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로피컬 아일랜드 (30)화 (30/49)
  • “시공간을 초월한 건가?”

    “뭐, 일단 상상이니까.”

    “음.”

    “너도 상상해 봐. 지금 가장 원하거나 필요한 걸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헐리웃 배우라든가,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십수 년간 지키는 모델? 세계적인 자본가? 우호국의 오메가 공주님과 웨딩마치를 울리는 왕자님?”

    별하의 장난스러운 질문들에 파비안은 살짝 웃었다.

    “글쎄.”

    “갖고 싶은 거 없어? 갖고 싶었던 거라든지.”

    “갖고 싶었던 거라.”

    “어린 시절의 못 이룬 꿈 한두 가지쯤은 있잖아? 설마 없다고 하진 않을 테지?”

    그는 은은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별하는 세운 팔에 턱을 기대며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속삭였다.

    “난 누구처럼 걸고넘어지지 않을 테니 말해 봐.”

    파비안의 매끈한 양뺨에 음영이 지며 나직한 웃음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는 가시 잎을 입으로 가져가 느직이 씹었다. 저를 향한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일부러 마주하지 않고 불길을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너무 많아.”

    “응?”

    “밤을 새워도 모자를 만큼.”

    이번에는 별하의 웃음소리가 컴컴한 동굴을 울렸다.

    “그 정도였어?”

    “어렸을 때는 제법 잘나가는 공상가이자 망상가였었지. 밤마다 초상화 속 조상들이 내 방에서 모임을 갖는 줄 알았어.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소리에.”

    “몇 살 때?”

    “자아가 생길 무렵이니 유아기 때겠지?”

    별하는 어린 파비안의 모습을 상상했다. 작은 셔츠와 멜빵 반바지, 목이 긴 양말, 어른을 흉내 낸 가죽구두를 신고 지금과 같은 반짝반짝한 금발을 흩날리며 뛰어놀았을 어린아이에게 귀여움과 함께 커다란 애정을 느꼈다.

    파비안은 서두르지 않고 긴 호흡으로 말을 이었다.

    “공부방 구석에 오래된 파이프 관이 있었는데, 그곳을 통해서 네버랜드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 믿었었어. 꽤 한동안.”

    다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생겨났다.

    “귀여웠네. 파비안.”

    “음.”

    파비안은 과거의 기억에 잠긴 듯 잠시 말이 없었다. 모닥불의 기저를 내려다보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뜨며 가시 잎을 곱씹었다. 멀지 않은 숲속에서 낯익은 새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울려 퍼졌다. 별하는 제 팔에 옆머리를 기대어 그를 바라보았다.

    “더 없어? 밤새우는 건 무리지만 잠들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들어줄게.”

    파비안의 눈길이 별하에게로 향했다.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짧게 달싹였다. 그러자 별하의 두 눈이 크게 휘며 웃음소리가 번졌다. 지지 않고 곧바로 따라붙는 그의 한마디에 파비안의 반듯한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별하의 이야기가 끊어지면 파비안이, 파비안의 목소리가 멎어 들면 다시 별하가 말을 이어나갔다.

    밤이 깊어가는 동안 농담과 진담을 오가는 사소한 대화들이 쉬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 이어졌다.

    벽을 내리치기 전 파비안이 신호를 보내왔다.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별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햇빛이 비쳐드는 절벽의 구멍을 돌아보았다. 안벽에 힘을 가하면 구멍을 비롯해 동굴까지 무너질 수 있었다.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었지만 아침 일찍부터 안벽과 안벽 주변을 수차례 살펴본 그들이 의견을 모아 내린 결정이었다.

    별하와 파비안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같은 선택을 한 이유는 단순했다. 벽 너머에서 어떤 기척을 느낀 것이다. 기척의 정체는 미지의 ‘그것’만큼이나 모호했으나, 어쩌면 저들이 찾는 ‘그것’일지도 모를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것이었다. 벽의 두께를 살피던 파비안이 바닥과 닿은 아래쪽에서 지미한 틈을 발견하면서 의견은 하나로 모아졌다.

