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3. 빛과 소금과 설탕과 버터 (1) (3/10)

Chapter 3. 빛과 소금과 설탕과 버터 (1)

“다음, 대손 처리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단기 대여금입니다. LBK 유한공사 343만 달러, OW 바이오 104만 달러입니다. OW는 자산 매각 통해 60만 달러 연내 회수 가능할 것 같습니다. LBK는 수익성 악화가 맞물려서 상환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강제 청산 들어가면 우리는 몇 순위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묻기 전에 확인하도록.”

“죄송합니다.”

“특허 양도로 대물 변제 가능한지 알아보고, 선순위자….”

수현이 흘깃 휴대전화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의 냉연한 얼굴 위로 그 방의 누구도 결코 강수현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상대로 배당 이의 걸 수 있게 바로 준비.”

휴대전화가 다시 반짝였다.

“여기까지. 내일 10시에 다시.”

“네.”

안색이 시커멓게 죽은 여섯 명이 잽싸게 서류를 챙겨 방을 나가고 웅성거리는 소음마저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수현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당신의 강수현입니다.”

-이번에도 안 받으면 관두려고 했는데 받았네?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밥 먹었어요? 아, 이 시간이면 먹었겠구나.

9시 50분에 전화를 걸어 저녁을 먹었냐고 묻다니. 물론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질문이었다.

“회의가 늦게 끝나서 아직 못 먹었습니다.”

-아니, 왜? 거기는 밥도 안 주고 일을 시켜요? 인간적으로 진짜 너무 악독한 거 아니에요? 강 선생님 내일모레 불혹이라 배곯으면 뼈 삭는데 큰일이네.

밥도 안 주고 일을 시킨 악독한 인간은 다름 아닌 수현이었지만, 도형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떠 있었으므로 수현은 은근슬쩍 분위기를 타고 배고파서 기운이 없다며 가련한 척을 했다.

-내가 밥 사 줄까요?

“어디로 갈까요?”

행운의 여신은 앞머리만 있다고 하지. 오늘부터 행운의 여신은 대머리다. 그 앞머리, 강수현이 방금 허겁지겁 낚아채다가 힘 조절 못 해서 전부 뽑아 버렸으니까.

-우리 동네에 되게 맛있는 실내 포장마차가 있거든요. 올래요?

“30분 정도면 가요. 댁 근처 가서 전화를 드리면 되겠지요?”

-주소 메신저로 보낼 테니까 바로 와요. 아, 주차할 데 없으니까 차 가지고 오지 말아요. 특히 빨주노초파남보 형광색 요란한 차 가져오면 나 오늘 진짜 오함마 꺼낸다? 여기 우리 동네예요. 명심해.

전화 너머로도 도형의 어깨가 덩실덩실하는 것이 느껴졌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으실까. 수현도 덩달아 어깨춤이 나왔다.

도형이 차를 가져오지 말라고 명령한 이유는 첫째, 주차할 데가 없으며 둘째, 현란한 색깔 스포츠카가 싫다는 뜻이었으니 수현은 기사가 운전하는 새카만 차를 타고 밤의 어둠에 녹아 은밀하게 도형의 동네로 잠입했다. 은밀하다는 것은 물론 수현 혼자만의 착각으로, 도형이 찍어 준 주소 앞에서 차가 멈추고 기사가 정중하게 연 뒷문에서 밤하늘색 슈트의 수현이 내렸을 때, 좁은 골목을 지나던 모든 이의 시선이 강수현에게 고정되었다. 그 순간, 두꺼운 밤의 장막이 거리를 덮은 듯 들리는 소리라고는 고요를 깨뜨리는 고급 세단의 묵직한 엔진음뿐이었다.

“먼저 와 계셨네요.”

이 정도 시선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침묵을 발로 차며 사뿐사뿐 실내 포장마차에 들어간 수현은 도형을 보자마자 상큼하게 웃었다.

“택시비 얼마 나왔어요?”

“뛰어왔습니다.”

“아이, 진짜. 근데 옷이 왜 그래요?”

“회사에서 바로 와서요. 죄송합니다, 이런 꼴이라.”

“이상하다는 게 아니고요. 날 추운데 코트 안 입고 손에 들고 있어서 물어봤어요.”

