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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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 돌아오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다.

마치 파란 태양처럼 보이는 거대한 천체. 그것이 지구라는 것을 인지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작은 구슬 같은 평화로운 푸른색 별이 아니다. 압도적 크기와 속도에 공포가 느껴질 정도다. 당장이라도 공전 궤도를 이탈해 시속 11만km/h의 속도로 나에게 덤벼들 것만 같다.

주변에는 바람의 숨결도 없고, 소리의 진동도 없다. 음소거한 TV 화면처럼 내가 보는 장면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꿈인가?

아니, 꿈이라면 내가 나를 볼 수 있었겠지. 영화를 관람하듯이.

〈나〉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들어본다. 하지만 들어 올릴 수 있는 손이 없다. 고개를 숙여 보지만 몸이 내려다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숙일 수 있는 고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분명 나는 광경을 바라보며 인지하고 있다. 나는 무엇인가?

순식간에 다른 장소가 펼쳐진다.

이번에는 시야에 사람이 가득하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녀들이 밤하늘 아래 탁 트인 공간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웃고 떠든다. 모두가 즐거워 보이고, 어떠한 걱정거리도 없는 사람들 같다. 뮤직비디오나 광고속의 사람들처럼, 그들은 지금 완벽하게 행복하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 따위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늘 다른 사람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이 부러웠다. 스스로 삶을 망쳤음을 깨닫기 전부터도 그러했다.

가장 행복해 보이는 나는 언제나 TV 속의 나였다.

피로하지 않은 척, 순진한 척, 팬들의 사랑만이 전부인 척, 상식이 통하는 밝고 건강한 세계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척…

가끔은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웃고 있는 동안의 내가 정말 완전하게 행복한 거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차라리 24시간 계속해서 무언가를 촬영하고 있는 중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카메라 뒤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카메라 앞 화면 속의 내 삶이 더 좋았으니까.

지금 이곳에 보이는 사람들도 그렇게 연출된 장면처럼 인위적으로 행복해 보인다.

주위에는 조명을 밝힌 고층 빌딩들이 빽빽하다. 이곳은 대도시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여전히 내게는 육체도 목소리도 없으니까.

【저기잖아, 저기! 난간 앞에 바리케이드 쳐놓은 곳!】

어느 누군가 단 한 명의 목소리만이 갑자기 또렷하게 들려온다. 반바지에 크로스백을 둘러맨 차림새가 여행객처럼 보이는 앳된 학생이다. 흥분한 얼굴의 크로스백이 일행을 돌아보며 손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하지만 볼캡을 쓰고 뒤따라오는 일행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그 케이팝 스타가 뛰어내린 자리?]

【저 앞에서 사진 찍으려고 사람들 줄 서 있나 봐! 우리도 가서 찍자!】

【누가 뛰어내려서 죽은 데가 뭐가 좋다고 거기서 사진을 찍어? 줄도 너무 길잖아.】

불퉁한 얼굴을 하면서도 볼캡은 크로스백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내게는 여전히 그 두 사람의 대화만이 들리고 있다.

나는 문득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본다.

고층 빌딩의 옥상에 들어선 호화로운 장식과 조명, 사방에서 기세 등등하게 빛나는 마천루.

육체가 없는 나는 드디어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아챘다.

어느새 줄의 맨 끝에 선 두 사람은 바리케이드 너머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볼캡 쪽이 인상을 찌푸 진저리를 쳤ㄷ

【사람이 얼마나 독하면 여기서 뛰어내릴 생각을 하지? 으, 끔찍해!】

그렇다. 이곳은 태국 방콕.

독한 내가 뛰어내렸던 32층의 루프톱 바였다.

그것을 분명하게 인지하자, 존재하지도 않는 사지가 떨려온다.

동시에 모든 소음이 한꺼번에 들려오기 시작한다. 자동차가 도로위를 달리는 마찰음, 경적, 볼륨을 높인 DJ의 음악, 사람들의 웃음과말소리.

이 도시의 소음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울부짖음, 용서를 구하는 애걸, 질투와 시기의 저주, 환희에 찬 감탄과 감격, 달콤함에 취한 사랑의속삭임… 이것은 세상의 모든 소리다.

