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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118/161)

폭주 에스퍼 105화

불사조. 오랜 시간 갇혀 산 주현이지만, 그도 죽지 않고 불타는 새를 알고 있다. 책이고 영화고, 워낙 많은 미디어에 등장하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온몸이 불타고 있거나 그저 붉은 깃털을 가진 새로도 나오는 불사조는 이름대로 죽지 않는 전설 속의 새다.

그래. ‘전설’ 속의 새. 주현은 게이트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파일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아무리 봐도 그의 이번 임무는 불사조와 똑 닮은 괴물을 포획하는 게 맞았다.

사진 한 장 없이, 그저 한 에스퍼의 목격담 하나로 결정된 임무인 만큼 쓸 만한 정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온몸이 활활 타오르는 새와 닮은 괴물이라는 말밖에. 크기도, 서식지도, 심지어는 등급조차 모르는 괴물을 온전하게 잡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일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날 보낸 거겠지.’

괴물을 게이트 밖으로 데려오는 건 법으로 금지된 사안이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기에 아무리 협회라고 해도 그걸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살인도 시키는 마당에 괴물 밀렵 정도야 뭐가 어려울까. 폭주 에스퍼에겐 불법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일이었다.

그래서 임무 자체는 받아들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저 ‘불타는 새’라는 정보 하나로 상처 하나 없이 괴물을 포획해 데려 나오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하아…….”

임무 거절 따위는 상상조차 못 할 위치에 있는 폭주 에스퍼가 한숨을 내쉬었다. 간지러운 왼눈을 안대 위에서 긁적인 주현이 유리창에 머리를 기댔다.

게이트 EE-22는 외우기 쉬운 이름에 비해 다소 험악한 산간 지대에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 한가운데에 뻥 뚫린 동굴 안쪽. 그 깊숙한 곳에서 홀로 빛나는 게이트는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추상형이라 더더욱 위험한 인상을 풍겼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발견도 늦은 데다 일반인은커녕 에스퍼조차 웬만하면 닿을 수 없어서 다른 게이트에 비해 경비는 없다시피 했다. 대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동굴 입구에 쇠창살이 박혀 있었다.

능력을 사용해 동굴에 들어선 주현은 미리 받은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시대로 창살 틈새로 손을 통과해 안쪽에서 문을 잠갔다. 죽어도 폐 끼치지 말고 안에서 죽으라는 의도가 명백했다. 물론 이제 와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다.

열쇠를 안주머니에 넣은 주현은 동굴 안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게이트는 동굴 안쪽 깊숙한 곳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상한 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주현은 허리춤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던 방독면을 들어 입과 코를 가렸다. A동에서 쓰는 장비라 그런지 숨쉬기도 편하고 크게 답답하지 않았다.

폭주 에스퍼가 게이트를 넘었다.

“윽…….”

가장 처음 느낀 변화는 온도였다. 순식간에 밀어닥친 열기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있다 온 주현에게도 무척 뜨겁게 느껴졌다.

화산 지대. 그게 바로 게이트 EE-22를 설명하는 말이었다. 사방에는 잿빛 화산재가 널려 있다. 발밑은 물론이거니와 듬성듬성 서 있는, 어떻게 자란 건지 알 수 없는 나무까지 모든 곳이 재로 뒤덮여 있었다.

재를 뿜어낸 화산은 곳곳에 있었는데, 높고 뾰족한 검붉은 산들이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눈처럼 흩날리는 재를 바라보던 주현이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탐색했다.

마치 재로 이루어진 사막처럼 푹푹 빠지는 발을 겨우겨우 옮기던 주현은 한참을 걸어 단단한 바위 지대로 들어섰다. 새까만 바위를 걸을수록 열기가 점점 더해졌다. 스카프를 풀어 이마를 닦아 낸 그가 절벽 끄트머리에 섰다.

‘떨어지면 흔적도 안 남겠네.’

시뻘건 용암이 흘러내리는 거대한 강을 본 첫 감상이었다. 기포가 터질 때마다 튀는 용암은 한 방울이라도 닿으면 살갗이 녹아내릴 게 분명했다. 다시 한번 땀을 닦은 주현이 돌아섰다.

“그나저나 불사조는 어디 있는 거야?”

불사조는커녕 다른 괴물조차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생명체가 살 수 있기는 한 건지 의아할 만큼 극악한 환경이었다. 정말 무언가가 산다면 하다못해 ‘불타는 새’ 정도는 되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괴물은 흔적조차 찾지 못했는데, 벌써 온몸이 땀에 젖어 옷이 피부에 달라붙는 느낌이 기분 나빴다. 특히 안대에 닿은 눈가가 땀 때문에 근질거려 스카프로 가볍게 닦아 내던 참이었다.

우르릉-

땅울림과 함께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장 전투태세를 갖춘 주현은 소리의 출처가 제법 먼 곳에 있는 거대한 검은 산이라는 걸 알아챘다.

잠시 후, 산봉우리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용암이 솟구쳐 나왔다. 거리가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기와 귀를 울리는 굉음이 절로 주춤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러고 보면 하늘이 온통 흐렸는데, 단순한 구름이 아니라 화산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덥고 짜증 나는 임무지만, 그래도 살면서 언제 또 화산이 터지는 걸 볼까. 잠시 임무를 잊고 분출하는 용암을 보던 주현은 거대한 화산재를 가르며 날아가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

하나뿐인 눈을 가늘게 뜨며 본 그것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새였다. 그것도 마치 불에 타는 듯이 붉게 일렁이는 새.

