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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천칭이 기울길 기다리지 않는다-62화 (6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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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마는 누굴 위해 기도를 올리는가

“선생님께서 강한 영혼을 탐색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잖아요.”

유리시아가 다녀간 후 마음이 조급해진 데미안은 마치 채찍질을 하는 듯한 엄격한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은 미카엘.

과목은 검술과 탐지술, 그리고 말의 힘과 성력을 다루는 법이었다.

데미안이 먼저 승천하게 되면 미카엘은 당분간 이곳에 홀로 남게 될 테니 하루라도 빨리 그를 연마해 두고 싶었다.

그 누구도 적수가 될 수가 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예민하면서도 잔혹한 영혼으로.

유리시아가 괜히 대천사 중에서도 전투력이 가장 뛰어난 젠티엘과 그 다음가는 세르비엘을 데려와 눈도장을 찍게 한 게 아닐 터였다.

아마 데미안이 반항하는 기미를 보이면 그를 인질로 삼을 생각이겠지.

이미 신의 반열에 오른 데미안이야 대천사가 얼마나 오든 적수가 되지도 않겠지만, 미카엘은 달랐다.

애초에 그는 한 살짜리 영혼 아니던가.

미카엘은 강한 영혼을 지니고 있지만, 자기 힘을 다룰 줄 몰랐다. 그러니 그는 아직 연마가 안 된 퀘룸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승천하기 전까지 그걸 갈아서 날카로운 검으로 만들어 두는 게 데미안의 목표였다.

하지만 미카엘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진 못했다.

하리엘을 잠깐 만나고 오겠다는 말에도 과잉 반응하던 미카엘이다. 데미안은 그가 지레 겁먹고 위축될까 봐 걱정이었다.

그래도 미카엘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몰아붙이듯 가르침을 전달하는 데미안에게 우는소리 한번 하지 않고 성실히 수업에 임했다.

생전엔 몸을 단련하는 데 그리 관심이 없어서 데미안의 수업을 늘 건성으로 들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단련이 끝난 뒤 미카엘이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데미안이 나신으로 껴안은 채 신력을 불어 넣어주는 게 좋아서 열심히 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아니, 그 이유가 맞는 것 같다.

생전에도 데미안을 검술 선생으로 불러다 놓고 그를 꼬시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으니 말이다.

고작 열두 살짜리 핏덩이가!

“오늘 사무실에서 주변을 경계해 봤는데 어마어마하게……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한 영혼이 절 지켜보고 있더라고요.”

“아.”

어떤 좆같은 새끼인가 했더니 나였군. 뭐, 좆같은 새끼 맞긴 하지.

데미안은 머쓱한 듯 검지로 진한 눈썹을 문질렀다.

“그런데 제가 경계하는 걸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존재감을 지웠다가 제가 퇴근할 때쯤 다시 절 지켜봤어요.”

워낙 경계심이 강한 성격이라 그런가. 탐지술을 가르친 게 고작 이틀 전인데 자신을 감지한 게 놀라웠다.

데미안이 마음먹고 기척을 죽이면 아무 곳이나 오갈 수 있는 사신조차 그를 찾는 데 애를 먹는데 말이다.

데미안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하면 잘하잖아. 그런데 왜 생전엔 수업을 그따위로 들었던 거지?’

한 대 쥐어박고 싶어서 손가락이 다 꿈틀거렸지만, 미카엘의 조막만 한 머리통이 퍽 터져 버릴지도 모르기에 꾹 참았다.

‘생전에 좀 두들겨 팰걸.’

이제 와서 그러기에 데미안은 너무 강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참으로 유감이었다.

“선생님, 듣고 계세요? 분명 절 노리는 이였다고요.”

“나다.”

데미안은 기관총처럼 쏟아질 지랄, 아니, 잔소리에 대비해 두 눈을 내리뜨고 다시 한번 말했다.

“널 지켜보던 이가 나라고.”

미카엘은 잠시 말이 없다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일하는 내내 절 지켜보고 계셨다고요?”

“그래.”

“오늘 온 환자가…….”

“엘레인이었지.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가 최근에야 자유로운 몸이 된.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더군.”

이제 긁어 대려나?

데미안은 조개껍데기 밖으로 조심스레 두 눈을 내밀었다가 흠칫 놀랐다.

“정말로 내내 제 곁에 계셨군요…….”

쌍꺼풀이 진 커다란 눈이 함박웃음을 머금자, 사르르 녹아 예쁘게 휘어졌다. 하얀 이가 시원스레 드러났다.

그 아름답게 웃는 얼굴에 자연스럽게 이끌린 것처럼 데미안도 조용히 입매를 올렸다.

“그런데 어떻게 저한테 말씀을 안 하실 수가 있어요? 전 그런 것도 모르고 혼자 불안해하고 외로워했잖아요! 어차피 곁에 계실 거라면 간간이 눈이라도 좀 마주치게 잘 보이는 곳에 계시지! 어떻게 혼자 숨어서 절 훔쳐보실 수가 있어요? 와, 누가 보면 천하의 데미안 님이 짝사랑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시차를 둔 폭격이 정면으로 쏟아지자, 데미안은 도로 고개를 숙이고 두 눈을 내리떴다.

가만히 참고 있으면 이 지랄, 아니, 이 잔소리도 언젠가 끝나겠지.

“그래서, 이유가 뭐예요? 아무 이유도 없이 숨기진 않으셨을 거 아니에요.”

알면서 왜 잔소리한 거지?

