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로피컬 아일랜드 (20)화 (20/49)
  • “으음.”

    그는 과즙으로 번들번들한 입가를 닦으며 오랜만의 만복감을 만끽했다. 조금만 더 휴식을 취한 뒤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 궁리할 생각이었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쉬는데 옆에서 불쑥 두리안 과육을 내밀었다. 별하는 옆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내저었다. 과일을 먹기 시작한 후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쳐다보던 두두는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별하의 입가에 과육을 들이밀며 더 먹으라고 채근했다.

    별하는 눈썹을 그러모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만해. 안 먹는다고 했잖아.”

    “……?”

    “난 내버려 두고 너나 먹으라고.”

    목소리에 잔뜩 힘을 주고 거부했지만 상대에게 통하는 듯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두두.”

    “그래. 그만해.”

    “두두.”

    “하아…….”

    별하는 이제 결정해야 할 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남은 과일은 깨끗하게 포기할 생각이었다. 저에게 온 신경이 집중된 두두에게서 벗어나려면 되도록 몸이 가벼워야 했다. 창을 손에 쥐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한 악력이 반대편 손목을 움켜잡았다.

    “―?”

    “두. 두.”

    두두는 별하가 자리를 뜨지 못하게 완강히 저지했다. 잠시나마 미소가 깃들었던, 더없이 순수해 보이던 얼굴이 어느덧 본래의 험악한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당장 위력을 행사할 것 같은 분위기에 별하는 창을 꽈악 움켜쥐고서 붙잡힌 팔에 힘을 실었다. 최대한 버텼지만 무식할 정도로 강한 완력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곧 두두에게 끌려가 도로 자리에 앉았다.

    “빌어먹을. 두, 으윽.”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별하의 상의 앞을 움켜쥔 두두는 오묘한 눈으로 제 손에 잡힌 옷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몹시도 거추장스러운 거죽데기를 보는 듯한 눈길이었다. 대체 이런 것을 왜 걸치고 있느냐는 듯한.

    강제로 자리에 앉은 별하는 시근거렸다. 알파 두두를 완력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현실을 알고는 있지만 이런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엄습하는 패배감과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알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이를 악다물고 참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048.

    별하는 혈색을 잃은 입술이 떨릴 정도로 분노하면서도 창을 쓰지 않았다. 장거리 무기는 민첩성이 두드러진 단거리 무기와 달리 정확한 한 타를 노려야 했다. 잘못 들어간 촉을 거둬들이는 동안에 자칫 이쪽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기에. 정확한 한 타, 그때가 올 때까지는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두두는 그런 별하의 심리를 정말 모르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다시금 두리안 과육을 들이밀었다. 별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으읍, 필요 없어. 필요 없다고!”

    두두는 완고하게 거부하는 이의 입술에까지 질척한 과육을 가져다 댔다. 음식을 섭취해 배를 불린다는, 식사나 끼니 개념의 행위 따위가 아니었다. 제 성의를, 제 마음을 받아들이라는 구애의 행동이었다. 별하가 계속해 거부하고 외면하자 완력을 써서 그를 제게로 끌어당겼다.

    “후! 후!”

    “윽! 하지 마, 망할 두두!”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는 이의 손목을 부러뜨릴 듯 흉포하게 옥죄며 압박했다.

    “그만둬! 무슨 짓을 한다 해도 난 너와 그런 관계가 되지 않아! 내 짝은 네놈이 아니야! 내 짝은―”

    “두! 두!”

    “으윽!”

    별하는 손목이 아작 날 것 같은 통증에 창을 힘껏 움켜쥐고서 두두를 노려보았다. 당장 눈앞의 가슴팍을 향해 예리한 촉을 내지를 듯 손등의 혈관이 도드라졌다. 그 때였다. 툭― 두두의 우뚝한 콧등 위로 희무스름한 액체가 떨어졌다.

    “……?”

