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 (115)화 (115/154)
  • #115

    건물 자체가 넓고 높고 체계적이었으며, 곳곳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도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비어 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즉각 문이 열렸고 올라타자마자 순식간에 목적한 층에 도착했다. 이런 사소한 곳에서도 효율을 중시하는 기조가 엿보였다.

    도착한 곳은 3층 신체검사실이었다.

    여러 대의 정밀 기기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기계 앞쪽에는 백의를 걸친 사람들이 한 무리 서 있었다.

    아마도 저들이 연구개발관 소속 연구원들인 듯싶었다.

    연구원들은 저들끼리 뭉쳐서 모종의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검사실 안으로 권재진이 들어서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시에 입을 꾹 닫았다.

    “…….”

    “…….”

    기분 나쁜 침묵이 흘렀다.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권재진을 주목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훑어보는 눈이 딱, 흥미로운 실험 쥐를 살피는 듯한 시선이었다.

    “하…… 그럼 그렇지.”

    냉랭하게 혼잣말을 뇌까린 서의우가 권재진 앞을 막아서며 나섰다.

    불쾌한 기색을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서의우를 중심으로 날 선 이능이 솟구쳤고, 연구원들을 단숨에 위압했다. 보이지 않는 힘에 짓눌린 연구원들이 흠칫 놀라며 시선을 낮추었다. 자의가 아니었다. 강제로 머리가 눌리고 고개가 꺾여 바닥을 향했다.

    얼어붙은 연구원들의 안색이 시퍼레졌다.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서 대위……! 지금 무얼 하는 건가.”

    갑작스러운 돌발 사태에 심각해진 장 중령이 나서서 서의우를 제지했다.

    센터 안에서, 연구원들을, 그것도 등급 테스트를 앞두고 적대하다니. 저렇게 대놓고 이능을 사용하는 건 위중한 징계 사항이었다. 서의우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지금 즉시 이능을 거두도록. 명령이다!”

    장 중령이 재차 서의우를 제지했다. 그러나 서의우는 희고 서늘한 낯으로 빙그레 웃기만 할 뿐, 위압을 거두지는 않았다. 태연하게 항명하는 서의우를 보고서 장 중령의 표정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보다 못한 권재진이 하는 수 없이 한마디 거들었다.

    “……서의우 씨, 그만합시다. 등급 테스트가 우선입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무릎 꿇릴 정도로 짓누른 건 아니었으니, 서의우 딴에는 나름대로 힘을 조절한 것일 터였다.

    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위협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연구원들은 한 명도 쓰러지지 않았고 두 발로 잘만 서 있었다. 이런 정도면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아니…… 뭐지? 내가 대체 언제부터 서의우의 기행에 이렇게 익숙해진 거지.’

    바로 눈앞에서 연구원들이 저렇게 땀을 흘리면서 괴로워하는데도 그걸 보고 ‘괜찮은 수준’이라고 판단하다니. 권재진이 달라진 자신의 사고방식에 당혹감을 느끼며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저, 그래서 이거 검사 어떻게 받는 겁니까? 저는 잘 모르니 서의우 씨가 알려 주십시오.”

    “……아. 네, 재진 씨. 우선 옷부터 갈아입어야 해요.”

    서의우가 차게 식은 눈으로 연구원들을 한차례 훑어보곤 느른하게 대꾸했다. 아직도 이능은 거둬들이지 않은 채였다. 공기가 묵직하게 어깨를 짓눌렀다. 중력이 네 배로 강해진 듯했다.

    재진이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그의 팔꿈치를 잡아끌었다.

    “그럼 탈의실은, 저깁니까?”

    “응, 맞아요.”

    “갑시다. 빨리.”

    “네에.”

    그제야 서의우가 권재진을 탈의실로 안내하며 이능을 흩어 버렸다. 탈의실 문이 턱 닫혔고, 해방된 연구원들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헐떡였다.

    두 사람을 뒤따라 장 중령도 탈의실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문 앞쪽에서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윽.”

    밀어 내는 염동력 탓에 문손잡이를 잡을 수조차 없었다. 억지로 팔을 뻗으며 다가서 보려 해도 반발하는 힘에 눌려 무리였다. 탈의실 내부로 진입하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

    권재진은 바깥 상황이 어떤지, 서의우가 이능으로 문을 완벽히 막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가 알려 주는 대로 검진복으로 환복했다.

    “각성자들이 받는 검사 종류는 세 가지로 세분되어 있어요.”

    옷을 갈아입는 동안, 서의우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으며 검사를 설명해 주었다. 어둡고 섬뜩했던 눈이 지금은 또 고요하고 다정했다.

    “첫 번째는 재진 씨도 아는 거예요. 각성자와 비각성자를 판별하는 테스트죠.”

    “혹시 의무 각성 검사를 말하는 겁니까?”

    “네. 전 국민이 태어나자마자 거치는 의무 각성 검사. 흉부, 심장 안쪽 핵의 유무를 관측하죠. 핵이 있으면 각성자, 없으면 비각성자예요.”

    아, 그렇구나. 의무 각성 검사의 원리가 그거였군.

    일반인들에게는 핵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기에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쳐 각성자와 비각성자를 구별하는지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핵의 존재 유무로 각성자와 비각성자를 구분하면 간단하겠다 싶었다.