    “숨구멍이 있다면 압력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아. 무너질 가능성이 극히 낮아지게 되지.”

    별하는 파비안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반대편에서 무엇이 불쑥 나타날지 몰라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벽을 부수겠다는 신호를 보낸 파비안은 별하의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바닥에서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양손으로 움켜잡아서야 들 수 있는 그것은 길쭉하게 내뻗은 형태로, 흡사 부피를 늘린 야구방망이 같았다. 파비안은 그것의 밑단을 잡고 안벽을 향해 겨눴다. 그보다 조금 더 가벼운 것을 든 별하도 반대편에 섰다.

    “하나.”

    파비안은 담담히 카운트다운을 했다.

    “둘.”

    “두울.”

    별하는 그를 따라 작게 읊었다.

    “셋.”

    마지막 숫자가 파비안의 입술을 떠나는 순간 둘은 동시에 손에 든 것을 휘둘렀다. 콰앙― 쾅― 무거운 나뭇가지들에 의해 타격을 받은 안벽이 커다란 소음을 내며 흔들렸다. 쿠궁― 절벽의 구멍에서 충격을 전해 입은 돌멩이들이 우수수 굴러떨어졌다.

    파비안은 별하에게 단호한 눈길을 보냈다.

    “한 번 더.”

    “하나둘, 셋―”

    함께 쾅― 내려치자마자 안벽이 모래성처럼 우르르 무너져내렸다. 일순 새카만 안쪽에서 서늘한 공기가 훅 밀려 나왔다.

    별하는 서둘러 천장과 주변의 안벽을 확인했다. 동굴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평화로웠다.

    “……성공, 인가?”

    파비안은 고개를 까딱이며 바위틈에 꽂아놓은 횃불을 손에 들었다. 바닥을 나뒹구는 돌덩이들을 밟고 올라서서 시커먼 속내를 내보인 안쪽으로 불을 비췄다.

    불그스름한 빛무리에 드러난 공간은 이쪽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온도가 확실히 더 낮기는 했으나 그 외의 차이점은 찾을 수 없었다. 벽을 부수게 만든 기척도 지금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파비안은 안으로 들어가 보려는 듯 허리춤에 매단 돌칼을 뽑아 들었다.

    “별하는 잠시 여기 있어. 금방 확인하고 올 테니까.”

    강한 한기를 느낀 별하는 제 팔을 쓸며 불안한 듯 말했다.

    “이상한 독가스 같은 거 나오진 않겠지?”

    “그랬다면 우리 둘 다 벌써 쓰러졌을 거야.”

    “흐읍.”

    별하는 급히 호흡을 멈췄다가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파비안의 시선에 느직이 날숨을 내쉬었다.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 같아서.”

    파비안은 희미한 한숨을 뱉으며 별하의 뺨을 스치듯 살짝 쓸었다. 열감이 느껴지는 피부에서 금방 손을 떼고 안벽으로 돌아섰다. 상체를 숙여 먼저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유황 냄새일 거야. 오래된 석회동굴이니.”

    별하는 파비안의 손길이 닿았던 제 뜨거운 뺨을 슬쩍 문질렀다. 곧바로 바닥에 던져놓은 횃불을 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둘로 갈라진 동굴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천장도, 벽도, 바닥도 이전 동굴과 똑같았다. 다만 입구를 막은 거대한 기둥 뒤편에서 불분명한 기척이 들려왔다. 벽 너머로도 간간이 들리던 바로 그것이었다.

    횃불을 든 파비안은 곧장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불빛에 놀란 어둠이 멀찍이 달아나면서 낯선 기척의 정체가 오롯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제 짐작이 맞았다는 듯 그다지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막 낮은 벽을 통과한 별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물이야.”

    “물?”

