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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 (116)화 (116/154)
  • #116

    그런 생각을 했더니 덜컥 숨이 막히는 듯했다. 돌덩이를 삼킨 것처럼 가슴통이 답답했다. 머릿속이 덜그럭댔다.

    “……와. 설마 그걸 진심으로 고민하는 거예요?”

    진지한 와중에 서의우가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눈을 치드니, 그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권재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권재진은 좀 심통이 났다.

    “왜 웃는 겁니까.”

    “그야, 재진 씨가, 너무 모르니까요.”

    “내가 뭘…….”

    “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서의우가 계속해서 쿡쿡대며 속살거렸다.

    “음, 좋아. 이렇게 말해 볼게요. 재진 씨 나는요, 특임부대 수백 명이 떼로 오더라도 압도할 자신이 있어요.”

    “……예, 그건 저도 잘 압니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실제로 봤으니까 반박할 수도 없다.

    “그걸 아는데 왜 고민해요?”

    “……?”

    “내가 이런데 재진 씨는 어떻겠어요.”

    권재진은 늘 서의우의 특출함이 눈부시다고 생각해 왔다.

    존재 자체가 비상식인, 유별나고 비범하고 남다른…… 극단적이고 매혹적인 생명체. 그게 바로 서의우였다.

    그는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존재였다.

    현존하는 인류를 인간이란 종 하나로 한데 묶어 분류한다 해도, 서의우 한 사람만큼은 특수한 카테고리로 따로 구분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권재진은 서의우와 함께할 때마다 자신의 평범성을 자각할 수밖에 없노라고 생각했다. 서의우에 비하면 자신은 참 평범하고, 보편적인 사람이라고 거듭 확신하곤 했다.

    하지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재진 씨 내 가이드잖아요.”

    권재진이 평범했다면, 애초에 서의우의 가이드가 될 수도 없었다.

    “일반적인 가이드 수백 명을 합쳐도 권재진 한 사람만 못해요.”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존재는 서의우 한 사람이 아니다.

    “재진 씨는 여태 한 번도 가이딩 하면서 고갈된 적 없죠?”

    ……고갈?

    그게 뭔데……?

    의문 가득한 눈으로 서의우를 올려다보자, 그의 잘생긴 뺨에 보조개가 쿡 찍혔다.

    “하하, 역시 그랬네요.”

    “아니, 고갈이 뭡니까? 가이딩이 고갈되기도 하는 겁니까?”

    “어, 뭐. 그렇긴 한데 딱히 몰라도 돼요. 재진 씨랑은 영영 상관없는 경우일 테니까. 우리 빨리 테스트나 받고 가요.”

    “아니…… 의우야, 어?”

    “따라와요. 마침 밖에서도 난리네요. 장 중령님이 화가 단단히 났겠는데요.”

    서의우가 권재진을 잡아끌고 탈의실에서 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장 중령과 딱 마주쳤다. 가뜩이나 육중한 체격에 무골인 그가 문 앞에 문지기처럼 떡 버티고 서 있으니 재진은 내심 좀 당황했다.

    “서 대위. 무슨 짓이지? 이런 식이면 상부에 보고 올릴 수밖에 없다만.”

    “뜻대로 하십시오. 오히려 그러기 위해 장 중령님이 오신 것 아닙니까? 감시역으로.”

    “…….”

    서의우가 태연하게 장 중령을 지나쳐 검사용 정밀 기계 앞까지 권재진을 안내했다.

    그 앞에 있던 연구원이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푹 처박고 기계를 작동했다.

    “워, 원판 위에 올라가서 양팔을 벌리십시오. 움직이면 안 됩니다.”

    좀 전에 서의우에게 호되게 당한 탓인지 목소리가 공손했다.

    “아, 예.”

    “출입증 빼고 신발도 벗으세요.”

    재진이 안내에 따라 손목에 찬 팔찌를 빼고 신발도 벗은 상태로 납작한 원판 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판이 웅웅거리며 느린 속도로 360도 회전하기 시작했다. 기계 양쪽에 달린 날개 같은 부품도 돌아갔다.

    천장에서 환한 빛이 쏘였고, 권재진의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투과해 지나갔다. 그런 후에는 삐- 하는 소리가 몇 차례쯤 끊겨 들렸다.

    몰려든 연구원들이 기계 옆에 연결된 커다란 모니터를 보며 수치를 조금씩 조정했다. 권재진이 올라서 있는 기계 안에선 화면이 보이지 않아서 저들이 무슨 작업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안 끝난 건가……?’

    생각보다 검사 시간이 길었다.

    슬슬 긴장되었다.

    눈 깜빡이는 빈도수가 올라갔고 표정도 굳었다. 움직이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가만히 서 있는 게 꽤 고역이었다.

    연구원들의 반응을 살피고 싶어도 모니터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서의우는 아까부터 계속 미소만 짓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서 있는 모습이 조각상 같고 예술품 같아서 쓸데없이 짜증 났다.

    “이…… 이 수치가. 잠시만, 오류입니까?”

    “쓰, 다른 기계로 다시 해 봅시다.”