양복 잘 어울리네. 도형의 뒷말은 점점 작아지다가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짙은 남색 슈트에 감싸인 수현의 미끈한 몸매는 변함없이 근사했고, 연한 하늘색 셔츠와 와인색 넥타이 덕분인지 칙칙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도 그 혼자만 두드러지게 화사했다.

“형사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으셨길래 이렇게 신이 나셨어요?”

“저 신난 거 티 나요?”

모를 수가 있나. 이미 도형 혼자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운 참이라 눈 아래가 발긋하게 물들었고, 목소리도 평소보다 세 음 정도는 높았다.

“주문부터 할게요. 사장님! 여기 우동 하나 더 주시고요, 골뱅이무침이랑 계란말이랑 폭탄 주먹밥도 주세요. 소주 한 병이랑 맥주 두 병 더 주시고요. 아, 사이다도 하나 주세요.”

“진수성찬이네요.”

“여기가 원래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포장마차인데, 사장님 솜씨가 워낙 좋아서 그때도 손님 진짜 많았거든요.”

“단골이신가 봐요.”

“도진이랑 자주 와요.”

“저는 안 불러 주시고.”

“오늘 불렀잖아요.”

“형사님과 사귀는 사람은 저인데….”

“악! 조용히 안 해요? 강 선생님은 부끄러움도 없어요? 여기 나 사는 동네라니까!”

“알겠습니다.”

역시 이런 곳은 처음인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앉아 있는 수현에게 도형이 잔을 내밀었다.

“이거나 마셔요.”

“이게 뭘까요?”

“소폭이요. 조선 사람 혈관에는 소주 7부, 맥주 7부로 탄 소폭이 흐릅니다. 오늘 두고 보겠어요. 강수현 선생님한테도 조선의 피가 흐르는지.”

“오, 짜릿하네요.”

“한국 사람 맞네. 입에 쫙 붙죠? 내가 우리 팀 제조상궁이에요. 폭탄주 완전 잘 말아요.”

“술 말고, 형사님이 짜릿하다고요.”

수현이 은근하게 도형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슬그머니 손등을 감싼 못된 손을 찰싹 때려 떼어 낸 도형이 기겁한 얼굴로 으르렁거리자 수현이 입을 꾹 다물고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도형이 기가 찬다는 듯 혀를 차며 웃었다.

“진짜 뻔뻔해.”

“그래도 마음에 드시죠?”

도형이 수현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수현의 눈에도 명백했다. 아무리 정이 많다고는 해도, 도형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시간을 내 줄 만큼 무골호인은 아니다. 수현이 안달복달하는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도형에게 수현은 좋은 일이 있으면 밤에 불러내 단둘이 축하주를 기울일 정도는 되는 사람인 것이다.

“저 사연 팔이 하는 거 싫어하는데…. 오늘만 좀 들어 주실래요?”

“저야 영광이죠.”

“강 선생님도 의사라고 했죠?”

“아니요. 메디컬 스쿨 졸업은 했지만, 수련 과정을 안 밟아서 의사 면허는 없습니다. 아쉽지만 진료는 못 봐 드려요. 병원 소개는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제 동생이 이번에 과 수석 했어요.”

“아. 축하드립니다.”

수현이 의사인 것과 도형의 동생이 수석을 한 일이 무슨 상관인지. 수현은 얌전하게 앉아 도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도진이도 의대 다니거든요. 오는 봄에 본과 3학년 돼요.”

“아하.”

그래서 수현이 메디컬 스쿨을 나왔다고 했을 때 갑작스럽게 흥미를 보였던 건가.

“있잖아요. 강 선생님이랑 저랑 공통점 하나 있어요.”

바둑알처럼 까만 눈이 장난기를 가득 담고 수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수현은 보물찾기에서 제일 먼저 선물을 찾아낸 어린아이처럼 부푼 마음으로 귀중한 공통점에 귀를 기울였다.

“저도 고등학교 안 나왔어요. 가긴 갔는데, 중퇴하고 검정고시 봤어요.”

반갑다고 악수를 청해야 할지 역시 학교는 시간 낭비라며 웃어야 할지 왜 학교를 중퇴했냐고 진지하게 물어야 할지 마음을 정할 수가 없어서 수현은 가만히 앉아 도형의 말을 기다렸다.