    별하를 가뿐히 압제하던 그는 제 콧등을 타고 묽직하게 흘러내리는 그것을 손끝에 묻혀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곧 위를 올려다보았다. 별하 역시 붉으락푸르락한 낯빛으로 제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꽁지깃을 부산하게 털어내며 막 가지에 걸터앉은 앵무새가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빽! 빠비! 안―! 빠비아안―! 삐익!

    별하는 두 눈을 부릅떴다.

    “도, 도망간 게 아니었어……?”

    불현듯 두두의 얼룩덜룩한 안면이 일그러졌다. 그는 허리에 찬 돌칼을 꺼내 시끄러운 위쪽을 향해 던졌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한 차례 겪었던 앵무새는 급히 날개를 퍼덕이며 그것을 휙 피했다. 그에 더 분노한 두두는 뾰족한 껍질의 두리안을 집어 들었다.

    그가 손바닥에 온 힘을 실어 던지려는 찰나, 뒤쪽의 수풀 그늘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동시에 음영을 뚫고 튀어나온 흰 손이 두두의 누르스름한 만면을 움켜쥐어 그대로 지면에 내리찍었다.

    “윽, 흐억―!”

    철갑 같던 거구가 뒤로 나자빠지는 순간 별하를 억제하던 위력까지 한 방에 떨어져 나갔다. 서둘러 떨어진 별하는 느닷없이 나타난 인영을 보며 입술만 벙긋거렸다. 머리 위에서 앵무새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빠! 비안―! 빠비! 안―!

    갑작스러운 위력에 무방비하게 쓰러졌던 두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번뜩 몸을 세워 일어났다. 제 완력을 상회하는 위력이 다시 손을 뻗어오기 전에 바닥에서 돌칼을 집어 들고 멀찍이 물러났다. 후드득 떨어지는 코피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으며 이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파비안은 별하의 상태를 스치듯 살펴본 후 저에게 이를 드러내는 상대와 정면에서 대치했다. 곧이라도 움막에서의 육탄전을 이은 격전을 벌일 듯 서로를 주시하는 분위기가 살벌했다.

    별하는 얕게 숨을 할딱이며 제 앞의 훤칠한 인영을 아연히 쳐다보았다. 잔뜩 성이 난 두두가 거친 사자후를 연달아 게워냈으나 지금 그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좀 전까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마지막을 각오할 정도의 분노에 치를 떨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의미로 전율했다.

    “하아…… 하아…….”

    다시 눈길이 맞닿는 순간 별하는 달려갔다. 자연스럽게 팔을 내밀어 저를 맞이하는 파비안의 허리를 두 팔로 와락 끌어안았다.

    “파비안?!”

    파비안은 곧바로 별하의 등 뒤로 팔을 둘러 단단히 마주 안았다. 주변을 서성이는 상대에게 두 눈을 꽂은 채 아직 비냄새가 남아 있는 검은 머리칼에 따뜻한 키스를 전했다. 품 안의 사람에게만 들릴 나직한 저음으로 속삭이듯 물었다.

    “별하, 괜찮아? 다친 데는?”

    별하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파비안. 파비안…….”

    사냥에 실패한 맹수처럼 포효하던 두두는 별안간 입을 꾹 다물었다. 파비안에게 폭 안긴 별하를 뚫어지게 한참을 응시하다 이윽고 홱 돌아섰다. 미련이 남은 듯 잠시 멈춰 섰다가 이내 녹음 속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어 갔다.

    근린의 숲이 평온을 되찾았을 때 별하는 고개를 젖혀 파비안을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됐어?”

    주어가 없는 물음을 바로 알아들은 이는 고개를 저었다.

    “흔적도 없어. 아직은.”

    “그게 뭔지는 알아?”

    파비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확신을 할 수 없기에 대답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직 정체를 짐작조차 하지 못한 ‘그것’은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상태였다.

