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20)화 (20/60)

……차의겸.

교원의 낯이 사색이 되자, 거울로 확인한 조 팀장이 교원의 어깨를 붙들었다.

“이 비서님?”

“아, 그…….”

“제가 나가서 해결하겠습니다.”

“네, 네…… 그, 그렇게 해 주세요.”

차 안이 순식간에 험악한 분위기로 물들었다. 그저 사고였다면 교원이 나가 명함을 내밀고 보험 처리를 하는 것에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건.

빠아앙!

뒤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횡단보도 바로 앞을 가로지른 차의겸의 차에게 항의하는 것인지, 돌아서 가지 않는 권 대표의 차에게 분노를 표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왜지?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짓을 한 적이 없었는데. 교원의 사생활에 끼어들긴 했어도 대학 생활을 망치거나, 아르바이트 도중 나타나 깽판을 부리지는 않았다. 이 회사에 들어온 이후로도 차의겸은 제멋대로 굴긴 했지만 회사 생활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근데, 왜…….

그 순간, ‘금요일 오후 10시’. 그 문자가 떠올랐다. 회장이 부른 이유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교원은 차 밖으로 나서는 조 팀장을 보며 머리를 굴렸다.

보통 회장이 부르는 데에 커다란 이유는 없다. 회사 생활은 어떤지, 수익이 더 늘어날 가능성은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도망가지 말고 꼬박꼬박 돈을 갚으라는 압박을 넣는 것뿐이다. 도저히, 차의겸이 저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비서.”

“네, 대표님.”

하루 종일 교원을 외면하던 권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아는 사람인가?”

차의겸은 비뚜름하게 웃으며 조 팀장을 무시하고 차로 다가오고 있었다. 조 팀장이 무어라 하자, 세단의 운전석에서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나왔다. 대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차의겸이 조수석으로 다가와 창을 툭툭, 치는 소리가 차체의 적막을 깼다.

“네, 아는…… 사람입니다.”

“시간이 넉넉하긴 하지만, 사적인 일은…… 아니다, 창문 열지 마.”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나가서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비서.”

툭툭툭, 또다시 연달아 창을 친다. 창 너머에는 차의겸이 입꼬리를 올리며 어서 문을 열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여전히 경적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뒤차들이 양옆으로 갈라져 횡단보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 일입니다.”

“이 비서!”

굵직한 손이 팔뚝을 잡아 왔다. 교원은 아플 정도로 꽉 붙잡힌 팔목을 무시하고는 창을 내렸다. 유리창이 부드럽게 열렸다.

“왜 이렇게 늦게 열어, 교원아.”

차의겸이 싱글거리며 손을 차 안으로 집어넣었다. 교원은 말없이 그를 올려다보다가, 두툼한 손이 뺨을 감싸 쥐었을 때에서야 그를 쳐 냈다.

“뭐 하는 짓이야.”

“응? 아…… 화났어?”

“차 치워.”

교원은 굳은 얼굴로 단호히 말을 뱉었다. 그러자 잠시 허공을 떠돌던 손이 교원의 턱을 억세게 잡아 비틀었다. 저절로 고개가 차의겸 쪽으로 기울었다.

“요즘 많이 기어오르네.”

“선은 네가 넘었어.”

“우리가 인사도 못 할 사이였나?”

살살 턱 아래를 긁던 차의겸의 손이 교원의 뺨과 귓가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끈적한 손놀림에 저도 모르게 한쪽 어깨를 움츠리자 차의겸이 낄낄 웃었다.

그때, 언제 차 밖으로 나왔는지 권 대표가 딱딱한 얼굴로 차의겸의 팔을 잡아당겼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퍽, 하고 거친 타격음이 들렸다.

“대, 표님!”

“너 누구야.”

급히 차 문을 열려고 하는데, 권 대표가 문 앞에 서서 그것을 막아섰다. 고개가 돌아간 차의겸은 아야야, 하고 장난스럽게 눈을 휘어 웃었다. 그리고 제 뺨을 만지더니 입가가 터진 것을 보곤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대표님. 문, 비켜 주세요.”

“누구냐고 물었어. 사람 더 부를까?”

“아…… 이거, 그 대단한 권 대표님한테 뺨도 맞고.”

차의겸은 긴 혀를 내밀어 뱀처럼 제 입술을 사악 훑어 올렸다. 교원이 차 안에서 안절부절못하자, 차의겸이 두 손을 들며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였다.

“도련님인 줄 알았는데, 꽤 아프다.”

“차의겸!”

교원이 다급히 차의겸을 부르자 녀석은 손대지 않겠다는 듯 두 손을 흔들어 보였다. 불안했다. 미친 새끼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교원은 차 문을 다시 열었지만 곧바로 권 대표에 의해 닫혔다. 순간 목 끝까지 올라온 욕설을 겨우 삼켰다. 저놈이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 몰라서 이러는 거겠지!

“비켜 주세요, 대표님!”

“안에 있어.”

그때, 턱 끝을 들고 둘의 대화를 듣던 차의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권 대표만큼이나 커다란 덩치를 가진 녀석이 성큼 다가오자, 권 대표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박 전무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그날처럼 말이다.

