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54)화 (54/60)

- 아뇨, 지금 이동 중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 다 아시겠지만, 메뉴 중에 양파, 파프리카, 마늘, 고추가 통째로 들어 있는 건 피해서 추천드려야 합니다.”

- 아, 네. 이 비서님께서 정리를 잘해서 넘겨주셔서 인지하고 있습니다.

교원은 입술을 물어뜯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하게 싫다.

김 팀장과 권 대표가 나란히 앉아서 웃으며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할 모습을 상상하니 상당히 거슬렸다.

오늘만 있을 일이 아닌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김 팀장은 저만큼 꼼꼼하고 세심해서, 일에 있어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인데…… 뭘 걱정하는 거지.

아니, 걱정이 아닌가. 그냥 싫은 것인가.

……왜?

“후식은…….”

- 단 것으로 체크해 두었습니다. 진한 쇼콜라 케이크와 밀크티입니다. 밀크티는 달게 요청드릴 예정입니다.

“아, 네. 그죠. 그, 업무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전화 너머로 김 팀장이 의문스레 고개를 기울이는 게 상상됐다. 교원은 김 팀장만큼은 믿고 있어서, 소소한 업무는 확인하지 않아 왔었다.

“그럼 식사 잘…….”

그 순간 김 팀장이 “앗.” 하는 소리가 멀어져갔다. 귀에 들리는 음성이 한순간에 달큼하고 묵직한 것으로 바뀌었다.

- 교원아, 이제 일어났어?

“그, 아, 아뇨.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김 팀장님 앞인데…….”

- 뭐 어때, 지금은 쉬는 중이니까 이름 불러도 되잖아.

애초에 그럴 사이도 아닌데.

……오늘부터 2주간 다른 사람이랑 붙어서 지낼 거면서. 밥도 같이 먹고, 후식도 같이 먹고 사사건건 김 팀장과 함께할 거면서.

“안 됩니다. 식사 편안히 하세요.”

교원은 재빨리 통화를 종료했다. 이게 뭐라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교원은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던 노트북을 침대에 내려놓고 스르륵, 옆으로 구부려 누웠다.

“하…….”

뭐지, 이 짜증은. 불쾌감인지, 분노인지 구별하기도 애매한 짜증이 부글부글 끓었다.

근데 누군가에게 향하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향한다면 권 대표인데, 그에게 뭐라고 할 말도 없었다.

그냥, 그냥…… 빨리 다리가 나아서 김 팀장이 아닌 제가 권 대표의 옆에서 보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씨…….”

꼬르륵, 때마침 배에서 소리가 났다. 아침도 안 먹고 지금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키오스크는 안방에 있었고, 교원은 손님방에 있었다. 교원은 눈살을 두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다가, 김 팀장에게 보낼 메시지를 입력했다.

[김 팀장님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고, 업무가 잘 끝날 때마다 연락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대표님께서 어떻게 했…….]

마지막 줄을 지웠다가 다시 썼다.

[그리고 대표님의 기분이…….]

이건 더 아닌데. 더 이상한데. 교원은 또 지웠다.

[그리고 대표님이 특별히 행동하신 게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미팅 중 평소와 다른 행동이라거나, 타 회사 언급하는 거나, 좋아하셨던 디저트도요.]

교원은 디저트 부분을 노려봤다. 슬쩍 한 줄 더 추가한 건데 이 정도면 이상하지 않겠지?

제가 없는 곳에서 권 대표가 피곤해하거나,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맛있는 걸 먹고 행복해하는 걸 생각하니 배알이 꼴렸다.

그래, 그것 때문이다. 저 빼고 맛있는 걸 먹어서 배알이 꼴리는 것이다. 교원은 입술을 꾹 다물고 메시지를 전송했다.

김 팀장에게서 곧바로 알겠다는 답장이 왔다. 이상하게 보이진 않은 모양이었다. 교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 똑똑, 하고 노크 소리와 함께 셰프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아, 네. 들어오세요.”

조용히 문이 열렸다. 셰프님은 키오스크를 들고 와 침대 옆에 새로 설치하셨다. 대기 화면에 권 대표의 얼굴이 찬란하게 떴다.