    원시림에 들어온 그때부터 검은 인영들이 뒤를 쫓는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별하는 쫓기는 기분을 느꼈다. 이곳에 오래 머무를수록 구조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원주민들이 내린 임무를 완성하기 전까지 원시림을 나설 수도 없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같은 절망감이나 우울감은 느끼지 않았다. 그것보다 파비안과 다시 만났다는 안도감과 기쁨이 비교할 수도 없이 컸다.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조우하게 되리라고는 사실 조금도 기대하지 않은 터라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마치 바로 눈앞에서 기적을 목격한 듯한 기분이었다.

    빠비! 아안―! 삐익! 빠아비안―!

    머리 위 가지에 앉은 앵무새가 빽빽거리며 고함을 쳐댔다. 한 번 입이 트인 후로 부리를 열기만 하면 파비안의 이름부터 뱉어냈다. 별하는 아무래도 의아한 듯 물었다.

    “네 이름, 언제 가르친 거야?”

    파비안의 반듯한 미안에도 의문이 떠올랐다.

    “별하, 네가 직접 가르친 게 아니란 건가?”

    “…….”

    별하는 제 기억을 이리저리 더듬었지만 앵무새에게 뭔가를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나무 구덩이의 위치라든가, 기상해야 할 시간이라든가, 밀림 속에서 희귀한 곤충을 잡는 방법을 배웠으면 배웠지.

    ……설마 잠꼬대를 한 건가?

    그 경우 말고는 파비안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고서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별하는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전과 달라진 현실을 절감하고 있는데, 깊은 잠재의식마저 들켜버리면 영영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실은 이미 한참 전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중이었지만.

    삐익! 빠비! 아아안! 빠아비안―!

    앵무새의 우렁찬 외침이 주변으로 메아리쳐 퍼져나갔다.

    “…….”

    “…….”

    별하와 파비안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실소를 터트렸다. 별하는 저를 응시하는 파비안과 눈길이 맞닿는 순간 뛰어오르다시피 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파비안은 가뿐하게 별하의 뒤를 받쳐 안았다. 벌어진 입술이 곧장 맞물렸다.

    우거진 풀숲에서 조급하게 엉겨 붙은 이들은 서로의 감각을 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른 시급한 사안들이 줄을 이었지만 달아오른 육체를 잠재워야 보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고가 가능했다.

    새 부리로 쪼듯이 맞대던 입맞춤은 점점 거칠어져 타액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해졌다. 파비안은 별하의 남방 단추를 뜯어낼 듯 풀어내고 티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홀쭉한 복부와 명치를 쓰다듬다가 가쁘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으읏…….”

    손에 잡히는 건 없었지만 작은 돌기가 금세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직 건드리거나 빨지도 않았는데 피부 뒤에 드리운 오한과 함께 젖꼭지가 단단해졌다.

    크게 벌어진 입술 사이를 질척하게 오가던 살덩이들이 아쉬운 듯 떨어졌다. 파비안은 별하의 상의를 벗겨 그의 뒤에 받쳐주고 등을 똑바로 세웠다.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금발을 쓸어넘기며 제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풀어 내렸다. 별하는 얼른 일어나 앉아 셔츠 단추를 함께 끌렀다.

    “파비안, 빨리…….”

    두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별하는 꽤나 흥분한 상태였다. 청바지 앞은 불룩했고 목덜미와 가슴팍이 진땀으로 반들거렸다. 단내가 진동하는 이를 가득 담은 오드아이에도 확연한 불길이 치솟았다. 파비안의 페니스 역시 이미 더할 수 없이 굳건하게 발기해 있었다.

    그들은 서둘러 상대의 바지를 벗기며 벌어진 입술 점막을 흡입하듯 물고 빨았다.

    “으음…….”

    별하는 축축하게 젖은 뒤쪽이 제멋대로 움찔거릴 때마다 이를 물고 발가락을 오그렸다. 다급했다. 어서 빨리 파비안을 원했다. 점막을 녹일 듯 뜨겁게 치고 드는 열기를 갈망했다. 별하는 그에게 애원하듯이 속삭였다.

