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1)화 (1/60)
  • 우유처럼 새하얀 벽지. 티끌 하나 없이, 반듯하게 각진 옷장과 테이블, 그리고…… 침대.

    설마.

    코를 찌르는 알파 페로몬을 맡자마자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교원은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설마 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교원은 침을 꿀꺽 삼키며 몸을 일으키려다가 갑작스레 제 허리를 끌어안는 손에 펄쩍 뛰었다.

    “……흐, 무, 무슨!”

    “우응…….”

    와락 끌어안은 손은 크고 단단했다. 다행히 맨몸은 아니었다. 문제는 제 옷이 아니라는 점. 그러나 기억을 뒤적여 봐도 회식 후 술을 마시다 잠이 든 게 다다. 언제 옷을 갈아입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모조리 사라져 있었다.

    “씨, 씨발.”

    답지 않게 욕이 튀어나왔다. 교원은 지난주를 떠올리며 황급히 무거운 남자를 꾸욱, 밀어냈다.

    “아이, 자기야…….”

    아무리 봐도 권 대표다. 또 이 남자와 한 침대를 썼다는 생각에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아냐, 차분히. 차분히 생각하자. 맨몸이 아니라 보송보송한 핑크색 잠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저번 주처럼 허리와 그곳이 욱신거리지 않는다. 그럼, 사고는 없었다는 뜻이 된다.

    “비, 키세요.”

    “응……? 아, 교원 씨네. 우리 일 잘하느은, 비서님…….”

    나른하게 눈웃음을 치며 헤롱대는 걸 보니 확실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교원은 확신하자마자 권 대표의 팔뚝을 찰싹, 내리쳤다. 그래도 떨어지질 않자 팔꿈치를 들어 권 대표의 명치에 처박았다.

    “아윽!”

    “하…… 저 다음부터는 회식, 안 나옵니다.”

    벌떡 일어나 바닥을 살피자, 구석에 제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나름 갈아입히려고 한 거 같은데 끝마무리가 좋지 않다.

    “자기…… 어젯밤 끝내줬어.”

    “농담은 그만하시고 일어나세요.”

    야시시하게 웃는 얼굴이 누가 봐도 장난이다. 교원은 제 몸에 묻은 권 대표의 페로몬을 힐끔거리며 구겨진 옷을 들어 올렸다.

    “이 비서가 오메가였으면, 손댔을지도 몰라.”

    그래서 직속 비서는 베타로 뽑지 않습니까.

    교원은 무심한 얼굴로 옷을 훌훌 벗어 갈아입었다. 다 입고 뒤를 도니, 권 대표가 금빛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샐쭉하게 웃고 있었다.

    “이 비서 고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애인이 좀 적극적인가 봐?”

    “무슨 소리십니까.”

    “등에 자국 엄청나.”

    그 말에 교원의 뺨이 발갛게 물들자, 권 대표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어머어머, 하고 침대 시트를 탁탁 내리쳤다.

    “뭐야, 부끄러워하는 거야? 이 비서 그런 얼굴도 할 줄 알아?”

    네가 저번 주에 남긴 거잖아.

    교원은 속으로 말을 삼키며 제 가방을 찾았다.

    일주일 전, 교원은 저 남자의 러트에 휘말려 밤을 함께 보냈다. 물론 교원은 베타였으나, 술에 취하기도 했고 분위기에 휩쓸렸다.

    그게 첫 경험이었다. 첫 키스도, 첫 경험도 하필이면 상사에게 뺏겼단 말이다.

    “애인?”

    “아닙니다.”

    “설마 원나…….”

    “아닙니다. 그리고 공과 사는 좀, 구분해 주세요.”

    이 남자는 저번 주의 일을 하얗게 잊어버렸다. 그건 교원에게 다행이기도 했고, 한편으론 근래 매일같이 짜증을 유발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교원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전 10시. 오래도 잤다.

    “하루도 안 빠지고 연애질을 하시더니, 최근 좀 잠잠하시네요.”

    “응? 뭐, 음…….”

    “저로선 기쁜 일입니다. 치정 싸움으로 회사에 찾아오는 사람 좀 그만 보고 싶거든요.”