무척 쪽팔렸다.

“아침도 안 드셨는데, 점심도 못 드실 것 같다고 대표님께 연락이 왔거든요.”

“아…….”

“그래서 이거, 여기로 옮겨 드리라고 하셔서 왔어요. 편안하게 주문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셰프님.”

교원의 귓불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교원은 셰프님이 나가고, 문이 닫히고 나서 키오스크를 노려보았다.

대기 화면의 권 대표 얼굴을 있는 힘껏 노려보다가 검지에 힘을 줘 점심을 주문했다.

이런 것도 다 다른 여자들한테 해 줬겠지. 다른 여자들하고도 밥 먹고, 애교도 떨고, 귀여운 척도 하고…… 혀 짧은 소리도 내고, 웃기지도 않은 키오스크도 만들어 주고.

“하, 씨발…….”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욕설이 끓어올라 왔다.

이런, 자연스러운 배려에 설레면 안 되는데. 권 대표한테는 일상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연애 한번 하자며 꼬시려고 하는 행동이니까 좋아하면 안 되는데.

이 작은, 섬세한 행동이 뭐가 좋다고…….

교원은 자학하듯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침대에 엎어졌다.

진짜 콩깍지라도 씐 건가. 교원은 객관적으로 이를 살펴보기로 했다.

권 대표가 하는 행동들은 따지자면 부하 직원에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 키오스크는 아니었지만.

교원은 키오스크를 노려보다 늘 권 대표가 먹는 샌드위치와 음료를 주문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Web발신]

이교원 님, 금일 15시 예약 있으십니다.-한마음한사랑내과]

요즘은 왜 이렇게 자주 까먹는 건지. 교원은 마무리한 업무를 다시 꼼꼼히 체크하고, 때마침 도착한 샌드위치를 급히 먹었다.

그리고 목발을 짚은 채로 절뚝이며 욕실로 향했다.

샤워는 난장판이었다. 다리를 적시지 않고 씻으려니 중심을 잡을 수 없었고, 앉아서 씻자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한참을 걸려 씻고 나오자 벌써 2시였다.

머리를 말릴 새도 없이 손님방으로 가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자마자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다. 아니, 커다란 산짐승이라고 해야 할까.

“안녕하십니까.”

“아…… 네, 안녕……하세요.”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병원 좀 다녀오려고요.”

교원의 말에 산짐승, 아니 경호원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에게서 진득한 알파 페로몬 향이 났다.

“아직 붕대를 갈 때는 되지 않아서, 가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다리…… 말고, 내과를 가야 해서.”

“그렇다면 모셔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혼자서도…….”

“대표님 명령이십니다.”

똑 부러지는 대답에 결국 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인 이어로 무어라 연락을 하더니, 곧 다른 경호원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그와 산짐승의 자리가 바뀌었다.

아무래도 산짐승이 저의 경호를 맡은 모양이었다.

다리도 이 모양이니, 경호원이 데려다준다면 좋은 일이지만…… 혹여 오메가라는 사실이 권 대표의 귀에 들어갈까 싶어 걱정이 되었다.

교원은 경호원이 열어 주는 차에 탄 뒤에서야 입을 열었다.

“가능하다면 차에서 기다려 주실 수 있습니까?”

“밀착 경호를 지시하셨습니다만.”

권 대표 이 인간, 스토커도 아니고 밀착 경호라니. 최근 그런 일이 있긴 했지만 병원에서 납치당할 일은 없지 않은가.

교원은 슬쩍 앞좌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병원 문 앞까지만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 안쪽으로 들어갈 위험 요소가 있다면 모두 봉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예…….”

늘 권 대표가 받던 경호를 제가 받자니 참으로 어색했다. 이렇게까지 밀착하여, 틈도 없이 경호를 받아 왔나, 권 대표는.

왠지 조금 숨이 막혔다. 그가 경호를 받을 땐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오히려 안전을 위한 것이니 그에게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고작 병원 하나 가는데 그 주변을 모두 봉쇄한다는 말을 듣자 조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저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어서, 경호를 받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몰랐던 일이었다.

권 대표를 떠올리니 또 조 팀장, 비서 1팀의 김 팀장과 함께 있을 거란 생각이 나서 짜증이 일었다. 그 탓인지 열이 확 올라왔다.