    “빨리, 파비안. 어서…….”

    “별하.”

    “어서 너, 넣어줘.”

    파비안은 괴로워하는 별하를 제 위에 돌려 앉혔다. 팬티를 똑바로 벗길 새도 없이 엉덩이 아래까지만 벗겨내고 곧바로 삽입을 시도했다. 강하게 죄어드는 구멍에 열기둥을 밀어 넣으려는 찰나, 바로 옆에서 낯선 소리가 자그맣게 일었다.

    별하와 파비안이 하던 것을 멈추고 동시에 옆을 돌아보았다. 가까운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이쪽을 빤히 쳐다보던 앵무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다시금 부리를 달싹이며 좀 전보다 명확한 발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빠비아안! 어서 너어조오―!

    “…….”

    “…….”

    별하는 당장 폭발할 듯 흥분했던 것도 잊고 저를 따라하는 앵무새를 멍하니 마주했다. 파비안은 손에 잡히는 나무동강이를 그곳으로 던져 쫓아냈다.

    앵무새는 나무에 맞지는 않았지만, 대번 삑삑 혀를 차더니 마음이 상한 듯 휙 날아가 버렸다.

    049.

    빠아비아안―!

    앵무새의 외침이 점점 멀어져갔다.

    “…….”

    “…….”

    돌연한 정적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별하는 파비안의 다리 위에 뒤를 까고 앉은 채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역시나 묵묵히 앉아 있던 파비안이 가라앉은 저음으로 물어왔다.

    “계속, 해도 될까?”

    “…….”

    별하는 벌어진 뒤쪽과 맞닿아 있는 그의 페니스를 느꼈다. 앵무새의 방해에도 그의 페니스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벌겋게 단 쇠기둥처럼 발기해 있었다.

    파비안은 자신의 그런 상태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피부를 마주 댄 이 상황에서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별하는 당장 삽입을 원하는 파비안의 욕망을 전신으로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상기된 숨결이 뻣뻣하게 굳은 등줄기를 눅였다.

    “하아…….”

    별하는 긴 한숨을 내쉬며 제 어깨 너머를 돌아보았다. 별하의 옆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파비안은 눈길이 마주치자 참았던 숨을 불어내듯 깊게 호흡했다.

    그는 제 위에 엉거주춤하게 걸터앉은 이를 가까이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키며 짐짓 차분한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아니면 장소를 옮겨볼래? 좀 더 외진 곳으로.”

    별하는 우거진 수풀 속에서도 반짝반짝한 오드아이를 들여다보며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지금 그럴 정신이 있어?”

    파비안은 눈길을 내리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실크커튼처럼 흘러내리는 금발을 내버려 둔 채 나직이 대답했다.

    “없지.”

    “…….”

    다시 눈길이 달라붙었다. 파비안은 입꼬리를 흐릿하게 당겨 올리며 짧게 덧붙였다.

    “예의상.”

    별하는 말없이 일어나 똑바로 돌아앉았다.

    파비안과 가슴을 맞대고, 그의 어깨를 끌어안을 수 있는 이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자신하지 못했다. 온갖 가정들을 떠올리며 끝을 예감했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수없이 되새김질하며, 도무지 현실 같지 않은 악몽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도 꿈이 아닐까……?

    피부로 전해지는 열기와 파비안만의 강렬한 체향, 귓가를 간지럽히는 달콤한 목소리, 기분 좋은 압박감과 무게감, 모든 것이 눈앞에 살아 있는데도 꿈속에서 만난 것처럼 아득했다. 이러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순간 손에서 놓칠 것만 같았다. 눈을 뜬 채로 다시 빼앗길 것만 같아 미칠 듯이 두려웠다.

