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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 길들이기 (5)화 (5/154)
  • #5

    “너…… 내 누, 눈알, 핥으려고 그러지…….”

    “아. 들켰다.”

    “이 개새끼…….”

    “나 개새끼예요? 강아지?”

    서의우가 멍멍, 하고 짖는 시늉을 했다.

    권재진은 골이 아팠다.

    ‘내가 저…… 저 짐승 새끼를 어느 세월에 다시 사람 새끼로 키워 놓지?’

    염병. 욕이 절로 나온다.

    최후에는 권재진이 승리하는 게임이란 사실을 알더라도 과정이 이토록 끔찍한데 욕하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다.

    “눈알, 점막으, 은, 싫습니다. 끄으, 개새끼면 개새끼답게, 내 주둥이나 핥, 으십시오.”

    재진이 두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그러곤 입술을 빠끔 벌려 주었다.

    내내 고통을 참아 내느라 어금니를 악물고 있던 입이 벌어지고 조금 침이 고인 붉은 혓바닥이 드러났다. 가지런하게 늘어선 하얀 이빨도 보인다. 서의우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찼지만 차려진 밥상을 거절하진 않았다.

    “그래요. 좋아요.”

    서의우가 기다렸다는 듯 권재진의 입에 제 입을 맞추어 달라붙었다.

    완전히 밀착하도록 고개를 비틀고 혀를 깊게 밀어 정신없이 빨아 댔다. 그가 각도를 바꿔 입 맞출 때마다 모난 곳 없이 알맞게 내리 떨어지는 턱선이 뚜렷하게 두드러졌다.

    “으, 흐끄…… 악……!”

    “하아, 좋, 으응, 좋아요.”

    잔뜩 열 오른 숨결이 거칠게 맞부딪치며 섞였다.

    서의우는 아예 숨 쉴 틈을 주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입 안에 파고든 혓바닥이 이리저리 약한 점막을 비벼 댔고, 배 속을 깊게 꿰뚫은 흉기 같은 좆도 사정없이 내벽을 때렸다. 속살이 죄다 짓물러 터질 것 같았다. 아랫배에 피멍이라도 맺힌 느낌이었다.

    위아래로 격렬하게 덮쳐져 정신이 날아갈 것 같은 순간, 서의우가 손을 뻗어 재진의 목을 그러쥐었다. 혀를 섞는 채 뭉그러진 발음으로 속삭인다.

    “그엄, 이에, 재우께요.”

    그럼 이제 재울게요.

    1회차 언젠가 들었던 말을 데자뷔처럼 또 마주하며 재진은 난폭하게 목이 졸렸다. 뇌로 가는 혈류가 차단되고 눈앞이 차츰 흐려졌다.

    이 끔찍한 악몽 같은 짓거리를 또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뒷골이 세게 당겼다. 하지만 그렇대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허, 아악……! 으으.”

    어지럽다는 생각과 함께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막무가내로 시트를 움켜잡던 손이 흠칫대며 멈추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망설임 끝에 재진이 천천히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서의우의 등에 팔뚝을 감고선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짜증스레 휘어잡다가,

    아주 조금 쓰다듬는다.

    ‘서의우 이 씨발 새끼…….’

    이딴 짓을 해 대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니…….

    ‘정말, 끝까지 날…….’

    ***

    정신을 차려 보니 철 가루를 삼킨 것처럼 목구멍 안쪽이 까끌까끌했다. 입술은 또 언제 찢어졌는지 아프고 찝찔한 피 맛이 났다.

    “……으.”

    이 갈라지고 비틀린 목소리가 사람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니.

    온몸이 만신창이다.

    전신에 근육통이 느껴지고 피부는 멍으로 빼곡하고 허벅다리를 타고 피와 섞인 정액이 흐르고 있다. 게다가 오늘이 며칠인지, 몇 시인지도 모르겠다.

    권재진은 기절하고 나서도 한참을 박혔다. 도중에 정신이 들어 몇 번을 깨었는데도 서의우에게 붙들려 여전히 몸뚱이가 흔들리고 있었고, 그때마다 반복해서 거듭 목이 졸려져야 했다.

    만약 서의우에게 긴급 소집 호출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박히고 있었을 거다.

    “끄으으…….”

    재진이 힘 빠진 근육을 억지로 움직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태라지만 가만히 누워만 있을 수 없었다. 침대 머리맡을 손으로 어렵사리 더듬어 보니 작고 납작한 물체가 짚였다.

    힐링 팩터.

    투명한 케이스 안에 새파란 물약이 담겨 있다.

    재진은 그것을 손안으로 끌어와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안쪽에 주삿바늘이 있다. 팔뚝에 푸른 혈관을 찾아 바늘을 쑤셔 넣고 끄트머리에 볼록한 스위치를 톡 눌렀다.

    약물이 피를 타고 섞였고, 그 즉시 자가치유력이 급속하게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

    차츰 뜯긴 살점이 되살아나고 멍 자국도 눈에 띄게 사라져 간다.

    참고로 이 기적 같은 치료제는 일반인들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은 품목이었다. 일반인들은 힐링 팩터의 존재조차 모른다. 이런 게 있는 줄 안다면 다들 눈이 뒤집혀 기를 쓰고 차지하려 들 테니까.