“열아홉 살까지는 보육원에 있을 수 있는데, 그 전에도 원하면 나갈 수 있거든요. 저는 마음이 급해서 일찍 나왔어요.”

“왜요?”

“보육원에 있으면 무조건 학교에 가야 해서요. 저는 고1 때 보육원 나와서 자퇴하고 돈 벌기 시작했어요.”

도진과 둘이 살 집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공부고 뭐고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형은 스스로 판단하기에 공부에 별 소질이 없었고, 막연하지만 몸을 쓰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고작 열일곱. 대단한 일은 하지 못했다. 미성년자라 야간 아르바이트는 원칙적으로 할 수 없었지만, 늘 손이 부족한 물류 센터는 어린 티가 풀풀 나는 도형도 모른 척 받아 주었다. 대부분 며칠이면 나가떨어지는 심야 상하차 일을 남의 이름을 빌려 거의 1년을 했다. 원청 회사에 미성년자인 걸 들켜 쫓겨난 뒤로는 편의점, 식당, 배달 일을 닥치는 대로 하며 돈을 모았다.

수현은 꿈에서도 본 적 없는 생활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도형을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부끄러움이나 후회, 아쉬움 같은 건 조금도 묻어 있지 않은 담백한 얼굴이었다. 그런 시간을 보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하면 도형은 뭐라고 대답할까. 원래 그런 꿈은 안 꾼다며 호탕하게 웃으려나.

“아, 그래서….”

“뭐가 그래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하다 마는 거 무슨 무슨 법 위반인데?”

“형사님 평소에 사용하시는 단어라든지 어투가 굉장히 뭐랄까… 성숙하시다 싶었는데, 이유를 알 것 같아서요.”

“뭐 하러 빙빙 돌려 말해요. 나 아재 같다는 말이죠?”

“꼭 그런 뜻은 아닙니다.”

도형은 쾌활하게 깔깔 소리 내 웃었다.

“애늙은이 같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4, 50대 아저씨들하고 일해서 그래요. 경찰 되고 더 심해졌어요. 우중충한 양반들하고 매일 붙어 있으니까 영감 냄새 옮는 거 같아.”

제 옷깃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던 도형이 불현듯 눈을 반짝거리며 수현을 똑바로 건너다보았다.

“그래도 저 태권도, 유도, 합기도, 검도 전부 유단자예요. 나중에 혹시라도 저 경찰 잘리면 강수현 선생님 경호원으로 취직 좀 시켜 줘요. 경찰청 무도 대회에서 상도 많이 탔어요. 맷집도 좋고, 총도 잘 쏴요. 몸 쓰는 거 하나는 진짜 자신 있어요. 하긴, 그건 우리 강 선생님이 제일 잘 아시지…. 사실 무도 특채 노리고 이것저것 단증 딴 건데, 그러려면 최소한 국가 대표 상비군 정도는 된 적이 있어야 한다더라고요?”

도형이 소매를 걷어 결이 또렷한 전완근을 자랑했다.

“아무튼, 도진이도 중학교 졸업하고 보육원 나와서 저랑 같이 살았어요. 보호 종료 아동 둘이서 오손도손 즐겁게 살았어요. 도진이랑 같이 살면서 저녁 일은 그만뒀어요. 그 애가 집에 왔을 때 맞이해 주고 싶었거든요.”

“지나치게 너그러운 형이셨군요. 형사님은 열일곱 살 때 이미 다 큰 어른이었는데요.”

“그래서 그랬어요. 제가요.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도 어두운 밤에 혼자 있는 것도 너무너무 싫었거든요.”

새로 만든 폭탄주를 단숨에 꿀꺽꿀꺽 마신 도형이 발개진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래서였나. 수현은 도형이 의아할 정도로 자신에게 관대했던 이유를 그제야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나라에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빈집으로 혼자 들어가 이야기 나눌 사람 하나 없이 캄캄한 밤을 지새울 수현에게 열일곱 외롭던 자신을 비추어 보았던 것이구나.