완전한 침묵 속에 있던 나는 한순간에 들끓는 소음 속으로 내팽개쳐졌다. 있지도 않은 귀를 틀어막고, 터져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괴성을 질러본다. 누구에게도 닿을 수 없는 나의 무성(無聲)으로.

이윽고 모든 소리가 멀어진다.

이번에는 보이는 모든 것이 구불구불 물결치고 있다. 물속에 잠긴것처럼. 들려오는 소리들도 물속에서 물 밖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굴절되어 있다.

이곳은 어디지?

벽으로 막힌 실내에 사람의 형체가 어른거린다. 의식을 집중할수록물결의 흐름이 잔잔해지고, 시야가 좀 더 분명해진다.

네 사람이 소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는 낯선 방이었다.

웅얼웅얼웅얼.

사람들의 말소리가 조금씩 끊어지며 들리기 시작한다.

【팔다리 하나쯤 잘라내 버리고 싶다고 생각 안 하세요?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던…… 몇 번이고 되풀이해 밀어버리고 싶다는 생각…… 안 하세요?】

이쪽을 향해 앉은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물결 사이를 통과해 부분적으로 전달되어 온다. 그 남자가 맞은편에 앉은 누군가를 향해 상체를 기울이고 계속 이어 말한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저는……수당하는 정도로는…… 법적 처벌만으로는…… 용서가 안 될.. JI

나는 물속을 유영하듯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본다. 쉽지 않다. 압력이 강한 아주 깊은 바다에 잠긴 것처럼. 남자의 말도 주파수가 제대로맞지 않는 라디오처럼 중간중간 끊어졌다 이어지길 반복한다.

마침내 네 사람이 둘러앉아있는 소파에 접근했다.

정면으로 보이던 남자의 얼굴을 가장 먼저 알아봤다. 대한민국 경제에 혹은 상류층 사교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얼굴이었다. 한서 그룹 故 이우열 회장의 차남.

그리고 그 남자의 옆자리에는 뜻밖의 인물이 앉아있었다. 사는 동안, 내가 마음을 열고 믿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명. 배우 정지인. 지인이 형…

형이 왜 이곳에 저 남자와 함께 있는지는 몰라도, 그리운 얼굴을 앞에 두자 영혼이 욱신거린다.

‘너 보러 갈게. 오래는 못 있어도 하루 이틀은 뺄 수 있어.’

형은 방콕으로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형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나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홍서야, 우리 버티자. 시간이 지나면 상황도 바뀌고, 그러다 보면 지금은 답이 없어 보이는 일들도 틈이 생길 수 있으니까… 버텨야 기회도 잡는 거니까. 우리 버티자. 응?’

형이 해주었던 그 다정한 말도 허공을 향해 뛰어오르는 내 발목을 땅 위에 단단히 붙잡지는 못했다.

눈에 띄게 해쓱해진 것 같은 형의 얼굴을 좀 더 분명히 보고 싶었다.

그때, 새롭게 등장한 어떤 목소리가 나를 멈추게 했다.

【솔깃한 제안이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고 있다.

만약 지금의 내게 눈이 있었다면, 눈꺼풀을 깜빡이지도 못하고 크게 뜬 채 굳어버렸겠지. 아니, 오히려 질끈 감아버렸으려나.

【하지만, 피해자는 내가 아니야.]

담담하고 단호한 어조를 감싼 부드러운 저음이 이어졌다. 허스키하고,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이번에는 영혼이 욱신거리는 정도가 아니다. 사라져버린 육체처럼, 영혼마저도 갈기갈기 찢겨 파열해 버릴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고통? 고통스러워할 자격이 나에게 있던가? 나에게는 그의 얼굴을 바라볼 자격조차 없었다.

【그 애의 사회적 명예는 이미 실추되었어. X군… 그래, 그 애가 정말 그런 짓을 했던 게 사실이라 해도, 그런 식으로 밝혀지지만 않았더라면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겠지.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일은… 적어도, 이서경이 한 짓도 똑같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일 테니까. 성매매를 하고 성 상납을 했다는데… 제공한 사람만 있고 공급받은 사람은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러나 탐욕스러운 나는 감히 그를 바라본다.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물결 사이로 그의 얼굴이 흔들린다.

