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 길들이기 (100)화 (100/154)
  • #100

    “잠깐, 그만…….”

    서의우가 혀를 떼어 냈다. 서로의 입술을 타고 투명한 실이 이어져 있었다. 툭 끊어진 타액을 서의우가 관능적인 혀로 핥아 삼켰다. 그의 입술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마치 그의 회색 눈동자처럼.

    “멈추지 마요. 다시 입.”

    “아냐, 이제 그만해도 됩니다.”

    “재진 씨. 나는 안 됐어요.”

    서의우가 권재진을 단호하게 부르며 허리께에 팔뚝을 깊게 감았다. 조금 뜨끈해진 손이 티셔츠 자락을 들추고 안으로 기어들어 왔다.

    “나, 가이딩 필요해요.”

    “……?”

    “가이딩이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

    “그럼 언제겠어요?”

    서의우는 농담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재진을 향해 있었다.

    “그만큼 이능을 뿌려 댔으니 가이딩 필요해요. 더군다나 장성들 머리까지 진탕 치러 가야 하는데, 가이딩 받지도 않고 그 정도 스케일의 이능을 또 난발할 순 없어.”

    “…….”

    “재진 씨를 지켜야 하잖아요. 내가.”

    “…….”

    “재진 씨 운명을 바꿀 거라고요. 내가……. 서의우가.”

    형형한 두 눈동자가 진지했다. 새하얗게 달궈진 금속처럼 뜨거운 눈빛이라서, 그의 눈가 주변에 일렁이는 아지랑이가 보이는 듯했다.

    당황한 찰나, 서의우가 재차 입술을 붙여 왔다. 옷 안쪽으로 파고든 손이 옆구리를 쓸고 올라가 가슴을 쥐었다. 게다가 다리 사이에도 허벅지를 찔러 넣고 앞섶을 닿게 했다. 서의우의 바지통은 이미 묵직했다. 굵고 기다란 윤곽이 뚜렷하게 솟아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발정 나는 게 서의우이긴 하지만, 이런 순간에, 이런 곳에서까지는 예상치 못했다. 대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기, 기다려. 서의우. 잠시만.”

    가이딩이라면, 뭘 얼마나 하겠다는 거지?

    설마 여기서 좆을 넣겠다는 건가?

    키스만 하는 정도면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서의우가 달라붙는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어떻게 할 생각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창백해진 권재진이 일단 서의우를 말렸다.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만.”

    두 손으로 어깨를 밀며 허리를 뒤틀어 대자, 서의우의 콧잔등에 언짢은 주름이 잡혔다. 권재진이 그를 거절하는 게 죽기보다 괴로운 눈치였다. 그가 사납게 눈을 번뜩였다.

    “왜 그래요. 나…… 내가 뭐 잘못했어요?”

    “그런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나 아무도 안 죽였잖아요. 심지어 마태오까지도. 그 새끼 뼈만 으스러뜨렸지, 숨은 붙였어요. 잘 참았다고요. 다 살려 놓고 왔는데 왜…….”

    “…….”

    말문이 막힌 재진이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사실 그가 옳았다. 에스퍼는 이능을 사용할 때마다 가이딩을 갈구하게 된다. 조금 전 광분한 서의우가 사방팔방 이능을 폭발해 댔고, 그만큼 막대한 힘을 발산했으니 가이딩이 필요한 타이밍이 맞았다. 하물며 그의 말처럼 정신계 이능까지 사용해야 하는 마당이니 지금 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렇게 탁 트인 바다 위에서……?

    권재진이 검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난처하게 눈썹을 처뜨린 모습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딜 보나 사방이 트여 있다.

    서의우는 권재진이 망설이는 이유를 통 모르겠다는 식으로 달라붙었다. 밀쳐 대는 손을 잡아 어깨에 감게 하고는 뺨과 눈가에 막무가내로 입술을 찍었다.

    “있죠, 재진 씨.”

    그가 눈꺼풀 위를 핥으며 속삭이자, 말할 때마다 눈 안쪽이 진동했다.

    “지금껏, 가이딩은 나를 위한 거였어요. 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오직 나만을 위한 행위였다고요.”

    “뭐……? 읏,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그렇지만 이제 알겠어. 그게 아니에요……. 재진 씨와 나, 우리를 위해서 가이딩 하는 거예요.”

    “난데없이…… 예?”

    “아냐, 난데없지 않아요.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거였어요. 단지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

    “우리 같이 제대로 살기로 했잖아요. 다 뒤엎기로 했잖아.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내 이능은 이 순간을 위함이었음을.”

    “…….”

    “가이딩도 그래. 날 위한 게 아냐. 우리 둘을 위한 거예요. 재진 씨 없이는 아무 의미 없어요.”

    “…….”

    “내가 에스퍼로 태어난 의미, 내 이능의 존재 이유, 그게 권재진이라고요.”

    그 말에 재진이 두 눈을 크게 홉떴다.

    한 번 깜빡이더니만, 허를 찔린 사람처럼 반응했다.

    가이딩이 서의우를 위한 게 아니라고?

    둘을 위한…… 가이딩……?

    그런 건 생각지도 못했다.

    충격이었다. 서의우가 말한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맴돌았다.

    “가이딩이…….”

