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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줘, 내가 세상을 멸망시키기 전에 (24)화 (24/80)

24. 그새 발정이 났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금쯤 정신력이 개박살이 났을 거다.

터질 대로 터진 멘탈의 영향이 몸으로 왔다.

심장이 쿵쿵 뛰어오르고, 손끝이 가늘게 떨려 왔다.

그 떨림을 멈추려고 강하게 주먹을 쥐었지만, 몸에 서린 오한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아, 담배 말리네.”

갑자기 태어나서 손 한번 대 본 적 없던 담배가 고파졌다.

다들 무슨 일만 있으면 그렇게 담배를 태우더라니.

심각한 고민을 연기에 태워 물리적으로 날려 버리는 게 틀림없었다.

“후우.”

나는 연기 대신 한숨으로 속에 고여 든 근심을 뱉어 냈다.

그러고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팔짱을 낀 채, 지옥의 하늘을 멀거니 바라봤다.

어느새 다시 밤중이었다.

한가하게 ‘이렇게 보니까 지옥 달도 볼만하네.’ 같은 생각을 했지만, 그마저도 견디기 힘든 정적에 밀려 죄 흐트러져 버렸다.

‘생각 없이 멍 때려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틈만 나면 무슨 궁리든 해 대는 뇌가 또 심각한 근심 쪽으로 데구루루 굴렀다.

지옥에 온 뒤 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껏 휘몰아쳐졌다.

악마들이 내 몸을 지분거릴 때는 수치심과 당혹스러움 때문에 죽을 만큼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출구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미로 속에 내 손으로 동료를 밀어 넣고.

바닥이 무너져 진창에 처박히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기어 올라오기만을 반복했던 삶이었다.

그러던 것이,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숨어 힘껏 저항하기만 하면 되니 이 얼마나 큰 해방감인가 싶었겠지.

잠시 버석한 손에 얼굴을 묻었다.

스스로의 비겁함을 잘 알아서 더 짜증이 났다.

손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하스칼이 했던 것처럼 뭔가 달라진 것이 없나 손바닥과 팔뚝을 조금 매만졌다.

만져지는 감각이나 생김 따위는 인간이었을 때랑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뭐가 달라지고 있긴 한 건가.’

다시 한번 창문에 내 모습을 비쳐 봤지만 사람과 크게 다른 건 없어 보였다.

입술 새를 잡아 벌려 송곳니를 확인해도 뾰족하게 솟진 않은 것 같고, 오닉스나 백작처럼 손톱이 날카로워지거나 머리에 뿔 같은 것도 솟아나지 않았다.

몸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긴 한 것 같은데,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가 없으니 조금 현실감이 떨어졌다.

‘그러고 보면 하스칼이 이상할 정도로 인간처럼 생기기는 했어.’

문득 하스칼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분에 따라 세로로 조여드는 동공이나, 좀 비현실적일 정도로 사기적인 외모를 빼고 보면 하스칼은 인간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긴 했다.

사람들이 ‘악마’하면 흔히 상상하는 뿔이나 날개 손톱 따위도 보이지 않았고.

힘을 숨기고 있어서 그런가 싶다가도 종종 녀석과 마주했을 때를 떠올리면 저 모습이 디폴트값인 것 같았다.

녀석이나 나나 눈 색만 어떻게 잘 가리면 인간이라고 우겨도 모를 판이었다.

‘묘하긴 해.’

찜찜하긴 했지만, 우선 내 겉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은 건 잘된 일이기는 했다.

곧 지옥으로 들이닥칠 헌터들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멍청한 짓을 하기 전에 내보내는 역할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었다.

가뜩이나 내가 지옥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있는 것도 수상쩍을 텐데, 모습까지 괴물로 변해 있으면 헛짓거리를 할 수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지옥에만 들어오면 원정대가 전멸당해서, 지구와 시간이 얼마나 차이 나는 지 확인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마왕의 집무실에서 녀석의 좆이나 물고 있을 때, 오닉스가 인간계 시간으로 3일이 지났다고 했었다.

지옥에서의 하루가 지구보다 조금 더 긴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지옥에도 밤은 오니 낮과 밤을 갈라 계산할 수가 있었다.

지구에서 3일이 지옥에서의 반나절이라 치면….

대략 내가 온 지 보름은 된 것 같았다.

앞으로 지옥에서 하루 정도만 더 지나면, 하수구 균열을 비집고 정찰대가 들어온다는 뜻이었다.

들어오자마자 오닉스를 만나면 큰일이었다.