    별하는 반색하며 단걸음에 파비안의 곁으로 다가갔다. 빛이 잘 닿지 않는 모퉁이에 갈라진 틈이 나 있었는데 깊이는 얕았고 폭은 널찍했다. 틈 안쪽으로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파비안은 돌칼의 날을 물속에 담갔다가 밖으로 꺼내 냄새와 색을 살폈다. 무색무취의 것을 확인하고는 이번에는 제 손을 담갔다. 차가운 그것과 암석의 틈새를 더듬어 만지며 말했다.

    “수원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로군.”

    별하는 부쩍 오한이 들어 어깨를 움츠렸다.

    “수원지?”

    “백색 강이 시작되는 곳.”

    “아.”

    파비안은 손안에 물을 담아 입으로 가져갔다. 입안에 잠시 머금은 후 천천히 목으로 넘었다. 식도를 타고 부드럽게 내려가는 냉수는 상당히 깔끔했다.

    “별하도 마셔봐.”

    “으음……. 난 괜찮아. 아까 잎을 많이 씹었더니…….”

    별하는 별로 내켜 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정체 모를 액체에 대한 걱정보다도 이상하리만치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별하?”

    파비안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얼른 물러나 무너진 벽으로 향했다.

    “아, 아무것도 없는 거 확인했으니까 이제 슬슬 움직일까?”

    “…….”

    “절벽 따라가다 보면 오늘은 뭐라도 발견할 수 있겠지. 한시라도 빨리, 어서 ‘그거’를 발견해야 하는데.”

    별하는 서둘러 거대한 기둥을 돌다가 작게 튀어나온 바위에 발이 걸려 휘청했다. 뒤로 다가온 파비안이 그의 어깨를 붙들어 중심을 잡았다. 별하는 어깨를 움츠리며 파비안을 올려다보았다.

    “파비안…….”

    “…….”

    파비안의 눈길이 별하의 상기된 얼굴을 스쳐 그의 목덜미로 내려갔다. 한기를 느끼면서도 땀이 촉촉하게 배어난 피부를 눈을 느릿하게 쓸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여 목덜미 가까이에 코끝을 가져다 댔다. 그가 숨을 들이마시기 전에 별하가 그를 거부하며 넌지시 어깨를 비틀었다.

    “여기 너무 답답해. 미안, 파비안. 나 먼저 나갈게.”

    쫓기듯 무너진 벽으로 향하는 그에게로 나직한 저음이 날아들었다.

    “별하, 너 혹시…….”

    072.

    별하는 대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 거.”

    “…….”

    “여기 추워서, 갑자기 그래. 오래 묵어서 안 좋은 공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나가면 괜찮아질 거야.”

    파비안은 별하의 등 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무너진 벽 앞에서 걸음을 멈춘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되물었다.

    “괜찮은 게 정말 확실해?”

    동굴 냄새 사이로 확연하게 풍겨 드는 페로몬이 상당히 진했다. 발정기 때만큼은 아니었으나 평소보다 짙어진 페로몬의 강도만큼 파비안의 페로몬 역시 밀도를 더했다. 별하와 함께하면서부터 의식적으로 참고 억누르고 있었던 것들이 오메가의 페로몬 발산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

    “…….”

    그들은 지금 바로 곁에서 서로의 진한 페로몬을 느끼고 있었다. 별하는 무너진 벽 너머의 어슴푸레한 음영을 응시하며 메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파비안.”

    파비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외면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등을 진 채로 서 있는 별하를 똑바로 마주 보고 있었다.

    “왜 그러지, 별하?”

    “지금 ……하면, ……되는 거야?”

    작은 중얼거림을 온전히 듣지 못한 파비안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반듯한 얼굴에 드리운 음영도 따라서 느릿하게 움직였다.

    “미안하지만, 다시 한번 말해 주겠어?”

    “……하면 말이야.”

    여전히 별하의 목소리는 어둠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작은 물길이 졸졸 흐르는 소리와 횃불이 타는 소리만이 동굴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던 별하는 조심스럽게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일렁이는 불빛에 발그스름하게 홍조가 피어오른 별하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저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파비안을 쳐다보며 다시 한번 입술을 달싹였다.