교원은 핸드폰을 확인했다가 때마침 도착한 김 팀장의 메시지를 보았다.

[비서1팀김팀장: 승화 엔터와의 미팅이 시작되었습니다만, 박 전무님이 아닌 곽 대표님께서 나오셨습니다. 권 대표님께서는 고압적으로 나가시는 듯합니다.]

그렇지, 승화 엔터의 박 전무와의 일도 있었다. 화장실까지 따라와 성추행을 하려던 놈.

그에 관해서 상당히 승화 엔터 쪽이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사무상으로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그 계약을 체결하는 날이 오늘이었다.

[계약서대로 체결될 것 같습니까?]

[비서1팀김팀장: 곽 대표님께선 그럴 의사가 있으신 듯합니다. 우선 그런 조건으로 미팅이 진행되었으니까요. 다만 권 대표님께서 조금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듯합니다ㅠ;]

메시지를 보던 교원은 뜨끈뜨끈해진 이마를 짚으며 답장을 보냈다. 저였다면 그럴 것을 예상하고 미리 경고해 두었을 터다.

[선을 넘는 요구라면 비서님께서 잠시 대화를 환기시키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박 전무는 승화 엔터에서 바로 잘린 줄 알았더니 대리로 내려간 모양이었다.

그쪽 세계가 늘 그렇듯이 말이다.

“이교원 씨, 도착하셨습니다.”

“아, 네.”

타이밍 좋게 검은 세단이 부드럽게 멈춰 섰다. 교원은 곧바로 보이는 내과를 올려다보다가 먼저 문을 열어 주는 경호원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아직 한쪽 발목으로 몸을 지탱하는 것이 어려운 탓이었다.

경호원은 익숙하게 교원의 허리를 팔에 기대게 한 뒤 제게 몸을 맡기게끔 했다. 아까부터 화를 내서 그런지 목 부근까지 열이 올랐다.

“감사합니다.”

교원은 완전히 그에게 몸을 맡긴 후, 등을 보인 채로 목발을 차 안에서 붙잡았다. 그 순간, 경호원이 교원을 다시 차 안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윽……!”

“……이교원 씨.”

“왜, 갑자기…….”

바람처럼 확 풍겨 오는 페로몬 향에 어깨가 굳었다. 경호원은 굳은 얼굴로 차 문 앞에 서서 교원을 내려다보았다.

“오메가셨습니까? 그런 보고는 듣지 못했는데.”

돌처럼 단단한 얼굴에서 당황함이 새어 나왔다. 교원은 그제야 조금 전부터 느껴지던 열기가 제게서 나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회사와 미국에서 잠시 사고처럼 터지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약을 먹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히트 싸이클이었다. 하필, 지금.

바로 병원 앞에서.

차 문밖으로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경호원은 문을 억세게 붙잡은 채로 교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눈까지 시뻘게져서는, 어떻게든 참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 문. 문 닫으세요!”

“……하…… 이교원 씨.”

교원은 팔을 뻗어 문을 닫으려 하고, 경호원은 핏줄이 솟은 손으로 문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눈에서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것이 느껴졌다. 까만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저를 덮칠 것처럼 이글거렸다.

“정신 차리세요. 경호 중이시잖습니까!”

“……오메가를 경호할 때에는, 항상, 비상시를 생각하여…… 약을 챙겨 다닙니다. 하지만 오늘은…… 베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사정이 있어서……!”

경호원의 숨이 거칠어졌다. 교원은 헐떡이며 그를 올려다보다가, 목발을 쥔 채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경호원은 여전히 문을 붙잡고 어깨를 경직시키고 있었다. 아무리 멀리, 목발을 짚으며 재빨리 도망가도 저를 옭아맬 듯한 페로몬이 발에 엉켜 들었다.

교원은 새빨갛게 핏줄이 섰던 검은 눈동자를 다시 떠올렸다. 그는 참지 못할 것이다.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이 상황을 만든 건 저였기에, 제가 피해야 옳았다.

교원은 있는 힘껏 내과로 향하다, 저를 힐끔거리는 대학생 무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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