    권재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투와 스웨터를 차례로 벗었다. 서의우는 재진이 벗은 옷들을 받아 걸어 주며 옷시중을 도왔다.

    “두 번째는 에스퍼와 가이드를 판별하는 테스트예요. 핵의 파동을 정밀 검사 해서 어느 쪽과 공명하는 파동인지 확인하는 거죠. 재진 씨에겐 해당하지 않겠지만, 여기서 에스퍼로 판정될 경우 어떤 계통의 이능을 지녔는지 따로 심층 검사를 받아야 해요.”

    “에스퍼만 추가 검사를 받는 것이군요. 가이드는 그럴 필요 없고.”

    “네, 맞아요.”

    하의까지 다 탈의한 권재진이 가운 형태의 흰색 검진복에 팔을 꿰었다. 서의우는 스웨터를 벗는 바람에 정전기로 솟구친 권재진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빤히 살피다가 손으로 살살 눌러 주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가 등급 테스트예요. 각성자의 등급을 판별하죠. 핵의 파동을 정밀 검사 해서 내뿜는 위력을 계측해요. 재진 씨도 익히 알다시피 등급은 A, B, C 그리고 F, 크게 4가지로 나뉘고요.”

    S등급까지 포함하면 5가지이긴 하지만, 현재까지 S급은 서의우가 유일해서 검사 기계에 따로 등록되어 있진 않다. 그렇기에 S등급의 경우 측정 불가 표시가 뜬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A~C등급 각성자는 전투부서에 소속되어 전투직을 도맡고, F등급 각성자는 생활지원부서에 소속되어 예비군이 된다.

    F등급도 정규 교육과 훈련을 거치긴 하지만, 수료 후에 전투 임무에 배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특수 거주지구의 전반적인 생활 지원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예를 들면 조금 전에 보았던 운전병처럼. 정비, 건축, 운수, 취사, 통신 등을 도맡는다.

    다만, 훈련교육생 시절부터 연구부서에 지원해서 시험에 합격할 경우에는 연구개발부처 소속 연구원이 될 수 있다. 방금 본 연구원들 중에도 F등급 각성자가 섞여 있었다.

    “과거에는 각성자가 직접 한 명씩 접촉해서 일일이 핵에 감응해 보는 방식으로 구분했다고 해요. 지금은 검사 과정도 자동화되었고 각성자 전용 검사 기계도 개발되었지만.”

    “직접 접촉해서 말입니까……?”

    “네, 각성자끼리는 심장 근처에 닿으면 핵이 서로 공명하는 게 느껴지니까요.”

    “아…… 제게는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로군요.”

    돌연변이의 핵은 불완전하기에 파동이나 공명을 느낄 수 없다. 이쯤 되자 공명이 무슨 감각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지긴 하다.

    서의우가 차근히 눈웃음 지으며 권재진의 검진복을 여며 주었다. 옷깃을 곱게 펼쳐서 겹치고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옆구리에 달린 매듭을 단단히 조여 매 주었다.

    어찌나 세게 매듭을 묶던지 허리가 당길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서의우는 V자 형태로 파인 가운 사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더욱 힘주어 매듭을 묶었다.

    “웃, 의우야. 숨 막혀.”

    권재진이 서의우를 에둘러 말렸지만, 서의우는 살짝 엿보이는 재진의 쇄골만 끈질기게 쳐다보다가 딴소리했다.

    “지금도 하고 있어요.”

    “뭐, 어?”

    “재진 씨랑 나, 지금도 공명한다고요.”

    “…….”

    “우린 항상 그랬어요.”

    그 말을 뱉는 서의우의 회색 눈동자가 번뜩거렸다. 이채를 띤 동공이 유독 형형하게 빛나 보였다.

    한숨도 자지 않고 밤을 지새웠을 텐데도 어떻게 저런 혜성 같은 강렬한 눈을 할 수가 있나 싶었다. 서의우의 존재가 해일같이 밀려와 권재진을 덮쳐 삼키는 것 같았다.

    재진이 엷은 입술을 달싹거렸다. 잠시 머뭇거리며 뜸을 들인 후에 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그래도, 혹시 만약, 아닐 경우는 없는 겁니까?”

    “아닐 경우라뇨?”

    “오늘 제가 S등급이 아닌 다른 등급을 받게 된다면, 그때는.”

    권재진이 슬며시 눈가를 찡그렸다.

    S등급이 아니라면 서의우와 매칭될 수 없다.

    공식으로 서의우의 가이드가 될 수도 없고, 최율 대장과 나눈 협상안도 어그러질지 몰랐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도록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그야 물론, 서의우가 그간 하도 개지랄을 해 댄 게 있으니 권재진이 S급 가이드일 것 같기는 했다. 그러지 않으면 말이 안 됐다. 권재진은 실제로 서의우의 불균형을 잠재울 수도 있었고, 또 서의우가 본연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권재진의 가이딩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보다시피 권재진은 직접 핵을 감지할 수도 없고, 공명을 느낄 수도 없고, 가이딩도 서의우가 하도 좋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싶은 거라서…….

    한 번도 직접 확증을 느껴 본 적은 없으니까…….

    어쩌면, 혹시나, 하는 불길한 상상이 떠오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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