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35)화 (35/60)

“오늘까지 일 시킬 생각이야?”

“……내일 어떤 미팅이 있는지는 알고 계시죠?”

“알지! Q&A까지 준비 다 끝냈다고.”

조 팀장이 안쪽 방에서 임도영을 거뜬히 안아 들고 나오는 게 보였다. 제법 무거울 텐데, 그래도 경호원이라고 가볍게 들어 올린 조 팀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저는 먼저 나가 봅니다? 그리고 3분 뒤부터 경호는 2팀으로 교체됩니다요.”

“아,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후딱 나가 봐.”

조 팀장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교원에게 찡긋, 윙크를 해 보이고는 숙소를 나갔다. 장난임을 알면서도 짜증이 콱 났다. 교원은 한숨을 푹 내뱉으며 김 이사에게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김 이사님: 아, 안 그래도 대표님께 말씀드릴 게 있었는데, 대표님 시간은 괜찮나?]

[그럼요. 로비로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걸 보낸 게 약 10분 전이니, 김 이사는 로비에서 한 5분쯤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교원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김 이사님, 괜찮으시다면 대표님 숙소로 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 이사님: 오키. 올라갈게.]

교원은 메시지 창을 다시 권 대표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코앞까지 들이밀자, 권 대표가 입술을 비죽 내밀고 교원을 노려봤다.

“내일 해도 되잖아…….”

“원래, 전날에 한 번 더 체크해 두시는 게 좋습니다. 더불어 김 이사님도 말씀하실 게 있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이 비서는 날 왜 이렇게 괴롭혀…….”

“괴롭히는 게 아니라, 보통 이렇게 합니다.”

교원은 창가 가까이에 붙은 테이블을 정리하고, 의자도 각을 맞춰 세웠다. 티슈로 테이블을 깨끗하게 닦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본론만 얘기하길 바라는 권 대표를 교원도, 김 이사도 알기에 와인이나 다른 주전부리는 필요치 않았다.

권 대표는 터덜터덜 소파로 가서 앉아 있다가 주욱 늘어졌다. 그러고는 아예 옆으로 드러누워 턱을 괴고 교원이 차를 준비하는 걸 지켜보았다.

“이 비서, 정장 안 불편해?”

“업무 시간이니 어쩔 수 없지요.”

“편한 걸로 갈아입지. ……뭐, 지금 말구. 이따가 김 이사 가고.”

“김 이사님 가시면 저도 쉬어야죠.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을 겁니다.”

“그래?”

권 대표의 목소리에 살짝 활기가 찼다.

“……왜 그러십니까?”

살짝 정색하자 권 대표가 광대를 살짝 씰룩거렸다.

“우으음, 아무것도.”

“…….”

수상하다. 그리고 불안했다. 권 대표가 저렇게 웃을 때는 늘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콕 집어서 정확히 말하자면 교원에게.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왜애. 웃으면 안 돼?”

“갑자기 이유 없이 웃으시니까 묻는 겁니다.”

씰룩거리던 권 대표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러고는 교원을 빤히 바라보며 웃더니,

“그래애?”

하고 말꼬리를 늘어트렸다. 동시에 안방으로 성큼 걸어가는 게 아니겠는가. 교원은 심히 불안한 마음으로 그 뒤를 지켜봤다. 빨리 김 이사가 와서 이 맥락을 끊어 줬으면 하는데, 영 오질 않았다.

“짠.”

“뭡니까, 그게.”

휙, 몸을 반쯤 기울이며 쇼핑백을 들고 온 권 대표가 손잡이를 쥐고 달랑달랑 흔들어 보였다.

“커플 잠옷. 봐 봐, 이쁘지?”

권 대표 입에서 뻔뻔스레 튀어나온, 저와는 전혀 관계없는 단어에 교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권 대표는 쇼핑백 안에서 리본으로 포장된 잠옷 두 개를 꺼내 들었다. 날씨에 걸맞게 보송보송한 털이 달린 잠옷에는 토끼 귀가 달려 있었다.

