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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142화 (142/154)
  • #142

    환하게 불 밝혀진 본부실에 장성들이 조금씩 추레해진 몰골로 둘러앉아 있었다. 대규모 전투의 사후 처리를 하느라 연일 전략회의가 이어지던 참이었다.

    “정찰기 배치 현황입니다. 개척지구에 남아 있는 크리처를 수색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재편성한 부대 목록입니다.”

    “공적에 따른 진급자 수는 32명이고, 지휘관 계급에서는 2명입니다.”

    “다음은 교육훈련관 훈련생들의 수료 일정을 앞당기는 방안입니다.”

    “화면은 실전에 투입 가능한 인원 목록 및 상세 부대 배치 목록입니다.”

    “보급품 배급 현황입니다.”

    “다음은 폭주 위험도 관리 현황입니다.”

    수십 가지 안건이 오간 뒤, 마지막으로 남은 안건이 있었다.

    “다음은 S등급 각성자의 조처입니다.”

    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장성들이 헛기침하며 서로 완강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저마다 속내를 숨기고 있지만, 섣불리 나서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센터의 2인자인 중앙군사령관 황보기천 중장이 포문을 열었다. 그는 중앙군사총장 최율 대장의 바로 아래 직급이자, 보수파의 수장이었다.

    “군 전력에 다소 피해가 있으나, 경계벽은 무사히 지켜 냈습니다. 크리처 웨이브라 불리는 기현상도 이로써 마무리된 듯싶으니 가지치기해야 마땅합니다. 오염된 서 대위, 그리고 돌연변이.”

    황보 중장이 입을 열자, 다른 장성들도 하나둘 의견을 더했다.

    지난 전략회의처럼 보수파와 진보파로 나뉘어 팽팽히 대립했다.

    절반은 축출하자는 의견이고, 절반은 포섭하자는 의견이었다.

    “서 대위는 명백한 반동분자입니다. 군에 반기를 들었던 대원을 사면한다니, 저로서는 아직도 최 대장님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군의 전력이 줄어든 지금 서의우를 사살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판단입니다……. 유일한 S등급 에스퍼입니다. 그 이능을 보셨잖습니까.”

    “그야 대단하기야 합니다만. 그렇다고 저대로 날뛰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총력을 기울인다면 승산이야 우리에게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 진정 좀 합시다. 서 대위는 이번 전투에 큰 공적을 세웠습니다. 반동분자라기엔 긴급 호출에도 제대로 응했고. 전투원으로서 효용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무슨 소릴! 번번이 센터 내부 규정을 어기는데 어찌 효용성이 있다는 겁니까. 또다시 센터 내에서 이능력을 사용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벌써 몇 번째입니까, 이게? 징계로 다스려질 수준이 아닙니다.”

    장성들의 목소리는 지난번보다도 한층 심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군 내부에 휘몰아치기 시작한 파란을 그들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상, 서의우보다도 권재진이 골치였다.

    “S등급 각성자 둘을 센터에서 주도하여 매칭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대로라면 권재진 그자는 서의우보다 더한 위험인물이 될 겁니다.”

    본디 가이드의 가치는 가이딩이고, 최 대장이 처음 권재진과 협상을 제안한 이유도 에스퍼의 이능을 향상시킨다는 S급 가이딩만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권재진은 지나치게 눈에 띄었다.

    전투 이후 들어온 보고서를 몇 번을 재검토했는지 모른다.

    전투복을 갖추고 자유자재로 소총 사격하며 군용 특수 보급품인 HMD 고글까지 다뤘다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던 자다.

    등급테스트를 받고 정식 각성자가 된다고 해도, 실제 고도로 훈련받아 온 각성자들과 비교하면 어린애처럼 무력해야 정상이었다.

    그런 자가 서의우와 함께 전선에 뛰쳐나온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공포에 질려 벌벌 떨지도 않고 크리처를 쏴 죽이고 참전하는 사달이 벌어지다니. 이런 사태는 누구도 예기치 못했다.

    권재진 한 명으로 인해 군의 규율과 법도가 흔들리고 있음을 장성들이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권재진은 대놓고 군의 개편안을 주장하던 자입니다. 그 목소리가 커지면 어디에 닿겠습니까? 대원들이 오염될 겁니다. 이대로 권재진을 정식 각성자로 받아들여 군 내에 섞여 들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애초에 돌연변이를 기용한 것부터가 실책입니다. 최 대장님께서 그런 협상안을 내거시면 안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소간 피해가 있었더라도, 그때 경계경보를 울리고 서의우와 권재진을 처리했어야 했습니다.”

    보수파 장성들이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도 했다.

    상석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최 대장이 등을 뒤로 젖히며 노련한 눈가를 일그러트렸다.

    “경계경보를 울려야 했다라…… 그랬다면 크리처 웨이브에 어찌 대응할 수 있었겠나. 자네들 머리통은 또 어찌 구출하고?”

    지금은 잘 떠들어 대는 장성들이지만 당시에는 그들 전부 서의우에게 인질로 붙들려 이능에 짓뭉개지기 직전이었다. 당시 최율 대장이 내린 결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대로 공멸했어야 옳았다는 건가?”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크리처 웨이브도 그렇군. 미리 대비했다면 이만한 피해가 나왔겠나? 지금처럼 쓸데없이 보수파 진보파가 입씨름하며 S급 각성자 둘의 처분을 논하느라 이 사달이 난 게 아닌가.”

