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다리라고.”
새까만 눈알에 힘을 주고서, 한 자 한 자 씹어 내듯 분명하게 말했다.
“거기, 아프단 말입니다.”
물론 고작 이런 나약한 말론 서의우를 제지할 수 없다.
전투가 일상인 각성자들은 뒷구멍 조금 찢어지는 정도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서의우 저 새끼는 일단 박아 넣고 나중에 힐링 팩터를 꽂아서 치료해 주면 다 된다고 생각한다.
‘그놈의 힐링 팩터. 다신 쳐다보기도 싫다.’
권재진은 이번에도 서의우가 지긋지긋한 힐링 팩터 어쩌고를 입 밖으로 내뱉기 전에 빠르게 입을 놀렸다.
“우선, 대충 그쪽 사정은 알겠습니다. 내가 서의우 씨 매칭 가이드인 것도 알겠고, 서의우 씨에게 제대로 된 가이딩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겠고, 지금부터 내 뒷구멍에 무식하게 생자지 쑤셔 박을 생각인 것도 몹시 잘 알겠는데…… 아프, 아프다고요.”
재진의 귀가 더 붉어졌다. 아무리 인생 2회차라도 이런 나약한 소릴 내뱉는 건 익숙해지질 않았다. 목에 핏대가 섰다.
“전투 한 번 나가면 팔목 날아가는 게 일상인 각성자들은 모르시겠지만, 저는 일반인으로 살았습니다. 일상에서 피 볼 일 없습니다.”
“아…… 그래요? 그래서 그렇게 허약했나. 어쩐지 쓰러지고 하더니…….”
“지금 서의우 씨에게 가이딩이 필요해 보이니 가이딩을 제공하긴 하겠습니다만…… 제 몸 다치는 것까진 용납 못 합니다.”
“흐음.”
서의우가 두 눈을 가볍게 깜빡였다. 반질반질한 회색 눈동자가 기분 나쁘게 빛나더니만 시험해 보듯 손목을 돌렸다. 재진의 뒤쪽에 박힌 손가락이 뒤집히며 내벽을 긁었다.
“아, 윽!”
“그렇게 말해도 어쩔 수 없어요. 여기 이렇게 좁은데 다치지 않고 어떻게 해요?”
“아니, 잘…… 잘 풀어서 하면 됩니다.”
“풀어서?”
서의우가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미소 지었다. 가이딩의 효율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각성자들에겐 일부러 시간 들이고 공을 들여서 구멍을 눅진하게 풀겠다는 발상 자체가 없다.
그들에게 이 행위는 양자가 기분 좋은 섹스가 아닌, 말 그대로 필요에 따라 행할 뿐인 의무적인 가이딩에 불과하니까.
일단 박고, 가이딩 하고, 그 후에 치료한다.
재진이 불쾌감을 참아 내며 최대한 침착하게 답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안쪽이, 적응……할 때까지, 그…… 씹, 잠깐 손 좀, 멈춰 보십시오.”
“하하. 귀엽네요, 당신.”
서의우가 손끝에 힘을 주고 구멍을 잡아 벌렸다. 하는 짓을 보니 이미 서의우는 재진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냉정한 눈빛을 보니 이만하면 억지로 처박아 넣을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슬슬 확신이 섰는지 그가 점막에 비비적대던 손가락을 곧장 밖으로 끄집어냈다. 권총집과 연결된 가죽 허리띠를 풀고 검은 바지춤을 열어젖힌다. 모든 동작이 간결하고 빨랐다. 가이딩 하기까지 조금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그딴 거 안 해도 제대로 적응할 거예요.”
“그딴 거?”
브리프 밖으로 거대한 살덩이가 툭 튀어 올랐다. 흉기 같은 서의우의 좆과 재진의 눈이 마주쳤다. 저건 무식하게 크지만 않았으면 꽤 보기 좋은 생김새를 갖고 있다. 주인을 닮아 예쁘장하다. 색도 연한 분홍색이고 선단 부분도 예쁘게 볼록 솟아 있다. 그렇지만 역시 무식하게 크다.
“그쪽도 이젠 가이드니까.”
서의우가 재진의 무릎을 잡아 벌렸다. 그러고는 엉덩이 골에 대고 성기 끄트머리를 세게 밀어붙였다.
“가이드는, 적응할 때까지 이 쬐끄만 안쪽을 풀어 주는 게 아니라……. 적응할 때까지 나랑 가이딩을 해야 하는 거예요.”
대충 만지기만 한 곳에 쉽게 들어갈 리 없다. 서의우는 여린 살갗을 난폭하게 치받고 당기며 무리한 삽입을 시도해 댔다. 재진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끄윽! 큭……!”
“아픈 줄도 모를 때까지, 읏…… 제가 여기 박아 줄게요. 도중에 기절하고 싶으면 기절해도 돼요. 가만히만 있어요.”
아래쪽이 강제로 벌어지고 뜨거운 열이 몰렸다.
뭘 해 보려 해도 그럴 겨를이 없다. 설득이나 설명은커녕 말 한마디 내뱉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게다가 당장은 재진이 무슨 말을 하든 서의우가 들어먹을 것 같지도 않았다.
좁게 달라붙은 주름이 한계까지 펼쳐져 팽팽해졌다. 더는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는데도 서의우는 멈추지 않았다. 촘촘하게 짜인 그물을 찢고 속으로 침범하려는 침입자처럼 집요하고 꾸준하게 아래를 밀어붙였다.