데미안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미카엘을 바라보았다가 그가 절 따지는 듯한 얼굴로 노려보자, 도로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내가 왜 이렇게 잡혀 살게 된 거지? 아, 내가 이렇게 만들었지. 그럼 내가 미친놈이군.’

데미안은 뭉툭한 내면 무기로 자기 자신을 몇 대 두들겨 팬 후 입을 열었다.

“내가 널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네 경계심이 약해질지도 모르니까.”

“제가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길 바라시는 거예요?”

“그래. 난 적이 많거든. 그 말은 내 비호 아래에 있는 너 또한 공격 범위에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지.”

적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하찮은 이들이지만, 아마 미카엘에겐 그렇지 않을 테니 굳이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들이 감히 자신을 건드리지 못해 네가 내 유일한 약점이 된다는 말도.

안 그래도 미카엘은 사서 고생하는, 아니, 사서 죄악감을 짊어지는 성격이었다. 그의 어깨 위에서 짐을 덜어 주진 못할망정 또 하나의 죄악감을 떠안기고 싶지 않았다.

“알다시피, 내 성품이 그리 온화하지 않잖아?”

한쪽 입꼬리를 올린 데미안이 느물느물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쁜 건 모두 데미안이다.

미카엘은 그저 거기에 휩쓸리게 된 불쌍한 희생양인 거고. 약점이 아니라 희생양.

“적이라면 악마요?”

“악마도 그렇지만, 자기 힘을 시험해 보고 싶은 신이라든지, 내게서 불패라는 칭호를 빼앗아 가고 싶어 하는 전투광 대천사라든지, 뭐 다양하지.”

“신도 찾아온다고요!”

“아주 가끔이지만, 그래. 없진 않아.”

미카엘은 깜짝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런데도 패배해 본 적이 없으시다고요?”

“블람하고는 무승부였으니, 그래.”

미카엘은 꼭 천진난만한 어린애처럼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하신 거예요?”

“정신체는 덕을 쌓거나 고통을 승화시키거나 강한 자의 피를 보거나…… 뭐, 여러 방법으로 영혼을 단련할 수 있거든.”

마지막 방법이 가장 문제였다.

그 탓에 몇백 년에 한 번씩은 꼭 칼부림을 즐기는 신이 탄생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신도에게도 인신 공양을 요구해서 늘 문제가 되었다.

미카엘은 혹여 누군가 엿들을세라 작게 소곤거리며 물었다.

“선생님이 강한 자를 그렇게 많이 죽이셨어요?”

아니, 내 이야기가 아닌데.

데미안은 쓴웃음을 섞어 대답했다.

“그건 내가 대천사가 된 이후의 일이고, 그전에는 고통의 덕을 좀 많이 봤지.”

데미안은 잠시 하늘, 정확히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미카엘이 직접 거론되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해도 되겠지.

“생전에 좀 많이 굴렀거든.”

“구르다니요?”

“이런 모습으로 산다는 게 늘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서.”

데미안은 검지로 자기 얼굴 주위를 둥글게 그렸다. 그 몸짓만으로 알아들은 듯 미카엘은 아, 하고 짧은 신음을 흘렸다.

“스물여덟 살엔 왕비에게 거세도 당했고. 그 사람은 내가 그걸로 자기 아들을 홀렸다고 생각했거든.”

미카엘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자, 데미안은 애써 웃음기 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아니, 정말로 내 좆은 새것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꼴이 좀 웃겼을 거야.”

심지어 당신 아들은 나에게 박히고 싶은 게 아니라 나에게 박고 싶은 거였는데 말이야. 아, 이런 말을 하면 구멍을 꿰매 버렸으려나.

데미안이 홀로 조소를 흘리는데 입술을 꼭 깨문 채 눈꼬리를 바르르 떨던 미카엘이 거의 울음에 젖은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저, 저는…… 아까 그런 생각으로…… 그 말을 꺼낸 게…….”

“알아.”

데미안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말했다.

“네가 한 짓도 아닌데 왜 그런 얼굴을 해.”

계기가 된 건 미카엘이 맞지만, 그 후 데미안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조리 동원하여 미카엘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발겨 놓았으니, 이제 와선 그에게 미안한 감정이 남아 있을지언정 분노나 울분은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아, 그래. 내가 첫 조각을 냈지.’

퀘룸처럼 단단하던 미카엘의 심장에 처음으로 정을 박은 게 바로 데미안이었다.

뭐, 하지만 그럴 만하지 않나. 써 본 적도 없는 새 자지를 잘려 버렸는데. 화 좀 내고 욕 좀 하고 저주를 퍼부을 수도 있지.

내면 무기가 날카로웠을 땐 늘 그 사건을 반추하며 자해했지만, 이제 데미안은 자기변명이란 방패를 꺼내 들 수 있었다.

‘이 방패를 너에게도 빌려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데미안은 입을 꾹 다문 채 두 눈을 내리뜬 미카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과거의 기억을 되찾길 바라면서도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않고 미적거리는 건 아마도 미카엘이 또 무너질까 봐 두려워서일 거다.

“그래도 두 번이나 날 버리진 않겠지.”

“네?”

무의식중에 버린다는 말이 흘러나온 걸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자위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살해 버린 미카엘을 배신자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어쨌든 약속 장소에 안 나왔잖아.’

데미안은 자기변명이란 방패로 아예 머릿속의 미카엘을 후려쳤다.

그러게 죽길 왜 죽어. 아무리 괴롭고 막막해도 살아서 구를 생각해야지. 하여간 성안에서 곱게 자란 도련님 새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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