옷 끄트머리는 레이스가 팔랑팔랑 움직이고,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토끼 옷은 꼭 공주님이 입을 것 같았다.

둘 다 그 꼴이었다. ……두 벌 모두.

“대……표님과 누가 입는 겁니까?”

“이 비서가 입어야지.”

“제가 왜……?”

“같이 입으려고 내가 샀으니까.”

권 대표는 더 커다란 잠옷은 쇼핑백에 넣고, 하나를 펼쳐 교원의 몸에 대보았다.

딱딱하고 냉철해 보이는 검은 정장과 달리 아주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교원에게서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깜찍함을 억지로라도 만들어 줄 기세였다.

“싫…… 습니다.”

“상사가 하라는데도 싫어?”

“꼭…… 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지. 이건 우리 둘의 관계를 더 끈끈히 해 주는 연결 고리인 거야. 이 비서랑 나는 팀이고, 더 착착 맞아야 업무도 잘될 거고.”

교원은 긴급하게 머리를 돌렸다. 저 개 같은 논리를 파훼할 방법을 떠올리기 위해서.

“……하지만!”

“하지만?”

권 대표가 머리를 갸웃, 기울였다. 그조차도 씰룩씰룩 웃으면서 하고 있어서 몹시 짜증이 났다. 일부러 저런 자세,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저 화나라고.

“자는 시간까지 대표님의 명령을 들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쓸어내리며 대답하자 권 대표가 더 활짝 웃었다. 평소와는 영 다른 반응이라, 교원은 제가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 조금 전에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잘못된 건 없었다. 근무 외 시간은…… 아.

“이 비서, 자는 시간까지 근무 시간으로 치기로 했잖아.”

“…….”

“그럼 3일 내내, 나랑 커플 잠옷 입어 줘야지?”

씨발.

더 이상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굳이 이 잠옷이 연결 고리가 되어야 합니까, 라고 해 봤자 지가 하고 싶다고 우길 게 뻔했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끈끈한 사이다, 라고 말하는 건 제가 싫었다.

결국 교원의 품에 잠옷이 폭, 안겼다. 교원은 똥 씹은 표정으로 잠옷을 안아 들었다.

“근데 이 비서.”

“예…….”

교원은 말씨름에서 진 것이 퍽 절망적이라 잠옷을 내려다보며 심통 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입술이 아주 살짝 나와 있는 게 권 대표 눈에는 보였다.

“건강 검진 결과 나왔더라.”

“……예?”

깜짝 놀라 허겁지겁 핸드폰을 켰다. 새로 온 메일 중에는 의사가 보낸 건 없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핸드폰을 쭉쭉 내리다 휴지통을 누르는데, 권 대표가 커다란 손으로 화면을 가렸다.

동시에 핸드폰과 함께 교원의 손을 쥐었다.

“나한테도 보내 달라고 했거든. 내 건강이잖아.”

“……그, 렇죠?”

“그럼 나 아까 물어본 거 계속 물어봐도 돼?”

한 발자국, 권 대표가 다가왔다. 교원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만 권 대표가 다가온 만큼 뒤로 물러났다.

“뭘 말입니까?”

권 대표의 손에 가려진 핸드폰 화면을 보려 했으나 또 핸드폰을 뺏겨 버렸다. 권 대표는 교원의 핸드폰을 소파에 툭, 던지고 또 한 걸음 다가갔다.

“왜 자꾸, 가까이 오십니…….”

때마침, 벨이 울렸다. 김 이사의 목소리가 언뜻 들려왔다. 그러나 권 대표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는 듯 교원이 뒤로 물러나는 박자에 맞춰 걸음을 옮겼다.

교원은 잠옷을 끌어안고 눈을 깜빡이다 슬그머니 권 대표를 올려다보았다.

