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51)화 (51/60)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건가? 교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대표님? 이죠?”

- 협박, 살인, 강간을 안 한 경범죄자 하나쯤은 빼낼 수 있다 이거야.

“그게 가능해요?”

교원은 상당히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큰 기업 대표여도, 돈 좀 많아도, 타국의 법을 무시하는 게 가능하냐 이 말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가.

- 정확히는 수배를 안 하는 건 아니고 슬쩍 한국에 넣어 줄 수 있다, 이거지. 다 방법이 있어요, 이 비서님.

그러니까, 여차여차해서 한국으로는 빼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아니면 죄질이 가벼우니 벌금만 내고 끝내 주거나.

이거야 원, 돈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는가.

“……재벌들 더러워.”

- 난 더러운 짓 안 했는데.

“방금 하신다고…….”

- ……나 이제 들어가도 돼?

교원은 잠시 고민했다. 대답하면 들여보내 줄 것처럼 물었으니, 열어 주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환자였고, 심신의 안정이 필요한 상태다. 그러나 권 대표는 심장에 좋지 않은 존재였다.

옆에서 페로몬을 풀풀 날리며 예쁜 얼굴로 싱글거리는데, 그 누가 안정에 취할 수 있겠냔 말인가.

“지금 말고.”

- 말해 주면 열어 주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 ……너…… 열받아.

씩씩대는 목소리에 몹시 웃고 싶었다. 교원은 시간을 슬쩍 확인했다. 6시 48분.

“7시 30분에…….”

하지만 살짝 뜸을 들이자,

- 그때 들어가? 응?

씩씩대던 권 대표가 곧바로 들러붙더니 혀를 짧게 달싹이며 애교를 부렸다.

“아뇨, 그때 다시 한번 고민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교원은 그 말을 끝으로 잽싸게 통화를 종료했다. 안방 문 너머로 “으아! 진짜아!” 하고 권 대표가 소리 지르는 게 들렸다.

결국 교원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권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간에 잠깐 졸아 버린 탓이었다.

“왜! 이렇! 게! 늦게! 부르는! 데!”

“……졸았어요.”

좀 미안한 마음에 목덜미를 쓸어내리자 비죽 나온 입술이 쏙 들어갔다. 화난 얼굴로 방에 들어오던 권 대표는 “흥!” 하고는 교원의 옆으로 쏙 들어가 앉았다.

무거운 남자가 콩! 하며 들어오니 그 비싸고 좋은 침대도 살짝 흔들렸다.

“됐어. 나두 폰겜 했어.”

“무슨 게임 하시는데요?”

“냥런 알아?”

교원이 고개를 젓자 권 대표가 핸드폰을 꺼내 ‘냥런’ 앱을 눌러 보여 주었다.

엄청나게 다양한 고양이들이 점프하고, 몸을 숙이며 장애물을 피해 달리는 게임이었다.

권 대표는 이번 신캐를 획득했다면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검은 고양이를 보여 주었다. 드레스는 어찌나 화려한지 이루 말할 수 없고, 티아라에 구두까지 번쩍번쩍하다.

“구두 신고 달리는 건 힘들 텐데.”

“……게임에 현실 고증 하지 마.”

“현실적이진 않아도 개연성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두 신고 뛰면 발이 아플 거예요. 제가 디자이너라면 구두는 신기지 않았을 겁니다.”

교원은 침대 바로 정면에 있는 TV를 켰다. 영화 목록으로 들어가 권 대표에게 제목을 물으려는데, 어쩐지 그가 시무룩한 얼굴로 핸드폰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그러고 계십니까?”

“네 말 때문에 얘로 못 달리겠어…… 티아라냥이 발 아프면 어떡해.”

“게임이라 아파하진 않을 겁니다.”

“구두 신고 뛰면 아플 거라며.”

“현실이면 그렇겠죠. 게임인데 무슨 상관입니까?”

권 대표가 눈을 가늘게 하고선 교원을 힐끔거렸다. 꼭 못된 사람 보듯이 입을 가로로 늘리고서.

“영화 제목은 뭡니까?”

“……판의 미로.”

교원은 음성 인식으로 영화를 찾아 놓고, 몸을 좀 더 뒤로 해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댔다. 공포라더니, 생각보다 무서워 보이지는 않았다.

“아, 잠깐만.”

재생하려는 순간, 권 대표가 키오스크를 만지작거렸다. 보아하니 간식까지 챙겨 먹을 생각인가 보다.

“그거…… 써 보시니까 어때요.”

“뭐? 키오스크?”

“예.”

자기 얼굴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키오스크…… 교원은 제 얼굴로 상상했다가 끔찍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권 대표는 해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좋은데, 왜?”

“아니, 대표님 얼굴이 이렇게…….”

“잘생겼잖아. 우리 회사 복지 중 하나가 내 얼굴이란 소문 못 들었어?”

들었다. 지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요…….”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셰프님은 저녁 시간에도 완벽하게 준비된 모습으로 나초와 치즈 소스, 콜라를 테이블에 두고 가셨다.

교원은 느긋하게 앉아 영화를 관람했다.

소녀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처음엔 전쟁 영화 같기도 했고, 소녀의 시점에서는 동화 같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연 하나가 무심하게 무기를 휘둘렀다.

“흐악!”

엑스트라 캐릭터의 머리가 으깨지는 장면이 아주 적나라하다. 교원은 상당히 흥미로운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그냥 공포 영화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딥한 느낌이다. 조금 전의 장면으로 집중도가 올라갔다.

“방금 봤어?”

권 대표가 팔에 바싹 달라붙었다. 교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영화에 집중했다.