이목구비의 선은 단단하지만, 그것들을 감싼 표정이 늘 부드러웠던 얼굴․ 아니, 나를 바라볼 때만 부드러워지는 얼굴이었던가?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담배의 필터를 빨아들인다. 담배… 다시 피우는구나. 힘들게 끊었다고 했었는데. 나 때문에? 내가 그런 식으로… 그렇게 떠나서?

【개인적 보복은 그 애를 위한 것도 뭣도 아니야. 그저, 내 분풀이일 뿐이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안다.

그들의 대화를 듣는 동안, 다시금 이유를 기억해 냈다. 32층의 루프톱 바에서 내가 ‘독하게’ 뛰어내렸던 이유.

X군 스캔들.

그는 말한다. 나를 위해서, 그 스캔들에 연루된 ‘높으신 분’의 죄도세상에 밝혀내겠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런 이기적인 선택을 해버린 나인데. 나를 미워하고, 경멸하고, 그리고 나와 관련된 모든 기억을 ‘독하게’ 지져버리고 싶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에게 다가가고 싶다. 얼굴을 좀 더 또렷하게 보고 싶다. 용서를 구하고 싶고, 그가 나를 바라본다는 그 특별한 느낌을 한 번만 더 느끼고 싶다.

왜 나는 사라져버리지 않았는가?

이곳이 만약 저승이라면, 혹은 이승과 저승 사이의 중간 지대 어딘가라면, 이곳에서조차 ‘존재하기’는 고통이었다. 이곳에서조차 자신의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책임져야만 했다.

사라지는 것으로 도망쳐버리려 했던 선택의 책임을 지고 있었다. 모든 기억을 그대로 지닌 채, 아무것도 잊지 못한 채, 소중했던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으로.

물결을 밀어내며 그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또 한 번 모든 것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의 얼굴도 흐릿하게 번지다 흩어진다.

이번에는 암흑 속이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흐르고나를 감싸는 흐름, 오직 물결의 감촉만이 느껴질 뿐이다. 나는 빛이 닿지 않는 깊고 무거운 물속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신인가?

형체도 없이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영적 존재. 나는 죽어서 신이 된 건가?

어디든 똑같은 어둠 속을 천천히 둘러보다, 문득 내가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그것을 알아채자마자 숨이 막히는 고통이몰려온다. 육체가 없으니 숨을 쉴 수도 없고 숨을 쉴 필요도 없는데. 그런데도 나는 숨 막힘을 느끼며 몸 없이 몸부림친다.

자맥질하고 또 자맥질해 봐도 수면은 까마득하기만 하다.

소리치고 또 소리쳐도 누구에게도 내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신이 되었을 리가. 사랑한다고 말해준 사람을 버려두고, 비겁한 도망의 수단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영혼이 신으로 거듭날 리가.

【아이돌 그룹 ‘티탄’ 출신, 배우 윤혜안 씨의 소식입니다.】

조금씩 주어지는 힌트처럼, 어디선가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온다.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찾기 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아니,팔다리라고 느껴지는 것을 저어 본다. 혼선과 잡음에 섞여 이어지는 불안정한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윤혜안 씨는 지난 4월, 동호대교에서 투신해 밤섬에서 발견되었었죠? 의식 불명 상태가 몇 개월간 이어지면서 많은 분들의 안타까움을샀는데요. 오늘 오후 윤혜안 씨가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머리 위, 저 먼 곳에 수면을 흔드는 빛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저기까지만 닿으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데… 존재하지 않는 육신도 지칠 수가 있는지 나는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멀어지는 빛을, 희망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무력감을 다시또 느껴야 할 줄은 몰랐다. 그것은 질식보다 끔찍했다.

【다시 한번 또 이 사건으로 돌아왔습니다.】

발신처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소리는 나의 처절한 고통과는 무관하게 계속해서 떠들어대고 있다.

발버둥 치기를 그만두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아간다. 빛은 멀어져 간다.

【네, 충격적이죠. 방콕 현지 시각으로 오늘 오후 2시 44분, 이서경前 녹스 호텔 & 리조트의 전무가 피살되었습니다.】

눈앞이 흐려지는 한순간, 어떤 힘이 나를 낚아챘다. 팽팽히 휘감아 단번에 확 끌어당기는 힘.

무자비한 낚싯바늘에 아가리가 꿰어 맥없이 끌어 올려지는 물고기처럼, 나는 빛을 향해 상승한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순간…

나는 드디어 숨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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