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9)화 (9/60)

“아, 저기. 저 사람.”

“진, 진짜요?”

문제는 하필이면, 정말 우연인가 싶을 정도로 권 대표가 그 남자를 가리켰다.

창가에 앉아 나른한 얼굴로 턱을 괴고 있는 사람은 교원이 학창 시절 잠시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이름은 양주호. 형질 검사에서 잘못 판정되어 자신이 알파인 줄 알다가 고등학생 때 베타라는 결과를 받은 녀석이었다.

그때 온갖 병원을 돌아다니며 수십 번의 검사를 했지만 결론은 베타였고, 자신이 알파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양주호는 한순간에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렸었다.

특히 교원에게.

“주호 씨, 안녕하세요.”

“…….”

양주호는 교원을 한눈에 알아본 듯했다. 그는 권 대표의 인사에도 교원에게서 시선을 떼질 않다가, 한 박자 늦게 답했다.

“안녕하세요, 희수 씨.”

권 대표에게 자신이 그날 밤의 남자라고 거짓말한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양주호라면…… 그럴 법도 하다. 그는 꽤 머리가 잘 돌아갔고, 매번 거짓을 입에 담곤 했으니까.

“옆에 계신 분이, 보여 주시겠다던 그…….”

“네, 맞아요. 주호 씨에겐 죄송하지만 최근에 사귀기 시작했어요.”

확 감아 오는 팔에 교원은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가 애써 미소를 띠었다.

“안녕하세요.”

양주호는 조금 당황한 듯싶다가, 다시 세모나게 눈을 떴다. 처음엔 얼마나 끈덕진 놈인가, 싶었는데 양주호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놈은 ‘그쪽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라는 말 정도로 떨어져 나갈 녀석이 아니었다.

권 대표도 그래서 애인이 생겼다는 말을 꺼낸 거겠지. 하나 직접 보지 않는다면 믿지 않겠다는 말에 이 지경이 됐을 것이다.

교원이 알던 양주호는 그런 놈이었다. 그때도, 양주호는 저를 ‘특이하게 페로몬이 적은 알파’로 알던 오메가 애인의 집까지 찾아가 온갖 난리를 부렸었다. 경찰에 신고를 당한 뒤에도 통 말을 듣질 않아, 오메가가 이사까지 가 버린 후에야 찾지 못해 포기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아마 양주호라면 제 아비가 거래를 끊도록 만들 수도 있었다. 그의 부모는 양주호라면 껌뻑 죽는 사람들이었다.

“이게 그 애인이에요?”

툭, 뱉어진 말에 분위기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하던 권 대표의 인상이 사납게 굳은 탓이 컸다. 교원은 재빨리 권 대표의 팔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두툼한 팔 끝, 주먹을 쥔 손이 느긋하게 움직이며 뚜둑, 소리를 내었다.

“네, 제가 희수 씨 애인입니다.”

“별거 없는데. 얘랑 사귀는 거 진짜예요?”

양주호는 고의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삐딱하게 턱짓을 해 보였다. 그리고 교원을 위아래로 훑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교원은 그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발버둥 치는 양주호가 이전과 달라진 점이 없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정확히 10년 전에 보았는데, 그때와 한 치도 달라진 것이 없다니.

“별게 있어서 사귀겠어요? 좋아하는 데에 이유는 없습니다.”

항상 표정을 바꿔 가며 일을 했던 탓일까, 교원은 제법 연기를 잘했다. 살짝 눈을 휘어 웃으며 권 대표의 팔을 조금 더 힘을 줘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고개를 살짝 기댔다. 권 대표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희수 씨가 그쪽 때문에 곤란해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그만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 이봐요. 저 사람이 나한테 먼저……!”

“그리고 그날, 희수 씨 러트 온 날.”

“…….”

“만난 적도 없으시지 않습니까?”

이건 상대가 양주호가 아니라 해도 했을 말이다. 권 대표는 미디어에 자주 보이는 얼굴이었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돈깨나 있는 재벌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알고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 애인까지 보여 달라 요구하는 것을 보면.

“야, 네가 뭘 알아.”

“말씀이 심하시네요. 희수 씨도 참, 이상한 사람한테 물리셨어요.”

“어, 어어…….”

조금 전까지 인상을 구기고 있던 권 대표의 상태가 묘했다. 바보 같은 얼굴로 교원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저를 부르자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리기까지 했다.

“희수 씨?”

“아…… 아냐.”

“뭐, 그럼 여기까지 해도 되겠죠? 양주호 씨.”

“……너.”

“언제까지 그렇게 사실 건지, 참 대단하세요.”

교원은 권 대표의 팔을 잡아끌었다. 때마침 메뉴판을 가져온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문 안 하세요?”