    별하는 눈앞의 너른 어깨와 등을 힘껏 끌어안았다. 그러자 파비안 역시 강한 힘으로 별하를 끌어당겼다. 맞닿은 눈길이 서로의 동공으로 빨려드는 순간 입술 점막이 깊게 맞물렸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달아오른 살덩이들이 조급하게 얽혀 들며 젖은 점막을 파고들었다. 파비안은 페니스처럼 세운 혀로 별하의 혀 밑을 찔렀다. 샘물처럼 흐르는 타액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빨아먹으며 치열을 훑고, 갈 곳을 잃은 채 움찔거리는 혀를 뽑아낼 듯 강하게 빨았다.

    “흐응…….”

    미처 삼키지 못한 침이 입술 밖으로 흘러내렸다. 두 뺨을 불그스름하게 물들인 별하는 어떻게 해도 현실이라고밖에는 믿을 수 없는 선명한 쾌감에 신음했다.

    “파비, 안…….”

    파비안은 제 위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은 별하의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었다. 이끼가 깔려 흙바닥에 붙인 무릎과 매끈한 종아리까지 천천히 쓸어내리며 놀라지 않게끔 어루만졌다. 지나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와 벌어진 엉덩이를 만지작거리자 별하는 금방 흥분했다.

    별하는 파비안의 쭉 뻗은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묽은 체액이 흐르는 제 페니스를 그의 단단한 복부에 대고 문질렀다. 말뚝처럼 우뚝하게 치솟은 페니스와 부딪치자 두 손으로 함께 감싸 쥐고 급하게 훑어 올렸다.

    “흐으, 파비…….”

    “으음.”

    파비안은 그런 별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발그레한 뺨과 땀방울이 맺혀 든 이마에 끝없이 입술을 누르며 절정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꾸물꾸물 새어 나온 쿠퍼액에 손 안의 페니스들이 흠뻑 젖어 들었지만 누구도 사정하지 않았다.

    찌걱찌걱찌걱― 별하는 가쁘게 헐떡이며 허리를 비틀었다.

    “파비안…….”

    뜨겁고 부드러운 손바닥이 조금은 어설프게 귀두를 자극할 때면 파비안의 곧은 눈썹이 희미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꿈질거리는 별하의 등허리를 쓸어내렸다. 군살이라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마른 등허리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오다, 벌어진 엉덩이를 조금 강하게 움켜쥐었다. 통증을 느낀 별하가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파비안은 곧장 우므러드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으읏.”

    훤히 벌어진 중심부에서부터 느껴지는 열감은 젖을 대로 젖어 있었다. 주름을 깊게 지으며 바짝 조여든 구멍 주변이 온통 질퍽했다. 허벅지 뒤쪽으로 흘러내리는 애액은 어떤 과일보다도 단냄새를 풍기며 눈앞의 알파를 유혹했다.

    파비안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흐트러지려는 호흡을 다잡았다. 그가 아직 이성을 유지하는 데 반해 별하는 거의 막다른 길에 몰린 형세였다. 옴폭한 구멍과 그 주변으로 어떤 자극도 가해지지 않았는데도 긴박하게 빠끔거렸다.

    더없이 향긋한 체향을 풍기는 목덜미에서 고개를 든 별하는 그렁그렁하게 젖은 눈으로 파비안을 올려다보았다. 잔뜩 억누른 목소리가 뜨문뜨문 새어 나왔다.

    “이, 제 그만…….”

    별하의 엉덩이 둔덕을 쓰다듬던 파비안이 안쪽으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철옹성처럼 오므라드는 주름을 느릿하게 더듬다 한 점을 눌러 드는 순간 별하는 별안간 제 손 안에다 사정했다.

    “흐, 읏…….”

    검지와 중지가 수축하는 내벽을 사정없이 갈랐다. 예민하게 달아오른 몸이 벌어지는 통증에 별하는 헐떡였다. 정액을 흘리다 말고 엉덩이를 뒤로 빼 물러나려 하자 파비안이 그의 허리를 붙들어 저지했다. 곧바로 손바닥이 엉덩이를 떠밀어 올릴 때까지 깊게 밀어 넣었다.