수현이 열일곱의 두 배도 넘는 나이에, 호화로운 저택에서 편안하게 누워 있는 순간에도 재산은 계속 불어나며, 전화 한 통이면 언제든 수십 명을 모아 시끌벅적한 파티를 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도형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도형은 단지 수현이 외롭다고 말했기 때문에 수현이 외롭지 않도록 대화를 나누려 기꺼이 전화를 걸어 주었고 수현이 쓸쓸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수현의 집에 찾아와 함께 밥을 먹어 주었다.

어디에서 나온 걸까, 이 지극한 다정함은. 작은 빛의 알갱이가 반짝거리며 날아다니는 환영이 보여 수현이 눈을 깜빡였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이상하게 어깨가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도형이 수현에게 남긴 다정함의 잔재가 어깨 위에 떨어진 걸까.

“아, 맞다! 우리 공통점 하나 더 있어요!”

수현의 가슴 안쪽이 부르르 떨렸다. 우리라는 말이 이토록 설레는 단어였던가.

“저도 군대 안 갔어요. 고아는 전시… 아니, 대충 말하면 군대 면제거든요. 의무 경찰 복무한 사람 대상으로 경찰 특채가 있어서 자원입대 생각도 했었어요. 근데 도진이 혼자 두고 못 가겠더라고. 군대 안 가서 2년 아꼈으니까 조급해하지 말자고 마음먹고 아르바이트하면서 틈틈이 공부했어요.”

“어릴 때부터 정의로운 경찰이 꿈이셨나 보네요.”

“아, 뭐… 대단히 정의롭진 않고요. 시험에 차별도 없고, 기반 없는 사람이 안정적으로 먹고살기에는 공무원이 최고 아닙니까.”

단지 그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열과 성을 다하는 거로 보이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굳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이상해서 수현은 그냥 가만있었다. 대나무 숲은 입이 없다.

“아무튼. 도진이가 공부를 진짜 잘했거든요? 근데 이놈이 대학을 확 낮춰서 넣어 버린 거야. 무조건 전액 장학금 나올 만한 데로.”

도형이 흥분했는지 손끝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통통 두드렸다.

“그때 처음으로 신장 하나 팔까 생각했어요.”

이때만큼은 수현도 얼굴이 굳어지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취중에도 미묘하게 달라진 안색을 느꼈는지 도형이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안 했어, 안 했어. 그래서 도진이 몰래 학교 찾아가서 담임 선생님이랑 상담했어요. 좀 도와줄 수 없냐고. 장학 재단 같은 거요.”

“현명하시군요.”

“아니나 달라? 선생님이 엄청나게 말렸다는 거예요. 장학 재단 연결해 줄 테니까 대학 소신 지원하라고 하셨대요. 그런데 이놈이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느라 똥고집 피운 거지.”

“좋은 선생님이시군요.”

“선생님 덕분에 수시 접수한 학교 포기하고 정시로 한국대 의대 갔어요. 작년에 차석 해서 일부 장학금 받아 오더니, 올해는 수석이라서 전액 장학금 나온대요. 너무 기특한 거 있죠.”

진짜 기특한 사람이 누군데. 수현이 자기도 모르게 도형의 뺨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공중에서 멈추고 천천히 팔을 내려 무릎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자랑하고 싶은데 어디 말할 데도 없고…. 있잖아요, 불쌍한 사람 보는 눈빛. 나 그거 너무 지긋지긋하거든요. 근데 강 선생님은 저를 그렇게 안 보니까….”

“형사님은 행복하시잖아요.”

“그렇지. 전 행복해요.”

수현이 도형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목소리를 낮춰 작게 소곤거렸다.

“형사님 한번 안아 봐도 됩니까?”

“안 되는데요.”

“그럼 형사님께서 저를 안아 주시겠습니까?”

“싫은데요.”

“신체 접촉을 통해 형사님의 행복을 나눠 받고 싶은데.”

“가진 것도 많은 양반이 제 작고 소중한 행복까지 탐내는 거예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도형이 피식피식 웃다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악수나 합시다.”

수현은 도형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수현이 장난친다고 생각했는지 마주 잡은 도형의 손아귀 힘이 점점 세지더니 악수가 아니라 악력 대결처럼 변해 버렸다. 두 사람은 손이 하얗게 될 정도로 상대의 손을 꽉 쥐고 버티다가 눈이 마주친 순간 동시에 푸핫 하고 웃으며 손을 뗐다.

