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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 (81)화 (81/154)
  • #81

    서의우는 조용히 팔을 뻗어 권재진의 목을 손끝으로 짚고 잠시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 평상시 그였다면 권재진의 허리부터 껴안았을 텐데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접촉이었다. 하지만 조금쯤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아졌다.

    서의우가 목 윗 부근을 지그시 누르던 손가락을 떼어 내고 이번에는 얼굴 쪽으로 팔을 뻗어서 코 밑부분에 손가락을 대었다.

    서의우는 권재진의 생사를 확인하고 있었다.

    좀 전에는 맥박이 잘 뛰는지, 이번에는 숨은 잘 쉬는지.

    호흡에 이상이 없음을 확신한 뒤에는 가슴께로 손이 내려왔다. 서의우가 권재진의 왼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덮고 심장 박동을 확인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란지 이불을 걷고 권재진의 가슴 위에 귀를 댔다.

    규칙적으로 두근거리는 희미한 울림을 들으며 서의우가 아득한 한숨을 내뱉었다.

    들릴 듯 말 듯 낮게 깔리는 한숨 소리였다. 이 겨울처럼 길고 차갑다.

    아무래도 서의우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불안이 지나친 모양이다.

    습격당해 피투성이로 누워 있는 것도 아니고 멀끔한 모습으로 가만히 잠들어 있는 권재진의 생사까지 확인해 봐야 할 정도라니. 그것도 이렇게 몇 차례나 강박적으로…….

    그야 물론, 권재진이 행방불명되었던 당일 서의우가 하얗게 질려 혼이 나간 모습을 보긴 했다. 그러나 사귀기로 했을 때는 나름대로 진정되어 보였기에 불안 증상도 어느 정도 가라앉은 줄 알았다.

    전투 중에 쉴 새 없이 연락하는 것도, 수색부대가 꾸려진 상황을 경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차차 괜찮아질 줄 알았다.

    혹시 몰라 문자로 미리 잔다고 밝혀 두고 잠들었는데도 맥박이 뛰는지, 숨은 쉬는지, 심장 소리는 여전한지 확인해야 할 정도로 과민해져 있다니……. 그의 깊고 위태로운 혼란이 아릿하게 와닿았다. 권재진이 생각한 것보다 서의우는 훨씬 불안정한 상태임이 틀림없었다.

    재진이 비척비척 눈을 떴다. 캄캄해서 거의 보이는 것 없는 시계를 뚫고 서의우의 팔을 찾았다.

    “……의우야.”

    재진이 서의우를 부르며 팔뚝을 잡아당겼다. 뜨겁고 딱딱한 몸을 껴안아 품에 깊게 파고들고는, 너른 가슴팍에 졸린 얼굴을 풀썩 얹었다.

    “재진 씨…… 내가 재진 씨 깨웠어요? 깨우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

    “자는 것만 보고 다시 가려고 했어요. 못 견디겠어서.”

    “……무단 이탈 했습니까?”

    “아뇨, 교대 시간이에요.”

    “그게 무단 이탈이잖습니까…….”

    “안 들키면 돼요. 시간 맞춰 돌아갈 거예요. 오늘,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요.”

    전투복 차림의 서의우가 몽롱한 권재진을 세게 끌어안았다. 가둬 누르는 듯한 몸짓이 안심됐다. 이렇게 붙어 있는 게 참 좋긴 좋다.

    “죄다 재진 씨를 죽이려 하고, 잡으려 하고, 생체 실험이니 뭐니…… 끔찍한 짓거리만 해 대려고 하잖아요.”

    “……뭐라고……?”

    “장태산 중령 누군지 알아요? 제1 특임부대 지휘관. 내 상관. 나더러 재진 씨 죽여서 시체를 가져오래요.”

    “…….”

    “심지어 종일 재진 씨 잡으려는 수색부대랑 뒤엉켜 있었어요. 돌아가면 또 그들과 섞여 있어야 해요. 마태오 얼굴 보기 싫어요. 진짜 죽여 버리고 싶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침대에서, 서의우가 권재진을 절박하게 붙들고 정신없이 속살거렸다. 애타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잠이 깨고 가슴이 조금씩 갈래갈래 찢어지는 것 같았다. 찢긴 살점을 비집고 뾰족한 대바늘이 끊임없이 하나씩 꽂히는 기분이다.

    “죽이면, 나 돌아가서 그 새끼 정말 죽여 버리면 안 될까요? 크리처 소행인 것처럼 위장하면 되잖아요. 발각당하지만 않으면…… 네?”

    서의우가 장갑을 벗고 재진의 얼굴을 느릿느릿 쓸어 만졌다. 잠결에 느슨하게 풀린 뺨을 차근히 더듬고 살짝 벌어진 입술 위를 매만졌다. 단단하게 여문 손끝이 무른 입술을 간질였다. 그 손이 안타깝게 떨리고 있었다.

    “그 새끼들 다 재진 씨 죽이려고 하는 놈들이잖아요……. 재진 씨는 죽여도 되고, 저들은 죽이면 안 되는 건가요……? 대체 왜 그래야 하죠? 어차피 난 이미 범법자인데.”

    “의우야. 의우야,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그가 권재진의 말을 끊고 호소했다.

    “아무리 그래도, 부당하잖아요.”

    기어이 서의우가 부조리한 체제의 근원에 도달했다.

