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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 이야기 (225)화 (224/234)

225화

진호가 없어졌다. 그럴 리 없고 그래선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날 밤, 선우는 진호의 귀가가 생각보다 늦어지자 설마 앞으로 친구 만나러 보내 줄 때마다 이러지는 않겠지, 만약 그러면 이 버릇을 어떻게 고쳐 놓으면 좋으려나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한번 이렇게 풀어 줬으니 다음 주부턴 조금 더 엄격하게 굴어도 별말 없이 따라와 줄 거라고 생각하며, 조만간 또 체벌할 일을 만들어야겠다는 계획도 세우는 중이었다.

몰래 딸려 보낸 경호원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라고? 진호가 뭘 당해?”

- 납, 납치요, 정황상 납치를 당하신 것 같습니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성인 남자가 납치되었다고? 누가, 왜, 어떻게. 심지어 진호에겐 선우가 보낸 두 명의 경호원과 깡패 최태혁이 보냈을 조직원 두어 명이 붙어 있을 터인데, 그걸 다 제치고 납치?

선우는 반복해서 떠오르는 질문을 아주 나긋한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 예?

“감히 내 나비를 도대체 어떻게 데려갔냐 묻고 있잖습니까.”

네놈들이 거기 있었을 텐데.

이런 순간까지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타인에게 이성을 잃는 모습을 보이긴 싫어서 선우는 이 무능한 새끼들을 ‘네놈들’이라고 칭하는 대신 말을 삼키고 웃었다. 누군가 봤다면 오금이 저릴 만큼 기괴한 미소였지만, 다행히 그가 있는 서재엔 아무도 없었다.

- 그게 그러니까 제가 그,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급하게 교대를 요청했었습니다.

“아니,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가 지금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일의 전말은 나중에 따지고. 제게 지금 중요한 건 물리적인 의미에서 나비를 어떻게 데려갔는지, 어떤 걸 단서로 추적을 해야 할지를 묻고 있는 거예요, 저는.”

무능한 주제에 눈치도 없이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걸 막은 선우의 이마에 힘줄이 단단하게 돋았다.

이 업체는 못 쓰겠군. 선우는 스치듯 업체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결국 당신 파트너는 교대 근무자가 1분 뒤에 도착한다는 말만 듣고 자리를 이탈해서 화장실을 가느라 현장을 아예 보지도 못했고, 당신은 교대 근무자를 반겨 주느라 잠깐 뒤돈 사이에 일이 벌어져서 뒤꽁무니밖에 보지 못했다? 교대 근무자였던 놈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얼굴을 제대로 못 봤고?”

- …죄송합니다.

선우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 더 불거졌다. 이젠 기괴한 미소마저 없는 무표정으로 눈을 내리깐 채였다. 선우를 잘 아는 사람이 봤다면 곧 사달이 나겠다고 혀를 찰 만한 상태였다.

가만히 뭔가를 점쳐 보던 눈동자와 책상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동작을 멈추고, 아주 차분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모든 인력을 투입해서 찾으세요. 뒷수습은 내가 할 테니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은 한 명도 빠짐없이 동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장에 있었던 당신들은 아주 작은 단서라도 좋으니, 거기서 본 모든 것에 대해 아주 상세히 적어서 보내시고요. 아시겠습니까?”

- 네, 알겠습니다!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지 잔뜩 긴장하고 있던 경호팀장이 결의에 차서 대답했다.

선우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는 바로 생각해 뒀던 번호로 연락했다. 경호팀장이 결의에 차 있건 말건, 이미 무능함을 드러낸 사람만 믿고 일을 맡길 수는 없었다. 몇 번 울리는 수화음이 끊기자마자 선우는 용건부터 던졌다.

“네놈이 붙인 놈들은 뭐 했어.”

태혁이 진호 몰래 조직원을 붙인 것쯤이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걸 말없이 넘긴 건 만에 하나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슬리긴 했지만, 이번처럼 목적하는 바를 위해선 어떤 짓이든 하는 인간쓰레기들을 막기에는 유용할 테니까.

그럼에도 내심 본인이 선택한 경호업체가 기대보다 우수해서 이런 일은 없기를 바랐건만. 심지어 그가 예상했던 시나리오인, 경호원들은 놓치고 조직원들이 대처해 내는 것보다 더 최악인 일이 벌어졌다. 납치를 시도한 게 아니라 납치가 ‘되었다.’라는 건 태혁의 무능한 조직원들도 진호를 놓쳤다는 얘기였다.

치밀어오르는 짜증이 가득 담긴 질책이 앞뒤 맥락 없이 나갔고, 태혁 또한 매우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목소리로 답했다.

- 타이밍이 어긋났다고 하더군.

“하…. 이놈이나 저놈이나.”

- 그나마 네 쪽 사람들이 인상착의를 본 것 같던데. 내용 보내라.

습관적인 명령조가 거슬렸지만, 급박한 상황에 머저리처럼 굴고 싶지 않아 알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마침 들어온 메시지를 그대로 태혁에게 보내 주었다.

납치라는 불법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놈들이라면 태혁과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으므로, 똑같이 무능하더라도 태혁 쪽에서 더 빨리 찾을 확률이 높았다.