“진리는 나의 빛.”

“뭐가요?”

“도형, 도진 형제 이름 말입니다. 혹시 돌림자는 길 도(道)에 형사님은 빛날 형(炯), 도진 학생은 참 진(眞)을 쓰나요?”

“맞아요. 오, 한자도 아세요?”

“UN 공식 언어 전부 할 줄 안다고 말씀드렸는데. 농담인 줄 아셨군요?”

“아이고, 잘나셨습니다.”

“도형과 도진. 빛과 진리네요.”

“그렇죠. 그, 저희 있던 보육원이 종교 시설이어서요. 그 빛이랑 그 진리 맞아요.”

“도진 학생이 한국대 의대 다닌다고 하셨죠? 그 대학 표어가 ‘진리는 나의 빛’이에요. 제가 다닌 메디컬 스쿨 표어도 ‘진리’였어요.”

도형이 입을 크게 벌리고 호쾌하게 웃었다.

“왜 자꾸 여기저기서 김도형 김도진을 찾아.”

“제가 메디컬 스쿨에 마음을 못 붙였는데, 이유를 알았어요. 표어가 별로여서 그랬던 거예요.”

도형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현을 쳐다보았다.

“빛이 없잖아요.”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수현은 도형과 자신의 세 번째 공통점을 혼자만의 내밀한 기쁨으로 갈무리했다. 수현(守炫). 빛을 지키는 사람, 혹은 빛을 쟁취하는 사람. 그것이 수현의 이름이었다. 수현이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그의 길을 비추는 새로운 빛을 바라보았다.

그 빛, 강수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강 선생님도 내일 출근하시죠? 저도 내일 출근이라…. 오늘 갑자기 연락했는데 와 줘서 진짜 고마워요. 속이 뻥 뚫리네.”

도형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맞다 택시비 주기로 했지!”

지갑에서 5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낸 도형이 수현의 코트 주머니에 억지로 돈을 찔러 넣으려 하자 수현은 실실 웃으며 게걸음으로 도망쳤다. 수현이 요리조리 날렵하게 피하자 애먼 몸만 더듬은 꼴이 된 도형이 돈 자랑하는 중년 진상처럼 지폐를 흔들며 “비싸게 굴지 말고 줄 때 받아!” 하며 수현을 쫓아 나갔다.

가게 밖으로 나와 찬 바람을 쐬자마자 도형의 무릎이 무너졌다.

“형사님?”

“괜찮아요. 발 꼬였어. 이거 받고 얼른 가요.”

“뭐가 괜찮습니까. 지금 제대로 못 서시는데. 언제 이렇게 취하셨어요?”

둘이서 얼마나 마셨더라. 맥주 다섯 병에 소주 네 병이던가. 수현이 오기 전에 도형 혼자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마셨으니 도형은 자기 주량을 한참 넘어선 셈이다.

“안 취했어요. 요 앞이 우리 집이야. 빨리 가요.”

“형사님 지금 길에 누워 계시는데요?”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러나 도형의 사지 관절은 정상 가동을 중지했다. 몇 번을 고꾸라지고 넘어지는 통에 수현은 도형을 부축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를 둘러업었다.

“내려 줘요. 아, 쪽팔려….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형사님이 길바닥에 누워 계셔서 쳐다본 겁니다.”

“내가 언제 누웠다고 그래요?”

“방금요.”

“내려 줘요. 걸어갈 거야. 선생님 빨리 집에 안 가면 엄마한테 혼난다.”

“혼 안 나요. 귀는 깨물지 마세요.”

“내려 달라고요.”

“싫습니다. 발로 차지 마셔요. 목도 조르지 마시고요. 이러시면 사람들이 더 쳐다볼 텐데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어지간히도 싫었는지 도형이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냄새.”

“냄새요?”

“강수현 선생님 향수 냄새나요.”

“강수현이니까요.”

“강수현 냄새.”

수현의 숨이 턱 막혔다. 명치 바로 위, 식도 한가운데에 커다란 덩어리가 걸려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주먹으로 두드리고 싶었지만 한 손으로는 등 뒤의 도형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휴대전화로 지도를 확인하느라 남은 손이 없었다. 그래서 수현은 밤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다행히 막힌 것은 기도가 아니었는지 폐의 체적이 넓어지며 몸 안쪽에 건조하고 서늘한 공기가 가득 찼다. 수현의 성대가 다시 열렸다.