    제2 개척지구에 3단계에 해당하는 긴급 호출이 울렸을 때, 최율 대장의 머릿속에 짤막한 후회가 스쳐 지나갔다.

    <피해가 막심할 겁니다. 개척지구 셋과 일반 거주지구 하나가 폐쇄될 것이고, 사망자 수는 최 대장님의 임기 중 최고치를 찍을 겁니다. 또한 이 자리에 있는 장교들 중 절반이 책임을 지고 불명예 사퇴할 것이며, 최율 대장, 당신도 그중 한 명이 될 겁니다.>

    크리처 웨이브가 발발할 것이라는 경고를 면전에서 들었고, 사망자 수가 임기 중 최고치를 찍을 거라느니, 장교들 중 절반이 불명예 사퇴할 거라느니, 불쾌할 정도로 구체적인 설명이 뒤따랐다.

    마음이야 멋모르는 돌연변이 하나가 지껄인 헛소리라고 치부하고 싶었다만, 최 대장이 군의 정점에 오르기까지 수십 년간 갈고닦아 온 육감은 진즉 그 헛소리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애초에 군 기밀인 크리처 웨이브나, 최율 대장의 입버릇 따위 신상 정보를 알고 있는 것부터가 허투루 넘길 요소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수뇌부 중 누군가 저들의 뒷배가 되어 최 대장을 끌어내리려 하는 정치적 함정이 아닌가 싶었건만, 사안이 이렇게까지 크게 번지고 나니 배후자를 찾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그들의 뜻은 명징했다.

    <도대체…… 자네들이 원하는 게 뭔가. 돌연변이들의 목숨인가?>

    <원하는 건 단 하나입니다.>

    <변혁.>

    지금 장성들이 집중해야 할 쟁점은 서의우와 권재진의 처분이 아니었다.

    어느 결정이 군에 이로운지. 인류 보전에 기여할지.

    변혁인지 수구인지.

    그것이 논지였다.

    “당장은 그 둘을 축출할 수 없네. 군에 필요한 전력이야. 불가피하게 중용해야겠지.”

    “크흠!”

    “커흐음…….”

    황보기천 중장을 비롯한 보수파 장성들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최율 대장을 쏘아보았다. 최종 결정권자인 최 대장이 이 허무맹랑한 협상안을 유지하겠다면 아무리 격렬한 반대를 하더라도 소용없었다.

    도대체 최 대장은 무슨 생각으로 권재진을 싸고도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최 대장이 숙고하며 턱을 숙였다. 그러더니 곧 결단한 듯 입매를 굳혔다. 그의 형상을 재현하는 푸른 홀로그램이 가볍게 지직거렸다.

    “권재진은 각성자등록코드를 발급하고 접근 제한 소속으로 배정, 직급은 하사로 임명하여 S등급 에스퍼 서의우 대위와 매칭해 놓는다.”

    “대장님!”

    “안 됩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정식 소속 배정에 이어 매칭 허가까지 떨어지자 몇몇 장성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등급 테스트 진행과 소속 배정은 하늘과 땅 정도로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미수료 훈련생들, 전투원이 아닌 F급 각성자들이라도 등급 테스트는 동일하게 진행한다. 하물며 실험체로 쓰일 생포 마물일지라도 거의 같은 테스트를 거친다.

    등급 테스트만이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각성자등록코드 발급 및 소속 배정, 심지어 에스퍼 매칭은 권재진을 정식 수료 각성자들과 동일한 수준의 전투 인력으로 취급하겠다는 뜻이었다.

    비록 특임부대 소속이 아닌 접근 제한 소속인 데다가, 직급은 미성년자 교육훈련생들이나 해당되는 하사에 불과하지만, 돌연변이를 상대론 파격적인 인사 결정이었다.

    “다들 자리에 앉게, 크리처 웨이브가 끝나지 않았어.”

    최 대장이 일어선 장성들의 면면을 훑었다. 늘 그렇듯 절반 정도 머릿수가 격렬히 반대하고 있었다.

    “연구개발관의 보고대로라면 크리처 웨이브는 시작조차 안 한 것이 아닌가.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결정이니 군소리들 말게.”

    “그건 그저 예측일 뿐입니다! 기상 예보처럼 매번 빗나가는 것이 연구원들 보고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α크리처가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니요. 게이트 내부가 그들의 서식지입니다……. 대비는 한다 해도 터무니없습니다.”

    “게다가 설사 연구 결과처럼 크리처 웨이브가 더 큰 제2파로 이어진다 쳐도, 돌연변이에게 그토록 파격적인 인선을 내릴 이유가 없습니다. 전선에 내보내는 건 서의우 대위 하나로 족합니다.”

    “대장님께선 정녕 돌연변이 하나를 위해 군 내에 혼란을 야기할 작정이십니까?”

    “후…… 아니, 현 상황부터 똑똑히들 보게. 실제로 크리처 군세가 경계벽을 넘어서려 했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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