녀석의 암시에 걸리면, 평생을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망가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변태 같은 백작 새끼도 안 되고….

아니, 웬만한 악마는 만나면 안 된다.

단 한 명.

악마들을 배신했던 슐츠만.

그 남자를 빼고는 모든 곳이 지뢰밭이었다.

헌터들을 그곳으로 유도만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안전하게 내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애석하게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그곳으로 갈 방법이 없었다.

우연히 도착했다 하더라도 슐츠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는 누구보다 포악하게 변해 헌터들을 찢어 죽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제는 쉬이 죽어줄 수가 없게 됐다.

어쨌거나 악마들이 용사라고 불러주는데.

천하의 용사가 가만히 앉아서 인류가 망하는 걸 지켜보는 건 좀 우스운 일이지 않은가.

회귀를 포기하고 생명의 신 라엘과 계약을 맺은 덕분에, 정말로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나저나…. 절묘하단 말이지.’

이제는 환각인지, 아니면 정말로 어딘가 고장 나 버린 건지 알 수 없는 시스템은 내가 하수구 균열 사실을 알면 죽는 것보다 더 우선할 것이 생긴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양 사라져 버렸다.

그게 꼭 사람 심리를 모두 꿰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소름 돋을 정도였다.

‘설마, 이 미래를 봤다고?’

그간 천 번이 넘는 동안 한 번도 있어 본 적 없는 미래였는데.

시스템이 무슨 수로 이 미래를 봤을까 싶다가도, 만약 시스템 자체가 내가 만들어 낸 환각이면 저걸 봤다는 것조차 착각일까 봐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다.

“윽…!”

갑자기 아랫배가 화끈 지져지는 감각에 나는 창문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무언가가 배 속에서 작은 소리를 내며 떨려 오기 시작했다.

“미친!”

나는 다급하게 배 속 어딘가에 있을 슬라임을 찾아 꾹꾹 눌러 댔다.

여태 배 속에 마물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허억!”

어딘가를 누르자, 정확하게 찔렀는지 온몸을 관통하는 찌릿한 감각에 눈앞이 번쩍 튀어 올랐다.

내가 누른 것이 불만이었는지 슬라임의 진동은 조금 더 격렬해졌다.

“아윽, 이 미친 푸딩 새끼가!”

나는 다급하게 다리를 벌리고 구멍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하스칼의 정액 덕분에 진입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고작 손가락 두 개 밀어 넣은 걸로는 슬라임을 만지기에는 턱도 없다는 거였다.

“으응, 윽! 아, 그만 좀 해!”

나는 신경질적으로 외치면서 자세를 돌리고는 창문을 짚고 어깨를 기댔다.

차가운 유리의 공기가 뺨과 어깨에 닿자, 그 냉기만으로도 발가락이 곱아들 만큼 저릿해졌다.

어떻게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손가락으로 구멍을 넓혔지만, 아까보다 조금 더 들어갔을 뿐, 여전히 슬라임의 위치는 잡히지 않았다.

“헉!”

내가 저를 찾고 있는 걸 알아서일까.

슬라임은 꾸물꾸물 몸집을 불리며 더욱 거세게 진동했다.

그러자 배 속에서 지이이- 울리던 소리가 몸통을 타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가 들으면 잃어버린 핸드폰을 배 속에 품고 있냐고 착각할 정도로 진동음이 거셌다.

“아흑, 아…!”

슬라임이 체액까지 내뿜고 있는지 제 엉덩이가 금세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내벽을 잔뜩 울려 대자 안이 온통 저릿저릿해져 자잘한 전류가 배 속을 온통 뛰노는 듯했다.

나는 슬라임을 찾던 것도 잊고 창문에 얼굴을 박은 채 연신 헐떡였다.

어느새 곧추선 성기가 꺼떡꺼떡 흔들리며 척척하게 젖은 바닥을 퉁퉁 내리치고 있었다.

그 감각조차 지나쳐서 다리를 모으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러자 슬라임이 짓눌리며 몸속에서 불룩불룩 울렁거렸다.

“큭!”

배 속을 밀쳐 내는 듯한 감각과 진동이 쏟아지자 나는 허겁지겁 다시금 구멍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대체 어디까지…!”

나는 창문을 짚었던 손을 떼서 아랫배를 퍽퍽 내리쳤다.

“아아아!”

그러자 내장이 짓눌리며 더 강하게 압박당한 슬라임이 진동의 단계를 올렸다.

눈앞으로 파란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가 다시금 까매지더니 온몸이 경직됐다.