“교원아.”

짝다리를 짚고 선 녀석이 고개를 푹, 기울였다. 창틈으로 보이는 얼굴이 몹시 즐거워 보였다. 눈동자에 흥미가 감도는 듯했다. 교원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너, 그 있잖아. 병원 간 거.”

“……무슨 말이야.”

“약 먹고 있잖아? 주말 빼고.”

그 순간, 교원은 차의겸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아차렸다.

저번 주, 교원이 방심한 사이 주말에 들이닥친 놈에게 들킨 것. 베타에서 오메가로 발현한 그 일 말이다.

물론 차의겸은 어쩌다 발현했는지, 어떤 상태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형질을 속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릴 사항이 되었다.

알려지면 좌천일 거라고? 아니, 즉시 말하지 않았으니 이건 신뢰를 깨트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일방적으로 퇴사를 요구받아도 그대로 따라야 할 입장이었다.

“너…… 차의겸.”

“그거 지금 말하면 큰일 나냐?”

“하지 마.”

“근데 그렇게 되면 교원이가 나한테 올 수밖에 없을 거 같단 말이지.”

추잡스러운 언사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교원은 창가에 매달린 채로 아랫입술만 질끈 물었다. 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려 해도 새파랗게 질린 낯은 속일 수 없었다. 권 대표의 시선이 교원에게 향했다.

때마침 운전사와 대화를 끝낸 조 팀장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교원은 구원자라도 발견한 듯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다급한 얼굴로 살짝 눈짓을 하자, 그는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끼고 인 이어를 통해 무어라 말을 했다. 동시에 권 대표의 차 뒤에 세워져 있던 세단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내렸다.

“아이고, 무서워라. 경호원을 뭐, 부대로 끌고 다니시네?”

“내 직원을 건드렸으니 각오는 해야지. ……무슨 일인진 몰라도 말이야.”

권 대표의 말에 차의겸이 프프프, 하고 괴상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러고는 한쪽 어깨를 들어 올리며 제 입술에 손을 맞대고, 키스를 보내듯 권 대표에게 손바닥을 내보였다.

“그럼 저는 무서워서 그만, 가 볼게요. 도련님?”

“…….”

경호 1팀이 달려와 검은 차를 에워싸기도 전에 차의겸은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그러곤 차 주변을 막든 말든 그대로 액셀을 밟아 빨간불임에도 세차게 직진했다.

그제야 교원은 차 문을 열 수 있었다. 모두 끝난 마당에 나가서 무엇 하겠냐마는.

“대표님, ……차에, 타세요.”

“…….”

“죄송합니다.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자세를 바로 한 채 고개를 깊게 숙였다. 안 그래도 냉랭했던 사이가 더욱 차갑게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권 대표는 몇 초간 교원의 앞에 묵묵히 서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자리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90도에 근접할 정도로 깊게 숙인 허리를 내려다보며 주먹을 쥘 뿐이었다.

“이 비서.”

“예, 대표님.”

조 팀장이 말없이 차에 올라탔다. 경호 1팀도 철수했다. 횡단보도 바로 앞, 도로 한가운데에 권 대표의 차만이 오롯이 서 있었다.

“내가 이 일, 물어보면 싫습니까?”

“……그건.”

“이 비서님 사적인 일이라서 싫습니까?”

어제의 연장선상이다. 교원은 문득, 박 전무에게 성추행을 당한 날 저를 위로하던 권 대표가 떠올랐다.

단 한 번도, 그 누구도 저를 그리 걱정해 주고, 저를 위해 화를 내 준 사람이 없었기에 솔직히 기쁜 마음이 들었었다. 든든하기도 했고, 고마웠다.

하지만 제가 그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챈 이상,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몰라도 사적인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된 이 순간. 더 다가가서 좋을 것 없다.

권 대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거짓말이었으니까.

처음 그의 직속 비서로 임명되었던 날 그리 말했었다.

〈난 실수해도 상관없습니다. 크게 사고를 쳐도 괜찮으니, 거짓말만 하지 마세요.〉

교원은 입술을 달싹였다. 말하고 싶다. 저 사람이 나를 오랜 시간 괴롭혀 왔다고.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빚 때문에 끊임없이 찾아와 희롱하고, 무시하며 짓밟아 왔다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권 대표에게 불똥이 튀게 할 수는 없었다. 차의겸의 말대로 권 대표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사람 하나를 순식간에 실종시키고 피가 마르게 하는 사채업자와는 격이 다른 남자였다.

“그래, 알겠어요. 이 비서님 마음, 알겠습니다.”

권 대표가 몸을 돌려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 짧은 시간, 교원은 한 가지를 눈치챘다. 그가 이제는 존댓말로 제게 선을 긋고 있다는 것을.

그걸 바랐을 텐데, 어쩐지 가슴이 쓰라렸다. 교원은 말없이 조수석에 착석했다.

[차의겸: 너무 심하게 할 마음은 없었는데 말이야. 이교원 각오 좀 하고 와.]

때마침 도착한 메시지에 교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