    눈썹을 슥 들자, 권 대표가 시선을 피하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확실히 그는 최근 그 ‘연애질’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2주 전 즈음부터, 이상하게 조신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 그거야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

    “좀 깨끗하게 헤어지시란 뜻입니다. 마무리만 제대로 하시면 그 난리가 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분들 처리하는 일, 제가 하거든요?”

    “웅…….”

    덩치는 커다래 가지고 귀여운 척 우물우물 답한다. 교원은 권 대표를 힐끔 쳐다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푹신한 이불에 돌돌 싸여 있는 꼴을 보니 일어날 기색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엥? 벌써 가?”

    “휴일 아침부터 상사 얼굴을 보고 있어야 하는 제 입장 좀 생각해 주세요.”

    탁, 소리와 함께 문을 닫았다. 교원은 잠시 문 앞에 서서 몇 번 심호흡을 했다.

    지난주, 이곳에 왔을 적에는 정신없이 짐을 챙겨 나갔었다. 종종 찾아오는 집이지만 이렇게 자세히 살펴보는 건 처음이었다.

    권 대표의 집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꽤나 귀여운 것으로 꾸며져 있었다. 소파에는 커다란 원숭이 인형 두 개가 놓여 있고 벽에는 앙증맞은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하아…….”

    그날의 기억이 자신에게만 있는 건 제법 답답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날 이후로 몸이 이상해진 것을 따질 수가 없어서 더 그랬다.

    대표의 직속 비서가 받는 연봉은 꽤나 크다. 이곳은 다른 회사보다 더욱 그 금액이 컸다. 그리고 직속 비서는 ‘베타’만이 가능했다. 우성 알파인 대표의 옆에서 항시 일을 하려면 그러는 편이 안전했으니까.

    그런데 그날 이후로 알파와 오메가의 페로몬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직속 비서는 베타만이 가능하다. 교원은 그 사실을 떠올리며 설마,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 그러고 보니…….”

    교원은 서둘러 핸드폰을 찾았다. 일정표에는 한참 머뭇거리며 적었던 글씨가 남아 있었다.

    8월 30일 토요일, 오전 11시 내과, 검사 결과

    검사 결과.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교원은 부드러운 낮 바람이 불어오는 창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그래. 잊기로 한 건 잊고, 당장 코앞에 닥친 일이나 해결하자.

    교원은 다시 한번 안방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가 보겠습니다.”

    “으응…… 진짜 바로 갈 거야? 밥 먹고 가지.”

    “근무 시간 외에는 상사와는 1분도 같이 있기 싫은 게 직장인의 마음입니다. 알아 두시면 좋습니다.”

    뭣보다 권 대표의 요리는 먹고 싶지 않다.

    일전에 한 번,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한 기억이 떠올랐다. 소금에 절인 듯한 계란 프라이, 딱딱한 생쌀과 맹물에 동동 떠다니던 김치……탕.

    “그리고, 대표님.”

    “응?”

    문 너머로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요리는…….”

    잠시 머뭇거리던 교원은 이번에 확실하게 말해 주어야겠다, 싶어서 목을 가다듬었다.

    “시궁창에 버무려진 음식물 쓰레기 같습니다.”

    “…….”

    “그걸 먹느니 굶겠습니다. 그럼 퇴근하겠습니다.”

    교원은 제 상사를 뒤에 두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거인의 신발 사이에서 유일하게 사람다운 신발을 찾아 발을 끼워 넣는데, 핸드폰이 징, 울렸다. 권 대표다.

    - 이 비서.

    “예.”

    문만 열면 바로인데, 왜 전화질이지. 교원은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신발을 고쳐 신었다.

    - 나 다음 달부터 요리 학원 끊어 줘.

    “……예?”

    - 출장 다녀온 다음 주, 주말만. 알겠지?

    개인적인 일은 알아서 처리하세요.

    ……라는, 하고 싶은 말은 늘 그렇듯 가슴에 묻어야 했다.

    - 이 비서가 인정할 때까지 다닐 생각이야.