    “그래. 그래야겠군요. 후우, 어쩐지…….”

    이것저것 조정해 보던 연구원들이 갑자기 숙덕거리며 다른 기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음, 기기 불량인 것 같습니다. 저기서 재검사하죠. 원판에 다시 올라가십시오.”

    재진이 신발 뒤축을 구겨 신고 다른 기계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똑같았다. 연구원들은 모니터를 보며 한참 끙끙대더니만 난처하게 권재진을 불렀다.

    “아니 저, 신형 기계 자체에 결함이 있나 봅니다. 구형 기계로 다시 검사해 보겠습니다. 여깁니다.”

    “예, 알겠습니다.”

    도대체 몇 번을 재검사하는 건지.

    아무튼 안내에 따랐다.

    이번에는 누워서 측정하는 기계였다. MRI 기계처럼 가만히 누워 있으면 밑판이 동굴 같은 기기 내부로 들어갔다 나오는 형태였다. 연구원 하나가 권재진에게 급히 귀마개를 챙겨 주었다.

    “그걸 쓰고 누워 계십시오. 눈은 감고요.”

    시키는 대로 했다.

    양쪽 귀를 막고 누워서 눈을 감으니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잉 하는 진동과 함께 몸이 동굴 같은 기기 내부로 들어가졌고, 빛과 주파가 번쩍이며 권재진의 신체를 고루 훑었다.

    ‘……이젠 끝났나?’

    검사가 끝나고 다시 밖으로 나왔을 즈음엔 귀마개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연구원들이 흥분해서 저들끼리 뭐라뭐라 떠들어 대고 있었고, 한 명은 어디론가 통신을 취하고 있었다.

    뭐지 싶어 고갤 돌려 보니, 언제인지도 모르게끔 가까이 다가온 서의우가 귀마개를 벗겨 주었다. 그제야 떠들어 대는 연구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속히 상부에 보고를!”

    “이런 수치가 나올 수 있는 겁니까? 이게 한 사람분이라고? 그것도 돌연변이가…….”

    “측정 불가, S등, S등급 가이드입니다.”

    서의우가 모양 좋은 입술을 벙긋거렸다. ‘거봐요’라고 속삭인 것 같았다.

    그제야 손끝에 피가 돌았다. 안심했더니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아…….’

    다행이다.

    ‘내가 S급이 맞긴 했구나.’

    이변은 없었다. 권재진은 최초의 S급 가이드였다. 그것도 돌연변이 출신인.

    돌연변이의 핵은 작고 불완전하다. 충격에 취약해 깨지기도 쉽다. 그렇지만 기능에는 이상 없다. 권재진이 지금 몸소 증명한 격이었다.

    돌연변이라도 정규 각성자와 능력 면에선 아무런 차이 없으며, 오히려 그들보다 더 뛰어날 수 있노라고.

    이제껏 군부는 효율을 중시하는 체제 때문에 돌연변이를 살처분한다는 논리를 지속해 왔다. 그러나 권재진은 존재 자체가 그 논리를 뒤엎는 일탈자였다.

    S등급을 타고난 권재진을 감히 비효율적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S급 돌연변이는 과연 효율적인 걸까, 비효율적인 걸까?

    “결과가 나온 모양이군. 역시 S급이었나. 축하한다네.”

    멀찍이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장 중령이 다가와 축하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연구원들과 달리 그는 권재진의 등급 테스트 결과를 보고서도 그다지 놀란 것 같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장 중령은 몸소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다음 검사를 진행하러 가지.”

    “등급 테스트 외에 다음 검사가 또 있습니까?”

    “그래. 이번 검사는 서 대위가 받아야 한다.”

    이능의 향상.

    S급 가이드의 가이딩은 에스퍼의 이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

    서의우의 폭발적인 이능력을 목격했던 장태산 중령은 처음부터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권재진의 등급 테스트 결과가 아닌, 가이딩으로 인한 이능 향상 여부였다.

    “마태오 소령, 아니, 마태오 대위는 권재진의 가이딩이 그의 이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고 증언했다. 서 대위의 경우도 그렇겠지.”

    “…….”

    “에스퍼의 이능을 증폭하는 가이딩.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세상이 뒤집힌다.”

    권재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옆을 돌아보니 서의우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다. 맹수 같은 야성적인 눈빛이 매서웠다.

    ‘그러고 보니, 최율 대장도 비슷한 얘길 꺼냈었지.’

    <보고에 따르면 S급 가이드의 가이딩은 에스퍼의 이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더군. 지금 서 대위의 이능력을 보니 틀림없는 듯하고. 어떤가.>

    그때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흘려들었지만, 이제는 오해를 바로잡을 때가 된 것 같았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서의우의 이능은 그가 본래 타고난 힘이지 제 가이딩과는 무관합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마 대위의 경우는, 어찌 설명할 수 있지?”

    “착오가 있던 게 아닐지…….”

    “착오인지는 검사를 통해 판가름 나겠지.”

    권재진이 입가를 찡그렸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이능의 향상이라니. 마 소령, 아니 마 대위…… 그가 권재진에게 가이딩을 받고서 이능이 성장했다고? 그게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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