    “재진 씨만 죽어야 한다는 게, 그게 당연하다는 게……. 내가 미친 건가요? 나만 정신이 날아간 거예요……?”

    “……죽는 게 당연한 목숨 같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 지금이라면 정말 잘 죽일 자신이 있어요. 재진 씨가 항상 가이딩 해 줬잖아요.”

    서의우는 4달간 S급 가이드의 가이딩을 독점적으로 받아 왔다. 아직 그의 불균형이 완벽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정도만으로도 서의우는 괴물 같은 이능을 넘치도록 뿜어낼 수 있었다.

    “전투는 원래도 그닥 어렵지 않았지만, 재진 씨 만난 후부터는 정말 쉬워졌어요. 크리처 따윈 장난감 다루듯 갖고 놀 수 있게 됐고. 각성자들 죽이는 것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겠죠.”

    “다르지 않다니. 무슨 소립니까.”

    “간단한 거예요. 핵만 골라서 으스러뜨려 버리면 특임부대 수십, 수백 명이 몰려오더라도 눈 깜빡할 새 몰살할 수 있을 테죠.”

    “…….”

    서의우가 야성미 넘치는 회색 눈동자를 번뜩였다. 칼날처럼 어둠을 찢는 살기 어린 눈이지만, 그 이면에는 권재진을 향한 주체 못 할 두터운 애착이 지글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켜켜이 쌓인 짙은 감정이 어느새 서의우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 버리고 말았다. 오래도록 주입당한 각성자식 사고방식마저 전복할 정도로.

    “재진 씨 죽이려는 놈들 내가 다…… 다 죽여 버리고, 재진 씨랑 제대로 연애하고 싶어요. 이런 건 안 될까요? 내가 이러자고 하면, 나랑 헤어지고 싶어요……?”

    그 순간, 흐르던 시간이 단숨에 멈춰 버린 것 같았다.

    중력이 수십 배로 강해지며 온몸에 과부하가 걸리는 기분이었다. 생각이 깊어지고, 감정은 진해지고,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적막한 고요를 뚫고 날 선 숨소리만 거칠게 들려왔다.

    갑작스럽긴 해도, 권재진은 저 말이 서의우의 진심임을 알았다. 단박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서의우는 밖에서는 거짓을 일삼더라도 권재진에게는 늘 진실만을 말했다. 권재진을 향한 것 중에 진심이 어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혹했다.

    권재진은 성자가 아니다.

    “다…… 죽이겠다고?”

    재진이 툭 내뱉듯이 중얼거렸다.

    이 망할 세상. 빌어먹을 체제.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기구한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해 보지 않았을 리 없었다.

    돌연변이란 존재를 원망한 적 한두 번이 아니고, 돌연변이를 살처분하려는 정식 각성자 및 관계자들 싸그리 죽여 버리고 싶단 생각 안 해 본 것도 아니었다. 서의우가 나서 주겠다면 몰살이건 멸망이건 틀림없이 성공하겠지 싶다.

    전지전능한 S급 에스퍼. 초월적인 다중 이능 사용자. 서의우가 감추어 둔 본연의 권능을 터트려 버린다면, 그날 협곡의 지형이 통째로 삭제되듯 날아간 것처럼 각성자들도 단숨에 정리되지 싶었다.

    구태여 고생할 필요도 없이, 센터에 각성자들 우글우글 모여 있을 때 그래 버리면…….

    싹 다 한 방에…….

    “안 됩니다.”

    권재진이 서의우의 가슴을 손으로 짚고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어느 정도 어둠에 익은 눈이 그의 윤곽을 잡아냈다.

    권재진이 자신을 다잡으며 강인하게 대답했다.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한데 뭉쳐 두껍게 나왔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거부감이 있어서도 아니고.

    도덕이나 윤리, 생명의 존귀함 따위 의당한 논리를 전파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위의 사유도 서의우가 학살자로 변모해선 안 되는 나름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하면…… 저는 서의우 씨와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

    숱한 시체를 발밑에 깔고 제대로 연애라…… 그게 가능할 것 같지 않다.

    1회차 서의우와 고작 진흙탕에 서 있었을 때마저 평범하게 연애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2회차 서의우와 피 웅덩이에 함께 서서는 더욱 불가능했다.

    다 죽이면. 서의우의 말대로 싹 다 죽여 버리면…… 복수는 할 수 있겠고, 갈 곳 없던 오랜 원망도 풀 수 있겠고, 이 끔찍한 체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연애는…… 연애만큼은 이룰 수 없다. 그건 진짜 아니었다.

    “서의우 씨도 생사를 넘나들며 동고동락한 동료들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참살하고 멀쩡하진 않을 것 아닙니까.”

    권재진은 세상이 선악으로 딱 잘라 나뉘어 떨어진다고 믿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정식 각성자들과 군 관계자들이 장난감 병정이 아닌 줄 안다.

    그들은 그냥, 서의우 같은 통제당한 이능력자에 불과했다. 서의우도 처음에는 그들 중의 하나였으니까.

    서의우는 권재진이 돌연변이이기 때문에 사살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고, 최근까지도 그 사실에 의문을 제기한 적 없었다. 그건 서의우의 잘못이 아니었다. 다른 각성자들의 잘못도 아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그보다 더 무고한 자들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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