    “아으으…….”

    “힘 빼, 별하.”

    안쪽을 점령하는 순간 손가락을 살짝 구부려 내벽을 빠르게 오갔다. 한 곳만 집요하게 찔러대는 이물에서 벗어나려 허리를 비틀던 별하는 급히 파비안의 페니스를 움켜쥐었다. 열기에 도취된 눈동자들이 깊게 얽혀들었다.

    턱 근육을 세우고 묵묵히 손을 움직이던 파비안이 돌연 그것을 쏙 빼냈다. 풀렸던 주름이 다시 우므러들기 전에 별하의 정액으로 질척한 페니스를 안쪽에 힘껏 박아넣었다.

    “흐으, 아읏……!”

    “흠.”

    뜨거운 기둥에 꿰뚫린 구멍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파비안은 별하의 깊은 안쪽에 페니스를 묻은 채로 그의 젖은 피부 이곳저곳에 입술을 눌렀다. 돋아난 오한을 혀로 쓸어 위로하며, 놀라 움츠러든 상대를 잠시 기다렸다.

    별하는 섹스를 할 때마다 매번 느끼는 통각에 몸을 떨었다. 이제 익숙해질 법한데도 흉기가 뱃속에 틀어박힐 때면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극렬한 감각에 시달렸다. 몸뚱이가 반으로 찢겨 죽을 것만 같았다. 금방 쾌감을 느낄 터였지만 시작은 항상 버거웠다.

    “으음…….”

    뚝 끊겼던 별하의 호흡이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한 파비안은 가는 허리를 잡아 제게로 밀착시켰다. 빠듯하게 얽혀 있던 성기가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렸다.

    “아앗, 읏…….”

    “하아…….”

    내벽에 한가득 들어찼던 페니스는 곧장 빠져나갔다. 애액과 정액에 젖어 번들거리는 기둥이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가 굵직한 귀두가 주름을 통과하기 전에 유연하게 허리를 쳐올려 다시 점막을 파고들었다.

    별하는 신음도 내지 못하고 파비안의 어깨에 매달렸다. 달라붙은 눈길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서로의 육체를 핥았다. 안쪽 깊이 박혀 들었다가 미끄덩하게 빠져나가고 다시 한계치까지 파고들었다가 빠져나가는 일련의 행위가 느릿하게 반복됐다.

    식은땀을 흘리던 별하가 더 이상의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됐을 때, 통증보다 더 강렬한 감각이 눈을 떴을 때 파비안의 허리 짓에 힘이 실렸다. 바닥에 붙인 별하의 무릎을 똑바로 세우고 우므러든 안쪽에 단단하게 부푼 하반신을 부딪혀 왔다.

    “흣, 으읏! 읏!”

    “으음.”

    금세 속력이 붙어 두 육체가 부딪칠 때마다 거친 살 마찰음이 일었다. 퍽퍽퍽― 오후의 햇빛이 미미하게 비쳐드는 우거진 수풀 속에 별하의 열띤 신음과 파비안의 억누른 숨결만이 떠돌았다. 한데 뒤섞인 체액이 맞물린 곳에서 뚝뚝 떨어졌다.

    별하는 제 허리가 떠밀릴 정도로 강하게 부딪쳐 오는 파비안의 위력에 속수무책으로 뒤를 열었다. 열이 오른 기둥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내벽을 조이며 압박하고 밀어내도 굳건하게 안을 찔러 들었다.

    “흐으응, 읏…….”

    파비안의 열기와 페로몬에 잠식당한 별하는 오직 쾌감밖에 느끼지 못했다. 모든 감각이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금방 새로운 절정에 다다라 눅진하게 젖은 허리를 뒤틀었다.

    긴박한 조임을 느낀 파비안은 더 과격하게 허리를 쳐올렸다. 경련하듯 수축하는 점막을 단박에 갈라 파고드는 순간, 별하는 파비안의 어깨를 긁으며 다급히 파정했다.