영화는 상당히 재밌었다. 공포 영화보다는 고어가 조금 첨부된 스릴러물에 더 가까웠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상당히 예뻤다.

권 대표는 주인공이 하나하나 퀘스트를 깰 때마다 몸을 웅크리고 움찔거렸다. 괴상한 눈알 괴물이 나올 때는 교원의 손을 세게 붙잡고 바들바들 떨기까지 했다.

“결말…… 뭐야……?”

두 가지 해석으로 갈릴 수 있는 결말이었다. 교원은 골똘히 턱을 살살 긁으며 제가 생각하던 것을 말하려다가, 왠지 서글퍼 보이는 권 대표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해피 엔딩이네요.”

“그, 그래? 그치? ……맞지?”

“네.”

이래저래 할 말이 많았지만, 다 말하면 권 대표가 울기라도 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교원은 뻐근한 허리와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우두둑, 뼈 소리를 내었다.

“어린이 공포 영화라더니…… 전혀 아니었어…….”

권 대표가 중얼중얼, 피곤해진 얼굴로 TV를 다른 화면으로 돌렸다.

소리도 지르고 울먹이면서 대체 언제 먹었는지, 교원은 텅 빈 나초 그릇을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멍하니 채널을 돌리는 권 대표를 툭툭, 건드렸다.

“이제 그만 자죠?”

“어…… 어어? 자, 잘까?”

“이 시간에 자는 게 두뇌 활동에 좋습니다. 대표님 피부 미용에도 좋고요.”

침대를 탁탁, 치며 주름을 펴고, 누울 준비를 하자 권 대표가 눈을 반짝반짝,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옆으로 숙였다.

그러곤 입술을 오므렸다가 펴기를 반복하며 교원을 올려다보았다. 뭐 하는 짓거린가 싶어 눈썹을 슥, 들어 올리자 권 대표가 검지로 제 턱을 톡, 치며 물었다.

“나도 자도 되는 거지?”

“……예?”

교원이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자 권 대표가 뺨을 살짝 붉혔다. 그러곤 입술을 씰룩거리며 금방이라도 ‘에헤헤!’ 하고 웃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침대…… 여기밖에 없오.”

“예?”

“희수…… 침대에서만 자고등…….”

교원의 안면이 단단하게 굳었다. 눈썹이 일그러지고, 입술이 꾹 다물렸다. 생경한 것을 보듯 입을 달싹이던 교원이 으, 하며 고개를 돌렸다.

“왜 이러십니까?”

“희수 요기서 자두 댕?”

“예, 예?”

권 대표는 한층 앙증맞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찌나 목을 기울이는지, 거의 침대에 정수리가 닿을 지경이었다.

뾰로통한 입, 복숭아처럼 발갛게 달아오른 양 광대, 맑게 반짝이는 눈동자, 기다란 눈매와 축 늘어진 눈썹.

객관적으로 따지면 솔직히 역하진 않았다. 얼굴이 예뻐서인가, 그냥 이 사람이 이런 짓을 한다는 게 치가 떨릴 뿐이었다.

“나 어제두…… 같이 잤눈뎅.”

“그, 말투 좀…… 그만하시면 안 됩니까?”

그 순간, 권 대표가 바로 표정을 바꿨다. 팔 한쪽으로 턱을 괴고 몸을 길게 늘어트리면서 아래에서 위로, 교원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어떻게 해 줘?”

권 대표가 여유롭게 눈을 접어 웃었다. 정상으로 돌아온 순간 교원이 헛숨을 삼켰다.

제대로 맘먹고 사람을 꼬시려 드는 모양새가 완전 여우나 다름없었다. 교원은 떨리는 티를 숨기려 시선을 돌렸다.

“그, 주무셔도 되니까 그렇게 좀 보지 마세요.”

“왜? 보면 안 돼?”

더욱 농밀해진 시선이 뭐라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게 설렐 건 아닌데. 귀여운 척을 하다가 느끼하게 다가오는 게 왜 좋은지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자신이 저 인간을 왜 좋아하기 시작했는지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더라? 왜였지? 떠오르지도 않는다. 이유 없이…… 그냥 좋아했나?

아니면 저 얼굴에 넘어갔나?

“제 얼굴이니까…… 보지 마세요.”

상체를 한껏 구석으로 기울이자 권 대표가 몸을 일으키며 훌쩍 다가왔다.

“보고 싶어서 보는데, 왜.”

“진짜……!”

권 대표가 저를 뚫어져라 쳐다본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왜 지금 더 열이 오르는지 모르겠다. 교원은 귓불까지 붉어진 줄도 모르고 고개를 완전히 돌린 채로 몸을 구석에 구겨 넣었다.

“그렇게 반응하는데 어떻게 안 쳐다봐.”

“뭐, 뭐가요…….”

“이 비서는 회사에선 표정 하나 없으면서, 나하고 있을 때는 좀 다른 거 알아?”

온몸의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심장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육신이 쿵쾅거리는 듯했다.

“표, 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우리 그날, 컨퍼런스 끝나고 대화하기로 했던 거 기억나?”

훅, 들어왔다. 권 대표가 갑자기 명치를 가격한 것처럼 교원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권 대표는 더욱더 가까이 다가왔다.

완전히 구석까지 몰린 교원이 고개를 숙이고만 있자, 커다란 손이 침대 머리와 벽을 짚었다.

“이 비서, 나 그쪽 좋아하는데.”

귓가에 달라붙은 목소리가 몹시 낮고 무거웠다. 교원은 쿵! 쿵! 뛰는 심장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입을 틀어막았다.

“교원이는 나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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