오늘은 느긋하게 책이나 읽으려고 했는데. 물 건너간 것 같군.’

도화는 오늘 읽어 보려고 책상 위에 빼 두었던 책을 아쉬운 눈으로 보다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컴퓨터 전원을 켰다. 데스크탑은 어찌나 조용한지 내부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컴퓨터가 켜졌다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새삼 예전에 쓰던 컴퓨터가 소음 공해 수준으로 시끄러웠구나 싶었다.

도화는 포털 사이트에서 방금 뉴스에서 본 산불에 대해 검색했다. 그러자 온갖 언론 매체에서 올린 기사와 시민들이 찍은 영상들이 펼쳐졌다. 기사는 몇 번 훑어보다 시민 제보 영상 위주로 살폈다. 언론사들의 기사는 내용이 거기서 거기라 특별한 점을 찾기 어려웠다.

한참을 검색하던 도화는 펜을 들어 노트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현천이 도화의 손 근처를 맴돌며 무얼 쓰는지 구경했다.

[뭐 수상한 거라도 찾았어?]

메모는 그리 길지 않았다. 메모를 끝낸 도화가 손을 치우자 현천이 천천히 글씨를 읽었다.

[하늘로 이동. 산 정상. 불. 바람…?]

산 정상, 불과 바람은 뉴스와 기사에서 나온 것과 같은데 하늘로 이동이란 건 어디서 나온 정보인지. 궁금해진 현천은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이동했다. 도화는 그런 현천을 위해서 SNS에 올라온 영상을 틀어 주었다.

-아, 제가 진짜 봤다니까요?

-눈깔이 삐었냐? 연기 때문에 우느라 잘못 본 거겠지.

-정말 봤다고요! 북실북실한 누런 멍멍이가 입에 부채를 물고 있었다고요!

-멍멍이가 미쳤다고 불구덩이 속에 있겠냐. 원래 자연재해는 짐승이 먼저 알고 도망가는 게 국룰이야. 영화에서도 나오잖아? 거 뭐냐. 쥐 같은 거. 개나 고양이, 새 같은 게 막 먼저 도망가고 울고 그래서 불안감 조성하는 게 재난 영화의 단골 컷이라고.

-아~ 진짜! 내가 휴대폰만 안 잃어버렸어도!

-야, 이거 인터넷에 올려. 이 새끼 눈깔 고장 났다고. 원래도 관종 새끼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

딱 봐도 또래 무리에 끼지 못하는 왜소한 아이를 덩치 큰 놈들이 괴롭히는 듯한 영상이었다. 내용만 들어서는 왜소한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표정이나 말투는 진짜 같았다. 자신을 믿어 주지 않아서 너무 답답해하는 게 모니터 너머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입에 부채를 문 누런 멍멍이…? 어디서 들어 본 외양인데.]

현천이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리려고 빙글빙글 돌았다. 도화도 저 아이가 설명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지나가다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라 제대로 기억나진 않지만, 확실한 것은 저 아이의 이야기가 절대 거짓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도화는 다시 검색의 힘을 빌려 보기로 했다. ‘입에 부채를 문 누런 멍멍이’를 입력했다. 하지만, 뜨는 것은 누런 털을 가진 개 사진과 부채 사진이 전부였다. 도화가 원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뭐였더라…….’

부채로 불을 일으키는 개.

하계에서도 전래동화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영수다. 하지만, 도화는 구전이나 전래동화를 읽어 본 적도 없고 읽어 볼 생각도 해 보질 않아서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귀동냥으로 들었지만, 제대로 들은 것도 아니었다. 어릴 적, 자신을 괴롭히던 고약한 인간 꼬마들을 피해 마루 밑에 숨어들었는데 거기서 엿들은 이야기가 부채로 불을 일으키는 하늘의 영수 이야기였다. 그것도 정말 아주 잠깐, 숨 돌릴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들었던 거라 개와 부채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할 리가 없었다.

[하늘개.]

머리를 쥐어짜던 도화에게 고민을 끝낸 현천이 먼저 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이름이 참으로 성의가 없었다. 도화는 그게 영수의 이름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뭐?]