숨이 턱 막힌다.
“아으윽……! 그만, 헉……! 서, 서의…….”
재진이 도망치고자 반사적으로 허리를 들어 올렸다. 가이딩을 거부할 생각은 없었으나, 재진의 본능이 이건 안 된다고 요란하게 경고등을 울리고 있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나고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왜 움직이지? 후으, 가만있으라니까.”
서의우가 큰 손바닥으로 재진의 가슴께를 짚어 침대에 내리눌렀다. 팔뚝에 체중까지 실어 찍어 누르듯 위를 점하자 바르작대던 재진의 자세가 단단히 고정되었다. 침대에 못 박힌 것처럼 꼼짝도 못 하겠다. 갈비뼈가 으스러질 것 같다.
“아픕니, 이거 빼…… 아파!”
“저도 아파요. 가이딩은 대개 그렇고.”
고통이 절정을 찍었다.
생살이 찢기는 통증이 느껴진 후에 절절 끓는 뜨거운 열기가 몸속으로 왈칵 밀려들었다. 뜨겁고, 아프고, 이것저것 뒤섞이는 감각이었다. 서의우는 적당히 깊은 곳까지 좆을 쑤셔 박아 놓고는 잠시 진입을 멈추었다. 더는 안 들어가는 모양이다.
얼마간 숨을 고르던 서의우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삽입할 때는 굵은 좆이 끊어질 것처럼 조여서 꽤나 아팠는데, 넣고 나니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이딩의 전율이 벼락처럼 그를 꿰뚫었다.
“아, 아, 하아…… 좋아…….”
눈알이 뒤집힌 서의우가 더듬거리며 신음했다.
처음 경험하는 제대로 된 가이딩에 취해 정신이 나가 버렸다.
동공에 초점이 사라졌고, 마약을 봉지째 들이켠 사람처럼 연신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읊조렸다.
“내 가이드……. 내…… 나, 그, 에스퍼로 태어나길 잘한 것 같아요. 어쩌지? 이런 생각 들면 안 되는데. 진짜 안 되는데……. 내 가이드…… 드디어 찾았다고, 내……. 그런데, 그쪽 이름이 뭐죠?”
서의우가 발정 난 짐승처럼 허리를 세차게 짓이기듯 쳐올리기 시작했다. 허리 짓에 골반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이제 막 가이딩을 시작했을 뿐인데 벌써 하반신이 빠져 버릴 것처럼 지끈거렸다. 구멍은 쓰라리다 못해 불로 지지는 것 같았다.
“으으윽, 흐큿……!”
재진이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였다. 발버둥이라도 쳐서 이 고통을 멈추고 싶었다. 서의우는 반항하는 권재진 정도는 간단히 제압할 수 있다는 듯 빙긋 웃으며 펄떡거리는 재진의 다리를 추슬러 옆구리에 꼈다. 그의 허리에 밀착한 무릎이 발발 떨렸다.
“응? 뭐라고 부르면 돼요? 이름, 후, 뭔데요?”
갈증 난 사람처럼 목울대를 크게 울컥거려 마른침을 삼킨 서의우가 명백히 맛이 간 눈깔로 재진을 내려다보았다. 들뜬 시선이 재진의 얼굴부터 훑어 내려 빠듯하게 물린 아래쪽 구멍까지 이르렀다.
피가 묻어난 안쪽 점막이 좆기둥에 붙어 딸려 나온 모습을 확인한 서의우가 흡족하게 눈을 휘었다. 재차 허리를 크게 퉁겨 올리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의 체중이 실리며 삽입이 더욱 깊어졌다.
“아, 헉! 으큿, 윽……! 저리, 가, 좀…….”
권재진이 몸서리치며 발끝을 움찔거렸다.
손을 내밀어 서의우에게 뻗다가 도로 돌이켜 시트를 그러쥐었다. 손가락을 갈퀴처럼 세워 매트리스를 긁어 대며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내 말 제대로 안 들리나요? 안 알려 줄 거예요?”
“궈…… 아, 권재, 재진.”
“권재진?”
“핫, 흐…… 으읍.”
“그럼 재진 씨네요. 근데…… 그거, 많이, 어렵나요?”
서의우가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권재진에게 바짝 얼굴을 붙였다.
양다리를 단단히 붙잡혔는데도 연신 버둥거리고 내빼려는 재진을 빤히 내려다보며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읊조렸다.
“그렇게 어렵냐고, 가만히 있는 게.”
그 말에 권재진이 왈칵 인상을 썼다.
잔뜩 일그러진 재진의 얼굴을 본 서의우가 입술을 부리처럼 삐죽 내밀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푹 수그려 얼굴을 더욱 가까이 붙였다.
“나 봐 봐요.”
“씨, 발, 또 뭘…….”
“재진 씨가 자꾸 움직이니까, 하하, 그냥 기절시키고 편하게 박으려고요. 그렇지만 기절하면 눈을 못 뜨게 되니…… 지금 나 잠깐 봐요.”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아래로 쏟아져 얼굴을 가렸다.
서의우가 거친 숨을 내쉬며 쏟아진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쓸어 넘겼다. 빛을 투과하는 듯한 밝은 흑발이 자연스럽게 이마를 드러내고 넘어갔다.
권재진은 그의 머리칼 끄트머리에 어지러운 시선을 두다가 억지로 목을 틔워 말을 내뱉었다.
“너…… 내 누, 눈알, 핥으려고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