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 에스퍼 106화
딸깍. 경쾌한 소리가 뜨겁고 삭막한 잿더미 세상에 울려 퍼졌다. 담뱃불이나 붙이는 자그마한 불꽃이 타올랐고, 주현은 라이터를 죽어 가는 불사조에게 내밀었다. 괴물은 도망갈 생각이 없는지 그저 날개를 펼치고 엎드린 채 다가오는 라이터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혹시 아프면 말해.”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속삭인 주현이 팔을 마저 뻗었다. 조금 다른 색으로 타오르는 두 불꽃이 닿았다.
그 순간, 화륵- 축 늘어져 있던 새가 크게 불타올랐다. 델 듯한 열기에 황급히 몇 걸음 물러선 주현이 옷에 옮겨붙은 불꽃을 손으로 두드려 끄며 고개를 들었다.
[끼이이-!]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닭보다 조금 더 크게 몸집을 키운 괴물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었다. 기운을 차린 모습에 절로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
하지만 결국 눈앞의 타오르는 생명은 납치되어 고향을 벗어나 희귀품을 탐내는 부자 혹은 협회 소속 연구원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 일을 행해야 하는 주현이 방독면 안에서 입술을 말아 물었다.
이번 임무에 주어진 기한은 3일이다. 3일이 지나면 빈손으로라도 돌아가야 한다.
‘그냥 여기서 며칠만 버틸까?’
임무 실패로 처벌은 받겠지만, 그래도 신이 나서 날아다니는 녀석은 지금까지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다. 폭주 에스퍼는 결코 얻지 못할 그 감각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라이터를 잡고 있던 손은 화상을 입어 벌써 피부가 까지고 물집이 잡혔다. 가이딩을 받으면 나을 테니 걱정은 없으나 차인호가 오기 전에 얼추 회복되면 흉터로 남을 게 분명했다.
안 그래도 보기 흉한 손인데 더 못나지겠다고 한숨을 내쉰 순간이었다. 주현은 옆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황급히 능력을 사용했다.
[끼이-]
방어막에 부딪힌 괴물은 높다란 울음소리를 흘리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위를 빙빙 맴돌 뿐, 멀어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주현을 사냥감으로 본다기에는 묘하게 공격성이 적었다.
괴물의 생각을 파악하는 건 힘든 일이다. 고개를 내저은 주현은 스카프로 이마를 닦곤 얇게 접어 다친 손에 감았다. 상처 회복에 큰 효과는 없어도 압박 덕분에 통증은 조금 줄어들었다.
“하……. 3일간 여기서 살아야 한다니.”
덥고, 숨쉬기도 불편하고, 몸을 숨길 만한 곳조차 없는 화산 지대. 그야말로 산지옥이었다. 가방에 든 물은 이미 미지근하다 못해 따뜻하게 데워졌을 터. 그러나 주현은 불쌍한 괴물을 놓아주기로 이미 마음먹었다.
전자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그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
[…….]
“……야.”
[…….]
“야!”
우르릉- 어디선가 또 다른 화산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현은 눈을 치뜨며 떨어진 곳에 내려앉은 불타는 덩어리를 노려보았다.
“따라오지 마.”
괴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리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얼굴임에도 순진하게 느껴질 정도로 악의 없는 동작이었다.
“확 잡아 버리기 전에 네 집으로 가.”
손을 내저음에 따라 빨간 매듭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인간의 말 따위 관심 없는 게 분명한 괴물은 멀어지긴커녕 두 발로 총총 걸어 조금 더 가까워졌다.
“가라고 했어.”
멀뚱멀뚱 서 있는 괴물을 잠시 관찰하던 주현이 휙 돌아섰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머물기에 괜찮은 장소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방독면 필터가 3일 치가 되는지부터 불안했다.
잿더미 위에서 퍼질러 자는 건 말도 안 되고, 그렇다고 바위에서 쉬기엔 용암과 마그마로 뜨겁게 달궈진 불판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편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딱 3일만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는 장소……. 그렇게 어려운 조건도 아닌데.’
펑! 근처에 있던 용암 호수에서 커다란 기포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옷깃을 잡고 펄럭였지만 땀 때문에 피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도 않았다. 부츠도 재로 가득 차서 걸을 때마다 불쾌하고, 화상 입은 손은 점점 더 아파졌다.
일단은 앉아서 쉬기로 결정한 주현이 재로 이뤄진 바닥을 평평하게 다졌다.
털썩 앉자 엉덩이가 좀 뜨끈했으나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찜질방에 가면 이런 느낌이려나. 가 본 적도 없는 찜질방을 생각하고 있자니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보지 않아도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생물이라곤 하나가 다니까.
“내가 아까 너 가둔 거 기억 안 나?”
날개를 접으며 멀거니 서 있던 불사조가 작은 머리를 이리저리 기울였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혹은 아무 의미도 없는지, 생각해 봤자 머리만 아프다. 주현은 잿가루를 한 움큼 집어 괴물에게 뿌렸다.