[하늘개라고. 그 개 이름 말이야. 하계에선 불개라고들 하더군.]

[이름 참…….]

[하늘개는 불이 귀하던 시절, 천지왕이 하계의 인간에게 불을 하사하기 위해 만든 영수였지. 이제 기억나는군.]

누가 지었는진 몰라도 작명 센스 한번 끝내 준다고 생각한 도화는 하늘개로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하늘개가 해와 달을 삼켰단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에는 불개로 검색해 보니 한국 토종개 불개에 대한 정보만 주르륵 떴다. 누렇다기보단 불그스름한 털을 가진 개였다. 털만 붉은 게 아니라 눈과 코, 심지어 발톱까지 붉어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까 영상에서 왜소한 아이가 말했던 ‘북실북실’한 이미지는 아니었다.

도화가 검색한 이미지를 옆에서 같이 보던 현천이 저건 아니라며 몸을 흔들며 말했다.

[내가 본 하늘개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어. 좀 더 털이 북실북실했는데.]

[그러면 부채를 물고 있던 개가 하늘개가 맞다는 거네?]

[아마도.]

현천의 대답에 도화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하늘개가 산불을 일으켰다는 건가? 선계에 속한 자가 하계에 해를 끼치는 짓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영수라면서?

선계 출신이 철밥통으로 유명하다지만, 그들도 선적에서 제명당하지 않기 위해선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 있는데, 그게 바로 하계에 큰 피해를 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자연재해, 인간을 현혹하여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기, 사이비 창설, 전염병 창궐 등이었다.

[아니, 그런 영수가 왜 저딴 짓을 해?]

[낸들 아나. 그리고 아직 저 산불이 하늘개의 짓이라는 증거도 없으니 범인 몰이 하지 말어. 괜히 본인 귀에 들어갔다가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곤란하잖아?]

도화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하늘개 관련 전래동화를 검색했다. 그는 알록달록 아이들 용 그림이 그려진 전래동화 표지를 진지한 표정으로 들여다보더니 그중 몇 권을 골라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당일 배송 체크까지 했다. 결제까지 마친 도화의 표정은 매우 뿌듯해 보였다.

현천은 그가 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파악하고는 속으로 웃었다. 지금 도화는 돈을 더 내는 옵션인 당일 배송을 선택한 본인이 대견하다고 여기는 게 분명했다.

‘애는 애네. 덩치만 커 가지고.’

현천은 도화의 귀에 들리지 않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마 책이 오면 무뚝뚝한 얼굴과 달리 속은 신이 나서 읽겠지. 안 봐도 훤했다.

* * *

“도깨비불? 그건 왜?”

강림 도령은 다짜고짜 국장실로 쳐들어온 묵범에게 짜증을 냈다. 추혼부에 직접 홍도화를 스카웃 해 왔으면 뼈가 가루가 되도록 부려 먹어야지. 이제 겨우 한 달 된 놈한테 월차를 쓰게 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도깨비불이 사라진 이유가 궁금해서 그럽니다.”

“그걸 난들 아나? 도깨비 왕이 알겠지.”

“도깨비 왕? 그자는 죽은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허허. 그냥 귀물도 아니고 도깨비 왕인데 어디 그리 쉽게 죽나. 노한 천지왕이 번개를 뽝!! 하고 내리꽂으면 모를까.”

“흠…. 그러면 도깨비 왕은 어디에 있습니까?”

“…너 지금. 일하기 싫어서 이러는 거지.”

강림 도령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물었다. 감직부에서는 탱자탱자 놀던 놈이 추혼부로 와서는 정신 좀 차렸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오판인 것 같다.

“도깨비가 도깨비불을 못 쓴다는 게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왜. 홍도화가 도깨비불을 썼으면 좋겠어서?”

“당연한 거 아닙니까? 공무 수행이 훨씬 수월해지겠지요. 일은 홍도화 씨가 하고. 나는 뒤에서 구경하다 뒤처리하고.”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시럽 가득 담긴 커피를 쪽쪽 빨아 대는 묵범의 얼굴은 누가 봐도 한 대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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