“강수현 냄새 아세요?”

“네.”

“좋아하세요?”

“싫지는 않아요.”

도형이 훅 하고 긴 숨을 내쉬자 술 냄새가 왈칵 풍겼다. 그의 몸을 한 바퀴 돌고 나온 숨이 수현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갔다. 도형의 체온을 입은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섞여 흩어지기 전에 수현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한때 도형의 일부였던, 도형의 심장에 머물렀던, 도형의 모든 혈관을 지난 기체가 이번에는 수현의 일부가 되었다.

“난 좋은 게 뭔지 몰라요. 그런 거 몰라.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김도형 형사님이십니다.”

“선생님은 자기가 누군지 알아요?”

“강수현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강수현이 진짜 자기라고 어떻게 확신해? 나는요, 진짜 내 모습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아.”

“전 알고 싶은데요.”

“선생님은 말이 너무 많아요.”

“죄송합니다.”

도형이 목을 쭉 빼 얼굴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밤바람으로 식은 수현의 뺨에 도형의 뺨이 닿았다. 도형의 체온과 수현의 체온이 다를 리가 없건만, 수현은 도형의 피부가 닿은 부분이 불타는 것처럼 느껴졌다. 숨소리는 둘, 발소리는 하나. 어둑한 골목길에 정적이 깔렸다. 낮게 가라앉은 밤안개를 척척 걷어차며 수현은 말없이 걸었다.

“강 선샘미.”

“네.”

“스혀나.”

“네.”

갑자기 취기가 훅 올라왔는지 도형의 발음이 꼬이기 시작했다.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까지는 아니라서 수현은 그럭저럭 장단을 맞출 수 있었다.

“수혀니 엉제부터 이르케 이뻣써요?”

“여름부터 예뻤어요.”

“그으먼 언래는 안 입뻐써여?”

“원래는 자라 등딱지처럼 생겼었는데요, 형사님이 예쁘다고 해 주셔서 예뻐졌습니다.”

“얼래 자라 든따찌여꾸나. 근데 수혀니 든따찌 혀나다.”

“제 등이 편안하세요?”

“누가 어버 중 거 쳐미에여.”

“오, 제가 처음입니까? 영광이네요.”

“내가 어버 주까요?”

“나중에 부탁드리겠습니다.”

수현이 조용히 웃으며 도형의 엉덩이를 받친 손에 힘을 주어 아래로 늘어지는 그를 추켜올렸다.

“302호 맞죠? 비밀번호 뭐예요?”

“왜?”

“문 열어야죠.”

“몰르는대.”

이렇게 귀엽게 굴면 저도 앞일 장담 못 합니다. 마지막 한마디는 용케 삼켰다. 수현은 도형을 현관 앞에 내리고 도형의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냈다. 혹시나 해서 지갑을 키패드에 대니 다행히도 삐리릭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열렸다.

“집에 다 왔어요. 다시 업히시겠습니까? 걸을 수 있어요?”

“어기서 자 껀대?”

수현은 정신이 완전히 나가 축 처진 도형을 번쩍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저 이제 갈 테니까 푹 쉬세요.”

“나, 나….”

“편히 쉬세요.”

“후우….”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도형이 수현을 밀치고 벌떡 일어났다.

“형사님?”

입을 틀어막은 도형이 욕실로 뛰어 들어가 변기 앞에 주저앉더니 바로 토악질하기 시작했다. 저녁으로 먹은 것을 전부 게워 낸 도형이 조금 편해졌는지 타일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저 붙들고 일어나세요. 씻겨 드릴게요.”

“자 꺼야.”

“씻고 주무세요.”

“시러.”

“자, 옷 벗으세요.”

수현이 도형을 토닥여 욕조로 데려갔다. 그냥 자겠다는 도형을 어르고 달래 겨우 옷을 벗기고, 수현도 코트와 재킷을 벗어 욕실 밖으로 휙 내던졌다. 욕조에 주저앉은 도형이 멍한 눈으로 수현을 올려다보았다.