    “지금 섹스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

    파비안은 별하의 얼굴을 살폈다. 발열에서 비롯된 상기된 피부, 진한 페로몬, 강한 욕구, 히트의 여러 가지 전조 증상이 그의 전신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히트가 왔나?”

    완전히 뒤돌아 선 별하는 손을 내밀면 닿을 거리에 서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아직. ……곧 어쩌면.”

    오메가의 히트에 따라 알파의 러트가 불시에 찾아오기도 했기에 어느 쪽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만약 지금 섹스를 하게 된다면 거의 100퍼센트의 확률로 임신할 가능성이 있었다. 별하는 초조한 듯 입술을 잘근거렸다.

    “아직 준비 안 됐는데…….”

    파비안은 큰 동요 없이 거리를 두고 서 있었지만 점점 더 진해지는 알파의 페로몬이 그의 상태를 말해 주고 있었다. 별하의 페로몬에 교감한 그는 분명 흥분을 참고 있었다.

    “그럼 섹스하지 않으면 되지.”

    별하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이었던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전처럼 도망가 버리지 않는 그에게로 파비안이 성큼 다가갔다.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제 허리에 와락 팔을 감는 별하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그의 뺨에 입술을 붙였다.

    뜨겁게 열이 오른 뺨에 제 뺨을 문지르듯 붙였다가 다시금 짧게 키스했다. 고개를 크게 기울여 녹아들 듯이 달콤한 페로몬이 풍기는 목덜미에 코끝을 스치며 속삭였다.

    “섹스만 하지 않으면 되지.”

    “하아……. 파비안…….”

    “기분 좋게 해줄게. 별하. 히트가 오지 않을 정도로만.”

    별하는 곧장 파비안의 목 뒤로 한 팔을 둘러 제게로 끌어당겼다. 코끝이 부딪치자마자 입술이 맞닿았다. 서로의 감촉을 다급하게 더듬던 움직임은 금세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렸다. 벌어진 사이로 가쁜 숨결과 새빨간 살덩이들이 순식간에 얽혀들었다.

    “으음…….”

    별하는 횃불을 멀리 던지고 파비안의 떡 벌어진 어깨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셔츠 아래로 손을 밀어 넣어 단단한 근육이 돋은 등을 더듬었다. 파비안은 횃불을 손에 든 채로 별하의 젖은 점막 안으로 파고들었다. 치열을 훑고 말캉한 살덩이를 누르며 자극하자 금방 투명한 타액이 혀 밑으로 고여 들었다. 파비안은 어떤 과일보다 다디단 그것을 빨며 별하의 등허리를 부드럽게 쓸었다.

    “으읏.”

    그에 별하는 급소를 공격당한 것처럼 허리를 비틀며 파비안의 어깨에 매달렸다. 파비안은 제 목덜미로 숨은 별하를 뒤쫓아 가벼운 입맞춤을 남기고 그를 가까운 바위에 앉혔다. 횃불을 가까운 바위틈에 끼워 넣으며 그의 앞에 무릎을 꿇어앉고 물었다.

    “바지 벗겨도 될까?”

    별하는 흐트러진 숨을 얕게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비안의 손은 대답이 떨어지기 전에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별하의 청바지 버클이 열리고 곧 익숙한 모양의 팬티가 드러났다. 헐렁한 팬티는 골반 아래까지 내려가 엷은 체모 아래 페니스를 간신히 감싸고 있었다.

    파비안은 별하의 팽팽해진 아랫배에 입술을 붙이며 눈을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동굴의 까마득한 어둠과 타오르는 불빛의 경계에 자리한 오드아이는 오묘한 색으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팬티를 벗기겠다는 듯 그곳에 손을 대며 치어다보는 그에게서 별하는 눈을 떼지 못했다. 멋대로 질주하는 호흡을 애써 다잡으며 긴장감이 역력한 모습으로 파비안이 하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파비안은 반들반들하게 젖은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렸다.