    <가이드는, 적응할 때까지 이 쬐끄만 안쪽을 풀어 주는 게 아니라……. 적응할 때까지 나랑 가이딩을 해야 하는 거예요.>

    <아픕니, 이거 빼…… 아파!>

    <저도 아파요. 가이딩은 대개 그렇고.>

    <내보내 줄 테니 나가서 사살당할래요? 아니면 숨겨 줄 테니 제 품에서 서의우 전용 가이드로 살래요?>

    “가이딩을…….”

    한 번도. 단 한 번도.

    권재진을 위해 가이딩 한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억지로, 강제로, 어쩔 수 없이, 서의우가 원하니까, 그가 에스퍼니까, 그렇게 타고났으니까.

    이제는 다 받아들이고 괜찮아지긴 했지만, 분명 마지못해 했던 부분도 있었다.

    그랬는데…….

    “…….”

    뒷말을 잇지 못한 재진이 결국 입을 도로 다물었다. 뭔가 마땅한 말을 내뱉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하얘진 것처럼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놀랍고, 심장이 울렸다. 가슴속이 찌르르 진동했다. 손끝이 저렸다.

    만일 권재진이 서의우와 함께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면 이런 건 알지 못했을 터였다.

    서의우와 함께 떠났다면 그의 절대적인 이능은 제6 거주지구 산골 어딘가에 묻혀 버렸을 것이다. 에스퍼고 가이드고, 그런 것 관계없이 둘이서만 소박한 일생을 살다가 끝났을 터다.

    하지만, 권재진은 도망칠 수 없었고, 도망치지 않았고, 서의우를 설득했다. 그로써 서의우는 하늘을 베는 칼이 되어 돌아왔다. 각성자 사회에 환멸을 느껴 목줄을 뜯어낸 그는 더 이상 국가와 군부, 인류를 위한 무기가 아니었다.

    그의 이능은 권재진의 운명을 뒤엎기 위함이고, 두 사람이 제대로 된 인생을 살기 위한 힘이다.

    그러니, 가이딩도 마찬가지였다.

    권재진이 서의우를 가이딩한다면 그건 둘을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가이딩이라고 해 봐야, 원치 않는데 떠밀려 제공하거나, 아니면 성관계를 닮은 행위이기에 섹스인지 가이딩인지 모호하게 어영부영 겸사겸사하는 식이었다. 그렇지만, 이 행위에 명확한 구분이 생겼음을 오늘로써 뚜렷하게 주지하게 됐다.

    가이딩은, 그런 거였다.

    이제 권재진이 서의우를 가이딩 한다는 건…… 그런 의미가 됐다.

    권재진을 위해서, 돌연변이로 타고난 운명을 뜯어고치기 위해서, 세상을 뒤엎고 맞서 싸우기 위해서.

    “재진 씨, 가이딩 해요.”

    서의우의 목소리가 마음을 흔들고 지나갔다.

    “날 가이딩 해 줘요.”

    “……알겠습니다.”

    재진이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소만, 바꿔서, 합시다.”

    “장소? 어디로?”

    “그…… 저택은.”

    “안 돼요. 거긴 이미 센터에 노출됐으니까요.”

    그냥 노출되었다 뿐인가. 벽도 부서지고 난장판이고, 밖에는 각성자들이 우수수 쓰러져 있다. 거기로 되돌아가는 건 무리였다.

    “……그럼 그냥, 하아.”

    하는 수 없이 재진이 아쉬운 소릴 내뱉었다. 민망해서 귀 끝이 뜨거워졌다.

    “아니, 그게, 야외에서는, 해, 해 본, 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서…….”

    “…….”

    “좀 가려진 곳이면…… 나무, 나무 뒤라거나.”

    “……나무?”

    “…….”

    “나무?”

    그 말에 서의우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갑작스러운 습격 때문에 살벌하기 짝이 없었던 그의 굳은 얼굴이 겨우 풀어졌다.

    “나무면 되겠어요? 그거면 돼?”

    “……아마도. 몰라. 모르겠습니다.”

    “알았어요. 나무.”

    그 직후, 반짝이는 하얀빛이 퍼졌다. 좌표 이동으로 풍경이 바뀌었다. 다행히도 뭍이었고, 가지를 넓게 펼친 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줄기 굵은 나무에 권재진을 기대어 세운 서의우가 피식거렸다. 그러다가 웃음이 계속 튀어나와서 큭큭댔다.

    “재진 씨, 야외에서 해 본 적 없죠. 처음이죠?”

    “……그야 당연히.”

    “그쵸, 4년간 저택에만 갇혀 지냈으니까, 그렇겠죠 당연히?”

    “……아는데 뭘 자꾸 말합니까.”

    “그럼 밖에선, 나랑 처음으로 하는 거겠네요?”

    “…….”

    “의우야랑 또 처음이라고요. 응?”

    “……”

    어느새 서의우의 뺨이 그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쩐지 안심이 됐다. 긴장도 풀렸고. 조금 전까지는 그가 너무 살벌해서 자각 없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발각당해 버렸다는 생각에 내심 두렵기도 했다. 재진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 서의우, 너 또 흥분하지 말고.”

    “내가 흥분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재진 씨가 날 흥분시키잖아요.”

    서의우가 쓱 눈을 휘었다. 안달 날 대로 안달 나서는 다소 난폭하다 싶게끔 입술을 맞췄다. 무도하게 입을 찍어 누르며, 틈새로 혓바닥을 비집었다. 이미 질척하게 젖은 입 안 점막을 다시 흠뻑 적시면서 대놓고 빨았다. 바지를 벗기는 손길이 갈급했다.

    “나 진짜 재진 씨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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