넥타이를 풀고 소매를 걷어 올린 수현이 샤워기를 들고 조심스럽게 도형의 얼굴에 물을 뿌리니 도형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물을 튕겨 냈다. 눈을 꽉 감고 콧잔등을 잔뜩 찌푸린 표정이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 같아서 수현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수현은 도형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이마에 어지러이 달라붙은 머리칼을 걷어 올렸다. 톡 튀어나온 매끈한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춰 볼까 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집사의 본분에 충실하기로 했다.

사실 좋아하는 건 마지막에 먹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꼈다가 분자 하나까지 느긋하게 음미하는 타입이라서요.

도형은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 수현의 손에 몸을 맡겼다. 칫솔에 치약을 듬뿍 묻혀 손에 쥐여 주니 양치하는 흉내를 냈고, 머리에 샴푸 거품을 내니 눈을 꼭 감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고분고분하다고는 해도 엄연한 성인 남자. 이제까지 제 몸 외에는 그 무엇도 닦아 본 적이 없는 수현으로서는 제법 고된 노동이었다.

게다가 샤워기의 물줄기가 여기저기로 뻗어 나간 바람에 수현의 옷도 흠뻑 젖었다. 젖은 셔츠가 몸에 찰싹 달라붙어 근육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였으나 안타깝게도 도형은 수마에 사로잡혀 수현이 자신을 보송보송하게 말려 침대에 넣어 준 것도 알지 못할 정도로 깊이 잠들어 버렸다.

수현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셔츠를 벗어 버리고 기분 나쁘게 축축한 바지를 벗을까 말까 고민하며 지퍼를 반쯤 내린 채 도형의 방에서 나오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건지 아주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던 남자가 못 보던 구두를 발견하고 팔을 쭉 뻗어 현관 등을 켰다. 어둠이 물러간 자리에 훤칠하게 키가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소년이라기에는 너무 자랐고, 청년이라기에는 아직 어린 느낌이 남은 남자는 수현을 보자마자 살짝 뒷걸음질 쳤다. 겁을 먹은 건가. 수현에게는 익숙한 반응이었다.

수현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남자의 긴장한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반사적으로 물러선 줄 알았던 남자는 겁을 먹기는커녕 현관문 바로 앞의 우산꽂이에서 긴 우산을 뽑아 쥐고 있었다. 제법인데. 제 영역은 지킬 줄 아는 녀석이라 이건가.

“김도진 학생이지요?”

야밤의 무도한 침입자가 아니라는 뜻으로 먼저 아는 척을 했건만 도진은 손에 쥔 긴 우산을 조금 더 높이 치켜들었다. 수현은 순간적으로 조금 당황했다가, 자기 꼬락서니를 깨닫고 실소를 흘렸다. 젖은 셔츠를 벗어 버린 터라 윗옷은 하나도 입지 않은 맨몸에, 바지도 벗어서 말릴까 하던 와중이라 앞섶을 반쯤 풀어 헤친 수상한 몰골의 괴한이 떡하니 집 안에 버티고 있으니 어느 누가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강수현?”

“아, 네. 강수현입니다.”

도진은 대뜸 수현의 이름을 불렀다. 수현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도진은 여전히 손에서 우산을 내려놓지 않았다.

“김도형 형사님께서….”

“형한테 무슨 짓 했습니까.”

수현의 말을 자르고 끼어든 도진이 악문 잇새로 짓씹듯이 내뱉었다. 무슨 짓이라. 수현은 도진이 던진 말의 여운을 곱씹어 보았다. 도형에게 무슨 짓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약주가 조금 과하셨는지 토하셨습니다. 댁으로 모셔 와서 씻는 걸 도와드렸는데, 물이 좀 튀어서 옷이 젖어 버린 바람에 본의 아니게 이 꼴입니다. 실례했습니다.”

도진의 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선명한 적개심. 도진은 계속 수현을 노려보며 대답 대신 숨을 들이마셨다. 우산을 쥔 손에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손등이 희게 질렸다.

“어느 쪽이 형사님 방인지 몰라서 김도진 학생 방문도 열어 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형사님은 지금 주무십니다.”

