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80화 (80/106)

80

6. 악마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려야 한다

러셀의 고향은 벤트리 남서부에 있는 아주 작은 어촌으로 지명을 대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서 거기가 어느 도시 근처요?”라고 되묻는 곳이었다.

러셀은 그 마을에서 처음으로 나온 대학생이자,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큰 회사에 처음으로 취직한 성공자였다.

빚까지 져가며 다소 무리해 고급스러운 아파트로 이사한 후 러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그 친구분들을 모셔 와 홈 파티를 여는 일이었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조금 후에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장작을 땔 필요 없이 뜨끈한 금속관을 통해 훈훈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여름에도 얼음을 얼릴 수 있는 냉장고를 보고 고향 사람들은 전부 놀랐다.

부모님은 그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고 동네 사람들은 성공한 아들을 둔 그의 부모를 부러워했다.

비록 돈을 버느라 바빠서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결혼은커녕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했지만, 러셀은 자신이 잘 나가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 크흠! 안녕하세요.”

옆집에 사는 청년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밝은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그는 예의 바르면서도 품위 있는 말씨 탓인지 아니면 차분한 목소리 탓인지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앳된 외모임에도 무척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는 정장 차림일 땐 단정해 보였고 가벼운 외출복 차림일 땐 세련되어 보였는데 섬유 한 올 삐져나오지 않은 깔끔한 옷에선 늘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났다.

세상에, 남자가 향수라니!

러셀은 옆집 청년을 만난 후 문화적인 충격을 느꼈다. 물론 그 뒤엔 곧바로 향수 가게로 달려가 점원이 추천해 준 향수 한 병을 샀다. 손바닥보다도 자그마한 병 하나가 월급의 5분 1이나 한다는 걸 알고 나서는 또 다른 충격을 받았지만 말이다.

옆집 청년은 시계나 타이, 타이 핀 같은 액세서리도 자주 바꿨는데 착용하는 물건마다 과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고급스러워 보였다.

‘부자다. 저 사람은 분명 부자일 거야!’

이런 고급스러운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으니 당연히 부자겠지만, 아마 그는 졸부나 자수성가형 부자가 아닐 거다.

잘은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에게선 중세 왕족이나 귀족을 보는 듯한 귀티가 흘러넘쳤다. 아마 집안 대대로 부자라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겠지. 취미는 펜싱. 아니, 어쩌면 승마일지도 몰랐다.

옆집 청년이 자신에게 딱히 뭔가를 한 것도 아닌데 러셀은 그를 만날 때마다 묘하게 주눅 들게 되었다. 진짜로 잘 나가는 남자 앞에 서자, 자기가 꼭 남의 가짜 깃털을 몸에 붙인 까마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어…… 안녕하세요.”

“아, 혹시 저희 집이 시끄럽다면 언제든 와서 말씀해 주세요. 오늘은 손님께서 주무시고 갈 거라서요.”

“네, 네에.”

옆집 청년이 검은 사제복을 입은 신부님을 집으로 모시고 온 날 러셀은 천지가 뒤바뀌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신부님께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정말 끝내주게 섹시한 남자였다!

반듯한 이마 위로 새카만 흑발, 진한 눈썹, 쌍꺼풀이 없는 커다란 눈, 시원스레 쭉 뻗은 콧날, 도톰한 입술…….

그는 금욕적으로 보이는 한편 오묘하게도 진한 성적 매력을 풍겼다.

러셀은 단 한 번도 동성을 상대로 흥분한 적이 없으니 혹시 같은 남자를 그런 눈으로 보게 된다면 자그맣고 예쁘장한 남자에게 끌려야 마땅할 텐데, 어째서 딱 붙는 사제복 아래로 빵빵한 가슴 근육이 돋보이는 커다란 남자에게서 매력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야 그 사람이 미치도록 잘생겼기 때문이겠지!’

그는 정말 빌어먹게 잘생겼다. 천 명이면 천 명, 만 명이면 만 명이 아름답다고 찬양할 정도로 진짜 미남이었다.

딱 한 번 본 것뿐인데도 그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아서 러셀은 그분이 어디 신전에서 일하시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옆집 청년에게 그에 관해 묻기엔 그 정도로 친하지도 않은 데다가 왜 그런 걸 묻느냐고 하면 뭐라 답할 말이 없었다.

‘아무 유리시아 신전에 가볼까.’

주말을 대비해 장을 한가득 봐온 러셀은 짐꾸러미를 품에 안은 채 자기 아파트로 향했다.

“……읏.”

“응?”

옆집 청년의 현관문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춘 러셀이 슬며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마디의 신음에 불과했지만, 러셀은 그게 옆집에 사는 청년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옆집 청년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호감을 주는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는데 현관문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아주 낮고 그윽했기 때문이었다.

“헉, 읏! ……우윽, 읏!”

신발장 따위에 몸을 부딪쳤는지 덜커덩하는 소리가 들린 후 이번엔 더욱 억눌린 신음이 들려오자, 러셀은 놀라서 옆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혹시 누가 다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삭막한 도시 생활을 잘하려면 적어도 옆집 사람과는 사이좋게 지내 두라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도 했고.

“저기, 707호에 사는 사람인데요. 괜찮으세요? 옆집 분, 거기 계세요?”