선우는 옷방으로 들어가 코트를 걸치면서 남궁후에게 전화했다. 그러나 수화음만 여러 번 울리는 걸 듣고 전화를 끊어 버린 선우는 남궁호로 대상을 바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 왜?

“진호 위치 파악해.”

호의 목소리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선우는 대뜸 할 말만 뱉었다.

“너희도 뭐든 붙여 놨을 거 아니야. 찾아. 진호 지금 납치됐어.”

진호는 몰랐지만, 쌍둥이들이 진호에게 선물이라고 건넸던 물건에는 대부분 위치추적이나 도청기 등이 붙어 있었다.

당연히 그딴 걸 그대로 둘 생각이 없는 선우가 모두 제거했었지만, 매우 집요한 놈들답게 쌍둥이는 끈질기게 시도했다. 얼마 전에 병원에서 마주쳤다고 하니 그 새 뭔 수를 써 둔 게 있겠지.

용건을 전달한 선우는 상대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통화를 종료해 버렸다. 그리고 두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관자놀이를 누르며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그의 차가 있는 곳에는 미리 대기시켜 놨던 기사가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보내 드린 주소로 가 주세요. 공원입니다.”

선우도 알고 있었다. 진호가 납치당한 공원으로 가 봤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렇게 직접 움직이는 건 여러모로 비효율적이었고, 서재에 앉아 보고만 받고 상황에 맞춰 지시 내리는 편이 그가 평소 할 법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짜증이 났고 화가 났으며, 무엇보다 불안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참, 답지 않은 짓을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나, 이 생소한 불쾌감과 익숙하지 않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고찰도 나중 일이었다. 지금은 우선 민선우 그의 눈으로 직접 그 공원에 진호가 없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그 생각만으로 도착한 공원 벤치. 그곳에는 익숙한 장정이 두 명이 서 있었다.

“너는 또 어떻게 알고 온 거야?”

태혁은 그가 연락하기도 했고 그 전에 붙여 놓은 놈들을 통해 들었으니 있을 법했지만, 새빈은 정말 의외의 인물이었다.

놀란 티가 하나도 나지 않은 선우의 나직한 물음에 진호가 앉아 있었을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던 새빈이 고개를 내렸다.

“난리네, 난리야. 그지? 얼마나 병신 같은 놈들을 붙였으면 서울 한복판에서 납치가 돼.”

대놓고 빈정거리는 어조에 태혁과 선우의 미간이 더 깊게 파였다.

“너희가 붙여 둔 무능한 놈들이 월급 루팡 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정의로운 시민이 목격하고 신고를 한 모양이야.”

아, 경찰. 선우는 새빈의 집안이 그쪽으로 많은 연줄을 대고 있다는 걸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저 좋은 것만 하고 다니는 놈인 줄 알았더니, 그래도 미리 뭔가 깔아 놓긴 했나 보네.

하긴, 새빈은 항상 그랬다. 속세에는 아무 관심 없는 것처럼 굴고 주야장천 혼자 사는 것처럼 굴면서도 저가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은 아주 철저히, 영리하게 써먹는 녀석이었다.

자신이 학대당하는 걸 도와준 경찰과 법조계를, 정작 학대 가해자인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저렇게 사심 없이 이용하는 걸 보면 선우마저도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선 그딴 것보다 진호의 행방이 더 중요했기에 선우는 감탄 대신 질문을 뱉었다.

“그래서. 추가된 정보는.”

“인상착의가 더 확실해졌을 뿐이야. 얼굴엔 뭘 쓰고 있어서 안 보였고.”

기대치고 영 시원찮은 답변에 선우는 이를 악물었다. 옆을 보니 태혁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때 타이밍 좋게도 남궁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전화를 받자마자 남궁호가 다급하게 말을 쏟아 냈다.

- 핸드폰 위치는 도로에서 끊겼어. 너 진호 지갑에 있던 것도 건드렸어? 이건 위치가 좀 이상한데?

마지막 질문을 듣자마자 선우는 지끈거리는 두통을 이기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눈을 감았다. 예상대로 남궁 호는 진호에게 뭘 붙여 놓긴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남궁호가 말하는 ‘지갑에 있는 것’은 정체와 상관없이 전혀 써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빌어먹을. 정말 이렇게까지 뭔가가 안 맞을 수가 있나.

“지갑은 진호가 납치되었던 장소에 떨어져 있었어. 그건 지금 경호팀이 가지고 있으니까 추적해도 소용없어.”

선우의 경호원들과 태혁의 조직원들 눈을 피한 것도 모자라 매일 검사했던 선우가 모를 정도로 치밀하게 심어 놓은 위치추적기는 마침 또 흘리고 갔다. 이쯤 되면 온 우주가 진호의 납치를 돕는 게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전화를 끊기 무섭게 다시 진동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렇게 선우와 태혁, 새빈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서 보고받고 지시하고, 또 다른 방법들을 강구하며 초조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끝낸 것은 선우에게 온 전화 한 통으로, 발신인은 그들이 그렇게 찾고 있던 진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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