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 에스퍼 56화
새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주현도 모른다. 그는 항상 집에 있으며 가끔 노트북 앞에 앉는데, 월급이 어쩌고저쩌고하는 걸 보면 나름대로 돈을 벌기는 하는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주현은 키우기 어려운 아이였다고 했다. 매일 아무 이유 없이 울고 쉽게 짜증 냈다고. 어쩌면 기저귀가 너무 오랫동안 축축했거나, 몸을 감싼 옷이 작았거나, 위가 비어서 그 고통에 울었을지도 모르지만 주현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주현은 은혜를 모른다며 혀를 차는 새아빠를 볼 때면 화가 났다. 사실 그는 항상 화가 났다. 엄마와 새아빠 옆에 있으면 화가 났고, 배가 고파서 화가 났다. 자기 부모를 신처럼 쳐다보며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가슴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언제나 분노에 휩싸여 아이답지 않은 날카로운 눈으로 어른을 노려보는 주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는 착한 척하며 남의 사랑을 구걸할 바에는 죽기를 원하는 아이였다.
그는 자신이 에스퍼가 되기를 무척 바라곤 했었다. 엄마도 아빠도 에스퍼가 아니니 그가 에스퍼가 될 확률은 적었지만, 그래도 힘이 생겼으면 했다.
새아빠를 흠씬 두들겨 패서 다시는 그에게 손대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엄마에게 소리쳐서 무서워서라도 주현을 미워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주현은 여전히 약하고 비실비실한 꼬맹이였고, 그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를 신경 쓰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아니, 실은 한 사람 있기는 했다. 뒷집에 사는 노인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선 항상 의자에 앉아 무릎 위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네 살 때 집에 침입한 주현을 쫓아내지 않았다. 대신 우유 한 잔을 주고는 말없이 돌아서 가든 말든 시선조차 주지 않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후로 주현은 자주 그 집에 갔다. 할머니의 고양이, 나비는 주현에게 제법 살갑게 굴었다. 봉제 인형 하나 가져 본 적이 없는 주현은 처음엔 힘 조절을 못 해서 나비를 도망치게 했으나 금방 요령을 터득했다.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은 중독성 있는 일이었다. 부드럽고 푹신한 털이 손가락에 엉키고 뜨끈한 피부를 만지는 순간이면 허기도 잠시 물러갈 정도였다.
그러나 나비는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 노인에게 달려갔다. 그럴 때면 주현은 다시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비가 그의 고양이가 아니라서 화가 났고, 자신보다 노인을 더 사랑해서 화가 났다.
하지만 나비를 쓰다듬는 노인의 표정이 너무나도 평온해서 주현은 금방 화를 삭이곤 바닥에 엎드려 그녀가 사 온 공책에 글자를 끄적이곤 했다.
그녀는 그런 평온한 얼굴로 죽었다. 여느 때처럼 항상 열려 있는 주방 창문을 통해 들어간 주현은 저에게 곧바로 달려드는 나비를 황급히 끌어안았다.
나비는 이상한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거의 비명 같았다. 주현은 피부에 발톱을 박으며 울고 있는 고양이를 가만히 끌어안고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집이 너무 추웠고 사위가 고요했다. 사실 노인은 거의 말이 없어서 집은 항상 조용했는데도.
순간 짜릿한 소름이 척추를 훑었다. 일곱 살 주현은 아주 느린 속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실은 싸늘했고 미묘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주현은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주름진 얼굴은 꼭 잠을 자는 것처럼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그다지 따뜻했던 적 없는 할머니의 손은 그날따라 무척이나 차가웠다.
구급대원들은 생각보다 거침없는 손길로 노인을 들것에 옮겼다. 그때까지도 나비는 주현의 품에 있었는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곤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비는 주현의 고양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나비가 여전히 주현보다 노인을 더 사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아빠는 나비를 싫어했다. 엄마도 그랬다. 주현의 반항에 소리 지르던 새아빠는 벌게진 얼굴로 구석에 앉아 있던 나비의 목덜미를 집어 들곤 창밖으로 내던졌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주현이 막을 새가 없었다.
나비는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곤 쏜살같이 골목 어딘가로 달려갔다. 주현은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집 밖에 앉아 나비를 기다렸지만, 결국 나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싸구려 사료가 질린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좁은 집보다 넓은 밖이 더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음에 드는 친구 고양이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의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처럼 주현이 싫어졌을지도 모른다.
주현은 나비의 부드러운 털에 한 번만 더 손가락을 파묻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가 바라는 것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 * *
홈스쿨링이란 명목으로 유치원에도 가지 못한 주현은 혼자서 공부했다. 글자는 노인이 가르쳐 주었고, 그 후로는 스스로 했다.