꼭 상황을 살피는 것처럼 현관문 너머가 잠시 조용하더니 뭔가를 치우는 것처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러셀은 현관문에 슬쩍 귀를 갖다 댔다가 누군가의 구두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몸을 떼어 냈다.

“아, 저, 안녕하세요.”

현관문을 손가락 세 마디 정도만 연 옆집 청년이 숨을 가다듬고는 문틈 사이로 단정한 얼굴을 내밀며 네, 하고 답했다.

‘다행히 별일은 없는 것 같은데…….’

옆집 청년은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러셀이 위로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체격이 좋았기에 문 너머를 훔쳐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낯빛은 좋아 보였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양 뺨이 장밋빛으로 상기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저기, 방에서 다른 사람 목소리가 들려서요.”

오늘은 진눈깨비가 날릴 정도로 추운 날씨였는데 옆집 청년은 난로를 세게 때는 모양인지 고운 이마가 살짝 땀에 젖어 있었다. 그는 진한 금색으로 물든 앞머리를 나른한 손길로 쓸어올리고는 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혹시 저희가 너무 시끄럽게 했나요?”

저희? 아! 손님이 와 계시나 보다.

역시 잘 나가는 사람이라 친구가 많은 모양이다. 러셀은 부모님과 그 지인분들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아파트에 초대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아, 아뇨. 현관문 쪽에서 신음 소리가 나길래 누가 아프신 건가 해서 들여다본 거예요.”

어느 나라 왕자와 독대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긴장되어서 러셀은 저도 모르게 저자세를 취했다.

“만약 소음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옆집 청년이 선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 언제 봐도 반듯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아마 그는 벌레 한 마리도 죽여 본 적이 없겠지.

“아, 아뇨. 이 아파트가 워낙 방음이 잘 되어서 그런지, 한 번도 그런 거로 불편을 겪은 적은 없어요.”

신분이 높은 이를 상대하는 듯한 부담감에 러셀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흡사 아파트 주인에게 약점이 잡힌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렬하게 주거 환경을 두둔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부드럽게 미소 지은 청년은 러셀과 몇 마디 인사를 더 나눈 뒤 등을 돌려 섰다.

“선생님, 아무래도 침실로 가야겠어요. 걸을 수 있으시겠어요?”

현관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들려온 옆집 청년의 목소리에 러셀은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몸이 안 좋은 사람을 데리고 와 간호하려던 모양이다. 저렇게 어린데 남을 챙길 줄 알고 참 좋은 사람이다.

‘도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문란하거나 약쟁이거나 도박쟁이라고 들었는데 옆집에 참 건전한 청년이 살아서 다행이야.’

* * *

미카엘은 현관문 앞에 네발로 엎드려 있는 데미안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급하게 정사를 치르느라 상의가 엉망진창으로 벗겨진 데미안은 바지와 속옷을 무릎까지만 내린 채였다.

대체 안에다 얼마나 사정한 건지 발갛게 부은 그의 구멍 안에선 선혈이 섞인 허연 정액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미카엘이 아주 작정하고 마킹한 것처럼 드넓은 어깨엔 새빨간 잇자국이 가득했고 그 아래에 자리한 두툼한 가슴팍은 울혈로 엉망진창이었다. 하도 빨고 꼬집어 댄 탓에 커다랗게 부푼 발간 유두는 하얀 정액을 잔뜩 뒤집어써서 꼭 연유에 파묻힌 앵두로 보일 정도였다.

가느다란 허리와 위로 바짝 올라붙은 탄탄한 엉덩이 위엔 우악스러운 손자국이, 허벅지와 발목에는 또 새빨간 잇자국이 가득했다. 온 손가락과 온 발가락을 물고 빨아댄 탓에 굵은 뼈마디는 말간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뭘…… 하자고?”

힘겹게 어깨를 일으킨 데미안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신음을 억누르기 위해 목 안을 조여댄 탓인지 평소 듣기 좋았던 그의 저음이 잔뜩 갈라져 있었다.

몸도 그 나름대로 고생했지만, 가장 과하게 시달린 건 역시 얼굴이었다.

힐끗 미카엘을 돌아보는 데미안의 얼굴은 누가 봐도 조금 전에 격렬하게 정사를 치른 사람의 얼굴이었다.

하얀 정액으로 번들거리는 부푼 입술을 제외하더라도 발갛게 부은 눈가나 잇자국이 남은 턱, 손자국이 가득한 목과 뺨이 꼭 가혹한 학대라도 받은 것만 같았다.

물론 반듯한 이마 위로 흘러내린 새카만 머리칼 역시 진한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하면 복도에까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니 침실로 가자고 말씀드렸어요.”

이미 할 거 다 해놓고 무슨 소리를. 데미안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네가 양심이 있다면 날 침실이 아니라 욕실로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

미카엘은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 지금 저한테서 양심을 찾으신 거예요?”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후원 쿠폰 선물해 주신 떡대수렛츠기릿 님께 감사드립니다!

으흐흐, 닉네임... 흐흐... 아니, 뭐 좋다구요... 박수를 보내고 싶은 닉네임입니다! 으흐흐... (음흉)

독자님들의 추코와 후원이 항상 큰 힘이 됩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