“아,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저쪽 분은 오늘 실연하셨으니, 양주라도 한 병 가져다주세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첨언하자, 직원이 당황한 듯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교원은 어쩐지 로봇처럼 뚝딱거리는 권 대표를 질질 끌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조금 따뜻하던 온기가 떨어져 나가고, 시원한 공기가 둘을 감싸고돌았다.

“이, 이 비서. 알던 사람이야?”

“네, 뭐. 조금요.”

양주호는 알파라고 얘기할 적에 자기네 집이 얼마나 잘났는지 함께 자랑하곤 했다. 매일 하교 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교원을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다.

그것에 타격은 없었다. 잘난 집에서 태어났다고 잘난 것이 아니고, 형질이 알파라고 해서 잘났다는 건 사회적 통념에 불과했다.

그래서 양주호에게 따로 앙심을 품은 건 아니었으나, 저와 권 대표를 무시하는 듯한 시선에 반사적으로 날카로운 말이 튀어 나갔다.

“좋게 끝내려 하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니, 뭐, 아니야. 근데 이 비서…… 애인한텐 원래, 큼, 그래?”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아니…… 그, 막…….”

교원은 가게와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팔짱을 풀었다. 그 작은 손짓에도 권 대표가 움찔거리며 저를 힐끔거렸다. 양 뺨이 붉고, 페로몬이 슬금슬금 새어 나오는 게 저번과 비슷했다.

“열나십니까? 저번에 괜찮다고 하시더니, 안 쉬셨죠?”

“어어?”

“사람이 안 하던 일을 하면 아프다고 합니다. 맨날 직원들에게 떠맡기고 팽팽 노시다 최근 좀 일을 하셔서 그런 거 같은데.”

“…….”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편의점에서 약을 사서 들어가 쉬세요.”

어쩐지 할 말이 있어 보였으나 권 대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여전히 양 볼이 발갛고, 페로몬은 자꾸만 제게 흘레붙었다. 무의식인 듯싶었지만 하지 말라고 하기엔 제 입장이 곤란했다. 베타는 페로몬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아니, 그럼 이 사람 매번 나한테 페로몬을 묻혔나?

“대표님.”

“으응, 이 비서.”

“집까지 바래다드려야 할까요? 이것도 업무의 일종이니.”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묻자 권 대표가 그제야 아, 하고는 정신을 차렸다.

“아, 업무…….”

“상여금 잊지 않으셨겠죠?”

“어어. 그렇지.”

일을 너무 잘 처리해서 그런가, 권 대표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교원은 그래요, 하고는 회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권 대표가 팔을 붙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나 하나만 물어도 될까?”

“네, 물어보세요.”

권 대표가 멈춰 서서 묻는 바람에, 교원도 그 자리에 서서 몸을 돌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자 그가 꽤 진지한 얼굴로 마른 입술을 축이고 있었다.

“이 비서, 그니까…… 사내 연애는 할 맘 없어?”

“……네?”

“아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쳐도 싫어?”

의뭉스러운 질문에 머리가 잠시 사고를 멈췄다. 교원은 제 팔을 붙잡은 커다란 손을 내려다보다가, 작게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내 연애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교원은 연애할 마음이 없었다. 제대로 애인 노릇을 해 줄 자신도 없었고, 빚만 가득 진 제 삶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와의 호감이 쌍방향이 되더라도 그 생각은 변치 않을 것이다.

“글쎄요…… 그냥 연애도 딱히 할 맘은 없어서. 나중 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모든 건 가정이다. 사람 일은 늘 제 생각대로 되지 않고, 결심은 흐트러지기 마련이었으니까. 미래의 자신이 어떤 결정을 할지 현재의 교원이 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

“네, 뭐.”

“그럼 이 비서는 어떤 사람이 좋은데?”

어쩐지 권 대표의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었다. 아무래도 열이 나서 그런지, 그는 상기된 얼굴로 손에 힘을 주었다. 팔뚝이 조금 욱신거렸으나 교원은 무어라 하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딱 특정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래도 좀, ……이러면 좋을 거 같다, 같은 거?”

교원은 조금 고민하다 답했다.

“적어도 자기 일은 잘하는 사람이면 좋겠네요. 자기 관리도 잘하고, 가벼운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저도 제 일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교원은 그리 답하고 권 대표의 팔을 잡아 밀어냈다. 둘의 체격 차이가 꽤 되는 탓에 교원은 권 대표와 달리 팔을 한 손으로 모두 잡을 순 없었다.

“그만 놓아주시겠습니까?”

“어어. 어! 미안. 그럼 가자.”

“네…… 근데, 그래서 바래다드릴까요?”

“아니, 아냐. 내가 데려다줄게.”

“예?”

“오늘 이 비서 피곤했을 테니까.”

뜬금없는 권유에 저도 모르게 거절할 뻔했다. 그러나 교원은 아마도 오늘뿐일 친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데려다준다는데 굳이 거절해서 뭣 하겠는가.

“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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