그는 자신이 제법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처음으로 가게 된 학교에선 반에 있는 모두가 주현보다 똑똑했다.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동화 내용을 설명했고, 정체가 뭔지도 모르는 TV 프로그램에 대해 떠들었다.
주현은 자존심이 너무 세서 자신이 가장 멍청하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도무지 쓸모라곤 없는 사람이라는 걸 모두가 알 것 같아 그는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자존심을 굽히고 아이들이 모두 떠난 후에 담임 교사를 찾아갔다.
선생님은 안경을 쓴 젊은 남자였는데, 새아빠보다 훨씬 더 말라서 주현은 그나마 침착하게 그의 앞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거의 매일 교무실에 갔다. 아이들이 떠난 오후, 수업 시간에 나왔던 모르는 단어를 가득 적은 노트를 들고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그는 배우는 게 좋았다. 쓸모없는 식충이나 제 아비를 잡아먹으며 태어난 괴물에겐 새로운 지식 같은 게 필요 없으니, 배우는 순간마다 스스로가 더 나은 사람처럼 느껴져서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주현은 오늘도 선생님에게서 작은 사탕이나 초콜릿 따위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노트와 교과서를 끌어안은 채 위풍당당하게 교무실 앞에 섰다.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문을 열어젖혔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1학년인데도 공부에 열정이 있는 학생이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이름이 주현이였죠?”
그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칭찬받아 본 적이라곤 한 번도 없었다. 욕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었다.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가슴속이 자부심으로 부풀어 올랐다. 주현은 너무 기뻐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는데, 마음껏 웃어 본 적이 없어서 억지로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대부분 집에서 배워 오는 것들이라……. 수업 진도를 잘 따라가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요?”
“네. 가정에서 케어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것도 모르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옷도 매일 똑같고……. 신고해야 할까요?”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주현은 제 옷을 내려다보았다. 그나마 있는 옷 중에서 깨끗한 걸로 골라서 입고 오는 건데도 더럽게 보였다 생각하니 수치심이 눈앞을 가렸다.
“다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아이도 밝으니까 아직은 더 두고 보려고요.”
옷을 들어 퍼런 멍이 든 팔과 등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과 나는 모든 것이 괜찮다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날카롭게 부딪혔다.
그는 알려고 애써도 여전히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멍청한 아이였다. 남이 보기에도 그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티가 나나 보다.
주현은 그날 후로 교무실에 가지 않았다. 수업은 아직도 어렵고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았으나 그는 아는 척하며 꿋꿋이 앉아 있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멍청한 아이로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얼마 후, 새아빠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새 티셔츠를 샀다. 옷은 생각보다 너무 비쌌고, 그걸 알아챈 새아빠에게 두들겨 맞았지만 몸에 딱 맞는 티셔츠는 무척 깨끗해서 주현은 그것을 작은 승리라고 여겼다.
물론 그래 봤자 세 개에서 네 개로 늘어난 거라 남들 눈에는 여전히 가난하고 더러운 아이였지만 주현은 애써 그 사실을 모르는 척했다.
때때로 담임 선생님의 시선을 느꼈으나 주현은 단 한 번도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미소 짓지 않았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교무실에 찾아가는 걸 그만둔 주현에게 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지저분하고 기본적인 가정 교육도 받지 못한 아이는 단 한 문제도 풀어내지 못할지언정 수업 중에 졸거나 딴짓하지 않았다. 가진 것 없는 주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물론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늘 그렇듯.
* * *
주현은 가끔 새아빠가 TV 보는 걸 훔쳐보곤 했다. 그는 대부분 스포츠를 봤는데 가끔 뉴스를 보기도 했다.
뉴스에서는 에스퍼의 폭주에 대해서 보도하고 있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찍고 있는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건물이 무너지고 먼지가 흩날렸다. 에스퍼는 일반인, 하물며 가이드에 비해서도 한참 적은 터라 주현은 실제로 에스퍼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화면 속 에스퍼는 어린 주현이 보기에도 무척 이상했다. 몸을 가누기 힘든 것처럼 비틀거리며 머리를 붙잡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방출된 에너지가 사방을 부순다는 것이다.
가이드가 도착했지만 워낙에 주변 피해가 커서 접근이 쉽지 않아 보였다. 다른 에스퍼의 힘으로 억제된 에스퍼는 결국 가이드의 품에 안겼다.
누군가에게 포옹 받아 본 적 없는 주현은 그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저 에스퍼가 울음을 그친 이유가 정체 모를 가이딩이란 것 때문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포옹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