    ‘아니, 어쩌면 나 같은 가난뱅이들만 모르고 있던 걸지도.’

    일반인이라도 부유층은 뒷구멍으로 빼돌려 사용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뭐, 그런 건 지금 권재진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재진은 힐링 팩터를 모두 주사한 뒤 케이스를 내던지고 몸의 감각이 제대로 돌아올 때까지 침대에 푹 파묻혀 누워 있었다. 찢어지고 더러워진 옷이 찝찝했지만 벗을 기운이 나지 않았다.

    공연히 천장을 올려다보며 막막한 눈만 깜빡여 본다.

    ……파랗다.

    방탄유리 바깥 하늘이 새파란 걸 보니 지금 시간은 대충 낮인 것 같았다.

    납치당하고 첫 가이딩을 강제당했던 날, 서의우가 전투 임무를 끝마치고 돌아왔던 게 석양이 지는 일몰 즈음이었으니 여유 시간이 꽤 있는 편이었다.

    ‘서의우…… 개자식.’

    그 새끼를 생각하니 가슴께가 또다시 뜨거워졌다.

    무언가 속에 턱 막힌 것처럼 묵직하기도 하고 성가시게 술렁거리기도 했다.

    권재진은 서서히 절절 끓어오르는 분노를 담아 서의우를 저주했다.

    ‘때려눕혀도 시원치 않을…… 개 또라이 개 미친, 개 쌍놈의 씹새끼…….’

    회귀한 것도, 사망했던 것도, 2번째로 서의우의 가이드가 된 것도 다 괜찮았다.

    오히려 기회를 얻어 다행이라 여겼다.

    2회차 인생에서는 뜻하는 바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시간 낭비 없이 최적의 길을 택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실,

    솔직한 심정으론 억울하다.

    지난 4년의 분투가 물거품처럼 사라져서 억울해 미쳐 돌아 버리겠다.

    ‘저 새끼, 저거도 한 번 자기 엉덩이 구멍 대차게 찢겨 봐야 돼. 호로새끼.’

    공든 탑이 무너지면 이런 심정일까?

    권재진의 지난 4년.

    그 피, 땀, 눈물 어린 시간이 완전히 초기화되었다.

    난데없이 납치 감금당하고 엉덩이에 말 좆 박혀 가며 말 안 통하는 짐승 새끼 붙들고 열심히 가르쳐 놨더니만, 꿋꿋이 인내하고 살아온 보람도 없이 허망하게 죽어 버렸고, 지금껏 했던 고생도 깡그리 헛일이 되어 쌩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머리꼭지가 돌아 버리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그 어떤 성자라도 권재진의 처지가 된다면 분통 터지고 울화가 치밀 거다.

    저 인간 같지도 않은 탈인간 인외 생명체 S급 에스퍼 서의우를 붙잡고 기본적인 서로의 상식 차이부터 다시 하나씩, 아예 생 처음부터 설명하고 가르치고 쌓아 가며 길들여야 한다니. 억울하다 못해 이가 박박 갈린다.

    권재진이 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왜 또 이런 짓을 반복해야 하는 거냐고……!

    ‘하. 몰라.’

    그 순간, 맥이 탁 풀렸다.

    ‘됐다. 이미 회귀해 버린 걸 뭘 어쩌겠나.’

    억울하다고 알아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탄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럴 시간에 빨리 서의우나 조련하자.’

    재진은 고독했고,

    혼자였다.

    그의 시간선에 존재하던 서의우는 이제 없다. 여기에 있는 것은 원점으로 돌아간 서의우다.

    그는 권재진의 서의우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권재진의 서의우가 아닐 수도 없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부모가 자식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더는 부모가 아니라고 여길 순 없는 것처럼, 서의우가 재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서의우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었다.

    권재진은 이미 한 번 그와 사귀기로 합의한 바 있었다.

    그러므로, 서의우는 권재진의 애……

    애……새끼 같은……

    애인이다.

    전…… 남자 친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현…… 남자 친구라고 해야 할까. 그 지점은 조금 헷갈리기는 한다만, 어찌 됐든 아직 헤어지자고 하질 않았으니 서의우는 권재진의 사람이었다.

    애인. 연인. 남친. 소중한, 그, 뭐든, 아무튼 그게 뭐든…….

    ‘서의우 그놈이 나한테 미친 짓 했던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심을 품고 저러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권재진은 2회차 인생을 맞이했어도 1회차 때와 동일하게 그와 연인 관계가 될 생각이었다.

    서의우의 협력을 얻어 내기 위해 그와 사귀는 방법이 가장 편리하기도 했지만, 그냥 막연하게 당연히 서의우는 응당 권재진의 애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권재진은 서의우를 사람 새끼로 길들이고, 4년 후 찾아올 게이트의 참사를 회피한 뒤에는, 미운 놈에게 미운 정 주며 나름대로 같이 잘 살아 보려 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예뻐해 주기도 하고 귀여워해 주기도 하면서, 이젠 그만 좀 싸우고 오래오래 평화롭게 옆구리에 끼고 지내 보려 했다는 뜻이다.

    ‘두 번 개고생하게 돼서 성질나긴 하지만, 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때보다야 납치 감금 경력직인 지금이 훨씬 낫겠지. 안 그래?’

    어차피 힘든 건 잠깐이다.

    그 잠깐이 지나고 나면 권재진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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