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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152화 (152/154)
  • #152

    “나 먼저 부탁하지. 방어계니 쓸모가 있을 거다.”

    그때, 마태오가 끼어들어 손을 불쑥 내밀었다. 열의를 띤 눈이 번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권재진이 그의 손을 잡았다.

    “더 없습니까?”

    “……시도는 한 번뿐이다. 실패로 돌아가면 즉각 서 대위를 사살할 것이다. 제1 특임부대 전원 이리로!”

    장 중령이 욕지거리를 삼키며 대원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렸다. 부하들을 사지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그의 감은 정반대의 확신을 외치고 있었다.

    장 중령의 타고난 뛰어난 육감이 이번에도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서의우를 번번이 난처하게 만들 정도로 예리한 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하게 권재진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한쪽 장갑을 벗고 권재진 대원의 손을 잡는다. 가이딩 하는 것이다. 그 후에 뒤로 물러서 전열을 갖추도록.”

    장 중령의 명령하에 제1 특임부대원들이 권재진의 손을 잡아 가이딩 했다. 지켜보던 다른 에스퍼들도 일부 동조했다.

    S급 가이드의 가이딩을 거부할 에스퍼는 사실 없다시피 했다.

    이끌리는 것이 당연했다.

    권재진은 순식간에 가이딩을 끝마쳤다. 손을 짧게 잡고 떨어진 것뿐이라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일반적인 가이드였으면 진즉 고갈되어 나가떨어졌을 테지만, 권재진은 여전히 충만한 상태였다.

    핵이 작고 불완전했을 때는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했다.

    가이딩 고갈이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고.

    가이딩이란 행위 자체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괜찮아.’

    지금이라면 알 수 있다. 권재진이 고갈될 때까지 서의우를 가이딩 하면 그를 되돌릴 수 있다. 뒤틀린 이능을 원상태로 잡아 누르고 불균형을 해소하면 된다. 항상 해 오던 일이었다. 4년을. 그 이상을. 서의우와.

    “데려다주십시오.”

    그새 서의우는 더욱 커다래져 있었다.

    원구 형태로 감긴 이능력의 중심에 그가 떠 있었다.

    한쪽 눈을 제외한 얼굴이 거의 새까맣게 변했고, 제어하지 못한 힘에 자기 자신마저 상처 입히고 있었다.

    땅이 뒤집혔고, 경계벽이 으스러졌다. 갈려 나간 콘크리트가 우박이 되어 내렸다.

    “이리 오게. 뒤에 붙어.”

    장 중령이 강화계 이능을 사용하여 인간 방패가 되어 주었다. 그 앞에 비눗방울 같은 보호막이 둥글게 펼쳐졌다. 마태오의 이능이었다.

    그 외에도 수비에 특화된 에스퍼들이 몇이나 달라붙었다. 공격계는 근거리, 원거리 두 개 조로 나뉘어 길을 열었다.

    사실은 모든 특임부대원들이 권재진의 계획에 따라 줄 생각은 아니었다. 그들 중 태반은 그저 서의우에게 가까이 접근해서 그의 핵을 파괴할 생각뿐이었다. 동상이몽이지만, 권재진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서의우에게 닿을 만큼 갈 수만 있다면 상황은 명백해질 테니까.

    “전진!”

    권재진이 크리처의 사체를 밟고 넘어갔다.

    한 발 한 발 다가갈수록 중력이 강해지는 기분이었다. 다리에 족쇄를 찬 채로 거센 폭우를 뚫고 나아가는 것 같았다. 서의우는 아직 멀었다. 얼마 접근하지도 않았는데 보호막에 쩌저적 금이 갔다.

    “……괴물인가.”

    망설일수록 더욱 강해진다.

    폭주가 극에 이르면 이 정도는 약과다. 오히려 폭주 초기인 지금이 가장 약한 상태였다. 각성자 전원이 그 사실을 알기에 지체하지 않고 빠르게 나아갔다.

    보호막이 깨져 부스러지고, 장 중령이 몸으로 이능을 받아 냈다. 강철보다 더 단단히 경화된 몸이 한 차례 버텨 냈다.

    어느 순간, 장 중령마저도 한계에 이르러 멈추었다. 이능을 한계까지 뽑아 쓴 에스퍼들이 나가떨어졌고, 권재진만 남아 계속 나아갔다.

    서의우를 붙잡아야 했다.

    재진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통제를 벗어나고 날뛰던 이능의 바람이 잠시 멎었다.

    서의우가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 역시 버티고 있던 거였다.

    분출하는 이능을 다스리려고 사투를 벌이며 서의우가 울부짖었다. 권재진은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서의우를 끌어안았다.

    그와 맞닿는 순간, 이해할 수 없던 무수한 불가사의가 답파되었다.

    권재진은 서의우를 가이딩 할 수 있었다.

    그를 어찌 이끌어야 하는지, 환하게 밝은 길이 보였다.

    이제까지는 눈을 가린 채 꼬여 있는 미로를 헤맸다면 지금은 지도를 손에 들고 등불을 비춘 채 출구를 향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쉽고 간단한 것을, 여태껏 왜 몰랐나 의아할 정도로. 권재진은 가이드였다.

    “이리 와.”

    서의우. 이리로 와.

    재진이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들고 턱을 당겼다.

    암흑처럼 검은 낯에 입술을 맞추자 두 개의 핵이 한 쌍으로 공명했다.

    날뛰는 파동이 합일되어 잔잔히 가라앉았다.

    휘몰아치던 격랑이 지나간 대양처럼 그의 지배 아래에 놓인 권능들이 알맞은 자리로 되돌아갔다.