생각보다 빨리 찾은 타깃에 주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흘러내리는 땀을 한 번 더 닦은 그가 내내 아끼던 능력을 사용해서 새를 뒤쫓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화산으로 다가갈수록 뜨거움이 강해졌다. 심지어 화산재가 너무 많아서 하는 수 없이 능력으로 얼굴을 감싸기까지 해야 했다. 그나마 최소 이틀은 걸릴 거라 예상한 임무를 몇 시간 만에 끝낼지도 모른다는 사실만이 위안이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상하게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능력을 사용하는 건 무척 아깝게 느껴졌다.

‘마치 돈을 길거리도 아니고 하수구에 버리는 느낌이야.’

주현은 혹시라도 놓칠세라 생각을 지워 내고 빠르게 날아가는 새를 향해 속도를 더 냈다. 머리카락이 세차게 휘날렸다. 전설 속의 불사조와 닮았다는, 에스퍼 한 명이 멀리서 잠깐 본 걸로 임무까지 내려진 괴물이 가까워졌다.

[끼이이-]

능력으로 붙잡아 둥그런 공간에 가두자 괴물이 부리를 벌려 높은 울음소리를 흘렸다.

“하…….”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탄식이었다. 괴물은 생각보다 몸집이 컸다. 독수리와 비슷할 정도로 커다란 몸은 온통 새빨간 불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유일하게 불타지 않는 곳은 새까만 발과 부리뿐, 나머지는 눈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몸이 이글거렸다.

괴물은 공간 안을 돌아다니며 마구 퍼덕였다. 힘은 그리 강하지 않은지, 다행히도 방어막이 부서지는 일은 없었다.

주현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괴물의 몸을 능력으로 가볍게 눌렀다. 놀랍게도 능력은 불꽃을 헤집고 그 아래의 피부나 뼈에 닿지 않았다. 대신 그대로 몸을 관통해 반대쪽으로 빠져나갔다. 괴물은 화나 보이긴 했지만, 통증을 느끼지는 않은 듯했다. 입김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일렁인 불이 다시금 새의 형태로 돌아왔다.

재가 흩날리는 허공에서 이런저런 실험을 한 결과, ‘불사조’의 몸을 이룬 부분 중 불꽃이 아닌 건 다리, 부리, 그리고 날개 뼈. 이 세 개뿐이었다. 나머지는, 심지어 머리마저도 오로지 불꽃이었다.

게이트 너머 괴물 중 멀쩡한 놈을 본 적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전설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신비로운 생물이었다.

조금 더 관찰하던 주현은 한 번 더 괴물이 방어막을 부수지 못한다는 걸 확인하고 약간이지만 긴장을 내려놓았다. 새를 잡다가 뎄는지 발갛게 달아오른 피부를 문지르자 따끔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주현은 손바닥에 묻어나는 잿가루를 털어 내고 게이트로 가기 위해 돌아섰다. 끼이- 다시금 괴물이 날뛰었으나 방어막이 견고한 한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높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건 괴물을 잡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게이트로 돌아가기 위해 탐지기를 들여다보며 걷던 주현은 아무 생각 없이 옆을 봤다가 그대로 멈춰 서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방어막 속, 불사조는 병아리가 되어 축 늘어져 있었다. 아까보다 훨씬 기세를 줄인 불꽃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아슬아슬했다.

“이거 왜 이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작아진 몸으로 간신히 헐떡이는 불새를 방어막째로 흔들었지만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너 어디 아파? 죽는 건 아니지?”

임무는 ‘살아 있는 불사조’를 잡아가는 것이지, 검은 부리와 발만 남긴 채 꺼져 버린 불꽃이 아니었다. 제법 긴 시간을 돌아다녔음에도 처음으로 발견한 괴물이었다. 다른 녀석이 있는지도 모르는 이상 이대로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고민하던 주현은 문득 방어막에 약간의 틈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불꽃은 산소가 있어야 탈 수 있다.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며, 그는 괴물을 받치는 바닥 면을 제외한 모든 방어막을 없앴다.

정답이었는지 죽어 가던 불꽃이 살아났다. 하지만 간신히 병아리를 벗어났을 뿐, 처음처럼 강렬하게 타오르지는 않았다. 주현은 여전히 기운 없는 괴물을 걱정스레 보다 방어막을 툭 건드렸다.

“기운 좀 내 봐.”

검은 부리가 주현을 향해 스윽 움직였으나 다시금 축 늘어지는 걸 보니 죄책감이 슬금슬금 차올랐다.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무언가 태울 게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아도 온통 재와 바위뿐이었다. 결국 괜찮은 게 없는지 주머니를 뒤지던 주현은 손끝에 매끄럽고 단단한 물건이 닿는 걸 느꼈다.

차인호가 선물해 준 라이터는 여기저기 작은 흠집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름대로 아껴 쓴다고 했는데도 이렇게 낡아 버리고 말았다. 그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던 주현은 속는 셈 치고 라이터 뚜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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