    “앗, 하으읏……!”

    “흐음.”

    희묽은 정액이 파비안의 근육이 돋은 복부에 쏟아졌다. 흙이 묻은 발가락을 오그리며 남은 정액을 맥없이 떨구는 별하에게 돌진해 들던 파비안이 불쑥 자세를 바꿨다. 별하의 양쪽 무릎 뒤로 팔을 밀어 넣어 가볍게 들어 올렸다.

    “잠, 파비안. 흐으…….”

    “내 어깨 잡아. 안 떨어지게.”

    “파비, 파비안…….”

    별하는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떨어지지 않으려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잠시, 잠시만 쉬어. 읏, 잠깐이라도.”

    “괜찮아, 별하. 천천히 할게.”

    050.

    “흐읏. 아니, 파비안. 천천히 하는 게, 읏, 문제가 아니야.”

    “무리 가지 않도록, 되도록 천천히 할 테니―”

    말은 그리하면서도 파비안의 행동은 전혀 침착하지 못했다. 원하는 체위를 구현하자마자 말도 똑바로 맺지 않고 달려들었다. 바닥에서 두 발을 뗀 별하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칠 정도로 퍽퍽퍽― 강하게 쳐올렸다.

    “으읏! 파비안……!”

    “흐음…….”

    파비안은 그걸로도 모자라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허리를 쳐올렸다. 별하는 뱃속을 관통하는 적나라한 감각과, 중력을 거슬러 허공으로 퍽퍽 떠올리는 위력에 꼼짝하지 못하고 거친 숨만 헐떡였다. 파비안은 별하의 안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급히 삽입해 들며 턱을 물었다.

    성난 하반신이 부딪혀 올 때면 찢어질 듯 벌어지는 구멍도, 집어삼킬 듯 강하게 조이는 안쪽으로 우직하게 파고드는 페니스도 음란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뒤섞인 체액에 흠뻑 젖은 채로 수없이 맞물리고 얽혀 들었다.

    두 다리를 활짝 벌린 채 계속해서 허공으로 떠밀리던 별하는 파비안의 가슴께에 재차 말간 정액을 흩뿌렸다. 자신이 사정한 줄도 모르고 열기둥이 세차게 꽂혀 들 때마다 둔부 근육을 세우며 흐느끼듯 신음했다.

    파비안은 전신의 근육을 세워 별하를 몰아갔다. 군더더기 없이 유연하면서도 탄력적인 허리 짓이었지만 그를 받아들이는 상대는 가랑이가 쪼개지는 듯한 압박감과 충격을 느꼈다.

    별하가 두 번째 사정을 돌연히 끝냈을 때 파비안의 사정감도 절정에 다다랐다. 그 후로도 한참을 더 내달리다 내벽이 불규칙하게 움츠러드는 순간 안쪽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곧장 파정했다.

    “흠.”

    뜨겁게 달궈진 정액이 미처 오므라들지 못한 구멍에 쏟아졌다.

    “으으, 읏…….”

    별하는 갑작스럽게 텅 비어버린 몸을 바르작거리며 파비안의 어깨에 이마를 붙였다. 뜨거운 정액에 뒤덮인 구멍이 녹아내릴 것처럼 욱신거렸다.

    금방 사정을 끝낸 파비안은 별하가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발갛게 부어올라 빠끔거리는 구멍을 어렵지 않게 열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흐읏, 이제, 파비안…….”

    잔뜩 흥분한 그는 곧바로 허리 짓을 시작했다. 이전 날에 나눴던 섹스들보다 더 과격하고 조급하게 별하의 뒤를 쳐올리며 괴로운 듯 신음하는 이를 바짝 끌어당겼다. 내벽 깊숙이 박혔다가 길게 빠져나온 열기둥은 온통 번들거렸다. 별하는 숨이 끊어질 듯 헐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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