    “긴장 풀어. 별하가 원하지 않은 건 나 역시도 원하지 않으니까.”

    “으응…….”

    파비안은 별하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팬티를 끌어 내렸다. 지금까지 입고 있었던 게 신기할 만큼 거리낌 없이 쑥 내려오는 그것을 청바지와 함께 무릎 아래까지 내렸다. 역시나 발기한 페니스가 서늘한 공기 속에서 드러났다.

    별하는 이를 물고 고개를 돌렸다. 흥분해 있었지만 아직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아……. 파비안.”

    “괜찮아.”

    파비안은 눈앞에 드러난 별하의 마른 허벅지와 치골, 아랫배에 쪽쪽 입을 맞췄다. 긴장한 피부 위에 따뜻한 감촉이 스칠 때마다 별하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쭉 뻗은 쇄골이 도드라지기도 하고 가슴팍이 급하게 부풀었다가 서둘러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는 별하의 살짝 벌어진 무릎에 입술을 붙이며 그의 남방을 건드렸다. 눅눅한 남방을 지나 밑단이 너덜너덜해진 티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납작해진 복부를 더듬다 위로 올라가 명치 주변을 맴돌았다. 별하가 숨을 가쁘게 들이켜는 찰나 부풀어 오른 가슴을 손끝으로 쓸었다.

    “흣.”

    눌려 있던 살덩이가 작은 마찰에도 꼿꼿하게 일어섰다. 파비안은 고개를 돌린 별하의 긴 목덜미를 핥으며 단단해진 가슴 돌기를 손끝으로 굴렸다. 문지르듯 쓸다가 부드럽게 튕겨 올리며 살짝 잡아당기자 별하의 허리가 꿈질거렸다.

    별하는 새어 나오는 신음을 참으려 이를 물었다. 파비안이 흰 얼굴을 들이밀어 별하의 꾹 다문 입술에 부딪혔다. 열지 않으려는 점막을 억지로 갈라 안으로 파고들어서는 신음을 막는 혀를 집어삼킬 듯 빨았다. 금세 봉긋해진 젖꼭지와 그 주변을 계속해 자극하자 별하는 어깨를 움츠리며 뒤로 슬쩍 물러났다. 동굴 안벽에 등이 부딪혀 피할 길이 없자 고개를 저으며 헐떡였다.

    “으음, 응, 아파……. 읏, 파비안…….”

    파비안은 손을 떼고 입술을 들이밀었다. 티셔츠와 남방을 목 위까지 밀어 올려 곤두선 젖꼭지를 혀로 쓸었다. 민감해진 곳은 부드러운 자극에도 말초신경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꼈다. 아프지 않게 아이스크림을 먹듯 한참 핥다가 그 주변까지 한입에 머금어 강하게 빨자 별하의 목 안에서 열에 들뜬 숨결이 새어 나왔다.

    “흐응…….”

    애처롭게 발기해 있는 별하의 페니스에서 말간 체액이 주르륵 떨어졌다. 페니스도 페니스였지만 엉덩이 사이도 질척할 대로 질척해져 있었다. 별하는 제 젖꼭지를 일부러 더 자극적으로 핥고 빠는 파비안을 내려다보며 새빨갛게 달아오른 입술을 짓이겼다.

    “파비안, 거긴 그만…….”

    파비안은 못 들은 척 그의 등허리를 쓸었다. 움찔거리는 등허리와 허벅지를 만지작거리면서도 집요한 애무를 멈추지 않았다. 파비안이 하는 대로 받고만 있던 별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바위 위로 한쪽 다리를 접어 올렸다. 벌어진 둔부 사이로 한참 전부터 달아올라 있던 성기가 드러났다. 그곳으로 손을 밀어 넣어 더듬자 긴장한 구멍이 안쪽으로 강하게 우므러들었다.

    “읏.”

    별하는 아직 한 번도 스스로 뒤를 만져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 어서 몸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거대한 해일에 쓸려 심해까지 갈 것 같은 아뜩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느꼈던 위화감이었다. 곧 히트가 올 것이라는.