화르륵. 이미 타고 남은 재가 어떻게 또 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위협으로 느끼지도 않았는지 괴물은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기어코 뜨끈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괴물이 가까이 왔을 때, 주현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쳤다. 그는 안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어 둔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딸깍. 은빛 라이터에 자그마한 불꽃이 떠올랐다.
“혹시 이게 마음에 든 거야?”
[끼이이-]
날개를 펄럭인 괴물이 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라이터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주현은 아까워서 담배에 잘 붙이지도 못하는 불꽃이 괴물의 새까만 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동안 게이트 너머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온갖 괴물을 봤지만, 손꼽히게 신기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혀조차 없는 부리가 달싹이는 게 어쩐지 귀여워서 주현은 손이 아픈 것도 꾹 참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드디어 만족했는지 괴물이 라이터에서 멀어졌다. 어깨로 보이는 부분이 들썩이는 게, 제법 맛있는 모양이었다.
“충분히 먹었지? 이제 네 갈 길 가.”
방독면을 떼어 내자 곧바로 텁텁한 재 맛과 함께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숨을 참으며 간신히 뜨뜻한 물로 목을 축인 주현이 벌린 무릎 사이로 고개를 떨궜다.
조금 뜨겁다 싶을 만큼 달궈진 라이터가 손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걸 처음 받은 날, 주현은 당황스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는 기쁨을 느꼈었다. 정작 건네준 차인호는 불장난하지 말라는 말이나 늘어놓았지만.
아름다운 얼굴을 떠올리자 어쩐지 머리가 아팠다. 두통의 원인이 ‘교육’의 후유증인지, 아니면 가슴의 통증이 머리로 올라간 것인지. 주현은 답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주현은 그의 가이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차인호의 미소, 온기, 손길, 키스. 가이딩. 눈을 감으면 이 열기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이불조차 없는 침대에서 가이드의 품에 꼭 안겼던 때와 조금 비슷했다. 온몸이 뜨거운데 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똑같았다.
그토록 밀려났음에도 이놈의 사랑은 죽지도 않는다. 예쁘게 가꿔진 화분 속 꽃보다 콘크리트 틈새로 피어난 잡초의 생명력이 더욱 질긴 것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
“망할…….”
[끼이?]
옆에서 들려온 울음소리에 헛웃음을 지은 주현이 그대로 몸을 젖혀 잿더미 위로 누웠다. 덥고, 찝찝하고, 불쾌하고. 하찮은 자기 연민에 잠기기에 엿같이 좋은 날이었다.
* * *
회색 하늘, 흐르는 용암. 모든 것이 타 버린 세상에서 주현은 물로 적신 스카프로 얼굴을 닦았다. 이래 봬도 에스퍼인 만큼 웬만한 탈수로는 죽지 않겠지만, 그래도 견디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과 달리 이곳에선 해가 진다고 화산이 멈추거나 용암이 식지 않는다. 주현은 열이 올라 어지러운 머리를 손등으로 문지르다 이내 눈을 감았다.
[끼이?]
결국 쫓아내지 못한 괴물이 근처를 서성이며 울음소리를 흘렸다. 어쩌면 걱정하는 걸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꽤 귀여운 상상이었다.
반나절을 걸었음에도 밤을 보내기에 괜찮은 장소는 찾지 못했다. 결국 새까만 나무 옆, 잿더미 위에 자리 잡은 주현이 돌돌 말려 있던 침낭을 펼쳤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나도 더웠고, 무엇보다 혹시 있을지 모를 습격에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기서 만난 괴물이 졸졸 뒤쫓는 새 한 마리뿐이라고 해도 언제 또 다른 생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거기다 근처에 있는 화산이 터졌는데 제시간에 피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에스퍼라 해도 살아남기 어려울 터다.
납작하게 깐 침낭 위로 누운 주현이 조금이나마 몸에서 힘을 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잿가루가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충분히 따라다닌 것 같은데, 이제 너희 집으로 가. 안 그래도 더운데 너 때문에 더 덥다.”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불사조는 총총거리며 근처를 맴돌았다. 그래도 덕분에 어둡지는 않았다.
몇 번 몸을 뒤척인 주현이 땀이 차서 답답한 안대를 벗었다. 검은 가죽 안대는 협회에서 지급해 준 물건인데, 잘 보면 얇은 선으로 협회의 로고가 박혀 있다. 마치 물건에 주인의 이름을 적는 것처럼.
“…….”
안 그래도 어두운 인생인데 부정적인 생각까지 더할 필요는 없다. 그걸 알지만 혼자 있으면 꼭 이렇게 나쁜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쿠르릉- 펑!
진동과 함께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반나절 만에 단순한 땅울림이라는 걸 파악한 주현은 아무렇지 않게 옆으로 돌아누웠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온몸에 불꽃을 두른 새가 잿더미 위에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사실 정말로 잠들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미동 없이 둥글게 말린 몸을 보고 추측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