그 바람에 바닥을 내리치던 성기가 울컥울컥 정액을 쏟아 냈다.

하스칼의 좆질도 버텨 낸 슬라임이, 외부에서 쳐대는 공격에 까딱이나 할 리가 없었다.

“으, 우…, 하.”

나는 뒤에서 손가락을 빼지도 못한 채 사정 뒤에 찾아오는 짤막한 탈력감에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새 발정이 났네.”

“!!”

지랄 맞게 절묘한 타이밍에 하스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놀라 바짝 얼어 버렸지만 차마 뒤를 돌 자신도, 창문으로 녀석의 모습을 확인할 자신도 없었다.

“…….”

“…….”

온몸이 꿰뚫릴 것 같은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하스칼이 저벅저벅 다가와서는 창가에 반쯤 웅크린 나를 내려다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위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못 견디게 수치스러웠다.

녀석의 말대로 내 모습은 혼자 발정이 나서 뒷구멍으로 자위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나는 뭐라도 변명하고 싶어서 입매를 움찔 떨었지만, 하스칼이 먼저 선수 쳐서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 허락 없이 멋대로 구멍을 헤집으면 안 되지.”

“…….”

놈은 내 행태가 몹시 못마땅하다는 듯 목소리를 낮게 깔더니, 구멍에 넣었던 내 손가락을 단박에 잡아 뽑았다.

“히윽!”

순간 신음과 억눌린 소리가 섞여 나왔다.

녀석이 거칠게 뽑아냈던 손가락이 내벽의 극점을 찌르는 바람에 다시금 내 성기에서 차마 다 배출하지 못했던 정액이 울컥 뿜어져 나왔다.

이 참담한 상황을 어떻게든 참아 내 보려고 했지만, 배 속에서 하스칼의 존재를 느꼈는지 슬라임은 어느새 발작하기 시작했다.

배 속에서 울룩불룩 윤곽이 보일 정도로 퉁퉁 튀어나오자 나는 참지 못하고 아랫배를 끌어안으며 몸을 옹송그렸다.

“……윽, 아!”

창문을 퍽 내리치며 신음을 참아 내려 애썼지만, 슬라임은 멈추지 않았고.

하스칼 역시 그런 내 노력을 이해해줄 리 없었다.

“넌 이제부터 내 허락 없이 죽을 수도, 아무거나 주워 먹을 수도 없어. 네 손가락도 포함이니까 잘 기억해 둬.”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쾌감에 이성이 절여지는 와중에도 헌터가 지옥에 들어오기 전까진 녀석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반짝 튀어 올랐다.

“아, 으 배 속이….”

나는 더듬더듬 슬라임이 내장을 짓누르며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상황을 알렸다.

어차피 내 손으로 아무리 후벼판들 꺼낼 수 없으니, 녀석의 도움이라도 받자는 생각이었다.

“배가 왜.”

하지만 하스칼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건지 허리에 손을 둘러 나를 번쩍 일으켜 세웠다.

“하아으으으!”

그 바람에 다시금 내장 어딘가 지독하게 짓눌려 나는 녀석의 품에 매달린 채 녀석의 바지 위로 질펀하게 싸지르고 말았다.

녀석의 괴물 같은 좆으로 내벽을 쑤시던 것과는 달리.

끊어지는 것 없이 계속해서 때려 박히는 진동은 성감을 너무 빨리 고조시켰다가 금세 바닥으로 밀쳐 냈다.

그렇게 지독한 탈력감에 몸을 떨고 있으면 다시금 흙을 퍼넣듯 성감이 푹푹 쌓여 갔다.

“아, 나! 어떻게 좀!”

우선 배 속에 있는 것부터. 아니 지금 이 몸부터. 아니 내 미쳐 버린 뇌부터…!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단어와 문장이 서로 먼저 나서겠다고 죄 엉겨드는 바람에 나는 아무런 말도 토해 내지 못한 채 헐떡거렸다.

머릿속은 여전히 수치스럽고 욕설을 쏟아 내 녀석을 밀쳐 내고 싶지만, 나는 눈앞이 벌게진 와중에도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자세가 바뀌자 슬라임의 위치가 조금 움직였는지, 다시금 쾌감이 몰려왔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배 속에 고여 있던 체액이 구멍 사이로 줄줄 흐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감각을 참지 못하고, 녀석의 허벅지 사이로 축축하게 젖은 체액을 문지르고 비벼 댔다.

그러자 한참 말이 없던 녀석이 느슨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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