스윽, 슥, 교원이 물러나고 권 대표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선명했다.

“이, 이사님이 오셨는데…….”

평소답지 않게 입을 다문 권 대표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묘하게 느끼한 눈동자가 더욱더 가까워지는 듯했다.

“내가 물었잖아, 죽을 때가 된 게 아니면 어쩔 거냐고.”

그제야 게티 센터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작은 사고 때문에 잊었던 것.

〈근데 죽을 때가 된 게 아니면 어쩔래.〉

〈교원아, 말해 봐. 내가 왜 이러는지.〉

그 말 때문에 길을 잃었었다.

근래 권 대표가 자꾸만 이상하게 굴어서 건강에 이상이 있을 거라 확신했었다. 좀 피곤하다든가, 무언가 타격을 입을 일이 있었다든가.

“어……쩌긴요. 건강하신 거니, 다행이신 거죠.”

“하나하나 말해 줘. 나는 머리가 나빠서, 내가 어디가 이상해진 건지 모르겠어서 궁금해.”

조곤조곤 속삭이는 말에 교원의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비이상적으로 가까워진 거리보다 건강 검진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온 게 더 당황스러웠다.

자꾸만 친절하게 굴고, 달라붙고, 제게 무언가를 주던 권 대표는 꼭 여자를 꼬실 때와 비슷해 보였었다. 여성 오메가만 사귀는 권 대표가 그럴 리가 없었음에도.

“응?”

띵동, 띵동. 김 이사가 기다리다 못해 다시 한번 벨을 울렸다.

그제야 교원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등에 닿았던 벽에서 몸을 일으키고, 두 손으로 권 대표를 세차게 밀어냈다. 너무 확 밀어낸 탓인지 권 대표가 억, 하고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교, 교원아?”

“김 이사님 오시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더 기다리게 하실 셈이세요?”

목소리가 커졌다. 교원은 잠옷과 쇼핑백을 안쪽 방에 내려놓고 급히 뛰어나와 권 대표를 소파에 밀어 앉혔다.

“컥!”

상당한 힘이 하필 권 대표의 명치에 꽂혔다. 교원은 울긋불긋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네, 이사님!”

확 열어젖히자 김 이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어설프게 웃었다.

“아, 이 비서도 자는 줄 알고 돌아가려 했는데.”

“설마요. 이사님께서 메시지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잠깐 화장실에 있어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대표님은 안에 계시고?”

“네, 들어오세요.”

교원은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김 이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 뒤로 김 이사의 비서도 함께 들어섰다.

현관문을 조용히 끌어당겨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닫았다. 교원은 그제야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설마, 권 대표가 지금 저를 꼬시는 걸까.

앞선 이상 증상들은 모두…… 정말, 그니까 저를 연애 대상으로 보고 꼬시려고 그랬던 건가.

확 떠오르는 게 있었다. 새빨간 스포츠카였다. 그날부터 아침마다 집 앞으로 와 회사까지 데려다주던 권 대표가 오그라드는 멘트를 치던 것까지 떠올랐다.

제 손에 억지로 쥐여 주던 차 키도.

그날 밤의 베타를 찾으려던 권 대표. 설마 그것과도 관련이 있을까? 자신이라는 걸 알아차렸을까?

야근하던 때에 찾아와 화를 내며 일을 못 하게 하던 것도 떠올랐다.

근데 왜 갑자기? 1년간 지내면서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지금 와서?

〈권희수! 권희수 나와! 내 전화 받으라고 해!〉

〈나쁜 새끼, 개새끼, 사람 갖고 노니까 재밌냐고!〉

로비 혹은 비서실까지 뛰어와 난동을 부리던 권희수의 전 애인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권 대표의 연애는 6개월을 넘지 않았다. 아니, 평균적으로 3개월. 3개월 내내 불타오르다 언제 그랬냐는 듯 꺼졌다. ……그의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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