    길들일 수 없던 심연 속의 괴물이 온순해졌고, 또아리를 튼 사특한 힘은 분분히 흩어졌다. 꽃잎처럼 날린 힘이 하늘로 용솟음치고 구름을 뚫었다.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듯 뻗친 이능이 각지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눈을 뜨니,

    서의우의 얼굴이 희게…….

    차츰 하얗게…….

    말갛고, 앳되고, 청순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갔다.

    눈동자 색이 조금 짙은가 싶었지만, 재진이 빤히 응시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회색빛으로 되돌아왔다.

    권재진이 서의우를 보았고, 서의우도 권재진을 보았다.

    “재진 씨…….”

    서의우와 서의우.

    4개월의 기억과 4년의 기억을 한 몸에 모두 갖춘 서의우가 권재진에게 돌아왔다.

    더 바랄 것 없이. 완전한 형태로.

    ***

    그 후. 서의우의 폭주는 오 준장을 비롯한 보수파 장성들의 독단적인 습격 명령으로 벌어진 참사라 결론지어졌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눈에는 경호원들의 습격을 받아 서의우가 폭주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공개 청문회가 열렸고 중앙군사령관 황보기천 중장을 필두로 꼬리의 오성화 준장까지 엄히 처벌받았다. 보수파 수장의 머리가 잘리자 변화를 거부하던 장성들도 눈치를 보며 태세를 바꾸었다. 스스로 퇴직을 희망하거나, 진보파 세력으로 전향했다.

    걷잡을 수 없도록 변화가 빠르게 이루어졌고, 시류에 발맞춰 센터 개편안 소식도 자연스레 드문드문 들리게 되었다.

    돌연변이를 향한 인식은 완전히 뒤집혔으며, S급 가이드의 출현은 대대적으로 알려져 일반인들에게까지도 뉴스로 보도되었다.

    일반인들에게 있어 각성자는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이니, 권재진의 파급력이 얼마나 대단할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방송사에서 연일 취재 요청이 쏟아졌고 권재진의 자료 화면이 쉴 새 없이 송출되어 각성자 전용 정보전송사용료만으로도 억 소리 나는 액수가 통장에 꽂혔다.

    그로써 자연스럽게 돌연변이의 존재, 일반인에서 각성자로 변화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세상 널리 알려졌다.

    센터는 공식적으로 돌연변이의 처우를 확립하고 미흡했던 인식 개선을 약속했다. 최 대장이 나서서 헛되이 죽어 간 돌연변이와 그들의 유가족에게 사죄하였고, 인류는 비로소 다음 패러다임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본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

    봄이 만연한 어느 날의 오후. 서의우와 권재진은 군사전략총책임본부에 와 있었다.

    그들의 앞에 앉아 말하고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최율 대장이었다.

    그것도 홀로그램이 아닌 생생한 인간이다.

    최 대장의 개인실. 군사전략총책임본부에서도 심층부에 숨겨진 방에 서의우와 권재진이 은밀히 호출되었다.

    “자네가 비인도적인 가이딩이라 부르는 효율 중시 가이딩 말일세. 본래 의도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어.”

    최율 대장이 진하게 우린 녹차 잔을 들고 후후 불었다. 그의 표정에 여상한 회한이 언뜻 스쳐 갔다.

    “실은 그건 가이드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시행된 것이라네.”

    “보호라니…….”

    “그래, 믿기지 않겠지. 자네로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

    “…….”

    “가이딩은 말이야. 무한정으로 샘솟는 자원이 아닐세. 가이드가 무리하게 가이딩 하면 쉽사리 고갈되어 버리지. 다시 회복될 때까지 안정을 취해야 하고. 이런 와중에 에스퍼가 본능에 따라 규제 없이 가이딩을 마구 탐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겠나.”

    낮은 테이블 앞에 앉아 있던 재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새카만 눈동자가 빛을 달리했다.

    짧은 정적이 흐르고, 최 대장이 넋두리하듯 말을 이어 갔다.

    옆집 아저씨가 동네 청년들에게 자신의 군 시절, 왕년의 영광을 이야기하듯 소탈하게.

    “가이드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일세. 점막 접촉으로 가이딩 하는 것이 효율 좋으니. 고갈에 허덕이고 괴로워하기 보다는 효율적으로 빠르게 가이딩 하고 끝내는 방안을. 신군부 초기에는 이것이 혁신이었지.”

    “그렇습니까…….”

    “뭐, 그래 봐야 다 한때의 일이지만. 그땐 자네들 말마따나 가이딩 대체 약물도 개발되지 않던 시절이었고. 각성자의 수도 턱없이 적었고. A급 각성자도 가뭄에 콩 나듯 나왔을 때니.”

    “……예.”

    “점막 접촉을 하고, 또 하고, 그러다 보니 결국 이런 형태로 가이딩이 정착되어 버린 것이야. 결국 센터의 풍조도 효율 중시로 굳어졌고, 끝내는 각성자들을 필요 이상 통제하고 격리하고 정보를 차단하는 현 체제가 완성된 것이지.”

    “…….”

    “선인들이 모든 것을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시초는 논리 없이 악의만으로 그러진 않았다는 걸세. 나 역시도…… 방만하게 흐름에 편승할 생각은 아니었어. 인간성을 잃을 생각은 없었다네.”

    패러다임의 변화는 유기적이며 시대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이 시대의 구식은 그 전 시대의 계몽이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영원한 선, 완전한 정의는 없다는 점을…… 내가 오래도록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군.”

    오늘 세운 금자탑은 또한 내일의 흉물이 될 것이다.

    희생은 필연이며 헛되지 않도록 애도하고 기려야 마땅하다. 인간은, 인류은 어디까지나 끝없이 앞으로 향하는 진보에 발맞춰 살아갈 따름이었다.

    자만하지 않고, 과신하지 않고, 지나는 나날에 정신을 실어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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