그제야 우산을 우산꽂이에 도로 집어넣은 도진이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와 도형의 방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수현의 말대로 새근새근 잠든 도형의 유순한 숨소리를 확인한 도진이 수현을 뒤로하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부스럭부스럭 가방을 내려놓고 겉옷을 벗는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다시 열렸다.

“형 데려다주셔서 고맙습니다.”

도진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고개를 빳빳이 들어 수현을 쳐다보았다. 수현보다는 눈높이가 약간 낮지만 그래도 상당히 장신이었다. 도형은 뼈대가 화사해서 호리호리한 느낌이 나는데, 도진은 한눈에 보아도 장골에 당당한 체격이었다. 아직 앳된 기가 남은 얼굴은 이목구비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것이, 몇 년만 지나면 눈매의 날카로움마저 근사하게 무르익은 남자가 될 것이다.

수현은 도진의 외모를 찬찬히 뜯어보며 도형이 왜 자신에게 계속 “예쁘다.”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도진은 굳이 따지자면 오밀조밀한 도형보다는 큼직큼직한 수현 쪽에 가까운 생김새였는데, 아기 때부터 도진을 끼고 키웠을 도형에게 도진은 스무 살이 넘어도 여전히 ‘예쁜’ 동생이었으리라. 아무래도 도형은 반듯한 생김새를 예쁘다고 표현하는 듯했다.

미의 기준이 내가 아니란 말인가.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분류되는 건 익숙하지 않은데. 순간, 수현의 마음속에서 질투심이 꿈틀했다.

진득한 시선이 불쾌한 듯 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서 꺼지지 않고 뭐 하냐는 의도가 훤하게 읽혔다. 행간에 배어 있는 감정은 한계에 달한 인내, 터지기 직전의 짜증, 그리고 억누른 분노.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왜 저렇게까지 날을 세울까. 수현은 도진의 치기 어린 표정에 스친 찰나의 동요를 놓치지 않았다.

“옷이 아직 안 말라서요.”

입을 꾹 다문 도진이 방에서 검은색 긴소매 티셔츠 하나를 꺼내 오더니 수현에게 내밀었다.

“이거 입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티셔츠를 받아든 수현은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화장실로 갔다. 뒤통수에 도진의 적의 어린 시선이 바늘처럼 꽂혔지만, 모르는 척 수납장을 열어 새 수건을 꺼내 몸에 남은 물기를 닦고 도진의 티셔츠를 입었다. 도진의 옷은 수현에게 작았다. 가슴이 팽팽하게 당겨져 우람한 근육이 도드라졌고, 팔뚝은 터질 것같이 꽉 끼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길에 문간에 널브러져 있던 재킷과 코트, 넥타이를 챙겨 식탁에 올려 두고 부엌으로 갔다.

옷을 입고 나갈 줄 알았던 수현이 뻔뻔스럽게 냉장고를 열었다가 찬장을 열었다가 하며 살림을 뒤지기 시작하자 어안이 막힌 듯 잠깐 굳었던 도진이 수현의 어깨를 거칠게 잡고 돌려세웠다.

“남의 집에서 뭐 하시는 거예요!”

“형사님은 약주 드신 다음 날 아침에 황태 해장국으로 해장하는 걸 좋아하셔서요. 혹시 황태포가 있나요? 북어포라도 괜찮습니다.”

“형 해장국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제 손맛을 좋아하시는데.”

“제 형이에요. 제가 알아서 해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어쩔 수 없지요. 그럼, 김도형 형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수현은 빙글빙글 웃으며 노골적으로 도진을 도발했다. 얼굴이 벌게진 도진이 이글이글한 눈으로 수현을 똑바로 건너다보았다. 도진은 대체 수현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수현은 유치한 짓인 걸 알면서도 도진의 앙심을 머금은 시선을 깔보는 눈으로 받아쳤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싸늘한 공기가 뺨을 때렸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을 받은 수현의 그림자가 어두운 계단에 길게 구부러졌다. 수현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아직 덜 마른 바지가 몸에 감기는 느낌이 거슬렸지만, 머리를 가득 채운 묘한 생각에 비하면 차갑고 축축한 바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김도형과 김도진. 그 형제는 짝이 안 맞는 젓가락처럼 닮은 구석이 없었다.

< 정의로운 미식생활 >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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