    이보다 더 강성해져 발이 묶이기 전에 잠시라도 열을 배출하고 진정시켜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래야 파비안과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별하의 볼록한 젖꼭지를 아기처럼 빨던 파비안이 돌연 떨어져나왔다. 제 구멍을 만지작거리며 손가락을 삽입하려는 별하를 올려다보며 흐트러진 한숨을 불어냈다.

    “날 자극하지 마. 별하…….”

    별하의 손을 부드럽게 저지하며 제 손을 가져다 댔다. 중지로 질척하게 젖은 엉덩이골을 길게 쓸었다. 별하는 눈썹 끝을 내리며 끙끙거렸다.

    “자극하는 거 아니야. 어서 끝내야 하잖아…….”

    “흐음…….”

    파비안은 별하의 일그러진 얼굴을 올려다보며 손가락을 느릿하게 움직였다. 움찔거리는 한 점을 문지르다 중지를 곧게 세워 주름을 눌러 들었다. 열리지 않으려 꽉 조여든 내벽의 한점을 누르며 서서히 밀고 들어갔다. 별하가 나직한 신음을 흘리는 순간 페니스처럼 세운 중지가 내벽으로 온전히 박혀 들었다.

    “하읏.”

    파비안은 곧장 손을 놀렸다. 중지를 가볍게 삽입하다 검지를 더해 안을 파고들었다. 점막에서 스며 나온 애액으로 삽입이 부드러웠다. 발끝으로 바위를 간신히 딛고 제 한쪽 무릎을 끌어안은 별하는 차곡차곡 쌓여 있던 흥분감과 몸이 벌어지는 감각까지 더해 금방 사정감을 느꼈다.

    내벽의 간헐적인 움직임으로 그의 상태를 감지한 파비안이 약지를 더해 기세를 몰아갔다. 안쪽이 크게 벌어진 별하는 순식간에 정액을 쏟아냈다.

    “흐, 읏……!”

    파비안은 별하가 사정하기 전 움찔거리는 그의 페니스를 입에 머금었다. 점막에 쏟아져 들어오는 뜨뜻무레한 정액을 선뜻 목으로 삼키며 귀두와 요도에 남은 정액까지 빨아먹었다.

    “아아…….”

    별하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제 아랫도리에 밀착한 이를 아연히 내려다보았다.

    볼일을 끝낸 파비안은 느직이 떨어져 나갔다. 별하의 따뜻한 안쪽에 박힌 손가락을 아쉬운 듯 꺼내고 젖은 페니스를 다시 한번 깊게 빨아주었다. 팬티를 입혀주려 바위에 접어 올린 다리를 내리는데 별하가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073.

    “파비안…….”

    방금 파정을 끝낸 별하의 목소리에는 가시지 않은 흥분감이 고여 있었다.

    “너도 빨아줄게.”

    “…….”

    “섰잖아.”

    파비안은 선뜻 응하지 않았다. 팔목을 붙잡힌 채로 느직이 몸을 세워 일어나서는 상기된 별하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속옷이 없어 불룩하게 솟은 바지 앞이 드러났지만 그는 그것을 해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파비안은 눈을 내리깔고 별하의 얼굴을 가만히 쓸었다.

    별하는 고개를 숙여 파비안의 얼룩덜룩한 손등에 입술을 눌렀다. 힘이 실리지 않은 손목을 놓아주고 곧장 그의 바지 버클을 열었다. 슬쩍 뒤로 물러나는 파비안을 제게로 강하게 끌어당기며 거의 다 열린 지퍼를 내렸다. 작은 가림막도 없이 훤히 드러난 그 사이로 암석처럼 발기한 페니스가 치솟았다.

    별하의 목울대가 크게 상하로 움직였다. 기분 탓일 테지만 이전보다 더 커진 것만 같았다. 흉기에 가까운 물건이 제 안을 수없이 점령해 왔었던 게 믿기지 않았다. 볼 때마다 두려웠다. 뒤쪽이 그렇게나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으음…….”