    괜히 말했구나 싶다. 권 대표는 한량처럼 게으른 주제에, 한번 마음먹은 것은 끝장을 보곤 했으니까. 교원은 어쩔 수 없이 긍정의 대답을 뱉으며 현관을 나섰다.

    예약한 병원은 권 대표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교원은 권 대표의 집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를 타고 나왔다. 제 차가 여기에 있는 건, 아마 권 대표가 부른 대리 기사가 한 짓일 터다.

    회식을 하는 날이면 권 대표는 제 차를 두고 꼭 교원의 차에 탔다. 이유는 비싼 차에 알코올 냄새를 풍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교원은 부득불 구입했던 제 차의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권 대표의 페로몬이 술 냄새와 뒤엉켜 남아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교원은 신호가 바뀌는 걸 확인하고 속도를 높였다.

    * * *

    “지난주에 드린 약은 잘 맞으셨습니까?”

    “부작용은 없었습니다만, 약효는 잘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베타니까요.”

    교원의 말에 의사가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러고는 한쪽에 치워 둔 종이를 꺼내 건넸다.

    “이젠 아닙니다. 오메가로 발현되신 게 맞습니다.”

    “……정말입니까? 한국대병원에서 온 결과가 맞습니까?”

    “네. 지난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성 알파와의 관계로 인해 형질이 변화한 것입니다. 그리 흔치 않은 일은 아닙니다. 꽤 일어나는 형질 사고 중 하나죠.”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교원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사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평소엔 맡아지지 않던 ‘페로몬’이라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저번 주에는 정밀 검사를 받은 게 아니라 믿을 수 없다고 우겼다. 그 말에 의사는 한국대병원에 샘플을 보내겠다며 약은 거르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딱 한 번이었어요.”

    “죄송하지만 결과는 명확합니다. 오차는 없는 결과지에요.”

    의사가 다시 한번 종이 쪽에 눈길을 주었다. 스테이플러로 정갈하게 정리된 종이에는 ‘형질 검사 결과’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맨 앞장에는 교원, 자신의 이름과 개인 정보가 줄줄이 나열돼 있었고…….

    ……귀하의 형질은 ‘열성 오메가’입니다.

    오메가라는 단어는 첫 장만 해도 세 번이나 적혀 있었다.

    “페로몬 조절제는 한 달 치 드리겠습니다. 당장 조절하기 힘드실 테니까, 우선 평일에만 약을 드시되 주말에는 되도록 복용하지 말고, 페로몬을 풀어 두도록 하세요. 연습을 꾸준히 하신다면 한두 달이면 조절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물론…… 성인 발현자들은 좀 오래 걸리는 편이지만요.”

    “…….”

    “약속이 있는 주말에는 약을 드셔야겠지만, 가능한 한 한 달 동안은 약속을 잡지 않으시는 걸 권장 드립니다. 계속 페로몬을 억제하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27년이다. 베타로 살아온 게.

    알파나 오메가들을 보면서 쟤들은 참 피곤하겠다,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신이 베타라는 것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들의 세상은 교원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했다. 교원은 꼭 드라마를 보듯 페로몬에 이끌리는 이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페로몬으로 인해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해선 안 될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환자분?”

    “……네.”

    “밖에 나가시면 박 간호사가 페로몬 조절법을 알려 줄 겁니다. 한 달 뒤에 다시 오세요.”

    솔직히, 미개한 형질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이 될 줄도 모르고.

    교원은 멍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진료실을 나왔다. 머리가 욱신거렸다.

    거짓말. 27살이나 먹었는데 이제 와서 형질이 바뀐다고?

    “……권희수 때문에?”

    핸드폰을 꺼내, 검색했다. ‘성인 이후 형질 변화’.

    의사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게시글이 있었고, 어떤 블로그에서는 ‘우성 알파와의 성관계로 형질이 변화하는 경우는 30~40% 정도로, 제법 높은 수치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우성 알파 자체가 적으니 숫자로 세어 보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닐 것이다.

    “이교원 님, 교육실로 들어오실게요.”

    멀리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꼭, 황천길 너머 천사가 저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권희수…….”

    이를 악문 교원의 목소리에서는 짐승이 그르릉대는 듯한 살의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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