    별하는 커다란 페니스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입에 물지 고민하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뒤로 고개를 젖혀 파비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촉촉하게 빛나는 검은 눈동자는 페니스를 빨아도 되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혹 잘못 건드려 히트나 러트가 오면 큰일이 나기에.

    “빤다?”

    파비안은 긴 한숨을 불어내며 번들거리는 입술을 열었다. 새빨갛게 젖은 혀로 입술에 묻은 것을 길게 핥았다.

    “조금만.”

    별하는 곧바로 입술을 벌려 파비안의 페니스를 머금었다. 큼직한 귀두만으로도 입 안이 꽉 차 더 이상 넣을 수가 없었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귀두를 겨우 빨다가 입에서 꺼냈다. 유연하게 휘어진 페니스 기둥을 혀로 핥으며 파비안을 힐긋 올려다보았다.

    파비안은 반짝거리는 눈을 내리깔고서 제 성기를 애무하는 별하의 입술에 빠져 있었다. 눈길이 마주치자 손을 들어 별하의 뒷머리를 감싸듯이 쓰다듬었다.

    별하는 열심히 기둥을 핥다가 다시금 귀두를 입 안에 머금었다. 할 수 있는 만큼 그것을 안으로 들여 빨자 뒤섞인 체액이 흥건하게 고여 들었다. 미처 삼키지 못한 것들이 입술 밖으로 흘러내렸다. 별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세워 파비안에게 밀착했다. 고개를 기울여 흥분한 페니스를 강하게 흡입했다.

    별하에게 몸을 맡긴 채 우두커니 서 있던 파비안의 숨결이 점점 거칠어졌다. 자극당한 페니스가 젖어 들수록 별하의 뒷머리를 감싼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하아…….”

    “으음, 음…….”

    별하는 턱이 벌어지는 아픔에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페니스를 입에서 꺼내지 않았다. 파비안의 탄탄한 허벅지를 끌어안듯 붙잡고서 계속해 애무했다. 파비안은 사정감을 느낀 듯 나직이 신음했다. 의식적으로 억누르는 중에도 허리가 멋대로 움찔거렸다.

    혀 주변을 맴돌던 귀두가 순간 목 안쪽으로 파고들자 별하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파비안은 젖은 점막에서 빠져나가려 허리를 뒤로 물렸다.

    “이만 됐어.”

    별하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떨어지지 않았다. 파비안에게 매달려 페니스를 다시 깊게 목으로 넣었다.

    “읏, 별하.”

    파비안은 그를 억지로 떨어뜨리려 했지만 페니스가 빠져나오기 전에 단호하게 붙잡혔다. 제 입 안에 싸라는 뜻이었다. 파비안은 낮게 혀를 차며 별하의 뒷머리를 제게로 끌어당겼다. 허리를 얕게 놀려 보드라운 점막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미약하게 새어 나오는 신음을 눌러 막으며 점막을 짓누르다 이내 급하게 안쪽에서 정액을 흩뿌렸다.

    “으음.”

    파비안은 감촉을 음미하듯 천천히 페니스를 꺼냈다. 별하는 목젖을 찌르던 페니스가 빠져나가자마자 주저앉았다.

    “흐읍, 하아…… 하아…….”

    목울대를 움직여 뜨겁게 달궈진 정액을 넘기는 데도 희뿌연 한 방울이 턱 끝으로 흘렀다. 파비안이 허리를 숙여 앉아 별하의 입술을 한입에 머금었다. 별하의 부은 혀를 빨며 삼키지 못한 체액들을 말끔히 가져간 후 떨어졌다.

    그는 입 안에 머금은 것들을 멀리 � 뱉어내고 별하를 일으켜 세웠다.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암반수로 데려가 입 안을 헹구도록 했다. 좀 전까지 정신없이 서로의 페니스를 욕심내던 그들은 지금은 멀찍이 떨어져서 나누는 말 없이 묵묵히 할 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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